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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헌법적 가치는 민주주의와 자유주의를 지향하는 것이다. 이러한 헌법적 가치를 지켜내기 위해 우리 헌법 제1조는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며(제1항)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제2항)라고 선언한다.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기본권이나 통치구조는 모두 이러한 헌법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다.

헌법에서 보장하고 있는 국민의 기본권은 최대한으로 보장돼야 하고, 국가권력은 서로 견제하면서 국민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 기본적 골격이다. 국가권력이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행정부, 국회의원으로 구성되는 입법부, 재판업무를 담당하는 사법부 3권으로 분리돼 상호간 견제와 균형을 다하도록 규정하고 있는 이유다.

권력분립의 원칙, 민주주의의 작동

권력분립의 원칙은 근대 이후 대부분의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 정도에 따라서 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냐, 아니면 불완전한 민주주의 국가냐로 나뉠 수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대통령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군사정부시대에는 행정부의 권력이 비대하고, 상대적으로 입법부와 사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로 인해서 국민의 기본권이 유린당하는 불행한 역사가 반복되기도 했다. 권력분립이 제대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면 당연한 결과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받는다. 자유주의와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다.

권위주의 대통령을 정점으로 하는 행정부가 입법부를 통제하고 사법부에까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된다.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되더라도 이를 바로잡아야 할 사법부가 되레 권력의 편을 들어 인권탄압의 도구로 전락하는 것이다. 우리가 1990년대 초반까지의 군사정부 시대에 반복해서 목격했던 모습이다.

사실 행정부와 입법부의 권력이 통합되더라도 사법부가 독립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하게 되면 국민의 기본권은 침해받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사법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하면 국민의 기본권은 망가진다. 그만큼 사법부의 제대로 된 역할이 중요하다.

사법부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무엇인가? 독립해서 판결을 하는 것이다. 어떠한 국가권력에도 굴하지 않고 법과 양심에 따라서 판결해야 한다. 우리 헌법 제103조에서 규정하고 있는 내용이다. 권위주의 정부 시절 사법부가 행정부의 시녀 역할을 함으로써 무고한 많은 사람의 인권이 침해당했다.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이에 대한 반성으로 민주정부가 수립된 이후 과거의 사법부 판단에 대하여 재심이 이뤄졌고, 대부분 무죄를 선고받았다. 그러나 이미 많은 사람이 죽은 다음이었고, 인생이 망가진 다음이었다. 사법부가 재심에서 무죄판결을 하면서 과거의 잘못에 대하여 진심 어린 사죄를 하는 모습을 여러 차례 보여줬다.

과거 사법부 판단에 대한 반성 있었지만...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양승태 대법원장 퇴임식이 진행되고 있다.
 22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양승태 대법원장 퇴임식이 진행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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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민주주의가 회복된 최근까지도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를 동원해 대법원장의 정책에 반대하는 법관을 사찰하고 대통령과 재판거래를 하면서 재판의 진행방향을 미리 파악하는 사법농단이 자행됐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국민들을 충격에 빠뜨리고 있다.

판사들은 물론 고등법원 부장판사, 급기야 법원행정처장 지위에 있었던 사람들까지 수사를 받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에다 수사를 맡고 있던 검찰이 판사들이나 법원에 대한 압수색영장을 신청하면 여지없이 기각되는 상황이 발생하다 보니 법관과 사법부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바닥에 떨어져 재판의 신뢰가 회복하기 어려운 지경까지 이르렀다.

여당과 일부 야당이 특별재판부 구성을 논의하고, 일부 정치권에서는 사법농단에 관여했던 판사들에 대해 탄핵 발의를 해야 한다는 주장이 일고 있는 가운데 각급 법원의 대표 판사들로 구성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지난 19일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에 연루된 판사들에 대해 징계 절차뿐만 아니라 탄핵소추 절차까지 함께 검토돼야 한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내놨다.

그렇다면 검찰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법농단에 대한 수사, 일부 정치권에서 안을 내놓은 특별재판부의 구성 외에 사법농단 법관들에 대한 탄핵심판이 왜 필요한지 살펴보자.

탄핵, 그 필요성
 
19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사법농단 판사 탄핵소추를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의 선언문을 채택했다.
 19일 경기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전국법관대표회의가 진행되고 있다. 이날 회의에서는 사법농단 판사 탄핵소추를 검토해야 한다는 내용의 선언문을 채택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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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법관들에 대한 탄핵에 대해서는 우리 헌법에서 명확히 규정하고 있다. 판사는 다른 공무원에 비하여 고도로 신분이 보장된다. 어떠한 국가 권력에도 굴복하지 말고 법과 양심에 따라서 마음 놓고 재판해라는 명령이다. 우리 헌법 제106조 제1항에서도 '법관은 탄핵 또는 금고 이상의 형의 선고에 의하지 아니하고는 파면되지 아니하며..."라고 규정하는 이유다. 법원 내부에서도 파면할 수 없는 것이다. 오로지 금고 이상의 형을 선고받거나 헌법재판소에서 탄핵 받은 경우에 한해서 파면될 뿐이다. 

