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짜이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홍동아이들. '홍성 화폐거래소 잎'이 주최한 장터.
 짜이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홍동아이들. "홍성 화폐거래소 잎"이 주최한 장터.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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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골 장터는 정서와 기억을 공유하며 또 다른 추억을 탄생시킨다. 지금은 대형마트에게 많은 것을 빼앗겼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도 시골장터는 공동체를 유지하고 발전시키는 데 일조했다.

지난 20일 충남 홍성군 홍동면 애향공원에서는 작지만 특별한 장터가 열렸다. 마을 주민들은 집에서 입던 옷을 가지고 나와 팔기도 하고, 천연 재료로 염색한 머플러도 판매했다. 세제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마수세미도 눈길을 끈다.

장터의 분위기로만 봐서는 여느 벼룩시장이나 시골 장터와 다를 게 없다. 하지만 이 장터에는 특별한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홍성 지역화폐 '잎'으로 모든 물건이 거래됐기 때문이다. 장터에서 판매되는 모든 물건들은 '잎'으로 구매할 수 있다.

지역화폐 '잎'으로 사 먹는 짜이와 메뚜기

장터에 출장 나온 환전소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만 잎으로 교환했다. 내친김에 4천 잎에 짜이 한잔을 주문해 봤다. 짜이는 홍차와 우유 그리고 인도식 항신료를 함께 넣고 끓인 차다. 따뜻한 짜이 한잔을 선선한 가을바람에 곁들여 마시니 그 맛이 제법 은은하고 깊게 느껴진다. 차를 다 마신 후 찻잔을 씻어 오면 1000잎을 환불받을 수 있다. 여기서도 일회용 쓰레기를 줄이기 위한 아이디어가 엿보였다.

짜이를 팔고 있던 홍동주민 이동호씨는 "나에게 있으면 짐이 될 수 있는 물건이나 평소라면 잘 팔기 어려웠던 종류의 아이템을 팔 수 있어서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옆으로 이동하자 메뚜기를 굽고 있는 장면이 포착됐다. 유기농 논에서 직접 잡은 메뚜기를 기름에 튀겨 팔고 있는 것이다.
 
장터에서는 유기농 논에서 잡은 메뚜기를 구워 팔고 있다. 마을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 보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장터에서는 유기농 논에서 잡은 메뚜기를 구워 팔고 있다. 마을 아이들이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쳐다 보며 관심을 보이고 있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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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환경이 복원되어 메뚜기들이 되돌아오는 것은 매우 반가운 일이다. 사실 메뚜기만으로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을 만큼 그 숫자가 불어난다면 그보다 더 좋은 일도 없다. 소와 돼지 닭 한 마리를 키우기 위해 인간이 사용하는 에너지와 비용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인류는 육류를 소비하기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을 감수하고 상당량의 곡식까지 투자해야 한다. 지금과 같은 단백질 소비 패턴은 인류의 미래에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경고음도 곳곳에서 들려온다. 미래의 단백질 공급원으로 곤충이 꼽히고 있는 것도 바로 그런 이유 때문이다.

2천잎을 사용해 구운 메뚜기 몇 마리를 사서 마을아이들과 함께 나누어 먹었다. 귀농·귀촌인이 많은 홍동에는 어린아이들도 많다. 그렇다면 구운 메뚜기는 어떤 맛일까. 개구리 뒷다리를 기름에 튀긴 맛과 비슷하다. 그만큼 고소하다는 뜻이다. 홍동 아이들과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을 공유하다 보니 충동구매가 이어졌다. 그렇게 6천 잎을 소진한 뒤에서야 비로소 문득 취재 중이란 사실이 기억이 났다.
 
홍성 지역 화폐 잎의 모습이다. 잎은 천잎 오천잎 만잎의 세종류이다.
 홍성 지역 화폐 잎의 모습이다. 잎은 천잎 오천잎 만잎의 세종류이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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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화폐는 홍동에서 처음 상용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서울 마포구의 '모아'나 대전 한발레츠 공동체의 '두루', 경기도 성남시의 성남사랑 상품권 등도 지역화폐로 이미 이름이 나 있다.

홍동에서 지역화폐 사용이 논의된 것은 지난 2011년부터이다. 지역화폐 모임을 결성하고 시범 사업을 거친 뒤 지난 2014년 홍성 지역화폐 '잎'을 발행했다. 그 이후 홍동을 중심으로 지역화폐가 꾸준히 유통되고 있다.

홍동 주민들, 지난해 화폐거래소 열고 마을 화폐 사용 활성화 나서  

지난 2017년 7월에는 지역화폐를 좀더 활발하게 이용하자는 취지에서 홍동마을활력소에 지역화폐거래소를 열었다. 거래소에서는 지역화폐에 활력을 불어 넣기 위해 주민들에게 기본소득도 지급했다. 홍성에 거주하고 있는 주민 10명을 추첨으로 뽑아 매달 10만 잎씩 6개월 동안 지급한 것이다. 화폐 자체의 기능도 점점 발전하고 있다. 홍성지역화폐거래소에 따르면 올해 말에는 홀로그램을 삽입해 위폐 방지 기능까지 갖춘 새로운 디자인의 '잎'이 나올 전망이다.

홍성지역화폐거래소를 운영하고 있는 정영희씨는 "시골의 장터는 사람들을 만나게 하는 소통의 장소"라며 "주민들은 지역화폐를 매개로 서비스와 재능을 주고받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지역화폐 사용을 통해 시골 장터를 활성화하고 결국 마을 공동체를 복원하는 효과까지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영희씨의 이야기를 좀 더 들어 보자.

"지역화폐를 사용하는 이유는 지역의 농산물을 지역에서 판매해 지역 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먼 곳에서 생산되는 농산물을 구입하지 않다 보니 쓰레기와 기름값을 줄일 수 있다. 그만큼 환경에도 이롭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회복이다. 물건을 사고팔려면 사람을 만나야 한다. 장터에서는 집에서 생산하고 남은 것들, 이를테면 감이나 고구마 등의 잉여 생산물은 물론이고, 심지어 자기 재능까지도 나눌 수 있다."

실험 정신이 강한 홍동 주민들은 오늘도 지역 화폐와 장터를 온전한 마을 공동체 복원을 꿈꾸고 있다. 마을 아이들은 이런 어른들의 모습을 호기심 가득한 눈망울로 바라보고 있다.
 
세제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마수세미 만들기' 체험방도 눈에 띈다.
 세제 없이 사용할 수 있는 "마수세미 만들기" 체험방도 눈에 띈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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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장터를 구경하고 있다. 천친한 모습이 너무나도 귀엽다.
 아이들은 초롱초롱한 눈망울로 장터를 구경하고 있다. 천친한 모습이 너무나도 귀엽다.
ⓒ 이재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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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홍성 지역화폐 , #홍성지역화폐 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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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주의자. 개인주의자. 이성애자. 윤회론자. 사색가. 타고난 반골. 충남 예산, 홍성, 당진, 아산, 보령 등을 주로 취재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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