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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사법농단’ 관련 피의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15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검에 ‘사법농단’ 관련 피의자 조사를 받기 위해 출석하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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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정부 시절 '문화계 블랙리스트'로 김기춘 전 비서실장과 조윤선 전 정무수석의 구속영장을 발부했던 법원이 사법농단에도 같은 잣대를 들이댈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법원이 26일 오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 공무상 비밀누설, 직무유기, 특정범죄가중처벌법의 국고손실, 위계공무집행방해, 허위공문서 작성 및 행사 등의 혐의를 받는 사법농단 '키맨'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다. 서울중앙지검 사법농단 수사팀(팀장 한동훈 3차장 검사)이 수사에 착수한 지 약 넉 달 만이다. 

핵심은 '직권남용'이다. 일제 강제징용 민사소송 등 각종 재판에 의도적으로 개입한 정황 등이 직권남용 혐의를 받고 있다.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해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누군가의 권리행사를 방해할 때 성립한다.

앞서 법원은 직권남용 혐의만으로 피의자를 구속한 바 있다. 대표적인 게 김 전 비서실장과 조 전 정무수석의 사례다. 두 사람은 지난해 1월, 문화예술지원배제명단(블랙리스트)을 작성·실행하도록 지시한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됐다.

성창호 당시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범죄 사실이 모두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어 구속의 필요성이 인정된다"라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들은 혐의를 모두 부인했지만, 법원은 박근혜 정부에 비판적인 문화예술인의 활동을 원천봉쇄한 행위가 직권남용에 해당된다며 이를 구속 사유로 인정했다.

증거인멸 우려로는 김 전 실장과 조 전 수석이 CCTV(폐쇄회로) 영상을 지우거나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교체하는 등 의심스러운 정황이 반영됐다.

그렇다면 임 전 차장은 어떨까? 임 전 차장은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행정처에 근무하며 사법농단 의혹에 전방위적으로 관여했다. 재판거래 의혹이 검찰 수사의 큰 줄기지만, '판사 블랙리스트'로 불린 법관 사찰도 직권남용에 해당한다.

일선 판사 뒷조사에 재산 내역까지 뒤져... 구속 사유 될까

당시 행정처는 양승태 대법원에 비판적인 일선 판사들의 뒷조사를 진행했다. 행정처는 "학생운동 경력과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측면이 있다", "법원 집행부에 대한 불신이 있으며 선동가, 아웃사이더 비평가 기질이 있다"는 등 법관들의 동향과 성향을 수집했다. 검찰은 행정처가 내부 문건을 작성하는 건 '직권'에 해당하지만, 그 대상이 비리 판사들이 아닌 비위와 무관한 법관들이기에 '남용'이라고 보고 있다.  

문건이 실제로 실행된 정황도 있다. 행정처가 지난 6월 추가로 공개한 문건에 따르면 행정처는 차성안 전주지방법원 군산지원 판사의 재산 내역까지 조사했다. 차 판사가 2015년 8월 법원 내부통신망에 양 전 대법원장의 숙원 사업인 상고법원에 반대하는 글을 올리자, 행정처는 설득 및 압박 대책을 궁리하며 재산 내역까지 뒤졌다.

다만 임 전 차장은 검찰 조사에서 "(차 판사의) 경제적 사정이 좋지 않다고 해 알아보라는 취지였다"라며 직권남용 혐의를 부인했다고 한다. 행정처 문건 또한 심의관들이 알아서 작성했다는 취지로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상태다. 그러나 최근 법원이 직권남용의 범위를 좁게 보고 있어 임 전 차장의 구속이 어렵다는 시각도 있다.

법원은 김 전 실장과 조 전 수석이 보수단체 지원을 강요하는 '화이트리스트'에는 적극적으로 가담하지 않았다며 1심에서 직권남용 무죄를 선고했다. 이명박 전 대통령 또한 다스 미국 소송에 공무원을 동원한 혐의(직권남용)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사법농단 수사가 재판으로 넘어올 경우를 대비해 법원이 주요 혐의인 '직권남용'의 포석을 깐 게 아니냐는 비판이 제기되기도 했다.

검찰 관계자는 "공무원 직위를 이용한 직권남용 범죄는 더 엄격히 처벌해야 한다, 처벌 사각지대를 넓혀선 안된다"라고 강조했다.

임 전 차장의 구속은 사법농단 수사의 중요한 길목이다. 검찰 입장에서는 신병을 확보해 임 전 차장의 '입'을 통해 양 전 대법원장, 박병대 전 법원행정처장 등 윗선의 지시를 면밀히 확인해야 한다. 그러나 임 전 차장이 4차례나 진행된 검찰 소환에서 혐의를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나선 데다, 사무실 직원의 이름으로 차명폰을 개통해 '말 맞추기' 정황까지 드러나는 등 증거인멸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한편 임 전 차장의 구속 전 피의자 심문은 임민성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가 맡았다. 임 부장판사는 사법농단 수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 뒤 이달 초 5번째 영장전담재판부로 왔으며, 이번 사건과 관련해 첫 심리를 하게 됐다.

태그:#임종헌, #양승태, #박병대, #사법농단, #조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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