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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흔 셋, 병원에 안 가고 아기 낳기

사산의 아픔 딛고 다시 건강한 아기를 낳은 비결은
18.11.18 16:53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아기가 내 품에서 젖을 빤다. 길고 풍성한 속눈썹, 윤기 나는 작은 코, 가느다란 머리칼로 뒤덮인 대천문이 힘차게 벌렁거린다. 요새 부쩍 통통해진 다섯 개의 작은 손가락으로 내 검지손가락을 꼬옥 감아쥐고 열심히 젖을 빤다. 이 작고 힘찬 생명이 어디서 왔을까. 우리는 무슨 인연으로 지금 여기서 엄마와 딸로 만났을까. 

내 딸 은서는 올해 6월 5일에 태어났다. 얼마 전에 만 5개월을 지났다. 사실 이번이 내게는 두 번째 출산이다. 작년 1월에 낳은 사내아이는 출생 열흘 전에 뱃속에서 사망해 사산을 했다. 뱃속의 아기가 죽은 것을 알았을 때, 다니던 조산원에서도, 혹시나 싶어 찾아간 산부인과 병원에서도 나를 대학병원으로 보내려고만 했다. 나는 그만큼 '힘든 케이스'였던 것이다. 

내 나이 올해 마흔 셋. 고령 출산이 흔한 요즘이지만, 그중에서도 나는 명실공히 고령 임산부다. 아기가 잘못되었을 때 나도 처음에는 내 나이가 마음에 걸렸다. 하지만 이내 나이가 문제는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아빠와 아기의 행복한 한 때. 이제 5개월을 넘긴 내 딸 은서는 병원에 가지 않고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 임은경
 
출생이 임박한 태아가 태중에서 이유 없이 심장이 정지하는 일은 대략 0.5~0.6%의 확률로 아주 드물게 일어나는 일이다. 왜 그런 일이 생기는지 현대 의학도 원인을 밝히지 못했다고 한다. 그것은 젊은 산모도 얼마든지 겪을 수 있고, 미리 예측하거나 예방할 수 없으며, 병원을 꼬박꼬박 다니고 매뉴얼에 있는 산전 검사를 다 해도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란다. 

우리 부부도 그 일이 닥치고 나서야 이런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 아기는 당연히 건강하게 나올 거라고 여겼으니까. 임신 기간 열 달을 보내는 동안 아기가 사산될 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사람이 얼마나 되겠는가. 

충격이 컸지만 일단 병원 문을 나서서 숨을 골랐다.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 대학병원 수술대에 누워 죽은 아기를 억지로 꺼내는 것은 좋은 선택이 아닌 것 같았다. 내 배를 가르는 것도 문제지만, 이런 경우 사산아를 토막토막 잘라서 꺼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아기가 간 것도 가슴 아픈데, 아기가 그런 꼴을 당하는 모습을 보는 산모는 더 큰 상처를 받는다. 설사 아이를 온전하게 꺼낸다 해도 생명에 대한 존중 없이 기계적인 처치가 이뤄지는 차가운 수술대 위에 내 몸을 눕히고 싶지 않았다. 

조산원 원장님께 자연출산을 하고 싶다고 부탁을 드렸다. 수십 년간 아기를 받아온 원장님은 내 결심이 확고한 것을 보고 출산을 돕기로 하셨다. 조산원 출산은 모든 것을 의료진의 손에 맡기는 수동적인 출산이 아니라 엄마인 내 힘으로 자식을 낳는 주체적인 출산이다. 임신과 출산은 의사의 치료를 받아야 하는 병이 아니라, 내 몸의 힘으로 생명을 탄생시키는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기 때문이다. 

자연 출산으로 사산아를 낳다

아기가 간 것을 안 후 48시간 만에 진통이 와서 이튿날 새벽에 출산을 했다. 진통을 유도하는 멜리사와 자스민 에센셜 오일이 큰 도움이 되었다. 노련한 원장님 덕분에 아기는 상처 하나 없이 온전한 모습으로 나왔고, 고이 싸서 화장을 해 잘 보내주었다. 그러고 나서 8개월 후인 작년 가을, 우리 부부에게 다시 아기가 찾아왔다. 

