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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저기 여행을 많이 다니는 편인데도 중국은 아직이다. 얼마 전 홍콩과 마카오를 짧게 다녀온 걸 빼면 중국 본토는 가본 적도 없고 딱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그런데 문득 중국이 가보고 싶어졌다. 바로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를 읽으면서부터다.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는 제목 그대로 지금의 중국을 만들어낸 여섯 도읍지, 베이징, 시안, 뤄양, 카이펑, 항저우, 난징을 여행하면서 쓴 일종의 기행문이면서 중국의 과거에서 현재까지를 통시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역사서이기도 하다.

저자는 오늘날 우리의 시각으로 중국 역사와 문화를 읽어준다는 인문학자이자 연세대학교 중국연구원의 전문연구원 이유진 박사다. 이 책에서 저자는 중국 역사와 문화의 중심지인 여섯 도읍지를 종횡무진하며 그 안에 깃들어 있는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을 아주 재미나게 들려준다.

흔히들 '중국은 어떠하다'는 식으로 정의 내리려고 하지만 쉽사리 단순화하려는 것은 어리석고 위험한 일이라고 저자는 경고한다. 오랜 역사와 광대한 땅, 다양한 민족으로 이루어진 중국은 천의 얼굴을 지녔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중국에 대한 단순하고 피상적인 정의를 넘어 중국의 다양한 속살에 접근하려면 구체적으로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의 중국에 대해 말해나가는 방식이 필요하다고 저자는 설명한다. 따라서 중국이 어떠한 길을 거쳐 왔는지를 찾기 위해서는 역대 도읍지의 역사가 훌륭한 지도가 될 것이라고 말한다.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은 현재와 미래의 실천 동력이기에 역사는 단순한 과거가 아니라 현재이자 미래이다. 오늘날 시진핑이 말하는 '중국몽(中國夢)'의 역사적 자원이 바로 역대 도읍지에 깃들어 있기에 도읍지로 중국 역사를 살펴보는 것이 그들의 '오래된 미래'를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천년고도 시안에서 시작하는 중국 역사 기행은 저자의 해박한 지식에 곁들여진 날카로운 비판의식, 그리고 재미난 이야기 솜씨에 순식간에 명, 청을 지나 어느새 지금의 수도인 베이징까지 오게 된다. 저자의 재미진 이야기에 홀려 버킷리스트를 수정했다. 자, 다음 여행지는 시안이다.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표지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표지
ⓒ 메디치미디어(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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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탉이 울어서 나라가 망했다?

로마, 아테네, 카이로와 더불어 세계 4대 고도로 꼽히는 시안은 중국 역사에서 가장 많은 왕조가 도읍한 곳으로 이들 왕조가 시안을 수도로 삼았던 기간을 합하면 무려 1129년이라고 한다. '오래도록 평안히 다스린다'는 소망이 반영된 '장안'으로 훨씬 친숙한 시안에 처음 터를 잡은 나라는 주나라다. 
 
"옛말에 '암탉은 새벽을 알리지 않는 것이니 암탉이 새벽을 알리면 집안이 망한다'고 했소. 지금 상나라 주왕(紂王)은 오직 여자의 말만 듣고서 나라를 어지럽히고 백성에게 포학하며 온갖 악행을 저지르고 있소. 나는 그대들과 함께 하늘의 징벌을 집행할 것이오." (본문 24쪽)
  
주나라 개국 군주인 무왕이 상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을 치기 위해 군신들을 모아놓고 한 말이라고 한다. 요즘에야 이렇게 말하는 간 큰 사람이 있겠냐마는 예전만 해도 '암탉이 어쩌고' 하는 막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그 원조 중의 한 명이 바로 주나라 무왕이었던 것이다.

그런데 정말 이상하다. 하, 상, 서주 역사를 보면 왕조의 마지막 이야기가 모두 똑같다. 하나라의 걸왕과 말희, 주지육림의 주인공 상나라의 주왕과 달기 그리고 서주의 유왕과 포사. 똑같은 이야기에서 등장인물만 바뀌었을 뿐, 모든 마지막 왕의 곁에는 여인이 있었고, 그 여인들 때문에 결국 나라가 망했다는 이야기의 틀은 똑같다.

왜 그럴까? 왜 똑같을까? 저자는 이것이 바로 남성 중심 사회의 프레임과 승자가 정의라는 프레임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망국의 왕이지만 '남성'이고 '왕'이기에 망국에 대한 변명의 빌미를 여성에게서 찾았다는 것이다.

여성을 희생양으로 삼는 프레임은 전통 시대 모든 분야에서 철저하게 작동되었는데 말희, 달기, 포사는 그러한 프레임의 희생양일 뿐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암탉이 새벽을 알리면 집안이 망한다"는 무왕의 말은 당시 프레임을 반영한 것이고 무왕은 이 프레임을 새 왕조 건설의 동력으로 동원했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게 되는 역사는 승자의 기록일 수밖에 없고 역사를 서술할 권력을 지닌 자의 손끝에서 나온 역사 기록이니 권력자의 입장을 대변하는 것이다.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마지막 왕이 포악하게 묘사될수록 새로운 왕조의 정통성이 강화되는 법!

