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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되면 '빈 수레가 요란했다'고 표현해도 되지 않을까.

심재철 자유한국당(한국당) 의원이 쏘아올린 '비인가 예산정보 유출' 사건이 진정 국면으로 접어드는 모양새다. 한국당은 10일부터 시작하는 국정감사를 통해 공세를 이어간다는 내부 방침을 세웠지만 사실상 동력을 크게 상실했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국면이 완전히 뒤바뀐 탓이다. 

기획재정부 서버에 접속해 입수한 청와대의 업무추진비 사용 내역 일부를 심 의원이 전격 공개할 때까지만 해도 상황은 정부 여당에 대단히 불리하게 흘러갔다. 심 의원과 한국당은 청와대가 관련 규정을 어기고 업무추진비를 부적절하게 사용했다며 맹공을 퍼부었다. 보수언론 역시 도덕성을 강조해온 문재인 정부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논지의 비판적 기사를 쏟아냈다. 

그러나 청와대와 더불어민주당(민주당)이 일사분란하게 맞대응에 나서면서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지난 9월 28일에는 청와대 예산 집행을 총괄하는 이정도 총무비서관이 이례적으로 나서 관련 의혹을 조목조목 해명하기까지 했다. 민주당 역시 조직적이고 적극적인 방어논리로 보수진영의 공세에 맞섰다. 

결정적인 장면이 된 국회 대정부질문 
 
정부 비공개 예산 정보 무단열람 놓고 설전 벌이는 심재철-김동연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정부 비공개 예산 정보 무단열람·유출과 예산 사용 내역을 놓고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 정부 비공개 예산 정보 무단열람 놓고 설전 벌이는 심재철-김동연 심재철 자유한국당 의원이 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정부 비공개 예산 정보 무단열람·유출과 예산 사용 내역을 놓고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설전을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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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이라이트는 지난 2일 국회에서 열린 대정부질문이었다. 이날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질의자로 나선 심 의원의 질문을 논리적으로 반박하며 공세를 차단했다. 김 부총리는 특히 심 의원이 불법적으로 유출한 자료를 바탕으로 의혹을 제기하고 있다며 강하게 역공을 폈다. 보안 관리의 허술함을 문제 삼던 심 의원을 향해 예산 정보 취득 경위의 불법성을 지적하는, 이른바 '불법 자료 유출' 프레임으로 반격에 나선 것이다. 

심 의원이 공개한 청와대 업무추진비의 내용은 생각보다 파급력이 크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가다. 기획재정부는 논란이 된 업무추진비는 청와대 업무 특성상 불가피하게 사용된 것이라고 해명했다. 이들 모두 증빙자료가 첨부된 적법한 사용이었다는 주장이다. 해당 업소가 기획재정부 지침서에 나와 있는 제한업종이 아닌 이상 도덕적 비판이 제기될 수는 있어도 법적으로는 문제될 것이 없다는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비인가 자료 유출' 사건의 관건은 심 의원에게 정부여당의 방어논리를 깨뜨릴 '스모킹 건'이 있느냐였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결정적인 '한 방'은 나오지 않고 있는 상태다. 평창동계올림픽 당시 지원을 나갔던 청와대 직원의 목욕비 5500원, 주요 현안 회의 이후 주말이나 심야 시간에 사용한 업무추진비 등은 박근혜 정권을 추락시키는 데에 크게 일조한 '태블릿 PC' 같은 폭발력은 없다는 것이 중론이다. 

