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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퓨마가 탈출해 텅 빈 사육장의 18일 모습.
 사진은 퓨마가 탈출해 텅 빈 사육장의 18일 모습.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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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를 좋아하는 6살짜리 첫째 조카와 곰을 좋아하는 3살짜리 둘째 조카를 보고 있으면 정말이지 예뻐 죽겠다. 해주고 싶은 것이 무척이나 많지만 실제로 해주는 건 별로 없어서 늘 미안하다. 아이들을 데리고 놀이동산도 가고 싶고, 인형극이나 공연도 보여주고 싶고, 아이스크림 사 먹이면서 공원에도 가고 싶다. 그렇지만 조카들이 아무리 떼를 써도, 토끼와 곰이 보고 싶다고 해도 동물원은 데려가고 싶지 않다. 

내가 앞으로 동물원에 가서 동물 구경을 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건 2007년 10월 26일, 청주교도소에서 출소한 날이었다. 병역거부로 감옥살이를 하면서 몇 가지 결심을 했는데, 다른 건 오래 돼서 다 기억이 나질 않고 딱 하나 기억에 남는 것이 앞으로 동물원에 가서 동물 구경하지 않겠다는 거다. 감옥에 살아보니 동물원 동물들의 처지가 마치 내 일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물원'이라는 이름의 감옥

아니, 솔직히 말하자. 동물원 동물들의 처지에 비하면 병역거부 수감자인 나는 황제 수감이나 마찬가지였다고 생각했다.

나는 만기출소를 해도 1년 6개월이면 끝나지만, 동물들은 끝이 없는 종신형을 산다. 나는 수감 1년이 넘어갈 무렵에는 일주일에 한 번씩 전화도 하고, 친구나 가족이 한 달에 4번씩 면회를 오기도 하고, 그들과 수시로 편지를 주고받았다. 고립되었지만 완전한 고립은 아니었고, 사회와 단절되었지만 가느다랗고 튼튼한 끈이 연결되어 있었다.

하지만 동물원에 갇힌 야생동물들은 그럴 수 없다. 감옥은 여름엔 더워 옆 사람이 미웠고 겨울엔 추워도 옆 사람이 좋아지지 않았는데 그래도 익숙한 사계절을 조금 더 강하게 느꼈을 뿐이었다. 아프리카 초원에서 온 얼룩말이 느끼는 겨울, 남극 대륙에서 온 펭귄이 느끼는 여름 같은 것을 나는 감옥에서 느끼지 못했다. 어느 모로 봐도 나는 동물원의 동물들보다 훨씬 편하게 감옥 생활을 했다. 

무료하게 멍하니 하늘만 쳐다보는 것 말고는 할 게 따로 없는 동물원 동물들과 다르게 나는 감옥에서 열심히 책을 읽을 수 있었다. 대학 다닐 때 안 한 공부를 만회해보고자 그랬는지 역사책도 많이 읽었고, 뒤늦게 많은 것을 배웠다. 근대적 인간의 몸을 만들기 위해 일본 제국주의가 운동회와 체조를 어떻게 활용했는지 공부했다.

만국박람회와 동물원이 제국주의의 폭력에서 태어났다는 것도 알게 됐다. 땅따먹기에 혈안이 되어 전쟁과 침략을 일삼았던 19세기~20세기 제국주의 국가들이 자신들의 국력을 자랑하는 방편으로 미지의 세계에서 발견(?)한 진귀한 것들을 전시하는 것이 바로 만국박람회와 동물원이었던 거다. 

물론 진귀한 동물을 가두어 구경하는 행위가 제국주의 시대에 처음 생긴 것은 아니다. <동물원의 탄생>(니겔 로스펠스 지음, 이한중 옮김)에 따르면 고대 바빌로니아나 중국, 그리스 문명에서도 대규모 동물 수집이 있었다. 영국의 헨리 1세는 우드스톡에 동물원을 세웠고, 16세기 무굴 제국의 황제 아크바르는 수천마리의 동물을 소유하고 있었다 한다. 

동물원이 야만과 폭력의 결과물이 된 것은 역시 19세기 제국주의 시대에 들어서다. 그 뒤 대형동물원은 외부로 팽창하는 국가 권력의 상징이 되었다.

박노자가 쓴 칼럼 '동물원, 무죄의 종신형'(<한겨레21>376호)을 보면 독일, 영국, 프랑스, 러시아 등 유럽의 대국들은 18~19세기에 이미 대형 동물원을 만들었다. 반면 변두리 소국이었던 노르웨이는 1960년대까지 대형 동물원을 꿈꾸지도 않았다가 산유국이 되어 오일달러가 들어온 1970년대에 동물원이 대형화했다고 한다.

누군가의 삶은 구경거리가 아니다
 
“Les Indes”라는 이름이 붙은 하겐바크 동물원의 사람쇼. 인도에서 잡혀온 사람들로 쇼가 구성되었다.
 “Les Indes”라는 이름이 붙은 하겐바크 동물원의 사람쇼. 인도에서 잡혀온 사람들로 쇼가 구성되었다.
ⓒ https://thesocietypages.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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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함부르크 외곽에 위치한 하겐바크 동물원을 세운 하겐바크 가문은 원래 이국의 동물을 사고파는 무역을 하다가 동물 전시나 동물쇼를 하다 1874년부터는 전세계 토착민들을 데려다 사람쇼를 하기에 이른다.

