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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간공예 작품. 보리농사에서 부수적으로 얻는 보릿대를 활용해 만들었다. ⓒ 이돈삼
 
입이 떠-억 벌어지며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보릿대로 이렇게 아름다운 공예품을 만들 수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빛깔이 은은하고 디자인도 세련됐다. 색감이 정말 좋다. 보릿대의 화려한 변신이다.
 
맥간공예다. 맥간(麥稈)은 보릿대를 일컫는다. 농사에서 부수적으로 얻는 보릿짚이나 밀짚 줄기로 만드는 작품활동을 맥간공예라 한다. 우리에게는 생소한 맥간공예지만, 오래된 전통 공예다. 우리 조상들은 보릿대를 활용해 베갯모, 베갯잇, 밥상보, 다리미 받침, 약함 등을 만들어 썼다.
 
지금은 옛 기법에다 칠을 입혀 한층 아름답게 꾸민다. 제품의 수명까지 늘린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전통의 보릿대에다 현대적 미술기법을 응용해 한 단계 높은 작품으로 만든다.
 
맥간공예 작가 박소정 씨. 맥간공예 경력 18년째를 맞은 그는 전남농업박물관에서 맥간공예 특별전을 열고 있다. ⓒ 이돈삼
 
박소정(46·전라남도 해남군)씨는 맥간공예 작가다. 경력이 올해 18년째. 언니를 통해 맥간공예를 접하고, 전통의 공예기법을 배웠다. 칠을 하는 법도 익혔다. 지금은 우리나라에서 몇 손가락에 꼽힌다.
 
"수확 직전의 보릿대 두 번째와 세 번째 마디를 씁니다. 원재료 확보를 위해 농가와 계약재배를 하죠. 쌀보릿대는 비교적 통통하고, 밀보릿대는 다소 가는 편인데요. 두 가지를 고루 씁니다."
 
맥간공예의 원재료가 되는 보릿대. 전남농업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맥간공예 특별전에서 만났다. ⓒ 이돈삼
   
맥간공예의 재료들. 보리줄기를 다듬어 물에 담근 뒤 줄기 속의 먼지를 없앴다. ⓒ 이돈삼
 
맥간공예는 6~7월 보리줄기를 거둬 다듬는 일로 시작된다. 물에 담근 뒤 보리줄기 속의 먼지를 없애고 말린다. 건조된 보리줄기를 자연색깔로 구분하고, 부분 염색을 한다.
 
목재의 반제품 바탕도 칠해둔다. 보리줄기의 색과 잘 어울리는 검정과 빨강색으로 칠한다. 바탕칠을 말리고 사포로 문지른다. 보리줄기의 접착력을 높이고 칠이 잘되도록 하려는 정지작업이다.
 
재료가 준비되면 도안을 디자인한다. 플라스틱이나 유리, 쇠, 나무 등 반제품에 어울리는 도안이다. 도안대로 보리줄기 붙인 면을 깔끔하게 오려 접착하고 눌러준다. 사포질을 하고 옻칠이나 우레탄칠을 한 뒤 온도에 맞게 말려주면 된다.
 
전남농업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맥간공예 특별전. 전시는 9월 30일까지 계속된다. ⓒ 이돈삼
   
박소정 씨의 맥간공예 작품. 보릿대로 이리도 화려한 생활용품을 만들었다. ⓒ 이돈삼
 
박씨의 맥간공예 특별전이 전남농업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전남농업박물관은 전라남도 영암에 있다. 9월 30일까지 계속될 특별전은 '농업부산물 보릿대, 예술작품이 되다'를 주제로 하고 있다.
 
당초문, 매화문, 석류문, 창살문 보석함을 비롯 궁중예단함, 필각함, 다과함, 쟁반, 찻상, 장신구 세트 등 그의 작품 84점이 선보이고 있다. 예술적 가치가 있으면서도 실용적인 작품들이다.
 
송복덕, 박소현 씨 등 찬조 작가들의 작품 26점도 함께 전시됐다. 토요일엔 작가와 함께 하는 맥간공예 체험교실도 운영한다. 누구나 쉽게 만들 수 있는 냉장고 자석을 비롯 책갈피, 소형 액자 등이다.
 
부분 염색을 한 보릿대. 보리줄기를 다듬어 씻고 줄기 속의 먼지를 없앤 다음 염색을 했다. ⓒ 이돈삼
  
보릿대로 만든 맥간공예 작품. 전남농업박물관에서 전시되고 있는 작품들이다. ⓒ 이돈삼
 
박씨는 맥간공예 외에도 다양한 재능을 지니고 있다. 단청과 탱화, 서각 등 전통의 문양도 새긴다. 판소리, 한국무용에다 해금과 드럼, 하모니카 연주도 한다. 밴드의 보컬도 했다. 수어 통역, 문화유산 해설, 심리 상담도 한다. '다종 예술가'다.
 
박씨는 해남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했다. 낮에 공장에서 일을 하고, 밤엔 야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청각과 언어 장애인을 상대하면서 몸짓이나 손짓으로 얘기하는 수어를 익혔다. 상담이론도 공부했다.
 
쉬는 날이면 대학로에서 연극을 만났다. 친구와 함께 무대와 거리공연 프로그램을 기획했다. '대타'로 연극무대에 서기도 했다. 하모니카와 오카리나 연주도 이때 배웠다.
 
탱화, 단청 등 전통문화를 접한 건 고향 해남으로 내려온 뒤였다. 1997년 문화재관리학과에 입학, 늦깎이 대학생활을 했다. 유형문화재 고영을 선생과 낭월 스님을 만나면서 탱화를 익혔다. 맥간공예를 접한 것도 그즈음이다.
 
전남농업박물관에서 만난 맥간공예 작품. 보릿대를 활용해 만들었다. ⓒ 이돈삼
 
나무에 작품을 새기는 서각도 배웠다. 해금 연주, 강강술래와 판소리도 배웠다. 드럼을 배우고 해남주부밴드의 보컬로 나선 것도 그 무렵이다. 승무를 배우고 싶어 시작한 한국무용은 무용지도사 자격증 취득으로 이어졌다.
 
"모든 것이 문화원 일을 하기 위한 과정이었나 봐요. 그동안 배웠던 걸 따로 써먹을 일이 있을까 싶었는데, 지금 다 풀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지는 일을 계속 하고 싶어요."
 

박씨는 지난해 1월부터 해남문화원 사무국장으로 일하고 있다. 지난날, '팔자 센 아낙네'라는 소리를 들었던 그다. 세월이 흐르면서 '다종예술가'로 변신한 그의 앞날이 사뭇 궁금해진다.
  
맥간공예 작가 박소정 씨. 그는 맥간공예 외에도 단청, 서각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재능을 뽐내고 있다. ⓒ 이돈삼
 
 
태그:#맥간공예, #박소정, #다종예술가, #해남문화원, #보릿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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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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