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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직 골수 IT 우먼에 세 아이의 엄마, 한 남자의 반쪽, 그리고 세계여행자, 한인 민박에 여행사 운영자까지. 이렇게 열거만 하는데도 벌써 숨이 턱 찬다. 이 모든 말들이 오늘의 인터뷰이 정미자(43)씨를 수식하는 말이다.

그런 당사자와 '복사 + 붙여넣기'급인 배우자 이정현씨도 만만치는 않다. 한때 조금 불량했지만 나름 엘리트의 길을 걸어온 그도 함께 '지도 밖을' 박차고 나오기에 찬성한 것. 세간에서는 이런 쿵작이 잘 맞는 부부를 두고 천생연분이라고 한다지만 10년도 전 가족 단위의 세계여행을 결심한 이 부부는 미친 가족이라는 소리를 면할 수 없었다.

'설마 아이까지...' 지금은 단란한 5인 가족이지만 당시에는 겨우 걷기 시작한 큰아이, 한규군도 함께였다고 한다.

부부 세계여행자 군단의 1세대 급인 두 사장님. 나는 그들이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운영하는 민박집 '남미사랑'에 머문 인연으로 그들의 이 범상치만은 않은 이야기를 접하게 되었다. 8월 중순, 이 평범해 보이지만 실은 결코 평범하지 않은 가족의 이야기가 궁금해 직접 찾아가 보았다.

- 오랜만에 뵙네요. 멜라니님(정미자씨의 영문 이름). 먼저 인터뷰 요청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남미사랑의 멜라니, 정미자입니다. 오래전에 남편이 여행기를 출간하고는 방송 출연이나 신문사 인터뷰에 응한 적이 몇 번 있는데 이번에는 너무 오래간만이라 많이 떨리네요. 호호."

- 인터뷰에 도움이 될 거라며 빌려주신 그 강렬한 제목의, <미친 가족, 집 팔고 지도 밖으로> 잘 읽었습니다. 남편분께서 가족이 함께한 세계여행을 토대로 직접 쓰신 책이라면서요?
"네. 벌써 10년도 더 전이네요. 저랑 덩헌(남편 이정현씨의 별명)은 둘 다 여행광이라 여행에 대한 서로의 갈증을 잘 이해했죠. (두 분은 실제로 유럽 배낭여행 중 이탈리아 로마에서 처음 조우해 결혼까지 골인하셨다고 한다) 그런 저희도 더 젊은 날들에는 장기간 여행을 떠날 경제적 여건도 정신적인 준비도 어느 것 하나 여의치 않았어요. 그래서 오랜 기간 가슴 한쪽에 꿈으로만 간직했어요.

그렇게 '남들처럼' 살면서 가끔 연차 쓰고 콧바람도 쐬러 다녔어요. 그런데 그 콧바람이 태풍이 되어 결국 집까지 팔고 어린 자식까지 데리고 길 위에 서게 되었어요.(웃음)

처음 계획은 2년간 북미 캐나다의 로키산맥 끝자락부터 남미의 '세상 끝'까지 육로로 종단한 뒤 다른 대륙으로 이동하는 거였어요. 큰 그림은 짰지만 세세한 밑그림을 여행하면서 즉흥적으로 그리는 식이었죠. (자식까지 데리고 너무 대책 없었나요?) 당시엔 지금처럼 휴가가 아닌 '장기 여행'이 그것도 '가족단위  장기 여행'이 많이 활성화되지는 않았어요. 그래서 한글로 쓰인 변변찮은 가이드북 하나도 찾기가 힘들었죠. 그래서 매일매일 맨땅에 헤딩하는 기분이었지만 지금 생각하니 추억이네요.

자세한 이야기는 여행기를 읽어보시기를 추천드려요. 일 년간의 구구절절한 이야기를 풀기에는 지면이 넉넉지 않을 것 같네요. 그래서 거두절미하자면, 계획했던 2년은 1년으로 줄었지만 마지막이자 '최애 여행지'인 이곳에서 보금자리를 꾸려보기로 했죠. 그래서 오늘의 남사(민박 '남미사랑'의 줄임)와 여행 초창기보다 조금 더 늘어난 우리 가족이 있네요.(웃음)"