북유럽 최북단에서 순록을 키우며 살아가던 라플란드인, 알래스카에 살던 에스키모들이 구경거리가 되었다. 1907년 개장한 하겐바크 동물원에는 동물들과 함께 "민속촌"(아프리카 정글, 러시아 스텝, 미국 대평원, 북극 얼음)에 있는 사람들도 구경할 수 있었다.(<동물원의 탄생>) 

지금 우리의 상식으로는 인간종을 가두어 구경한다는 것은 논할 가치조차 없는 일이다. 하지만 19세기 유럽에서 백인과 다르게 생긴 유색인종을 동물과 함께 가두어 구경했다는 사실은 동물원이 결국 폭력과 야만 위에서 세워졌다는 명확한 증거다.

아마도 당시 제국주의 국가들은 지구 반대편까지 쳐들어가서 약탈을 수행할 수 있는 강력한 군사력과 그들을 멀리에서 데려와 기를 수 있는 과학기술을 자랑하고 싶었을 것이다. 우리의 동물원이 제국주의의 야만과 폭력을 그대로 닮았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그 토대 위에 있다는 것을 부인하긴 어렵다. 

동물원이 제국주의의 침략과 폭력에서 유래했다는 것을 알게 됐는데, 누군가의 삶을 전시하고 구경하는 것이 폭력이라는 것을 알게 됐는데, 동물원이 실은 감옥이나 다를 바 없고 동물들은 머나먼 타국만리 낯선 감옥에서 편지도 면회도 없이 종신형을 살고 있다는 것을 온몸 감각으로 느끼고 있는데, 동물원에 갈 수는 없다. 

아무도 해치지 않은 퓨마의 죽음

지난 9월 18일 대전 오월드 사육장에서 탈출한 퓨마가 사살되는 일이 발생했다. 기사에 따르면 사육장 청소를 마친 사육사가 문을 제대로 닫지 않아 퓨마가 탈출했고, 마취총을 쏴 퓨마가 맞았지만 마취가 풀리는 바람에 부득이하게 사살했다 한다.

물론 관리를 소홀하게 한 오월드와 사육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하고, 사살하는 과정에서 구조는 정말 불가능했는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한 결과인지를 따져 그렇지 않았다면 소방당국에도 책임을 물어야 할 거다. 그렇지만 나는 그런 책임을 묻는 일련의 행위가 결국은 우리 인간만을 위한 거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퓨마를 사살하지 않고 구조했다면, 다시 동물원의 철장으로 되돌려 보냈다면 우리의 마음은 퍽 다행이었겠지만 퓨마도 다행이라고 생각할까?

그 경우 우리가 지킨 것이 퓨마의 생명일까? 아님 퓨마에게 위협당하는 우리 인간들의 안전일까? 구조든 사살이든 퓨마가 인간들에게 피해를 끼치지 못하게 하는 시스템을 만들고 다듬을 뿐이지 않나? 나는 퓨마가 사살당한 것에 슬퍼하는 마음을 함께하고 있지만, 구조가 안 된 것을 안타까워하는 마음에는 계속 질문을 하게 된다.

퓨마가 살았어도... 행복했을까?

나는 과학에 지식이 많지 않아 퓨마의 속성을 잘 모르지만, 내가 동물원의 퓨마라고 생각하면 동물원으로 다시 가고 싶은 생각은 안 들었을 것 같다. 그렇다고 사살 당하고 싶지도 않았겠지만.

애초에 나(퓨마)에겐 삶과 죽음에 대한 아무 선택지가 없고, 결국 인간들이 자신의 세계를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만든 매뉴얼대로 나(퓨마)를 처리한 게 아닐까. 그 결과가 사살이든 구조든 결국 매뉴얼은 나(퓨마)를 지키기 위한 게 아니라 나로부터 인간 세상을 지키려는 거겠지. 

동물원이 사라지지 않는 한 폭력은 되풀이 된다. 나는 세상 전쟁에 반대하는 병역거부자로서, 폭력에 저항하는 평화주의자로서, 모든 동물원이 사라지기를 바란다. 앞으로 새로운 동물원이 만들어지지 않기를 바라고, 지금 있는 동물원들도 새로운 동물을 들이지 말고 살고 있는 동물들은 좀 더 생활하기 좋게 바뀌기를 바란다.

그러다 동물들이 수명을 다해 더 이상 동물원에 동물이 남지 않게 되면, 동물원이 있던 자리에 자연사 박물관을 지으면 좋겠다. 동물원에 가서 동물들의 수감 생활을, 그들의 고통을 구경하는 대신에, 자연사 박물관에서 동물을 배우고 동물의 삶을 이해하고 싶다.

토끼를 좋아하는 첫째 조카와 곰을 좋아하는 둘째 조카 손을 잡고 자연사 박물관에 가서 이 땅에서 사람과 더불어 살았던 토끼와 곰을 배우고 나오는 길에 서점에 들러서 토끼가 주인공인 그림책과 곰이 주인공이 동화책을 한 권씩 사주고 싶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전쟁없는세상' 블로그에도 실립니다.


태그:#양심적 동물원 거부 , #제국주의가 만든 폭력과 야만의 상징, #동물원을 없애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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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역거부를 하면서 평화를 알게 되고, 평화주의자로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출판노동자를 거쳐 다시 평화운동 단체 활동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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