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음악대학의 변화와 교육 패러다임의 전면적 전환

18.11.19 21:26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수능도 끝나고 이제 음악을 비록한 예체능은 이제 본격적인 입시철을 맞았다. 꼭 대학입시뿐이겠는가! 음악대학을 비롯한 교육기관은 한국 클래식을 버텨왔던 근간이었는데 이제 그게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이제 땜방식의 처방이나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기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개혁과 클래식 음악시장 창출과 마인드의 전면적 전환이 필요할 때이다. 

미국선교사들과 일본을 통해 서양클래식음악이 유입된 후 1980년대, 미래 발전가능성이 높고 경쟁력이 있는 과목으로 예술이 각광을 받으면서 전국적으로 클래식교육학과가 지방의 전문대까지 확산되는 등 서구 클래식음악이 호황을 맞았다. 그때는 수요가 있고 가르칠 수 있는 자원이 많지 않았으니 유학만 갔다 오면 교육기관의 취직이 용이했으며 음악가들도 사회적으로 부와 명예를 누릴 수 있었으며 무엇보다도 음악이 예술로서 독립적인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2천 년대 중반을 기점으로 국내 경제성장 정체와 학령인구의 감소, 그리고 IMF를 겪고 난 후 사회의 고용불안정으로 인해 추상적이고 관념적인 예술보다는 안정적이고 보장된 직업으로의 사회관심의 선회, 그리고 실용음악의 위상정립과 그에 따른 수요급증, 한류 열풍으로 인한 다른 타 엔터테인먼트과에 밀려 음악대학, 예술대학이 현재는 대학구조조정의 1순위요 기존 교수들만 명예퇴임하면 폐과의 순을 밟는 단계에 와 있으니 어느 누구도 쉬 짐작하지 못한 급박한 변화와 추락이라 밖에 할 수 없다.
 
 클래식음악 위상추락의 일차적인 책임은 클래식음악계 스스로 있다. 현재 대한민국에서는 클래식음악을 수용할 문화사업 시장이 거의 존재하지 않으며 학원이나 교육기관은 포화상태이고 연주단체에는 선배음악인들이 이미 자리 잡고 있어 호황기에 조절 없이 배출된 수많은 음악인재들의 활동과 생계를 유지할 공간이 없다.
 
 클래식음악은 우리 것이 아니라 서양 사람들의 음악이다 보니 한국에서의 클래식음악은 태동부터 음악인들도 청중들도 익숙하지가 않은 배워야 이해가 되는 그런 예술이었다. 교육 받고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향유 할 수 있는 몇몇의 좁은 범위 내에서 한국 클래식음악은 시작하였고 그러다보니 처음부터 학교라는 아카데미 안에서 서식 할 수밖에 없었다. 즉 음악대학은 한국클래식을 버텨왔던 근간인 것이다. 음악대학 안에서 일대일 도제식수업을 진행하다보니 사제 간의 관계가 단순한 스승과 제자를 넘어 졸업 후에도 전공분야에서의 활동보장과 생계유지를 위해선 절대적으로 복종하고 따라야하는 갑을관계로 변모되었다. 학교 위주의 구조가 2000년 중반까진 그래도 대학 내부 보호막에서의 보장과 수용이 가능하였기에 거기서 파생된 학회, 동문들 위주의 연주단체들이 유지되었으나 대학의 상업화가 가속되면서 기존의 대학위주의 클래식음악계의 붕괴가 가속도 되면서 이미 배출된 수많은 음악인재들의 수용과 취업이 문제로 떠올랐다. 보다 나은 양질의 교육을 받기위해 클래식 음악 문화의 흐름을 주도하는 클래식 음악의 본고장에 유학을 다녀온 우리나라의 전문 음악인들은 알맹이 없는 문화정책과 폐쇄적인 음악계의 관행으로 인해 그들이 감당해야할 사회적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 이는 음악계의 중심에 있는 대학교수들마저도 서울의 몇몇 곳과 수도권의 몇몇 정해진 장소에서 연주회를 가져야만 높은 평점을 받을 수 있는 폐쇄적인 음악 학계의 관행이 주요인으로 생각된다. 불합리한 제도와 관행으로 인해 대학의 강사도 안정된 직업이 될 수 없고 그 결과 전문 음악인들의 생활도 안정되지 못하여 2~3개의 부업을 병행하고 있다.
 
