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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겯고 흘러가는' 현실적 서정

[시집리뷰]김황흠, <건너가는 시간>, 푸른사상, 2018.
18.09.21 10:19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여기 주경야독을 하는 한 시인이 있다. 아니 밤에도 일을 해야 한다면 밤낮으로 책을 읽고 일을 하는 그의 삶과 시는 구분을 짓기 어려운 것일 테다. 그래서 시의 바탕을 이루는 그의 자연과 생업의 환경은 전통적 서정에만 시적 영감의 원천을 주지 않는다.

 
김황흠, <건너가는 시간> 시집 표지 ⓒ 푸른사상
 

잠시 비닐하우스 문 그늘에 앉아
뜨거운 햇살도 아랑곳 않고 너풀거리는 푸른 모를 바라본다
바람은 서늘한 기운을 드리우고
소금쟁이 사뿐히 밟고 간 조용한 파문
왜가리 한 마리 모르쇠 내려앉는 서슬에
뒤스럭거리는 물살 소리를 읽는
시간이 노랗게 익어가는 그 자리
네 옆에 다른 내가 앉아 벙긋 웃는 너를 보네

'건너가는 시간' 전문


그렇게 고된 일상의 틈새에서 빚어진 사유들이 시와 삶의 시간을 건너가는 그의 실감나는 현실적 서정의 모태를 이룬다. 그것은 일하다 다친 '통통 부은 발을 쓰다듬는' 손처럼 오래도록 지난한 생에 대한 위로와 한탄이기도 하고 '네 옆에 다른 내가 앉아 벙긋 웃는 너를' 보는 것처럼 때론 관조적이며 초월적인 시선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속이 타는 어머니'와의 대화처럼 그는 삶의 고통을 해학으로 환치하는 여유를 잃지 않는다. 그것은 병에 걸린 삶의 고추나무에 생명의 '숨을 몰아주는' 일이며 어둠이 흘러가는 남평대교 강물의 속말을 들으며 '함께 겯고 흘러가는 물결이' 되고자 하는 곡진한 진정성의 시학이다.


밤, 남평대교를 바라보며

흐느적이는 마른 억새 소리
바람 따라 부르고 부르다가
하루에도 몇 번 몸을 바꾼다
어둠이 서슬서슬 내린 둔치에서 들리는
논병아리 떼 부스럭이는 소리
물 위로 어룽대는 남평 다리 외등 불빛 위로 오고 가는 차 소리
어둠이 강을 가려도 흐르는 소리는 역력해
낮에는 듣지 못한 속말도 이때쯤이면
나지막하게 들리는 잠을 잊은 밤
외등 성큼성큼 불빛을 들고
함께 겯고 흘러가는 물결이 있네

 
드들강 드들강의 가을 하늘 ⓒ 김황흠
 
김황흠 시인은
1966년 전남 장흥에서 태어나 한국방송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수료했다. 30대 초반부터 영산강 지류와 드들강이 있는 광주 근교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2008년 『작가』로 작품 활동을 시작해 시집 『숫눈』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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