가족의 애마 위에서 정미자씨와 아들 한규군이 더할나위없이 행복한 모습이다.
 가족의 애마 위에서 정미자씨와 아들 한규군이 더할나위없이 행복한 모습이다.
ⓒ 정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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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미자씨 가족이 길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정미자씨 가족이 길위에서 만난 사람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정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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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족이 다 같이 세계여행을 하다가 가장 마음에 드는 곳에 눌러앉아 산다... 이야기만 들어보면 무슨 영화 시나리오보다 더 현실감 제로인데요. 그 수많은 나라와 도시를 넘나드시면서 굳이 아르헨티나의 수도인 이곳을 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음... 대답하기 시간이 조금 걸리는 질문이네요. 호호. 아르헨티나라는 나라가 땅덩이가 커서 그렇지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남미 대륙의 최남단도 국토의 한 부분이랍니다. 그러니 이 나라가 저희의 남미 내 마지막 여행지가 된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그렇게 늘 하던 대로 '우리 둘째'(당시 부부가 몰던 차의 별명)로 육로로 국경을 넘어서 입성했어요. 세상에나, 도로가 무려 포장도로인 거예요! 그게 그렇게 놀랄 일이냐고요? 아이고, 그럼요! 당시 페루와 볼리비아에서 여행의 상당 기간을 할애한 저희에게는 그랬어요. 엉덩이 안 아프게 밑으로 쭉쭉 내려오게 되어 신이 났죠. 일단 첫인상 항목에서는 합격점을 줬어요.

그렇게 1년에 걸친 그 대장정을 마치고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발 도장을 찍은 날은 감회가 남달랐죠. 그동안의 묵은 여독도 풀 겸 차를 아프리카 대륙으로 보내는 배편도 알아볼 겸 겸사겸사 일단 여장을 풀었어요. 그런데 그렇게 무방비 상태에서 마음을 빼앗겨버린 거예요. 날씨도 너무 좋고, 아무것도 안 해도 그냥 숨만 이렇게 어푸어푸, 쉬고 있어도 좋은 동네인 거예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아들 한규에게 친구를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엄마 아빠가 여기저기 끄집고 다니면서 하루가 멀다 하고 지역 이동을 했으니... 어른들한테 예쁨은 많이 받았을지 몰라도 또래 친구들과 어울릴 기회가 많이 없었죠. 그래서 아주 잠깐만 살듯이 지내볼까 하던 게 올해 이렇게 10주년을 맞이하게 되었네요."

- 요즘은 작은 여행사도 함께 운영 중에 계시다고요.
"혹시 아프리카 쪽에서 유명한 '트러킹'이라고 아시나요? 개조한 군용 트럭을 타고 저비용으로 여행하는 방식을 일컫는 말이에요. 다양한 국적의 여행자들이 한데 모여 여건이 될 때마다 캠핑을 하고 다 같이 요리해 식사를 해결하는 장기간 여행하는 개념인데 이제는 한국인 여행자들에게도 생소하지 않은 말이지요.

파타고니아 지역 여행 중에 이런 트럭킹으로 여행 중인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생겼어요. 그리고 아이 아빠인 덩헌과 제 뇌리에 강하게 꽂혀 지나가는 말로 '나중에 우리도 저런 거나 한번 해보자...' 하던 게 시작이었으니, 말이 무섭죠. (웃음)

하지만 현실의 벽은 높기만 하더군요. 차체 높이가 남다른 군용트럭은 현지에서 구하기가 좀체 쉽지 않더라고요. (뷰가 보이는 시야가 일반 차량과는 비교가 되지 않아 욕심이 났었답니다) 그래서 꿩 대신 닭이라고 어찌어찌 작은 여행사를 꾸렸어요. 현재 서울에 작은 사무실을 하나 두고 이곳의 본부와 함께 기점으로 두고 운영 중에 있습니다. 완전히는 아니지만 뱉은 말의 알맹이는 이룬 셈이니, 이래서 말이 씨가 된다고 하나 봐요."

거실 겸 식당인 '남사' 민박집의 꼭대기층에서 여행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거실 겸 식당인 '남사' 민박집의 꼭대기층에서 여행자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정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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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박집과 커뮤니티 운영을 동시에 하시면서 기억에 많이 남으시는 한국인 여행자들이 많을 것 같아요.
"지금이야 남미 여행도 많이 유명세를 치르지만 전에는 그렇지 않았어요. 그래서 당시엔 지구 반대편인 이곳까지 날아왔다는 사실부터 벌써 평범하지는 않은 거죠. 그래도 고르고 골라보면... 아, 몇 분이 지금도 기억에 남네요.