현재 검찰의 수사 결과 혐의가 인정돼 기사되고, 재판을 통해서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경우 당연히 파면된다. 그 이외에는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탄핵절차를 통해서만 파면될 수 있다. 탄핵심판은 헌법 제111조 제1항 제2호에서 규정하고 있으며 헌법재판소가 심판권한을 갖는다. 헌법 제65조 제1항에서는 헌법이나 법률을 위배한 법관을 탄핵심판의 대상으로 규정하고 있으며, 제2항에서는 국회 재적 의원 1/3 이상의 발의와 국회 재적 의원 과반수의 찬성으로 탄핵소추가 가능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탄핵소추 의결을 받으면 탄핵심판이 있을 때까지 그 권한행사가 정지된다(제3항). 그리고 탄핵결정은 공직으로부터 파면함에 그칠 뿐 민사상이나 형사상의 책임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므로(제4항) 형사절차와 탄핵절차가 동시에 진행되더라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니까 지금의 상황에서 사법농단에 연루된 판사들에 대해 탄핵절차를 진행하더라도 절차상 아무런 문제가 없다.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고..." 김관영 원내대표의 말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문희상 국회의장과 야3당 원내대표와의 회동을 하기 위해 의장실로 들어서고 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가 20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문희상 국회의장과 야3당 원내대표와의 회동을 하기 위해 의장실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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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일부에서는 법관 탄핵에 회의적인 반응을 내놓고 있다. 김관영 바른미래당 원내대표는 20일 의원총회에서 "국회에서 법관 탄핵을 논의하는 것은 시기상조"라면서 "검찰 수사가 진행 중이고 범죄 사실이 드러나지 않아 탄핵 대상을 특정하고 탄핵 사유를 구체화하기 어렵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탄핵절차와 수사절차는 달리 진행되는 것이고, 수사단계에서 범죄혐의가 정리되지 않았더라도 문제된 사실관계가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심판 절차도 수사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뤄졌다.

따라서 수사를 이유로 탄핵절차를 미뤄야 한다는 주장은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더욱이 법관이나 사법부에 대한 수사절차가 진행되더라도 진실을 밝히는 데 여러 가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강제수사를 위해서는 법원에서 발부한 영장이 필요한데 이번 사법농단 수사과정에서 적나라하게 보아듯이 영장을 심사하는 담당법관이 영장발부를 기각하는 경우가 빈번하기 때문이다. 

또한 형사처벌은 피고인의 인권보호를 위해 엄격한 절차를 거쳐야 하고, 입증절차도 법에서 정해진 절차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 그러나 탄핵심판은 형사재판이 아니므로 형사절차와는 다르게 융통성을 발휘해서 진행될 수 있다. 따라서 같은 사안에 대하여 형사처벌이 불가능하더라도 탄핵결정이 가능한 경우는 얼마든지 있게 된다. 사법농단 사건에 대하여 형사절차와 다르게 탄핵절차가 조속히 진행되야 하는 이유다.   

헌법을 침해한다면... 예외가 없어야 한다

민주주의나 법치주의가 제대로 발현되기 위해서는 헌법의 기본적 가치를 부정하거나 침해하는 경우 어떠한 경우에도 예외를 두지 말아야 한다. 더욱이 수사절차에서 법관들의 집단적 이기주의로 적정한 수사가 방해를 받는 마당이다. 그뿐만 아니라 객관적으로 재판이 이뤄지기 위해 특별재판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고 있지만 일부 정치권과 사법부가 반대하는 입장이다.

이러할 때에는 침해받은 헌법질서를 회복하기 위하여 헌법재판소가 적극적으로 역할을 해야 한다. 지금은 판사들 내부에서마저 탄핵논의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때다. 내부의 자정결의를 통해 사법부의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는 절박감의 표현이다. 사법부나 판사들이 국법질서를 어지럽힌 경우에도 일반 국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법적인 처벌을 받아야 한다.

이미 헌법에서 예정하고 있는 탄핵재판은 이러한 경우를 두고 마련된 규정이다. 사법부나 판사들도 법 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탄핵제도를 사문화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하는 이유다.

덧붙이는 글 | 글쓴이 김정범씨는 법무법인 민우 소속 변호사로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겸임교수이기도 합니다.


태그:#판사탄핵, #법관탄핵, #사법농단탄핵, #사법농단재판거래, #재판거래양승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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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갑습니다. 변호사와 법학전문대학원(로스쿨) 겸임교수(기업법, 세법 등)로 활동하고 있는 김정범입니다. 공정한 사회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고 함께 더불어사는 세상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에 배치되는 비민주적 태도, 패거리, 꼼수를 무척 싫어합니다. 나의 편이라도 잘못된 것은 과감히 비판합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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