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전기세가 걱정이다. 111년 만에 찾아온 최악 폭염으로 인한 에어컨 가동 때문이다. 정부는 '누진제의 한시적 완화'라는 카드를 꺼냈다. 산업통상자원부가 한국전력공사(이하 한전)와 협의해, 전기요금에 대한 누진제를 7~8월 한시적으로 평균 19.5% 완화하기로 한 것이다. 국민의 고통을 이해하면서 동시에 한전의 입장을 생각했다는 측면에서 이해가 가기도 한다. 그러나 에어컨 사용량을 감안하면 국민이 느끼는 체감지수는 매우 낮다. 따라서 임시처방에서 멈추지 말고 누진제 폐지로 가야 한다. 한전이 누진제 유지를 고수하는 이유는 실적유지이므로, 어느정도 선에서 이를 해결해 주는 방법을 찾으면 된다.

전기세 누진제는 1973년 제1차 오일쇼크 이후 주택용 전기 사용을 억제하여 산업용 전기를 안정적으로 확보하기 위해 도입되었다. 누진제 이전에 전기요금이 단일체계였다. 그러나 1974년 3단계 누진제 도입으로, 최저와 최고의 요금 차이는 1.6배가 되었다. 1979년 2차 오일쇼크가 일어나자, 누진단계를 12단계 요금 차이 15.2배로 바꾸었다. 1995년 7단계 요금 차이 13.2배로 조정되었다. 2005년 12월 6단계 요금 차이 11.7배로 개편되었다. 2016년 12월 3단계 3배로 축소되었다. 현재 구간별 요율은 최초 200kw까지는 kw 당 93.3원, 다음 200kw까지는 187.9원, 400kw를 초과하면 280.6원이다.

누진제의 목적은 사라졌다. 최대전력 수요가 있었던 7월 24일 전력사용량은 9248만 ㎾였지만, 예비율 7.4% 681만kwh를 보유하고 있는 등 수급은 안정적이다. 누진제 때문에 전기를 사용하지 않는 가구는 적으며, 국민의 전기세만 늘어날 뿐이다. 한전은 "1단계 구간에선 가장 낮은 요금을 부과받는 만큼 전기를 적게쓰는 저소득층에 유리하다"고 주장하면서 '에너지 복지'를 들이댄다. 이는 사실과 다르다. 한 달에 전기를 100kWh 이하로 쓴 가구 중 기초 생활수급자 비율은 2.5%이고, 101에서 200kWh 이하에서도 24%이다. 오히려 누진제 2단계에 해당하는 201에서 300kwh 이하 구간의 42%가 기초생활수급 대상자이다.

국민은 누진제 폐지를 원한다. 한전은 요지부동이다. 우는 아이에게 과자 주듯이 찔끔 찔금 전기세를 인하하면서, 국민이 폭발하지 않을 정도로 관리하는 기교를 부리고 있다. 누진제를 유지해야 할 만큼 전력이 부족하지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 복지' 같은 새로운 이유를 만들어 내는 이유가 무엇일까? 당기 순이익 때문이다. 누진제를 해결할 실마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 누진제를 폐지해도 한전의 이익구조가 단번에 추락하지 않을 구조를 만들면 된다. 전체 전기 사용량의 13.6%에 불과한 주택용 전기세의 누진제를 폐지하는 대신, 56.6%인 산업용과 21.4%인 상업용 전기세를 현실화시키면 된다.

시계별 차등요금이 적용되는 7월 기준 산업용 전기는 Kwh당 81원이며 상업용 전기는 105.7원이다. 누진제는 적용되지 않는다. 물론 모든 산업용과 상업용 전기요금을 올릴 수 없다. 중소기업과 중소자영업은 아직 국가의 보호가 필요한 영역이기 때문이다. 대기업은 전기세를 부담할 수 있을 정도로 성장했다. 10대 기업이 사용하는 산업용 전기가 국민전체의 사용량과 동일하다. 제1차적으로 대기업의 전기세만 현실화시켜도 주택용 전기의 누진제 폐지로 인한 손실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다. 계속해서 전기세가 기업의 유지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지 않는 거대 중소기업까지, 전기세를 적절하게 부담시키는 방향으로 나가야 한다.

기업에는 공기업과 사기업이 있다. 수익성을 요소로 하는 점에서 두 기업이 동일하다. 그러나 공기업은 사기업이 담당할 수 없는 사회공공의 복리향상이라는 공공성을 지향할 책임이 있다. 한전은 공기업이다. 그러한 한전이 사기업에게는 낮은 가격으로 전기를 공급하고, 복지와 관련된 주택용 전기를 높은 가격에 보급해서는 안 된다. 물론 기업보호가 필요한 개발도상 단계라면, 공공성이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다. 우리나라 기업 중 국가가 보호해야 할 영역을 넘어선 기업이 많다. 이들은 전기세를 할인해 주지 않아도 스스로 충분히 생존할 능력이 있다. 정부는 한전이라는 공기업이 본연의 목적을 지향하도록 방향을 설정해 줄 필요가 있다.


태그:#누진제, #누진제 완화, #누진제 폐지, #전기세 인하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경남대학교 대학원 졸업(정치학박사) 전,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현, [비영리민간단체] 나시민 상임대표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