서울에서 새 보금자리를 찾아 충남 아산으로 이사한 직후 기적처럼 아기가 다시 생긴 것이다. 하지만 기쁨도 잠시, 임신 기간 내내 나는 어쩔 수 없는 불안에 시달렸다. 아기가 또다시 잘못되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었다. 나에게 무슨 잘못이 있어서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내 뱃속에서 품어 길렀던 아기의 죽음, 내 온몸으로 겪어낸 일의 상처는 그리 쉽게 잊히지 않았다. 

막연한 걱정은 일종의 우울증이 되었다. 사소한 일에도 울음이 터지고, 산부인과 검진을 받으러 가는 날에는 악몽을 꾸었다. 첫 번째 임신의 결과에 놀란 우리 부부는 이번에는 '만약을 위해' 산부인과 검진을 병행하기로 했던 것이다. 병원에는 임신 10주와 12주차에 각각 한 번 씩 다녀왔다. 

병원을 다니면서 우리는 임신 기간 열 달 동안 다니는 산부인과 검진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것은 뱃속의 아기가 비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많은 돈을 들여 온갖 검사를 하는 과정이었다. 병원을 두 번 가면서 나는 피를 두 번 뽑고 14만원의 돈을 썼다. 첫 번째는 내 몸이 정상인가를 확인하는 검사, 두 번째는 뱃속의 아기가 기형이 아닌지 확인하는 검사였다. 병원은 내가 낸 돈 말고도 건강보험공단에서 20만원이 넘는 돈을 추가로 받았다. 

요새는 임신을 하면 나라에서 50만원의 의료비 지원금이 나온다. 하지만 임신 기간 동안 병원을 다니면 이 지원금을 다 쓰고도 모자란다. 출산 비용은 별도다. 임신 초기의 기형아 검사, 임신 말기의 태아 안녕 검사를 비롯한 수많은 산부인과 진료들은 결국 모두 아기에 대한 걱정과 불안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비 부모들의 그 걱정과 불안 덕분에 병원은 돈을 번다. 

특히 산모의 나이가 많으면 기형 가능성이 증가한다며 병원 검진을 꼭 해야 한다고들 한다. 하지만 수십 만 원을 들여 양수 검사를 해도 아기의 병증 여부는 '몇 백분의 일' 하는 확률로 나올 뿐이다. 아직 뱃속에 있는 아기의 문제 여부를 정확하게 알 수는 없다는 뜻이다. 태아의 '그림자'를 볼 뿐인 초음파 검사 역시 신뢰도가 떨어진다는 지적도 있다. 병원에서 기형아 판정을 받았는데 부모의 선택으로 낳고 보니 정상아인 경우도 있었다. 

엄마의 나이가 많다고 아기에게 문제가 생기는 것은 결코 아니다. 나이가 많으면 무슨 무슨 문제 확률이 증가한다는 것도 구체적으로 증명할 수 없는 통계치일 뿐이다. 나이가 들면 아무래도 젊을 때보다 몸의 기능이 전반적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그런 확률도 자연히 조금씩 올라가는 것뿐이다. 나이가 들면 고혈압, 당뇨, 심장병 확률이 올라가는 것과 같은 이치다. 

다시 찾아온 아기, 이번에는 정말 잘 낳기로 했다

신체 나이가 같아도 건강 나이는 사람마다 다 다르다. 몸의 건강은 자기가 관리하기에 따라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막연한 불안에 떨면서 남의 손에 나를 맡기기보다, 내가 주인이 되어 나와 아기의 건강을 지키기로 결심했다. 병원 진료를 중단하고 스스로 건강관리를 시작했다. 내가 중점을 둔 것은 식단과 체중 관리, 운동 이렇게 세 가지였다. 

