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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도 남진이고요, 이번도 남진이여요. 근데 이번 남진이가 저의 내면과 더 가까워요."

임남진 작가는 불화와 민화를 바탕으로 사람들의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려온 작가다. 26일까지 양림미술관(광주광역시 남구 제중로70)에서 임남진 개인전 'Still Life _ BLEU'를 관람할 수 있다. 이전의 작품과 좀 많이 다른 풍경이라고 하니 임 작가가 던진 첫마디다.
  
임남진 작가가 개인전 「Still Life _ BLEU, 도록 표지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어 BLUE가 아니라 불어로 BLEU라 푸른색에 대한 색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임남진 작가가 개인전 「Still Life _ BLEU, 도록 표지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어 BLUE가 아니라 불어로 BLEU라 푸른색에 대한 색다른 느낌을 갖게 한다.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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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 알고 지내던 두 분이 갑자기 유명을 달리했어요. 두 분다 암 말기 판정을 받고 3개월만에 가셨는데 인생이 짧다, 참 허망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늘은 너무나도 맑고, 푸르고, 햇빛은 발광하듯이 좋은데 상가에 가니 기분이 참 묘해요.

사람 일은 모르니까, 나도 내일 죽을 수 있는데, 그 죽음이라는 것이 익숙하기도 하고 낯설기도 하면서 그동안 외롭고 힘들고 했던 것들이 갑자기 구질구질해지면서 살아있다는 거 자체가 감사하고 고맙더만요."


전시장 가득하게 임남진 작가가 본 푸른 하늘이 걸려 있다. 한 작품 한 작품 감상을 하노라니 어제 내가 본 하늘도 있고, 가슴이 미어질 듯 아픈 날 쳐다봤던 그날의 하늘도 있다.
  
<좌>Still Life _ WINE.  51x36cm.  한지채색.  2018.
 <좌>Still Life _ WINE. 51x36cm. 한지채색. 2018.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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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전 작품과는 많이 달라요. 예전 작품들도 참 좋았는데…
"예전에 그렸던 것들은 어쩌면 머리가 더 앞섰던 그림인지도 몰라요. 나이를 한 살 한 살 먹으면서 마음이 좀 여유로워지고, 자유로와지더만요. 앞으로 살 날이 얼마나 남았는지는 아무도 모르잖아요.

그래서 내 마음을 빼앗아 가는 것을 그리려고 해요. 이번 작업을 하면서는 꼬마때처럼 그림 그리고 노는 즐거움이 있었어요. 지난 봄에 기자님이랑 인터뷰 할 때 몸이 나이 들어가는 것에 대해서 그려야겠다고 했었잖아요. 그리고 보니 그때 내 맘이 이랬구나 싶더라고…"


하늘이 있고, 달이 있고, 전깃줄이 있고, 새가 있다. 그냥 푸르면서도 붓질을 따라 바람이 길을 만들고, 구름이 형태를 만들지 않고, 경계를 만들지 않았다. 그냥 하늘이다. 격정적이지도 않고, 노을로 화려하게 꾸미지도 않고, 편안한 얼굴로 마주하고 있다. 살다보면 지루할 것만 같은 일상이 눈물나게 고마운 날도 있는 법이다.
  
Still Life _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 110x190cm.  한지채색.  2018.
 Still Life _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 110x190cm. 한지채색. 2018.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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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품에 다 마음이 가시겠지만 어떤 작품이 제일 마음이 많이 가나요?
"가을을 슬퍼하는 이유. 제일 마지막으로 완성한 작품이기도 하고, 달 모양이랑 달빛  느낌 내느라 이틀동안 겁나 애를 먹었어요. 또 자유롭게 붓질하면서 나를 쏟아 부어 넣구요. 정말 제목처럼 그리고 싶었어요. 나 그대로를 담고 싶었어요."

자신을 담는다는 것. 자신의 가장 진실된 면과 맞부딪혀 자신을 본다는 것. 그것을 할 수 없으면 그릴 수 없었을 것이다. 어스름한 달빛에 산등성이가 보이고, 깊은 하늘이 보인다. 명랑하고 쾌활한 아는 언니 같은 임남진 작가의 내면은 한 폭의 동양화로 슬퍼하고 있구나.

- 이번 전시회 작품들 대부분에는 달과 전깃줄과 새가 많이 나오는데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굳이 상징을 이야기 한다면 달은 나를 투영하는 것 같아요. 내 마음에 따라서 달이 이뻤다가, 싫었다가, 슬펐다가 막 그래요. 전깃줄은 집과 집을 연결해주잖아요. 그걸 가만히 보고 있으니 추상적이기도 하고, 또 꼬여있는 전깃줄이 사람같이 느껴지더라고요.

