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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과 마음을 나눈 인연, 오늘도 안녕을 빈다

[두 발 고양이 강호, 여행을 떠나다] 여행 중에 만난 동물이웃들
18.10.17 17:01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강호는 길고양이였습니다. 동네 철물점에서 매일 밥을 먹고 놀던 강호가 어느 하루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강호는 뒷다리가 심각하게 부러져 앞발로 기어 철물점 주인 앞에 나타났습니다. 그 분의 도움 요청으로 우리는 만났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두 번의 큰 수술을 받은 강호는 두 발 고양이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 가족이 되었지요. 장애를 얻었지만 늘 씩씩하고 명랑한, 무엇보다 호기심 많은 강호에게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 - 기자 말

여행 중에 우연히 만나 친구가 되는 것은 사람만이 아니다. 특히 한 지역에서 한 달씩 살아보니 사람 사는 곳 어디나 수많은 동물들도 희노애락 뒤섞인 그들 각각의 삶을 나와 같이 살아내고 있음을 분명히 볼 수 있었다.

돌아보면 웃게도 울게도 하는 내가 만난 동물들. 그 중에서도 특히 여러 날 밥도 마음도 나누며 드물게는 곤란에 처한 동물을 돕거나 어찌할 수 없는 상황에서 기도 밖에 할 수 없었던, 그래서 각별히 기억에 남은 동물들을 소개한다.
 
'만나서 반가웠어. 늘 안녕하기를.' ⓒ 이명주

제주에서 만난 백구 가족이다. 처음 본 날부터 백구네 돌담 앞을 지나칠 때면 온 가족 우루루 다가와 더없이 환대를 해주었다. 나의 한달살이 집에서 인근 바다를 오가는 길에 살아 매일, 하루에도 몇 번씩 인사를 나눴다.

하지만 얼마지 않아 백구 새끼들은 모두 남의 집으로 보내져 뿔뿔이 흩어졌고 그 중 가장 작고 연약해 보이던 새끼 하나는 어느날 갑자기 사라져 행방을 알 수 없었다. 부디 모두 착한 사람 곁에서 편히 살고 있기를.   
 
'만나서 반가웠어. 늘 안녕하기를.' ⓒ 이명주


백구네 바로 옆집에 살던 골든 리트리버 '삼봉이'다. 체격이 상당한데다 표정도 어두워서 처음에는 가까이 가기가 꺼려졌다. 그런데 세 번째 봤을 때던가. 녀석이 답지 않게 돌담에 턱을 괴고 애교를 부리는 게 아닌가.

용기를 내 얼굴을 쓰다듬어주니 마치 얼음이 녹듯 헤벌쭉 웃는 모습이 놀랍고도 애처러웠다. 삼봉이는 마당 넓은 집에 살지만 늘 1미터가 채 안 되는 줄에 묶여 있었다. 이후로는 심심한 삼봉이를 위해 볼 때마다 최대한 오래 머물며 안부를 나눴다. 
 
'만나서 반가웠어. 늘 안녕하기를.' ⓒ 이명주

해남에서 한 달간 이웃으로 지낸 옆집 할머니할아버지댁에 살던 누렁이. 해남에서도 물건 파는 가게 하나 없는 두메산골 만안리란 곳에선 여전히 대다수 고령의 주민들이 개를 소나 돼지와 다름 없는 가축으로만 여기는 분위기였다.

누렁이는 몸을 한 번 돌릴 수도 없을 만큼 짧은 철줄에 매일 묶여 있었고 할머니할아버지께 개와의 산책을 부탁드리기는 의식적으로나 체력적으로나 어려운 상황. 내가 대신해 산책을 시켜주고 싶었지만 교육을 받아본 적 없는 누렁이는 본능적으로 제 반려인 외 모두에게 너무나 사나웠다.

두 분이 동의하시면 누렁이의 줄이라도 바꿔주려 했지만  무슨 이유에선지 거절하셔서 그것마저 뜻을 이루지 못했다. 마을 내 멀지 않은 곳엔 개 도축장이 있었는데 누렁이가 부디 지금처럼이라도 할머니할아버지 곁에서 끝까지 살다 편히 생을 마감하길 간절히 바란다.
 
'만나서 반가웠어. 그리고 미안해. 부디 마지막까지 고통 없기를.' ⓒ 이명주

같은 만안리에서 마을 산책 중에 만난 소들. 귀에 달린 플라스틱 표식은 멀지 않은 날에 도축 당해 고기가 될 거란 의미. 그나마 사는 곳이 햇빛 한 점 들지 않고 살아 있는 자연물 하나 없는 공장식 축산 농가가 아니라는 점이 다행스럽달까.

'부디 마지막에 생명의 귀함, 가엾음 아는 사람 만나 최대한 고통 없이 눈 감기를. 그리고 다시는 타자에 행과 불행이 좌우되는 되는 삶 타고나지 말기를.'

소들을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기도밖에 없었다. 동물을 먹되, 그들이 살아 있을 때 그리고 죽임 당할 때 역시 그 고통을 헤아려 최선의 배려를 하는 것은 생명에 대한 마땅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만나서 반가웠어. 늘 안녕하기를.' ⓒ 이명주

장흥에 있을때 밥을 나눈 새끼 길고양이. 며칠에 걸쳐 비가 억수 같이 내린 다음 날 헬쓱한 모습으로 밥을 찾는 것을 보고 얼른 집에서 강호가 먹는 생선캔을 가져나와 주차된 차 아래 놓아주었다.

솜털도 가시지 않은 아기가 경계심이 상당해서 내가 멀찍이 물러난 이후에도 한참을 기다렸다 다가와 음식을 먹기 시작했다. 내가 한 달간 지낸 장흥읍은 무분별한 도시화가 상당 진척돼 슬프게도 그런 도시에선 사람도 동물도 살기가 훨 고달프다.
 