남들처럼 직장생활을 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집에서 글을 쓴다. 글쓰기도 직장을 다니는 것 못지않게 매일 일정한 시간을 들여서 규칙적으로 해야 하는 일이다. 하지만 임신 기간 동안은 그 어떤 일보다 나와 아기의 건강 관리에 최우선을 두기로 했다. 이번만큼은 아기를 잘 지키고 싶다는 마음이 그 정도로 간절했던 것이다. 

임신 초 입덧이 끝나고 나서부터는 먹는 것과 체중 조절에 신경을 썼다. 원래부터도 배달 음식이나 인스턴트 식품은 즐기지 않았지만, 임신 이후에는 거의 집에서 만든 음식으로만 식사를 했다. 가공 식품이 아닌 자연 음식으로 균형 잡힌 식사를 하되, 몸무게가 너무 많이 늘지 않도록 조심했다. 내 몸무게는 만삭 때까지 약 12kg이 늘었고, 출산 후 4개월 만에 임신 전 수치를 회복했다. 

임신 중기부터는 운동을 시작했다. 배가 나오고 몸이 무거워지면서 밤에 잠이 오지 않던 터였다. 혈액순환에는 운동이 최고. 임산부가 할 수 있는 운동으로는 산책만한 것이 없었다. 하루에 한 시간씩 밖에 나가서 걸었다. 예쁘게 가꾸어진 집 근처의 온천천은 맞춤한 산책로였다. 평소에도 걷는 것을 워낙 좋아해서 산책은 즐거웠다. 천천히 걸으면서 뱃속의 아기와 많은 대화를 나눴다.   

"또또야, 여기 꽃이 너무 예쁘다, 그렇지?"
"또또야, 물속에서 물고기가 헤엄치네. 너도 물소리 들리니?" 
엄마가 걸으면 양수가 규칙적으로 흔들리기 때문에 아기는 편안함을 느끼고 잠을 잔다고 한다. 산책은 아기와 나의 건강을 지키는 동시에, 아기와 다정한 대화를 나누며 사랑하고 교감하는 시간이었다. 태교가 따로 필요 없었다. 
 
사산의 아픔을 딛고 자연출산으로 낳은 내 딸 은서. 아기의 건강은 병원에 맡기기 이전에 부모가 중심을 가지고 돌보는 것이 우선이라고 믿는다. ⓒ 임은경
 
출산 두 달 전부터는 매일 동네 뒷산에 올랐다. 야트막한 야산이었지만, 행여 넘어지지 않도록 천천히 조심하면서 다녔다. 산행을 다닌 것은 허벅지 근육을 기르기 위해서였다. 출산의 순간에 가장 필요한 것이 허벅지 근육이라는 것을 첫 출산을 통해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이밖에도 출산을 대비해 따로 근력 운동을 꾸준히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 식사 전에 가벼운 임산부 요가, 저녁에 자기 전에는 스트레칭을 했다. 특히 순산에 효과적이라는 합장합척 운동을 매일 300회씩 2~3차례에 나눠서 했다. 젊은 산모들 못지않게 몸을 건강하고 유연한 상태로 준비하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그날이 왔다. 병원에서 알려준 출산예정일은 5월 말이었지만, 6월 5일 자정을 넘겨서야 진통이 시작됐다. 오늘도 아기 생일이 아닌가보다 하고 잠자리에 눕자마자 아랫배에 규칙적인 통증이 찾아왔다. 새벽 한 시에 배가 아파서 잠이 깼다. 조산원에 전화를 하고 출산가방을 챙겨 집을 나섰다. 의왕에 있는 조산원에 도착한 것이 세 시. 가정집 같은 어둡고 조용한 방에서 편안하고 자유로운 자세로 진통을 견뎠다. 

