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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이해하는 사회] '안희정 1심 판결'이 잘못된 이유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 서있는 '안희정과 김지은'
18.09.24 18:00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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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안희정과 김지은은 기울어진 운동장 위에 서 있었다. 젊고 잘생긴 정치인 안희정은 사회의 지지를 등에 업었다. 그런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다'는 대의 아래, 김지은을 비롯한 캠프 내 개인들은 뺨을 맞고 성희롱을 당해도 침묵할 것을 요구받았다. 이런 캠프 내부의 비민주적 분위기는 자연스레 안희정이라는 인물에 대한 맹목적 순종을 낳았고, 안희정은 손쉽게 기울어진 운동장의 위편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럼에도 재판부는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었을 뿐, 경기를 못 하게는 안 했다며 '위력은 존재했지만 행사는 안했다'는 판결을 내렸다.
 
이는 미투 운동이 공유하고 있는 사회적 합의를 깨는 것이다. 미투 운동은 운동장이 기울어져 있는 그 자체로 경기 역시 진행할 수 없다고 본다. 아래편에서 위편으로 공을 찬들, 골이 들어갈 리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위력은 존재 자체로 행사되고 있다고 본다. 실제로 미투 운동 이전에도 위력에 의한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발은 있어왔다. 하지만 최근 몇 년간 '업무상 위력에 의한 성범죄'에 대한 경찰 입건 수가 증가했다. 이는 범죄가 급작스럽게 늘었다기보다, 이를 고발하는 피해자들이 증가했다고 보는 편이 합리적이다. 즉, 업무상 위력은 기존에도 존재했지만, 최근 들어 이것이 단순히 존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행사되고 있는 범죄라는 데 사회적 동의가 형성된 것이다.
 
문제는 이러한 사회적 합의가 깨지면, 권력형 성범죄의 존재 자체가 부정될 수 있다는 데 있다. 김지은 씨는 자신의 목숨줄이라 할 수 있는 임명권이 안 전 지사의 손에 달려 있다고 생각했으며, 안 전 지사로부터 '수행 비서는 모두가 No라고 할 때 Yes하는 사람'이라고 배웠다. 그런데 이렇게까지 운동장의 기울어진 정도가 명확한 사건에서조차 게임은 할 수 있었다고 보면, 다른 사건에서는 더욱 보수적인 판결을 내릴 여지가 생긴다. 특히 우리나라와 같은 남성 지배사회에서 성별은 그 자체로 권력관계를 내포하고 있다. 안 전 지사의 케이스와 달리, 위력의 존재를 규명하는 것조차 어려운 피해자가 얼마든지 양산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재판부가 성적 자기결정권이 있다고 보는 성인 여성의 경우, 위력이 존재를 넘어 행사까지 되어 성폭력을 당했음을 입증, 상대를 처벌하는 일이 거의 불가능해질 수 있다.
 
다행히 아직 기울어진 운동장에 대한 미투 운동의 사회적 합의를 지켜낼 기회가 있다. 2, 3심이 중요한 이유다. 애초에 3심제를 채택한 것은 1심판결의 오류를 광정하라는 취지였다. '위력이 존재하지만 행사하지는 않았다'는 1심의 판결이, 골을 넣을 엄두가 나지 않을 만큼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게임을 하게 해놓고 지라고 한 적은 없다는 것과 같은 불공정 판결이었음을 인정해야 한다. 그렇게, '1심'이 아니라 '위력은 존재 자체로 행사된다'는 사회적 합의를 존중하는 2, 3심 판결이 이뤄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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