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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강원도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작별상봉을 마친 후 남측 가족들이 버스에 탑승하자, 북측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며 눈물로 배웅하고 있다.
 22일 강원도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작별상봉을 마친 후 남측 가족들이 버스에 탑승하자, 북측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며 눈물로 배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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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일 강원도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작별상봉을 마친 한신자(88) 할머니가 버스에 올라타 북측에서 온 딸 김경영(71) 할머니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하고 있다.
 22일 강원도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작별상봉을 마친 한신자(88) 할머니가 버스에 올라타 북측에서 온 딸 김경영(71) 할머니에게 손을 흔들며 작별인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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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산 공동취재단 신나리 기자]


아버지는 물컵에 소주를 따라 들이켰다. 두 살 때 헤어진 아들은 어느새 예순을 넘겼다. 부자는 말 없이 소주를 마셨다.

이기순(91) 할아버지는 남측에서 챙겨온 소주 한 병을 연회장에 들고 왔다. "너도 술 좋아하냐" 아들에게 물어보고 싶어 챙겨온 소주다. 오늘 헤어지면 언제 다시 볼 수 있을까. 부자는 말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테이블에 놓인 사과를 아들 앞으로 밀어놓고 소주잔을 들어올렸다.

22일 1차 상봉에 참가한 남북 이산가족들의 마지막 만남이 마무리됐다. 이날 오전 10시에 만난 가족들은 3시간여 작별 상봉과 식사 시간을 함께했다. 애초 2시간으로 예정돼 있었지만, 남측의 제의를 북측이 수용하면서 총 3시간으로 늘었다. 일정보다 만남의 시간은 늘었지만, 가족들에게는 여전히 부족했다.

금강산호텔 연회장엔 적막이 흘렀다. 200여 명이 넘는 남북의 가족들이 모였지만, 누구 하나 크게 말하는 사람이 없었다. 마음껏 소리도 내지 못한 울음들이 여기저기에 흩뿌려졌다.

차마 바라보지 못하고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마지막날인 22일 오후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작별상봉에서 김병오(88)할아버지가 북측에서 온 동생 김순옥(81)할머니와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마지막날인 22일 오후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작별상봉에서 김병오(88)할아버지가 북측에서 온 동생 김순옥(81)할머니와의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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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병오(88) 할아버지는 아침부터 말이 없었다. 남측 가족인 아들과도 말을 섞지 않았다.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옆에 앉은 북측 여동생과 조카의 얼굴도 제대로 바라보지 못했다. 그토록 보고 싶었던 얼굴인데, 마지막으로 볼 자신이 없었다. 할아버지는 허공을 바라보며 흐느꼈다.

"오빠 울지마, 울면 안 돼."

할아버지를 달래던 동생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남매는 10분이 넘도록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하이고' 짧은 탄식만이 이어졌다.

북측 자매라고 마음이 편할 리 없다. 남측에서 온 오빠를 기다리던 두 자매는 서로 말이 없었다. 손에 쥔 손수건을 바라볼 뿐이었다. 연회장으로 들어선 오빠를 보고 자매는 눈물만 흘렸다. 여동생 둘을 확인하고 자리를 찾은 김춘식(80) 할아버지의 눈에 굵은 빗줄기 같은 눈물이 흘렀다.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이제 또 만날 수 있을지."

이름·주소 주고받은 가족들 "죽기 전에 우리집 와서 밥도 먹고..."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마지막날인 22일 오후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작별상봉에서 김봉어(82)할아버지가 북측에서 온 동생 김팔녀(82)할머니가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마지막날인 22일 오후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작별상봉에서 김봉어(82)할아버지가 북측에서 온 동생 김팔녀(82)할머니가 헤어짐을 아쉬워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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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남(77) 할아버지는 말을 잇기 힘들어했다. 안부라도 주고받으며 살고 싶지만,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다. 2박 3일 동안 북측 큰 형님의 얼굴을 보고 또 보며 눈에 담아둘 뿐이었다. 이름은 알고 살아야지, 할아버지는 북측 형님의 아들인 조카에게 자녀들 이름을 적어달라며 펜을 쥐어줬다.

10여 명의 북측 형제 이름이 돌아왔다. 할아버지는 이름이 적힌 종이를 들여다봤다. 부모님 산소에 가서 큰 형님을 만나고 왔다고, 조카가 네 명이라고, 사는 동안 기억하려고 이름을 적어왔다고 말할 생각이다.

양경용(89) 할아버지 역시 북측 조카들과 전화번호, 주소를 주고받았다. 조카가 "통일되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할아버지는 그제야 "그럴 것"이라고 웃으며 답했다.

"개성에서 김포는 금방이잖아. 빨리 통일이 돼야 해."


동생은 아흔이 넘은 오빠를 달랬다. 신재천(92) 할아버지가 북측 동생에게 자신이 타고 가는 버스 번호를 계속 알려줬다. 할아버지는 동생을 어루만지며 "서로 왕래하고 그러면 우리집에 데리고 가서 먹이고 살도 찌우고 하고 싶은데"라고 말했다.

동생은 할아버지가 사는 김포에서 개성이 가깝다며 걱정 말라고 답했다. 할아버지가 "차 갖고 가면 40분이면 가"라며 "죽기 전에 우리 집에 와서 밥도 먹고 그래"라고 말했다.

이산가족들이 고령인 탓에 몸이 좋지 않았던 이들도 작별 상봉에 모습을 드러냈다. 전날(21일) 오후 단체상봉 때 참석하지 못한 김달인(92) 할아버지는 이날만은 와야 한다며 연회장에 자리했다. 열세 살이 어린 북측 여동생은 어느새 여든이 넘었다.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된 남매는 서로의 손을 꼭 잡았다.

2차 상봉, 24일부터

22일 강원도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작별상봉을 마친 후 남측 가족들이 버스에 탑승하자, 북측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며 눈물로 배웅하고 있다.
 22일 강원도 고성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작별상봉을 마친 후 남측 가족들이 버스에 탑승하자, 북측 가족들이 마지막으로 손을 흔들며 눈물로 배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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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측 이산가족 89명과 동반가족 등 197명은 금강산을 떠났다. 22일 낮 1시 28분께 남측으로 출발했다. 이들은 버스를 타고 동해선 육로를 통해 돌아올 예정이다.

남북 이산가족들은 방북 첫날인 20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단체상봉으로 처음 만났다. 오후 9시까지 환영 만찬으로 해후한 이들은 21일 개별 상봉과 객실 중식, 단체 상봉 일정을 거쳤다. 이날 작별 상봉과 점심까지 합하면 총 12시간의 만남이었다.

2차 상봉은 24일부터 26일까지 금강산에서 이어진다. 2차 상봉은 북측 이산가족 83명이 남측의 가족을 만나는 것. 상봉 일정은 1차 상봉과 같은 방식으로 진행된다. 첫째 날 단체 상봉, 환영 만찬으로 시작해 마지막날 작별 상봉으로 마무리한다.


태그:#남북이산가족, #상봉, #금강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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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사진기자. 진심의 무게처럼 묵직한 카메라로 담는 한 컷 한 컷이 외로운 섬처럼 떠 있는 사람들 사이에 징검다리가 되길 바라며 오늘도 묵묵히 셔터를 누릅니다.

오마이뉴스 기획편집부 기자입니다. 조용한 걸 좋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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