살기가 힘든 동네에 가면 전깃줄이 이리저리 엉켜서 복잡하고, 부자 동네에 가면 전깃줄도 정리가 잘 돼 있고 깔끔해요. 어떻게 보면 전깃줄은 사람과 사람사이의 소통이기도 하구요. 새는, 우리는 누구나가 다 자신만의 파랑새가 있잖아요. 희망을 의미하기도 하고, 좌절일 수도 있고, 어떻게 보면 나이기도 하고, 기자님이기도 하고, 또 보는 사람에 따라 의미를 부여하면 돼요."

 
<좌>Still Life _ BLACK.  50x50cm.  한지채색.  2018
 <좌>Still Life _ BLACK. 50x50cm. 한지채색. 2018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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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무엇을 찾아 다니는 걸까? 찾을 수나 있을까? 찾지 못한다면 어떻게 될까? 또 찾으면 그것으로 완성일까?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어쩌면 나이 만큼의 슬픔과 고민이 생겨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 걸음조차 떼기 어려운 날, 하늘을 올려다보면 저런 하늘이었으면 좋겠다. 말갛고, 푸르기도 하고, 너무 푸르지 않기도 하고, 높으면서도 나를 나무라지 않는 하늘. 그래서 ƒ(포르테)-ƒƒ(포르티시모)로 하루하루를 살다가 맞이한 쉼표와도 같은 하늘.
  
Still Life _ BLEU.  36x51cm.  한지채색.  2018.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도 참 좋았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하늘에 비친듯한 색감은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잊고 비행하는듯한 느낌을 준다.
 Still Life _ BLEU. 36x51cm. 한지채색. 2018. 개인적으로는 이 작품도 참 좋았다. 에메랄드빛 바다가 하늘에 비친듯한 색감은 바다와 하늘의 경계를 잊고 비행하는듯한 느낌을 준다.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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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어려운 점이 없었냐는 질문에 여자로서의 이야기를 한다.

"나이를 들어가는 것이 슬픈 건 아닌데 어떤 고비를 넘어가는 거 같아요. 예전보다는 체력이 좀 떨어지는 것 같아요. 청년기는 지났으니까 아무래도 몸이 달라진다는 걸 몸이 말을 해주더라고요. 흰 머리 나는 건 상관이 없는데 제가 하고 싶은 일을  욕심만큼 못해내고 할 때가 좀 힘들었어요. 몸이 마음과 함께 간다고, 그냥 서글퍼지더라구요."

자연스러움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것. 여름이 가고 가을이 왔듯 곧 겨울이 올 것이다. 우리는 나이를 또 한 살 더 먹어 덜 젊을 것이며. 예전만큼 힘이 세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잠시 멈추고 앞으로 내게 올 시간들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보기에 딱 좋은 시간이다. 임남진 작가의 목소리를 귀에 담고 다시 하늘을 본다. 임남진 작가가 그린 하늘이지만 이제부터는 나의 하늘이 돼 내게로 오고 있다.
   
<좌>Still Life _ BLACK.  50x50cm.  한지채색.  2018.  <중>Still Life _ BLUE.  100x100cm.  한지채색.  2018.  <우> 90년대 초 광주미술인공동체에서 진행했던 <겨울미술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사제 지간을 맺게 된 전 명지대 미술사학과 이태호 교수가 방명록에 특별히 임남진 작가의 개인전을 붓그림으로 축하해주었다.
 <좌>Still Life _ BLACK. 50x50cm. 한지채색. 2018. <중>Still Life _ BLUE. 100x100cm. 한지채색. 2018. <우> 90년대 초 광주미술인공동체에서 진행했던 <겨울미술학교> 프로그램을 통해 사제 지간을 맺게 된 전 명지대 미술사학과 이태호 교수가 방명록에 특별히 임남진 작가의 개인전을 붓그림으로 축하해주었다.
ⓒ 김미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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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쁜 것은 누가 뭐래도 그냥 이쁜 것이어여잉. 마음이 가는대로 그리고 싶은 걸 그리면서 내가 많이 자유로워지고, 행복해졌어. 그냥 그 자체로 찬란하고 아름다운 걸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인 거잖아요."

태그:#임남진 개인전, #STILL LIFE _ BLUE, #양림미술관, #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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