 첫째로 대학에선 전통이라는 미명 하에 20년, 30년 전의 교육방법을 그대로 쓰고 있으며 시대의 흐름에 교육이 부합되지 못하고 있다. 시대는 급속도로 변하는데 아직도 클래식음악은 30년 전의 교재로 교수들이 학창시절에 배운 한정된 레퍼토리의 학습에만 머물러 있다. 학습을 통해 익힌 레퍼토리들을 재해석하고 뛰어 넘어 새롭고 신선하며 창의적으로 새로운 문화예술을 선도해야하는데 그러지 못하고 과거 유물들의 재현에만 집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둘째로 음악가로 할 수 있는 일이 다양하고 유한함에도 불구하고 그 길을 보여주지 못하고 편협한 사고방식에 갇혀있다. 명지대학교 예술대학 김시형 교수에 따르면 "음악가들도 예술가의 정신만으로 살 수 있는 시대를 지났습니다. 1인 기업가의 정신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하며 미국의 음악대학에서는 학생들에게 재무제표, 펀딩, 홍보를 가르치고 뮤직테크놀로지과로 공연과 연관 지어 과 이름도 바뀌어 가는데 국내음악대학에서는 그런 변화에 뒤처지고 교수 위주의 전통학습에만 머물러 있다 보니 음악대학 학생들이 졸업 후에도 몇몇의 특출한 실력을 가진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연주로만은 대중들에게 어필하기가 힘들어 생계가 막막해진다고 주장한다. 음악대학, 더 나아가 예술대학 졸업생들의 수는 많아지는데 이들이 공식적으로 연주하고 활동할 무대가 없다보니 실질적으로 이들은 모두 실업자의 상태라고 볼 수 있다. 음악 외의 분야에서 공부한 사람들이 열심히 노력해서 회사에 들어가면 회사에서 인재육성차원에서 유학을 보내주고 연수도 시켜주고 그러면서 인재를 만들어가지만 연주자는 악기, 유학비용을 자기가 다 내야한다. 이렇게 자기 스스로 최고의 투자를 했는데 귀국 후에는 자신이 갈고 닦을 실력을 선보일 무대 자체가 존재하지 않으니 오케스트라에 나가서 엑스트라로 받는 돈을 생각하면 그 노력하는 시간만 보더라도 다른 사람들에 비해 소득이 너무 적다.

 셋째로, 대학이 학문연구와 교육이라는 기본 취지에서 벗어나 급속도로 상업화되고 재정확보와 수익창출에 혈안이 되어가는 현 풍토도 음악대학 몰락의 결정적인 타격이다. 순수예술은 사회적으로 중요한 가치를 당장의 이익을 중시하는 시장 메커니즘이 지지하지 못하는데서 발생하는 시장손실(market failure)을 보완하는 가장 중요한 대안 중 하나인 사회적 관계회복이 가장 필요한 분야이다. 당장 인기가 있어서 문화 소비자들에 의해 시장메커니즘이 지탱 될 수 있는 대중예술과는 달리 단기적 대중성이 낮고 성과나 수익이 보장되지 않는 순수예술은 그 자체의 사회적 중요성과 명분에 대한 공감과 존중이라는 사회적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 또한 학문 차원에서 기능을 발휘하고 그 가치를 인정받아야 하기 때문에 대학에서 보호 받아야 할 예술이 대학의 운영방향과 기조가 수익과 경쟁으로 바뀌면서 거기에 제일 반하는 것이 되어 버렸다.

 넷째로, 국내고용시장 불안정으로 인한 경기침체로 사회의 보수화와 경직화 가속이다. 실업률 증가는 국가 차원에서는 심각한 사회, 경제적인 문제로 인식되어 정치인들에 의해 실업률 억제와 채용증가가 공약으로 내걸리고 이슈화 되어 정부정책이 되어 버렸다. 그 결과 취업을 많이 시키고 고용안정을 창출하는 대학에 국가 차원에서의 재정지원을 하게 되고 연구사업 등 수익사업의 기회를 제공하는 프라임사업, 링크사업 등으로 인해 그 자금에 눈독을 들인 대학경영진의 요구에 따리 이공계 정원을 늘리고 예체능계 정원을 줄이고 있으며 취업률이라는 지표에 따라 4대보험이 적용되는 직장에 많이 취업을 시키는 대학이 우수한 대학이 되고 대학지표에서 선두에 서게 되며 대학구조조정의 평가기준이 되고 있다. 음악 전공으로 4대보험이 제공되는 직장이 거의 전무한 현실은 고려되지 않고 있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