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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의 폭풍성장

며칠 전 아내가 올린 페이스북의 글이다.
 
막내가 자꾸 자란다. 아쉽다. 가는 계절을 잡지 못하는 것처럼 아깝다. 어린 아기는 이제 몇 십 년 후에 손주들에서나 보겠지. 더 이상 아이는 우리 손을 잡지 않고 달려간다. 어린이집에 결혼하고 싶은 친구가 있다며, 언제 어른이 되냐고, 언제 결혼을 할 수 있냐 묻는다. 오늘 아침엔 세 아이를 차례대로 무릎에 앉혀 안아주었다. 큰 애에겐 이제 내가 안기는 모양새가 되었다.
     
6살 막내 복댕이가 부쩍 컸다. 언제부터인가 글도 떠듬떠듬 읽기 시작하더니 이젠 길을 가다가 보이는 간판도 제법 잘 읽는다. 항상 어린 아기일 줄만 알았는데 돌아보면 커져 있고, 돌아보면 또 커져 있다.

시간이 지나면 아이는 크고 어른은 늙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거늘, 아내의 말마따나 그 시간이 아깝다. 아이들이 자라는 만큼 내가 늙는 것도 탐탁지 않지만, 무엇보다 아이들의 귀여움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제 조금만 있으면 시커먼 머슴아가 되어 나를 내려다보며 굵은 목소리로 "아빠, 용돈 좀 줘요" 하겠지.

우리는 그런 지금이 아까워 사진을 찍는다. 아직 엄마 아빠가 전부인 아이들의 모습을 남기기 위해 사진을 찍고, 그 행동들이 귀여워 동영상을 남긴다. 가끔씩 페이스북에서 보여주는 몇 년 전의 사진들이 보여주는 감동. 그 찰나의 순간을 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공을 들이는지.
  
하지만 사진과 동영상으로 남기지 못하는 것들이 있다. 바로 아이들의 말이다. 가끔 내뱉는 아이들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는지 대견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며, 가끔은 나를 깨우치는 한 마디에 서늘하기까지 한다. 그런 아이들과의 대화를 남겨두고 싶어서 아내와 나는 글로도 남겨보지만 태부족이다. 어쨌든 말은 쉽게 발화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 그 아이들의 말을 남길 수 있는 좋은 방법을 가르쳐주는 책 한 권이 있다. 바로 오마이뉴스 김병기 기자와 그 가족이 쓴 <글쓰기 가족 여행>이다. 저자는 여행을 다니면서 자신의 가족들이 만드는 '가족 신문'을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은 아이들의 언어를 기록하는 방법이기도 했다.

그래, 부모가 아이들의 말을 모두 기억할 수 없다면, 아이들이 직접 자신의 언어를 남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겠지. 과연 저자들은 어떻게 가족 신문을 만드는 것일까?

가족 신문과 글쓰기
 
 글쓰기 가족여행
 글쓰기 가족여행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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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새벽에 나가 늦게 퇴근하는 아빠의 미안함을 덜기 위해 '가족 신문'을 처음 만들기 시작했다고 고백한다. 아이들을 키우기 위해 사회생활을 접은 아내에게 미안해서, 아빠와 데면데면해지는 아이들과의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을 가족에게 제안한 것이다.
 
 '글쓰기 가족 여행' 뒷표지
 "글쓰기 가족 여행" 뒷표지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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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을 가서 가족 신문을 만들자는 아빠의 제안은 가족들에게 각각의 계기를 만들었다. 아이들은 꾸준히 글을 쓰면서 글에 대한 두려움을 떨칠 수 있게 되었고, 엄마는 여행을 통해 꿀 같은 휴식을 취할 수 있게 되었으며, 아빠는 자신이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으로 가족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아이들에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보여주는 것만큼 보람된 일이 또 있을까.

저자는 1호부터 12호까지 만들어진 가족 신문을 책에서 틈틈이 소개하는데, 신문에 실린 기사에서 아이들의 글 솜씨가 얼마나 늘었는지 쉽게 알 수 있다. 특히 처음 기사를 쓸 때 초등학교 3학년생이었던 초대 편집장 민이의 글쓰기 능력은 그야말로 일취월장이다.
 
우린 상류, 중류, 하류에 있는 흙과 모래를 채집했다. 그 결과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알갱이가 작아진다는 것을 알아냈다. 직접 탐험하면서 바다에 가까워질수록 강의 폭이 넓어진다는 것을 알았다(김민 기자, <바다와 하나 되는 영산강>, 가족신문 1호) - 20p

딱 놀기 좋은 깊이였다. 북한산, 가야산에 있는 계곡보다 좋았다. 내장산은 '내장처럼 구불구불한 산'이란 뜻이다. 내장산 계곡도 내장 속에 융털이 달린 것처럼 울퉁불퉁했다. 그래서 중간 중간 천연적인 미끄럼틀이 만들어져 있었다. 꼭 워터 파크에 온 기분이었다. 계곡물 상류에서 약 50cm 정도, 약 3m 간격으로 흥미진진한 미끄럼틀이 펼쳐져 있다(김민 기자, <내장 같은 내장산 계곡>, 가족신문 10호) - 226p
 
글쓰기 실력은 결코 쉽게 늘지 않는다. 나이를 먹는다고 자연스럽게 글을 잘 쓰지는 않는다. 아직도 많은 직장인들이 끊임없이 글쓰기와 관련된 책과 강의를 찾아보는 이유이다.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꾸준히 많이 써야 한다. 무엇을 쓰든 무조건 뭔가 쓰고 봐야 한다. 틀려도 쓰고, 부끄러워도 써야 한다. 세상에 쓸 게 없다는 건 말이 안 된다. 그 속에서 의미를 찾는 것은 결국 나의 몫이다.

