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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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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8년 입대 후 사단 보수대(보급수송대)에서 1종(주식) 행정병으로 근무했다. 1만2천 명에 이르는 병사들의 먹거리 수급을 책임지는 보직이라 나름대로 '끗발'이 있었다. 하지만 이런 황금 보직에도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서슬 퍼런 집단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철조망을 바로 옆에 두고 있는 보안대였다.

불출증에는 '보안대대'라는 부대명이 적혀 있었지만, 그곳이 뭐 하는 곳인지 정확히 아는 부대원은 없었다. 군내 동향과 정보를 수집하고, 특히 지휘관을 밀착 감시하는 강력한 칼자루를 쥐고 있을 것이라고 대충 짐작하는 정도. 지금으로 따지면 아마 기무사의 전신이 맞을 것이다. 그나마 막강한 파워를 자랑한다는 우리 부대도 (바로 이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직접 주.부식을 갖다 바쳤다.

보급 차량을 몇 번 따라간 보안대 분위기는 생각보다 살벌하진 않았다. 그나마 보급품을 가져오는 우리에게는 가장 친절(?)하게 대했기 때문이다. 서로 안면이 있으니 위병소에서도 별다른 제지 없이 그냥 통과됐다. 어차피 막강한 권력이 있어 일부러 찾아오는 사람은 없으므로 위병소나 부대 시설관리도 극히 소홀한 편이었다. 그러나 장발 머리에 사복 차림으로 그곳에 있는 모든 이들이 군인이라고 추정되기에 (이등병인지 중사인지 알 필요도 없고) 무조건 경례부터 붙여야만 했다.

그러던 어느 날, 긴 장발에 계급장도 없이 대충 몸에 군복만 걸친 한 분께서 나를 부른다. 뒤를 돌아보며 나를 부르는 게 맞냐며 몇 번이나 물었다. 여전히 나를 가리키면서 고개를 끄덕인다. 헉! ('헉'이라고 쓰고 '꽥'이라고 읽는다)

군 생활 중 최대 위기의 순간이다. 내가 뭘 잘못한 거지? 아무리 생각해도 꿀릴만한 이유가 없다. 하지만 심장은 쿵쾅거리고, 불현듯 집에 있는 엄마가 떠오른다. (다행인 건 그나마 보안대와는 어울리지 않게 준수하게 생긴 놈이다) 일단 심호흡을 크게 한번 하고 모자를 고쳐 쓰고 예의를 갖춰 다가갔다.

"야! 너 고향 어디야!!! 혹시 여수 아녀?"

헉, 이 인간이 그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 짧은 순간에도 그들의 정보력에 다시 한번 감탄하고 말았다. 애써 태연한 표정을 지으며,

"아… 네… 마, 맞는데요..."
"아, 그래? 너, 국민학교 어디 나왔어? 혹시 여수 서교 6X회 아녀?"


햐~ 이 놈은 나에 대해 어디까지 알고 있는 걸까. 또 언제부터 나를 캔 것인가.

"나 알아보겠냐? 나 학교 같이 다닌 구OO야. 얼마 전부터 맞다고 생각했는데, 물어보기도 뭐하고 그랬는데... 오늘 마침 잘 만났네? 얼굴은 맞는 것 같은데 이름은 기억이 잘 안 나더라고? 뭐, 학O이? 아, 맞아. 생각난다. 진짜 반갑다"

그랬다. 그 녀석은 초등학교 동창 놈이었다. 5학년 때 같은 반을 했던 녀석인데, 이런 막강한 곳에 있다니.

'아, 하나님 감사합니다. 남은 군 생활이 이제 꽃길이 되는 겁니까?'

뭐, 그렇다고 남은 군 생활이 특별히 달라진 건 없었다. 이후 보안대에 가면 겁 따위는 상실하고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우쭐거리는 습관이 생기기 시작했고, 부대 주변에서 부대원들을 만나면 특별히 친한 척을 한 게 전부였다.

아, 그러고 보니 외출 나가서 헌병들에게 복장 불량 군기 위반으로 걸려 위기를 맞았을 때 그 녀석 이름 한 번 팔고 무사통과한 적이 한 번 있긴 하다. 상병밖에 안 된 보안대 사병 이름으로도 막강한 영향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보안대 사병 이름으로도 헌병대를 충분히 제압하는 그 파워. 그러니 그들의 권력은 결국 대통령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 권력으로 성장한 것이 아니었을까.

결국, 말 많던 기무사를 해체하고 대신 '군사안보지원사령부'라는 새로운 간판으로 정보부대를 창설한다고 한다. 이름 바꾸는 개혁안으로 '특권'이 완전히 사라질 수 있을까? 간판만 이리 저리 바꾸다가 어차피 정권이 또 바뀌면 원위치 되는 걸 우리는 익히 경험했지 않은가. 내 경험에 따르면 이렇다. 혹시라도 '보안대'가 '군대'라고 한다면, '똥파리'도 '새'다.

그건 그렇고, 구OO 너를 한번 만나보고 싶구나. 혹시 보안대에서 눌러앉은 건 아니지?



태그:#모이, #입대 , #군대, #보안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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