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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은 지금 삶이 행복하세요?"

지역 도서관과 연계한 문화예술교육 프로그램을 종강할 무렵, 한 학생이 내게 던진 물음이었다. '행복'이란 단어가 내재한 함의성에 대해 어떤 설명이 필요할지 머릿속이 가뭇해졌다. 무엇을 해야 행복한 것일까. 언젠가 이 학생은 자신은 '꿈이 없다'고 했다. 꿈이 없다는 말도 너무 자주 들어 속담을 듣는 것처럼 식상해졌다. 하지만 그것이 현실이었다.

넌 무엇이 행복이라고 생각하니? 꿈이 없다는 말처럼 행복 역시 모른다는 말로 학생은 바꿔 말했다. 그래서 물어보는 거란다. 나는 솔직해지기로 했다. 나도 행복이 뭔지는 잘 모르겠어. 그런데 오늘 내가 사는 삶에 스스로 의미를 찾는 거라면 행복한 거 아닐까. 학생은 피식 웃을 뿐, 그가 바라는 답은 아닌 것은 분명하다는 직감이 들었다. 미안했다.

수업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차안, 나는 행복에 대해 한참을 고민했다. 서른을 넘어 진로를 고민했다. 어떻게 살아야 할까. 남들에 비하면 너무 늦게 찾아온 사춘기가 아닌가 싶다. 학생이 물었던 질문을 수없이 내게 물었지만 여전히 나는 답을 찾지 못했다. 답이 있기는 한 것일까.

진로에 대한 고민은 고등학생 뿐만 아니라 어른이 돼서도 하는 것이라는 말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꿈은 직업이 아니고 하루를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나름 고민하는 과정이라는 것이라는 결론을 어렴풋이 느끼고 있는 내가 해줄 말은 무엇일까.

책에서 의미를 찾으려 노력했고, 그러다보니 그 책을 가지고 소통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 즐거움을 도서관을 통해 문화예술교육과 연계해 프로그램 강사로 활동하면서 학생을 만나는 것이 가르치는 행위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감정과 생각을 배우고 싶다는 욕구가 강했다. 그래서 나와 함께 하는 수업은 질문이 그토록 많았는지도 모르겠다.

서양 고등학교에서는 왜 객관식 문제를 안 풀까

이제 대학을 들어가거나, 대학에 들어갈 준비를 하는 학생들에게 추천해줄 책이 없냐는 질문을 받았다. 4차 산업혁명, 앞으로 몇십 년 후에는 우리가 상상도 못할 직업이 생길 것이라는 그럴싸한 말만을 담은 책은 추천해주고 싶지 않았다. 그들의 삶에서 부딪칠 구체적인 안을 함께 고민하는 책을 말해주고 싶었다.

이범, 나의직업 우리의 미래
 이범, 나의직업 우리의 미래
ⓒ 창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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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범의 <나의 직업 우리의 미래>는 레고 블록을 쌓는 것처럼 미래에 대한 사유가 조밀했고, 숲과 나무를 글 카메라로 골고루 비춰준다. 먼저 세상을 치열하게 살아온 선배로서, 교육 현장에서 물집 부르트게 뛰었던 교육평론가의 삶이었기에, 우선 학생들이 답답해하는 것이 무엇인지 정확히 맥을 짚는다.

이제 그의 책을 들여다보자.

"수업 시간에 읽은 소설(영화 <러브 액츄얼리>의 원작)의 배경 보다 5년 지났다고 가정하여 작중 인물 B의 입장에서 작중 인물 A(주인공)에게 보내는 편지를 쓰시오."(22쪽)

독일의 문학 문제란다. 제한된 시간이 있고, 종이 울리기 전까지 답안을 제출해야 하는 것은 우리와 비슷할 것이다. 이 문제를 받아든 학생은 어떤 느낌일까. 답안의 평가 기준은 어떨까. 시험을 채점하는 담당 선생님은 어떤 느낌일까.

쓰다 보니, 난 왜 느낌에 몰입하고 있는 것일까. 느낌에 비추어 사유를 공유하는 작업, 이것이 어쩌면 소통이 아닐까 한다. 시험 문제 역시 소통이 돼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창의적 발상, 사고력 증진 등 더 말하면 입 아픈 소리를 수도 없이 하면서 소통을 시도하지 않는 것일까. 인식의 문제일까. 철학의 부재일까.