따라서 어린 기자들은 어떻게든 글을 쓰기 위해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본다. 기존의 편견을 버리고 자신의 이야기를 찾는다. 그들이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을 떨치고 자신의 글을 쓸 수 있게 된 이유이다.
  
게다가 주목할 점은 편집장의 책임과 권한이다. 초등학교 3학년생 민이는 초대 편집장으로서 가족신문을 만드는 데 최선을 다한다. 자유롭게 모든 걸 할 수 있지만, 책임을 갖고 신문 한 편을 제작해야 한다.

책임감은 사람을 성장시킨다. 민이가 엄마, 아빠를 재촉할 수 있는 힘이다. 동생 영이가 그런 언니를 보면서 1학년 때 2대 편집장을 자처한 것은 가족신문이 아이들에게 얼마나 큰 동기부여가 되는지 보여주는 예이다.

가족 신문과 성장

가족 신문은 아이뿐만 아니라 부모도 덩달아 성장시킨다. 김병기 기자는 가족 신문을 통해 다시금 아이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방법을 깨친다. 아이들의 발상은 신선하고 순수하며, 꾸밈이 없다. 글 한 줄을 적어도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찾아내려는 어른들과 다르다. 동시가 가지고 있는 힘이다.
 
나는 발형다층석탑을 봤을 때 항아리를 거꾸로 올린 모양 같아서 '거꾸로 항아리 석탑'인 줄 알았다. 항아리처럼 생긴 돌들이 쌓여 있었기 때문이다. 중간에는 항아리 뚜껑도 있다. 탑 앞 설명판에는 '주판알 같다'고 쓰여 있는데, 항아리로 보면 항아리고 주판알로 보면 주판알 같은 이상한 석탑이다(김민 기자, <내가 지은 이름>, 가족신문 1호) - 31p

실상사의 철조여래좌상 부처님은 뿔났다. 입은 굳게 닫혀 있고 눈은 양옆으로 찢어져 우릴 노려보고 있다. 통일신라 말이라 썩어가는 신라의 귀족들에게 화를 내는 건 아닐까? 이 약사여래 부처님은 근엄하고 딱딱한 표정을 띠어서 온화함과 생동감을 보이던 앞 시대의 불상과는 매우 다르다. 꼭 그 시대의 부패한 신라 귀족들을 꾸짖는 것 같다(김민 기자, <부처님이 뿔났다>, 가족신문 6호) - 124p
  
그뿐만이 아니다. 아빠는 아이들의 기사를 보면서 다시금 기사쓰기의 ABC를 복습해 간다. 솔직하고, 시의성 있으며, 미리 준비하고, 가슴이 뛰고, 꾸밈없이 담백하게 쓰는 기사. 그것은 시민기자들이 항상 궁금해 하는, 어떻게 하면 기사를 잘 쓸 수 있는지에 대한 대답이기도 하다.
 
반면 아빠 기자의 글은 달랐다. 어깨에 힘이 들어간 게 느껴졌다. 설명하려고 했고 가르치려고 했다. 아이들처럼 즐기지 못한 탓이다. 무엇인가를 관심 있게 들여다보면서 취재하지 못한 탓이다. – 89p

익숙한 것은 편하다. 멈춰 있기 때문이다. 새로운 도전이 없기 때문이다. 익숙한 것은 안정적이지만 감동이 없다. 생각조차 멈춰 있기 때문이다. 가슴 뛰는 삶을 살고 싶다면 익숙한 것과 매일매일 결별해야 한다. 그래야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가족신문 5호가 내게 남긴 선물 같은 교훈이다. - 117p
 
도전해보자, 가족 신문

<글쓰기 가족 여행>의 가장 큰 장점은 아주 쉽게, 빨리 읽힌다는 점이다. 근 2시간 만에 후딱 책을 읽은 뒤 10살 까꿍이의 눈에 잘 띄는 곳에 책을 놔뒀더니 역시나 녀석이 관심을 가지고 책을 훑어봤다. 그러더니 자연스럽게 제안한다.

"아빠, 이거 재미있겠다. 우리도 가족 신문 만들어보자."
"(짐짓 모른 체 하며)그래? 안 그래도 이번 주말에 영월 가는데 한 번 만들어 볼까?"
"그래."
"그럼 네가 초대 편집장이야. 기사는 우리 가족들이 모두 쓰고 네가 그 기사들을 붙이고 꾸미고 하는 거야. 네가 마음대로 해봐."

 
 엄마기자의 기사
 엄마기자의 기사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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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편집 중인 가족 신문 1호
 편집 중인 가족 신문 1호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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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해서 우리 가족의 신문 1호는 현재 제작 중이다. 처음엔 시큰둥하던 8살 둘째와 6살 막내도 엄마, 아빠까지 덤벼들어 기사를 쓰기 시작하니 경쟁적으로 만화와 그림으로 기사를 작성했다. 10살 까꿍이는 기자수첩을 들고 어디를 가든 무언가를 열심히 기록하고 그렸다.

과연 우리의 가족 신문 1호는 어떤 모습일까? 또 아이들은 자신들의 언어를 어떻게 날것으로 남겼을까? 많은 이들에게 이 책을 권한다. 각자의 가보를 만들어 보시기를.
 
아빠가 미는 가족 신문 표지 삼남매에게 장풍 맞은 엄마
▲ 아빠가 미는 가족 신문 표지 삼남매에게 장풍 맞은 엄마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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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지금은 비록 회사에 몸이 묶여 있지만 언제가는 꼭 공부를 하고자 하는 꿈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마이뉴스 에디터. 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