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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평론가 황현산 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이 8일 오전 4시 20분 별세했다. 향년 73세
 문학평론가 황현산 전 한국문화예술위원장이 8일 오전 4시 20분 별세했다. 향년 73세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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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 발병한 담도암 재발로 투병 중이던 황현산 전 고대 불문과 교수(문학평론가)가 지난 8일 오전 별세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다. 향년 73세. 그의 대표 에세이 <밤이 선생이다>를 접한 것은 2015년 길담 서원 박성준 선생을 통해서다. 선생은 '황현산과 사귀는 중'이라며 '자기 글을 써서 전태일 문학상을 받으라'는 격려의 글과 함께 그의 에세이집을 건네주었다.

불문학자며 문학평론가였던 그의 글은 유려하면서도 통찰력과 깊이가 있었다. 인문학 서당을 꿈꾸며 다양한 인문학적 토대를 만들고 다양한 인문학적 실험을 해 온 길담 서원지기가 괜히 그 책을 건네준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의 글을 접한 후 길담 서원에서 직접 대면할 기회가 있었다. 자그마한 체구에 별로 말이 없는 편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책을 '무덤 속 영혼을 불러내 대화하고 부활시키는 일'이라고 인터뷰한 글을 읽으며 왜 그가 밤을 상상의 시간, 창조의 시간, 죽은 것들을 다시 소생시키는 시간으로 받아들였는지 이해할 수 있게 됐다(관련기사: 밤의 상상력을 회복한 이들을 위한 찬가).

괴테의 <파우스트> 가운데 "낮에 잃은 것을 밤이여 돌려다오"라는 그 유명한 구절일 것이다. 여기서 낮이 이성의 시간이라면 밤은 상상력의 시간이다. 낮이 사회적 자아의 세계라면 밤은 창조적 자아의 시간이다. 낭만주의 이후의 문학, 특히 시는 이 밤에 모든 것을 걸었다. 시인들은 낮에 빚어진 분열과 상처를 치유하고 봉합해줄 수 있는 새로운 말이 "어둠의 입"을 통해 전달되리라고 믿었으며, 신화의 오르페우스처럼 밤의 가장 어두운 곳으로 걸어들어가 죽은 것들을 소생시키려 했다.

그에게 밤은 온갖 죽은 자들의 지혜와 지식이 가득 쌓인 서가라는 무덤에서 고르고 골라 죽은 자를 불러내고 그와 대화하며 새로운 성찰과 지혜를 얻어내고 과거의 씨실과 날실을 엮어 현재와 미래의 비전을 그려내는 시간이었던 것이다.

길담 서원지기를 통해 황현산의 글을 만나고 황현산을 만나고 여기저기 파편처럼 흩어진 그의 글에서 그의 생각을 은밀히 엿볼 수 있었던 시간들이 다시는 되돌릴 수 없는 어둠 속에 잠겼다는 아쉬움과 안타까움이 크다.

자끄 플레베르(acques Prevert)의 시 '고엽( les feuilles mortes)' 때문에 프랑스 문화원을 끊임없이 드나들었던 나처럼 황현산은 고등학교 때 접한 랭보 시집이 인연이 되어 불문학자가 되었고 <라신느>, <골짜기의 백합>(Le Lys dans la vallée), <악의 꽃>(les fleurs du mal), <파리의 노트르담>('The Hunchback of Notre-Dame), <레미제라블>(Les Miserable), <보바리 부인>(Madame Bovary)를 통해 프랑스 문학과 사상을 만나게 된다. 프랑스어를 접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하는 선택이리라.

고통과 당당히 대면하고 상처를 덮거나 숨기지 않기 위해 고통스럽게 무덤 같은 서재에서 책 속의 죽은 자들과의 대화를 포기하지 않기 위한 문학을 고집스럽게 지켜오며 글을 썼던 고인.  프랑스 문학과 철학이 지닌 현장성을 높이 사며 현실을 직시하고자 했던 한 평론가가 이제 누군가의 서재의 무덤이 되고 지헤를 전수할 사자가 되는 길로 떠나갔다.

그가 고통스럽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창조의 시간인 밤을 스승 삼아 찢겨지고 상처 난 낮의 시간들을 치유했던 것처럼 누군가는 그의 글을 붙들고 대면하면서 고통스러운 창조와 창작의 시간들을 보내게 될 것이다.

밤의 시간을 통하여 위로를 받았던 그가 영원한 침묵의 밤으로 떠나갔지만 그가 남긴 체취는 그의 글 속에 남아 누군가의 상처를 싸매주고 영혼의 목마름을 채워주는 한 줄기 샘물로 남겨졌음을 안다. 한 번의 만남, 한 권의 책으로 그를 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그의 영면을 비는 마음을 담아 추모의 글을 쓴다.

부디 그가 안식하는 밤의 세계는 평온하기를!


태그:#황현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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