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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홋카이도의 밤거리. 어느 한 구석에 귤을 파는 노점상 할머니가 있을 것 같다.
 홋카이도의 밤거리. 어느 한 구석에 귤을 파는 노점상 할머니가 있을 것 같다.
ⓒ 구창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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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송이버섯이 왔고, 남한 제주도 귤이 갔다.

미국을 주축으로 한 국제사회의 엄혹한 제재. 그 속에서 70년을 헤어져 살았던 대한민국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미래를 위해 '화해의 선물'을 주고받았다.

송이버섯과 귤의 향기가 핵무기로 인해 얼어붙은 이 땅 사람들의 마음을 녹여줄 수 있을 것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누가 있어 쉽게 할 수 있을까.

그러나 오래 전 철학자들의 전언처럼 "희망이란 절망의 끝에서 잉태되는 것"이 아닐지. 낙관은 언제나 비관을 가까스로 제압하며 우리의 앞길을 열어왔다. 어둠이 없다면 빛도 없고, 밤의 적막이 주는 서러움을 모르는 이들은 햇살 눈부신 새벽의 희망을 노래하지 못한다. 그게 세상 이치다.

하지만 "어떤 상황에서라도 희망을 가지라"는 말을 아무렇게나 내뱉는 것도 타자(他者)를 향한 오만이 아닐지. 인간이 산다는 것은 답하기 어려운 물음 앞에 위태롭게 서는 것과 다르지 않다.

 
 눈 쌓인 홋카이도 거리를 걷다보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눈 쌓인 홋카이도 거리를 걷다보면 ‘인간은 본질적으로 고독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 구창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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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홋카이도, 한적한 온천마을에서 맛본 외로움

일본 최북단에 위치한 홋카이도는 아름다운 설경(雪景)으로 한국 관광객들에게 유명하다. 도청 소재지인 삿포로에서 해마다 열리는 화려한 눈 축제는 전 세계 사람들이 즐겨 찾는다.

사할린보다 더 큰 설국(雪國)에 가고자 했던 이유는 일본의 소설가 가와바타 야스나리(1899~1972)처럼 '절대 고독' 속에서 얼마간 머물러보고 싶다는 욕심에서였다.

홋카이도의 화산지대와 호수를 둘러보고 나요로 분지(名寄盆地)까지를 확인한 후 조용한 시골 마을로 향했다. 그곳 온천이 좋다고 했다.

여름과 겨울의 온도차가 40도일 정도로 매우 크고, 건강한 사람도 불어오는 겨울바람에 어깨를 움츠릴 수밖에 없다는 홋카이도에서 뜨거운 물이 솟는 온천은 부정하기 힘든 매력적인 관광자원이다.

그러나, 선택은 그다지 성공적이지 못했다. 도착 후 반 시간 가량 따뜻하고 매끄러운 물에 몸을 담그는 것까지는 좋았다. 헌데, 그 이후엔 뭘 해야 할지 막막했다. 시간은 겨우 밤 9시. 사방은 불빛 하나 없는 캄캄절벽이었다.

한국이라면 초저녁일 그때, 24시간 편의점은 물론 백열등 밝힌 카페나 선술집 하나 찾기 힘든 일본 북부의 촌구석.

갑작스레 슬퍼졌다고 말한다면 '감정의 과잉'일까. 아주 오래 전 읽은 '슬픔'과 '쇠락'에 관한 시 한 편이 불현듯 떠올랐다. 이런 것이다.

슬픔이 기쁨에게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 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 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

내가 어둠 속에서 너를 부를 때
단 한 번도 평등하게 웃어 주질 않은,
가마니에 덮인 동사자(凍死者)가 얼어 죽을 때
무관심한 너의 사랑을 위해
흘릴 줄 모르는 너의 눈물을 위해
나는 이제 너에게도 기다림을 주겠다.