그로 인해 심 의원과 한국당의 입장은 대단히 난처해질 수밖에 없게 됐다.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에 크게 논란이 될만한 내용이 없는 데다, '비인가 예산정보 유출' 사건의 논점이 업무추진비의 집행 내역이 아닌 자료 유출 경위로 옮겨붙을 조짐마저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문이 열려있다고 남의 집에 들어가 물건을 가져가면 되겠냐'는 논리가 더 설득력을 얻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심 의원과 한국당이 크게 간과한 것이 있다. 그들 역시 업무추진비 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처지라는 사실이다. 주지하다시피 청와대, 정부 등 국가기관에서 사용하는 업무추진비는 그 용처를 두고 사회적 격론이 뜨겁게 펼쳐지고 있는 중이다. 특히 국회는 여타의 정부기관과는 달리 상세한 집행 내역을 공개하지 않아 세간으로부터 거센 비판을 받아온 터였다. 

한국당 등이 청와대 업무추진비 사용을 문제 삼자 심 의원 및 국회부터 공개하라는 요구가 빗발치는 것도 그런 맥락이다. 이와 관련해 정두언 전 의원은 한 방송에서 자신의 업무추진비는 공개하지 않은 채 공세를 이어가는 이상 심 의원의 폭로는 실효를 거두기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은 바 있다. 시쳇말로 '똥 묻은 개가 겨 묻은 개를 나무라는 격'이라는 지적이다. 

한국당 내부에서는 출구전략을 고심하고 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흘러나오고 있다. 주지한 것처럼 심 의원의 폭로 속에 국면을 뒤집을만한 결정적인 내용이 없는 데다가, 여론의 반응도 지극히 시큰둥하기 때문이다. 후폭풍도 만만찮다. 국민의 알 권리를 강조하며 '비인가 예산정보'를 폭로한 심 의원은 검찰 조사를 앞두고 있고, '야당 탄압' 프레임을 가동시켰던 한국당은 또 다시 정치공세를 펴고 있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심재철 폭로가 이끈 변화

그러나 심 의원과 한국당의 처지와는 별개로, 정치적으로 본다면 이번 폭로가 상당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은 분명해 보인다. 먼저 정부 보안 관리 시스템의 허점과 부실이 발견됐다. 일각의 주장처럼 불법 해킹의 결과이든, 아니면 우연의 산물이든 심 의원의 폭로로 정부 보안 시스템을 현주소가 낱낱이 드러난 것이다. 이유야 어찌됐든 정부의 부실한 보안 시스템에 대해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심 의원이 지대한 영향을 끼친 셈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마침내 국회가 업무추진비를 공개하기로 내부 방침을 정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7월 19일 법원은 하승수 '세금도둑잡아라' 공동대표가 국회 사무총장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거부처분 취소 소송에서 "계좌번호와 전화번호 등의 개인정보를 제외하고 2016년 6월~12월 특수활동비·업무추진비 등의 사용 세부내역을 공개하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린 바 있다. 그럼에도 국회는 자료 공개를 거부한 채 항소까지 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비인가 예산 유출' 사건은 국회의 업무추진비 공개 요구를 재점화시키는 도화선이 됐다는 평가다. 예산 유출 사건을 계기로 국회 역시 업무추진비를 공개해야 한다는 여론이 빗발치고 있는 것이다. 급기야 지난 4일 국회혁신자문위원회는 국회의 업무추진비 집행 내역을 정부기관 수준으로 공개하겠다는 입장을 발표했다. 자료를 공개하라는 법원 판결에도 불구하고 꿈쩍 하지 않던 국회가 심 의원의 폭로를 기화로 비판 여론이 쇄도하자 입장을 바꾼 것이다. 

심 의원의 폭로는 이처럼 드러난 것 이상의 정치적 의미가 있다. 정부 보안 시스템의 치명적 허점과 오류가 드러났다. 업무추진비 공개를 꺼려오던 국회는 이를 투명하게 밝히기로 결정했다. 이 모두가 접근해서는 안 되는 비인가 자료를 유출해 이를 세상에 공개한 심 의원의 폭로가 만들어낸 의미있는 변화다. 때로 예기치 않았던 것들이 뜻밖의 결과를 이끌어내기도 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기자의 블로그 '바람 부는 언덕에서 세상을 만나다'에도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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