병원에 안 가고 스스로 나와 아기의 건강을 지키다

4시 반에 자궁문이 다 열려서 힘주기에 들어갔다. '힘을 줄 때마다 아기가 쑥쑥 내려온다'고 원장님은 말했다. 새벽 5시 45분, '한번만 더'라는 말에 남아있는 힘을 다 쏟은 순간, 몸에서 무엇이 쑥 빠져나갔다. 그리고 이내 터지는 아기 울음소리. 내 귀로 듣고도 믿을 수가 없었다. 내 아기가 마침내 힘찬 울음과 함께 세상에 나온 것이다. 이렇게 쉽게, 이렇게 금방. 

첫 번째 출산 과정이 워낙 힘들었던 지라 더욱 얼떨떨하고 실감이 안 났다. 아기는 세상에 나오자마자 탯줄도 안 자른 채 내 품에 안겼다. 양수 때문에 몸이 자꾸만 미끄러졌다. 
"또또야, 엄마야. 우리 애기 나오느라 고생했어. 수고했다." 
부드럽게 등을 토닥였다. 아이는 이내 울음을 그치고 내 가슴에 편안하게 몸을 기댔다. 

새끼가 태어나면 어미 품에 안기는 것이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다. 이 세상 모든 동물이 다 그렇게 한다. 병원에서 출생하는 인간의 아기만 빼고. 고생고생하며 산도를 빠져나와 탄생을 맞이하기까지 아기도 힘든 과정을 거쳤다. 엄마 품에서 쉬고 돌봄을 받고 평화롭게 젖을 먹는 것이 당연하지 않겠는가. 

이제 막 셋이 된 우리 가족은 한동안 누구의 방해도 없이 방바닥에 편히 누워서 우리만의 시간을 가졌다. 몸의 치수를 재고 온갖 검사를 한다고 누군가가 아기를 데려가 버리는 일은 없었다. 잠시 뒤 아기에게 젖을 물렸다. 이제 막 세상에 나온 아기가 어쩌면 그리도 힘차게 젖을 빠는지. 삶을 향한 생명의 본능은 경이로웠다. 

마흔 셋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내가 그렇게 쉽게 순산할 수 있었던 것은 전적으로 운동의 힘이 컸다. 아기를 한번 낳고 나서 출산은 배와 허리, 하체의 근력에 달려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첫 출산의 경험이 의미 없는 것만은 아니었던 것이다. 나이가 많고 적고는 중요하지 않다. 정말 중요한 것은 신체 나이, 내 몸이 그 순간을 맞아 얼마만큼 준비가 되어 있는지 여부이다. 

내 딸의 성장도 순조롭기 이를 데 없다. 엄마, 아빠를 알아보고 활짝 웃어줄 때는 온갖 시름이 녹아내린다. 옹알이를 하고, 뒤집고, 허리에 힘이 생겨 곧추 앉기도 잘 하니 조만간 두 다리로 일어설 것 같다. 아기가 태어난 이후 우리는 한 번도 병원을 찾지 않았다. 아기의 건강은 부모가 자기 중심을 가지고 아이를 돌보는 데 달렸다고 보기 때문이다. 뱃속에 있을 때의 태교와 태어난 이후의 돌봄 모두 원리는 마찬가지다. 

아기의 건강은 병원에서 지켜주는 것이 아니다. 자본에 의해 산업화된 병원 시스템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은 오히려 자칫 위험한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얼마 전 발생한 신생아 BCG(결핵 백신) 비소 검출 사태를 보며 이런 생각에 더욱 확신이 들었다. 내 딸은 병원과 무관하게 살아도 더없이 밝고 건강하다. 

나는 병원 시스템에 의존하지 않고 가장 자연스럽게 내 아기를 맞이한 이야기를 글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나처럼 많은 걱정과 염려 속에서 아기를 기다리는 많은 산모들에게 내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었다. 남들 하는 대로 시스템에 모든 것을 맡기는 길만 있는 것은 아니라는 것, 내 스스로 몸의 상태를 살피고, 자신의 힘으로 스스로와 아기의 건강을 지키는 방법도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 병원의 의사보다 내 몸을 더 잘 아는 것은 바로 나 자신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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