왜 서양 고등학교에서는 객관식 문제를 안 풀까. 저자는 이것에 대한 답을 이렇게 정리했다.
"유럽은 유럽대로, 미국은 미국대로 고등학교 교실에서 객관식 문제를 풀 이유가 없어요. 유럽은 애초에 대입시험이 논술형이고, 미국은 대입 시험이 객관식이지만 공교육과 분리되어 있어 학교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미국의 고등학교 안에서 치르는 시험은 우리나라와 달리 대부분 논술형 내지 수행 평가예요. 사실 고등학교 교실에서 오지선다 문제를 풀고 있다는 건 굉장히 창피한 일이에요. 요새 '정답'이 궁금하면 누구에게 물어봅니까? 인터넷 검색하면 다 나오잖아요. 공짜로 얻을 수 있는 지식을 학생들 머릿속에 넣어 놓기 위해서 국민 세금을 많이 쓴다? 이게 점점 용납하기 힘들어지는 거죠. 게다가 객관식은 자꾸 '출제자의 의도'만 따지게 되니 자기 생각을 구성하는 힘을 기르기 어렵습니다." (41쪽)


출제자의 의도? 여기에 왜 학생 생각의 기준점을 세워야 할까. 평가 기준이라는 미명 아래 사고의 확장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지금껏 고수하는 이유는 뭘까. 교육 후, '헬조선'이라는 프레임 속에서 불안한 고용시장에 놓일 학생, 더 나아가 청년들에게 사회는 어떤 인재상을 바라는 것일까.

세대를 구별하자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출제자의 의도만 파악하는 교육이라면, 이 사회는 어떤 맥락에서 독법해야 하는가. 기득권의 의도를 파악하며 자신의 행복을 저당 잡혀 사는 것 뿐인가. 스펙과 씨름해야 하고 불확실한 미래에 스스로 긍정 파워를 불어 넣으며 버티는 것뿐이라면, 얼마나 삶이 궁핍한가.

'1차 산업 혁명스러운 일', 제발 그만 두어야

저자의 대안이 뚜렷하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는 지금의 미래세대들에게 실용적인 태도를 가지라고 당부했다. 이론적으로 옳고 그름에 함몰되어 세상을 보는 것보다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되느냐'에 우선시 하라는 것이다.

실용적인 태도란 무엇일까. 어떤 삶의 자세일까. 문제 현안의 접근성에 의문을 던지는 것에서부터 시작하는 것 아닐까. 내 안의 문제에서부터 사회 구조적 시스템 차원의 것까지 동떨어져 사고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들이 유기적으로 연관되어 있다는 느낌을 공유하는 것이 필요하다.

미래 세대의 자산은 무엇일까. 기초적인 사회 질서를 바라보는 시각에 이들 자산은 어떻게 투입과 산출이 돼야 할까. 미래 세대는 기성세대가 생각지도 못한 아이디어가 있다. 문제는 그 아이디어를 실용화 시킬 인적 네트워크가 없다.

저자는 그 방편으로 직접적인 교류와 체험, 문학·예술 작품이나 기사 논픽션 등을 통한 간접적인 경험도 필요함을 역설했다. 교육이 문제라고 해서 섣불리 지금 토착화된 현상만을 보고 급진적으로 바꿀 수도 없다. 오히려 역효과로 사교육은 사회적 긴장과 불안을 축적한 채 팽창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저자의 말이 현실에서 좀 더 구체화를 가지려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것, 그것이 궁극에는 자신의 진로와도 연관되는 방안을 구상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 첫 번째로 같은 클래스에 소속된 인원들이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는 것이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물리적인 건물이 됐든, 가상적인 소셜네트워크가 됐든 간에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교육의 방향에 관한 저자의 말은 새길 만했다.

"교육의 초점은 창의력 자체보다는 자기 주도 학습 능력, 특히 본인이 스스로 학습 목표를 설정하는 능력에 맞춰야 한다고 봅니다. 물론 이 과정에서 창의력도 이전에 비해 훨씬 더 키워 갈 수 있겠지요. 이제는 일생 동안 직업을 여러 번 바꿔야 할 확률이 높아졌고, 그때마다 본인이 뭘 배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 4차 산업 혁명이 우리 교육에 던지는 화두예요. 특히 한국의 코딩 교육처럼 '1차 산업 혁명스러운'일을 계속 하는 건 제발 그만두어야 합니다." (75쪽)



나의 직업 우리의 미래

이범 지음, 창비(2018)


태그:#이범, #나의 직업 우리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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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생. 전남대학교 일반대학원 문화재협동학 박사과정 목포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학석사. 명지대 문예창작학과졸업. 융합예술교육강사 로컬문화콘텐츠기획기업, 문화마실<이야기>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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