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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에 갇힌 길고양이를 만나다

인하대학교 후문가, 수많은 길고양이들의 삶을 잠시 옅보다
18.11.21 17:55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지난 11월 1일, 학교 후배와 인하대학교 후문의 한 원룸주택가를 지나는데 어디선가 작게 동물 울음소리가 들렸다.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가보니 얼룩무늬 고양이 한 마리가 한 원룸 건물에 혼자 갇혀있었다. 한눈에 봐도 누군가의 보살핌을 받는 고양이는 아닌 것 같았다. 길고양이, 일명 길냥이였다.  
원룸 빌딩에 갇힌 고양이가 나를 향해 야옹거리고 있다. ⓒ 강주원

자기를 발견해주기를 기다렸다는 듯 우리가 다가가자 얼룩무늬 고양이는 더 크게 울기 시작했다. 우리는 빌딩에서 고양이를 꺼내기 위해 문을 열려고 노력해보았지만 비밀번호가 걸려있는 두꺼운 문은 열리지 않았다. 혹시라도 건물에 사는 누군가가 들어올까 한참을 문 앞에서 기다렸지만 30분 정도가 흘러도 아무도 오지 않았다. 고양이가 있는 복도의 방 창가는 환하게 불이 켜져 있었지만, 고양이의 울음소리 따위는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 아무도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지금 이 길거리에서 건물 안에 갇힌 이 고양이를 신경 쓰는 사람은 나와 나의 일행 두 사람뿐인 것 같았다. 할 수 없이 20분가량을 더 기다려보았지만 아무도 오지 않아서 결국 무거운 발걸음으로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고양이의 야옹거리는 소리가 한참을 귓가에 울렸다.
 
이 날 이후로, 나는 인하대학교 후문 원룸 가를 지나칠 때마다 길냥이가 있는지 없는지 자세히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그리 신경을 쓰며 찾아보지 않아도 꽤 많은 길냥이들을 마주칠 수 있었다. 눈처럼 하얀 털과 파란색 눈을 가진 고양이, 만화 캐릭터인 가필드와 똑같은 노란색 뚱냥이, 삵처럼 매서운 눈을 가진 얼룩 고양이, 회색과 흰색이 예쁘게 섞인 아기 고양이 등등.. 너무도 많은 길냥이들이 인천 남구의 뒷골목을 헤매고 있었다. 사람의 손을 꽤나 탄 듯 친숙하게 다가오는 고양이도 있었고, 아직 사람이 무서운지 다가가면 후다닥 도망가거나 차 밑에서 경계 어린 눈으로 쳐다보는 고양이도 있었다. 이렇게 많은 고양이들이 길위에서 어떻게 살아가고 있을까?

인천시는 일명 '캣맘 사건'이 발단이 되어, 지난 2013년 4월 남동구에서 처음으로 TNR사업을 실시했다. TNR사업이란, Trap-Neuter-Return의 준말로 길고양이를 포획해 안락사 시키지 않고 중성화수술을 한 후 다시 방사하는 것을 이른다. 이 사업은 국제적으로 검증된 길고양이 개체 수 조절관리 방법이다.

인천시의 2013년 중성화(TNR) 사업량은 1280두에 1억2800만원으로 유실·유기동물관리 6000두, 600만원 범위 내에서 확대 조정하며 실행하였고, 이후 2015년도에는 718마리 가량, 2017년도에는 1,146마리 가량을 TNR 하였다. 또한 2017년 4월 15일 대통령 선거 후보였던 문재인 대통령이 반려동물이 행복한 대한민국 5대 핵심 공약을 내놓으면서 이를 통해 길고양이 급식소 및 중성화(TNR)사업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어 길고양이를 위한 전망이 밝아질 것으로 기대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정부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많은 길고양이들이 고통받고 있다. 지난 5월에는 누군가 일부러 불을 붙여 화상을 입은 것으로 추정되는 새끼 길고양이가 인천길고양이보호연대에 가까스로 구조된 사건이 있었다. 또 지난 8월에는 대전에서 길고양이들이 다니는 길에 쥐약을 묻힌 닭고기를 놔두거나, 일부러 쇠못을 섞은 사료를 뿌려 놓아서 여러 마리의 길고양이들은 물론, 주인과 산책 나온 반려견들까지도 피해 입은 사건들이 발생하기도 했다.
 
길고양이들을 챙겨주는 이른바 '캣맘'들에 대한 시선도 마냥 곱지만은 않다. 인하대학교 후문 가인 미추홀구에서 자취하는 대학생 최 씨(21세, 여)는 자취방 근처 공사장에서 거주하는 호랑이무늬 고양이의 밥을 챙겨주다가 용현초등학교 근처 문구점을 운영하는 동네 주민에게 쓴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도둑고양이 밥 챙겨주지마. 학생이 안 챙겨줘도 알아서 먹고 다니는데 뭐하러 챙겨줘? 아가씨나 잘 하고 다녀' 라고 하더라고요. 길고양이가 안쓰러워서 먹이를 챙겨주려고 해도 다른 주민들이 싫어할까봐 눈에 띄지 않게 몰래 챙겨주게 되는 것 같아요."라며 씁쓸해 했다.

며칠 전, 원룸 빌딩에 갇혀있었던 얼룩무늬 고양이를 우연히 다시 만나게 되었다. 그 건물 근처에서 계속 살고 있었는지 주변 음식점 앞에 가만히 앉아있었다. 누군가 문을 열어주어서 무사히 빠져나왔나 싶었다. 내가 다가가니 머리를 다리에 비비기도 했다.
다시 만난 얼룩무늬 고양이. 빌딩에서 무사히 탈출한 듯 보인다. ⓒ 강주원
 
쌀쌀한 가을 바람이 부는 11월도 이제 벌써 막바지에 이르렀다. 12월을 눈 앞에 둔 지금, 길 위의 고양이들은 또 어떤 겨울을 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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