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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공개된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계엄 대비 계획 세부자료 갈무리. 위수령·계엄 선포 사례를 나열하며 제주4.3을 '제주폭동'으로 규정했다.
 23일 공개된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계엄 대비 계획 세부자료 갈무리. 위수령·계엄 선포 사례를 나열하며 제주4.3을 '제주폭동'으로 규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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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촛불정국' 당시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계엄 대비 계획 자료에 제주4.3을 '폭동'으로 명시된 것으로 드러났다. 박근혜 정부 군 당국이 제주4.3에 대한 비뚤어진 시각을 고스란히 보여준 대목이어서 논란이 확산될 전망이다.

군 당국은 지난해 3월 국군기무사령부가 작성한 계엄 대비 계획 세부자료를 23일 공개했다. 군사 2급 비밀로 분류됐던 해당 자료는 국회 제출 요구에 따라 평문화 작업을 거쳐 공개가 이뤄졌다.

총 67페이지 분량의 문건은 지난해 3월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선고 기각을 가정해 만들어진 것으로, 판결 직후 상황에 따라 위수령, 경비계엄, 비상계엄 등을 발동하는 시나리오를 명시했다. 계엄 선포 시의 대국민 담화문, 계엄사 합동수사기구 설치, 보도검열 공고문 등을 예시문으로 작성했고, 언론통제, SNS 차단 등 구체적인 시행계획도 담겼다.

해당 문건의 7페이지에는 위수령·계엄 선포 사례를 소개하며 제주4.3을 '제주폭동'으로 규정했다.

이는 정식 법률인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이하 4.3특별법)'의 진상조사 보고 내용을 전면으로 부인한 것이다.

4.3특별법 제2조는 제주4.3사건의 정의를 '1947년 3월 1일을 기점으로 1948년 4월 3일 발생한 소요사태 및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력충돌과 그 진압과정에서 주민들이 희생당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이 법에 따라 지난 2003년 국무총리 산하 제주4.3위원회가 채택한 제주4.3사건 진상조사 보고서는 4.3을 보다 자세히 기술했다.

이 보고서는 4.3을 '1947년 3월 1일 경찰의 발포사건을 기점으로 하여, 경찰·서청(서북청년단)의 탄압에 대한 저항과 단선·단정 반대를 기치로 1948년 4월 3일 남로당 제주도당 무장대가 무장봉기한 이래 1954년 9월 21일 한라산 금족지역이 전면 개방될 때까지 제주도에서 발생한 무장대와 토벌대간의 무력충돌과 토벌대의 진압과정에서 수많은 주민이 희생당한 사건'으로 규정하고 있다.

즉, '제주폭동'이라고 규정한 해당 문건 상의 표현은 엄연히 법으로 규정된 4.3을 전면 왜곡한 것으로, 4.3을 바라본 이전 정부의 시각을 고스란히 보여준 셈이다.

한편, 이 문건은 4.19혁명을 '4.19학생의거', 5.16군사정변을 '5.16군부쿠데타', 부마항쟁을 '부마사태', 여수·순천사건을 '여수·순천반란'으로 명시하는 등 입맛에 맞는 표현을 취사선택한 것으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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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오마이뉴스 제휴사인 <제주의소리>에 실린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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