이 세상에 내리던 함박눈을 멈추겠다.
보리밭에 내리던 봄눈들을 데리고
추위에 떠는 사람들의 슬픔에게 다녀와서
눈 그친 눈길을 너와 함께 걷겠다.
슬픔의 힘에 대한 이야기를 하며
기다림의 슬픔까지 걸어가겠다.


정호승(68)은 밑바닥을 짐작하기 힘든 슬픔의 서정으로 세계와 인간의 고통을 따스하게 다독여온 시인. 대중적으로도 잘 알려진 그는 적지 않은 시편이 노래로 만들진 작가이기도 하다.

위에 언급한 시 '슬픔이 기쁨에게'는 그가 왜 '탁월한 대중적 서정 시인'인지를 어렵지 않게 짐작하게 해준다.

겨울밤 귤 몇 개 놓고 간난신고(艱難辛苦)의 삶을 버텨온 할머니에게 얼마 되지 않는 귤 값을 깎으며 기뻐하는 '먹고살 만한' 우리에게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 주겠다'는 사람, 누군가가 얼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이들에게 '슬픔의 힘'을 보여주겠다는 사람.

단언할 수 있다. 슬픔 없이 사는 인간은 세상에 없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신의 슬픔 외에는 외면하고 사는 경우가 흔하고 흔하다. 타인의 슬픔을 함께 울어주기 힘든 세상. 울음을 조롱하는 사회.

적요했던 홋카이도의 밤. 여윈 어깨를 안아줄 누구도 곁에 없던 그날의 막막함. 인간이 가진 한계와 얄팍한 자기애(自己愛)를 너무나 명징하게 설파한 정호승의 시는 마음만이 아닌 '삶의 뼈'까지 아프게 했다.

 
  설산과 푸른 호수가 쓸쓸한 아름다움을 선물하는 홋카이도.
  설산과 푸른 호수가 쓸쓸한 아름다움을 선물하는 홋카이도.
ⓒ 구창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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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어붙은 홋카이도의 호수를 바라보는 여행자. 시적인 풍경이다.
 얼어붙은 홋카이도의 호수를 바라보는 여행자. 시적인 풍경이다.
ⓒ 구창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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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 더 큰 절망 혹은 희망 속으로

그러나 생각해보면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과 '남의 아픔에 무신경한 인간'은 비단 정호승의 시에만 등장하는 게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들 대부분이 그렇지 않은가.

프랑스나 오스트리아, 호주 같은 '잘 먹고 잘사는 국가'가 아닌 한국보다 상대적으로 가난한 나라를 여행하면서 느꼈던 모종의 쓸쓸함과 죄스러움은 바로 이런 상황에서 생겨난 게 아니었을까. 인생 내내 반복됐던 타자에 대한 무관심. 그에 대한 뒤늦은 반성.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지금 남한과 북한은 서로에게 얼마만한 관심과 애정을 가지고 대화를 이어가고 있을까. 악화일로(惡化一路)를 걸어온 지난 10년의 남북관계는 서로에 대한 신뢰 속에서 개선될 수 있을까?

북이 남에 선물한 송이버섯과 남이 북으로 보낸 귤에 담긴 함의를 생각해본다. 이 선물이 북한과 남한 국민들의 가슴 속에 오랫동안 자리했던 편견과 증오, 오해와 질시의 그림자를 조금이나마 밀어낼 수 있을지.

정호승의 시 '슬픔이 기쁨에게'와 내가 체험한 깊은 밤 홋카이도에서 깨달음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듯하다.

"신뢰와 애정은 상대에 관한 무관심을 벗어나면서부터 시작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경북매일신문>에 게재된 것을 일부 보완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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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꽃> <한국문학을 인터뷰하다> <내겐 너무 이쁜 그녀> <처음 흔들렸다> <안철수냐 문재인이냐>(공저) <서라벌 꽃비 내리던 날> 등의 저자. 경북매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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