따라서 이전 왕조의 마지막 왕을 최대한 악덕하게 묘사하는 반면 새 왕조의 왕은 선하고 덕 있는 인물로 묘사함으로써 천명이 새로운 왕조로 옮아갔음을 대변하는 것이 바로 전통 시기 역사 서술을 지배하던 전형적인 '프레임'인 것이다.

역사가 객관적이라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19세기 랑케가 주장했던 사실 그대로의 역사는 현장에서 휘발된다. 그 자취를 그러쥐는 데는 각 시대, 각 사회의 프레임이 작동하게 마련인데 여기에 서술자의 세계관과 역사관이 맞물려 역사는 기록으로 남는 것이다.

남성과 승자가 역사의 주체가 되어 만든 이 프레임에서 여성과 패자는 역사의 타자이자 희생양이 될 수밖에 없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 등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여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역동성 뒤에 숨은 슬픈 사연의 난징

2014년 중국 문화 소프트웨어 도시 1위에 선정되고 2016년에는 '도시 역동성지수(CMI)'에서 세계 15위를 차지한 도시 난징. 오늘날 난징은 기존의 노쇠하고 정체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젊고 역동적인 도시로 거듭나고 있다.

하지만 난징은 중국의 모든 역사, 나아가 인류의 모든 역사를 통틀어서도 더 참혹한 경우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아픈 사연을 간직한 곳이다. 1937년 12월 13일부터 6주 동안 무려 30만 명이 학살된 아시아의 홀로코스트 바로 난징대학살이 벌어졌던 곳이기 때문이다.

산 채로 묻기, 사지 절단하기, 불태우기, 동사시키기, 사나운 개의 먹이로 던져주기, 염산에 담그기 등 차마 상상할 수조차 없는 일들이 난징에서 일본군에 의해 벌어졌다고 한다.

난징대학살의 참상을 낱낱이 고발한 최초의 영문 논픽션인 <난징의 강간(The Rape of Nanking(번역본 제목 '역사는 누구의 편에 서는가')>(1997)의 저자 아이리스 장은 이 책이 '두 가지' 잔학 행위에 관한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는 일본이 수많은 이의 목숨을 빼앗은 난징대학살 자체이고, 다른 하나는 일본이 이 대학살의 기억을 사람들 머릿속에서 지우려 하는 행위라는 것이다. 저자는 아이리스 장이 난징대학살의 진상을 세계에 알리고자 한 것은 바로 '기억의 의무'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 의무를 잊는다면 대학살에 관한 역사적 평가를 온당히 할 수 없을 뿐더러 비극이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2014년 중국 정부는 '위안부' 관련 자료와 함께 난징대학살 관련 자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했고 2015년 10월 난징대학살 자료는 등재되었다. 그러나 함께 신청한 위안부 자료는 등재되지 못했다.

이듬해 중국, 한국을 비롯한 10개국 민간단체가 연합해 위안부 자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신청했지만, 2017년 세계기록유산 등재는 또다시 보류되었다. 이유는 일본이 유네스코 분담금을 무기로 유네스코를 압박했기 때문이다.

반면 독일의 헤센주 정부는 2016년 6월 아우슈비츠 수용소 운영에 관여했던 이들의 재판 관련 자료의 세계기록유산 등재를 추진했고 2017년 등재되었다. 전쟁범죄 피해자가 아닌 가해자가 과거의 잘못을 잊지 않고 반성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다. 역사를 '왜'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 저자는 이것이 난징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이라고 말한다.

난징대학살 기념관에서 동쪽으로 6km 되는 곳에 있는 '이제항 위안소 구지 진열관'은 동운 위안소와 고향루 위안소가 있었던 곳이라고 한다. 2006년 세상을 떠나신 평안남도 출신의 박영심 할머니가 난징을 찾아 자신이 일본군 성노예로 갇혀 지냈던 곳이라 직접 증언한 곳이 바로 동운위안소다.

2015년 12월 28일 일본 정부는 10억 엔을 출현키로 했고, 당시 박근혜 정부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인 합의에 동의했다. 한번도 제대로 된 사과를 한 적이 없었던 일본은 '더 이상 사과는 없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화해·치유재단'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5일(현지시각) 미국 뉴욕에서 만난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재단의 사실상 해산을 통보했다. 책을 덮으며 역사를 '왜' '어떻게' 기억해야 하는가에 대해 다시 한번 깊이 생각해본다.

덧붙이는 글 |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이유진 지음, 메디치미디어(주) 펴냄, 524쪽, 2018년 4월


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이유진 지음, 메디치미디어(2018)


태그:#<중국을 빚어낸 여섯 도읍지 이야기>, #이유진, #난징대학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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