인라인을 타고 남미 일주를 하시던 30대 남자분이 계셨어요. 높은 고도 때문에 남들은 걷기만 해도 숨이 차는 페루에서 그분은 무려 인라인을 타고 다니셨다고 하더라고요. 가끔 사람 걸음은 좀 느리고 차는 너무 빠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는데 각각의 장단점을 보완한 탁월한 생각이 아닌가 했죠.

또 다른 분은 단소를 가지고 다니시던 분이세요. 종종 악기를 들고 여행하는 사람들을 보긴 했는데 학교를 졸업하면 한국에서도 보기 쉽지 않은 걸 멀고 먼 남의 땅에서 보니 신기하고 인상적이라 지금까지도 기억에 남아 있죠.

이런 독특한 개성들로 제 기억 속에 각인된 분들이 있는가 하면 예상치 못한 범죄 행각으로 기억되는 분도 있어요. 지금도 의문인 사건이 하나 있었어요. 모두가 아침을 드는 그 짧은 시간에 도난 사건이 한번 크게 났어요. 세상에 한방의 노트북 3대가 감쪽같이 사라진 거예요.

숙박계를 보니 마침 딱 한 명이 체크아웃을 해서 범인이 누구인지 추측할 수 있었죠. 훔쳐 간 사람이 괘씸한 노릇이지만 속으로 여행 중에 그걸 가져다 뭘 할까 싶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용의자가 명백해 서로를 의심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필요가 없어 불행 중 다행이다 싶었죠. (본인 소지품/귀중품 관리는 필수입니다!)"

정미자씨가 입구의 카운터에서 리셉션 업무를 보고있다.
 정미자씨가 입구의 카운터에서 리셉션 업무를 보고있다.
ⓒ 송승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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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동안 '희(喜)'와 '락(樂)'도 많으셨을 테지만 '노(怒)' 와 '애(哀)'도 만만치 않으셨을 것 같아요. 강산도 변한다는 지난 10년 동안 위기나 후회가 있다면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이런저런 개인적인 속사정에 롤러코스터 같은 현지 경제 상황까지. 그렇게 일일이 다 세기는 힘든 것 같아요. 인력으로 안 되는 건 어쩔 수 없다 쳐도 사람한테 받은 상처는 보통 오래가는 편이고 어떨 때는 회의가 들기도 해요.

아시다시피 제가 인터넷에서 남미 여행카페를 운영하잖아요. 단순히 민박집이나 여행사 홍보뿐 아니라 남미 여행 정보교환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고요.

가끔 어떤 사람들은 본인들 질문의 답변을 자기의 음료처럼 기다리기도 해요. 자판기에는 동전이라도 들어가지, 카페처럼 호의로 서로를 돕는 공간에서 부적절한 언사를 하시는 소수의 멤버 때문에 마음이 상한 적이 있었어요. 하지만 좋은 분들이 훨씬 더 많다는 걸 알기에 넘겨버릴 수 있었습니다."

- 둘째와 막내도 포함된 '미친 가족' 2탄은 아직 출간 계획이 없으신가요?
"꼭 그런 거창한 장기 여행이 아니더라도 아이들이랑 보내는 시간을 늘리려고 노력 중이에요. 벌여놓은 일이 많다 보니 밑의 두 아이는 첫아이 때와는 다르게 부모가 아이에게만 온전히 신경을 못 써주죠.

그리고 만약... 정말 만약 다시 그렇게 여행할 기회가 온다면 제가 사는 이곳, 아르헨티나 일주나 전에 했던 미주 대륙 종단을 다시 해보고 싶어요. 갔던 데 또 가면 지루하지 않냐고요? 여행할 멤버가 다르면 그건 제게 더 이상 전과 같은 여행이 아니랍니다."

여행 초반에는 겨우 4살이던 한규군은 벌써 이렇게 자랐다.
 여행 초반에는 겨우 4살이던 한규군은 벌써 이렇게 자랐다.
ⓒ 정미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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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만둔 적이 없으니 그들의 세계여행자 타이틀은 현재진행형이다. 언제고 그들이 다시 운전대를 잡을 그날의 이야기를 기다리며 인터뷰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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