'만나서 반가웠어. 늘 안녕하기를.' ⓒ 이명주

강호와 함께 장흥 억불산 가는 길에 본 아기 고양이들. 이 개월이 채 됐을까 싶은데 목에는 너무 굵은 밧줄이 묶여 있었다. 한창 어미 품에서 젖 먹으며 놀 때인데. 그런데 장소가 소방서 앞마당이서 그래도 별 일은 없겠지 하고 자리를 떴다.  

하지만 그 날 이후 계속 마음에 걸렸다. 당시 소방 대원들에 정확한 사정을 확인하고 목에 묶인 그 묵직한 밧줄이라도 좀 바꿔주십사 부탁드려볼 걸 하면서. 결국 늦게나마 전화를 걸어 대원 분들이 키우려고 데려다놓은 것임을 확인하고 거듭 안전을 부탁했다.
 
'만나서 반가웠어. 늘 안녕하기를.' ⓒ 이명주
   
'만나서 반가웠어. 늘 안녕하기를.' ⓒ 이명주

변산에서 만난 흑염소. 앞서 형제인지 부모자식간인지 여튼 길목에서 놀고 있는 두 마리 흑염소를 본 적이 있는데 이날은 둘 모두 마을 텃밭 가운데 산책로 펜스에 묶여 있었다. 아마 주인이 풀을 뜯어먹고 있으라 매어둔 듯했다.  

그런데 하필이면 덩치 큰 한 마리가 펜스 사이에 엉덩이가 끼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하고 있었다. 주변에 사람은 없고. 살아 있는 흑염소를 보는 것도 생경하고 행여 뒷다리로 걷어차진 않을까 무서웠지만 그냥 지나칠 수는 없었다. 

결국 최대한 간격을 유지하며 염소의 골반과 뒷다리가 일자가 되게 한 뒤 여러 번 힘을 준 끝에 녀석을 자유롭게 해줄 수 있었다. 가만 보니 염소도 제법 귀여웠다. 고기가 아닌 반려동물로 키워지고 있었으면 하고 바랐다.  
   
'만나서 반가웠어. 늘 안녕하기를.' ⓒ 이명주

전주에서 만난 꼬마 고양이. 내가 살던 집 바로 앞 초등학교 운동장이 녀석의 주 활동무대. 어린 녀석이 어찌나 씩씩하고 명랑한지. 처음 본 내게도 망설임 없이 다가와 호기심과 친밀함을 보였다. 그 모습이 반가우면서도 걱정스러웠는데, 시간이 지나 이 동네 길고양이들은 거의 다 사람을 그닥 경계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애완동물은 안고 들어오세요^^' 따뜻한 배려 ⓒ 이명주

이유는 위의 사진 속 메모처럼 동물까지 배려하는 마음을 가진 이웃들이 주변에 많기 때문인 듯했다. '애완동물은 안고 들어오세요^^'. '애완동물 출입금지'만 수없이 봐온 내게 이 당연한 듯 당연한 적 없었던 문구가 얼마나 반갑고 따듯하던지. 

여행을 하며 알게 된 사실 중 하나는 아름답고 넉넉한 자연 곁에는 그 자연을 닮은 사람들이 있었고 그런 곳에 사는 동물들은 사람을 무서워하기보다 믿고 의지하며 다소 꾀죄죄하고 헬쓱한 모습이어도 당당하고 여유로웠다.  
         
'안녕, 꼬마야! 물과 밥 챙겨주는 사람이 있어 다행이구나.' ⓒ 이명주
   
진주에서 첫 밥 인연 맺은 까만 아기 길고양이. '반갑다. 내일도 와도 돼.' ⓒ 이명주
 
지금 고양이 강호와 나는 경남 진주를 여행 중이다. 오늘(17일)로 열하루째. 그 사이 가까운 편의점에서 숙식을 해결하는 똘똘한 꼬마 얼룩 고양이를 만났고, 어제는 내 집 현관문 앞까지 스스로 찾아온 새까만 아기 고양이에게 처음 밥을 주었다. 

'많은 건 못 줘. 오래도 줄 수 없고. 난 한 달만 있다가 떠나는 여행자니까. 그런데 곁에 있는 동안 줄 수 있는 만큼은 줄께. 그리고 다음 머무는 곳에서도 그럴께. 너희들도 계속 마음이 예쁘고 부자인 사람들을 만나길. 너희들이 얼마나 귀한 지 아는. 부디 모두모두 오늘도 내일도 안녕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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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3월부터 호기심 많은 두 발 고양이 강호에겐 더 넓은 세상을 보여주고 싶어, 내 스스로는 일상에서 무뎌진 감각을 되살려 다시 가슴 뛰는 삶을 이어가고자 시작한 여행을 오는 11월 6일에 마무리합니다. 강호도 저도 나름으로 여행에서 얻고자(얻게 해주고자) 했던 바를 어느 만큼 얻은 듯합니다.

강호는 보다 씩씩하고 명랑해졌으며 여러분의 도움 덕분에 휠체어가 생겨 보다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는 행복한 여정 가운데 몸도 마음도 깨어서 또 새로운 꿈을 띄워 그것을 현실로 당기려 새로운 힘을 쏟고 있습니다.

이 여행의 종착지가 강호와 같은 장애 동물, 저를 만나기 전 강호처럼 길에서 사는 동물들을 돕는, 또 지금의 우리처럼 더 많은 반려인과 반려동물이 함께 여행하며 머물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가 되는 것이 저의 꿈입니다. 제 꿈을 현실화하는 데 함께 힘을 더하고 싶은 분들은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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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storyfunding.kakao.com/project/201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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