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대한민국의 수많은 직장인들이 꿈꾸는 퇴사! 새해 첫날 좌천 통보를 받고, 나락으로 떨어지던, 무기력한 40대 회사원이던 제가 딴짓을 하면서 퇴사 프로젝트를 가동하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과연 퇴사할 수 있을까요? - 기자 말

2016년 1월. 15년째 이어오던 출근의 해가 찬란하게 떠올랐다. 16년 차 직장인의 새해 첫 출근 날은 짧은 연휴로 인해 발걸음만 더욱 무거웠다.

"여보, 이번 한 해도 수고해요. 파이팅! 우리 신랑."

아내의 진심 어린 격려는 지하철을 타고 나면 마법의 가루처럼 그 효과가 사라졌다.

'에휴. 작년 연말에 기똥찬 꿈을 꿔서 로또를 3만 원 치나 샀는데, 5천 원짜리 하나 당첨! 개꿈이었네 개꿈. 그래도 새해 첫 출근 날이고 이번 주에 인생역전을 꿈꾸는 직장인들이 로또 많이 살 테니 1등 당첨금은 올라가겠군. 훗. 나도 퇴근길에 동참해야겠군. 남 좋은 일 시키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런 낙이라도 있어야지.'

내 책상이 없어졌다

 MBC 예능 <무한도전> 화면 갈무리
 MBC 예능 <무한도전> 화면 갈무리
ⓒ 무한도전

관련사진보기


신나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른 여느 때보다는 의욕에 찬 힘찬 발걸음으로 3층 사무실에 들어섰는데 어째 분위기가 영. 왠지 날씨 탓은 아닌 것 같은데 말이야.

"저기 김 팀장. 지금이라도 임원실 들어가 봐. 혹시 이미 말 했는데 의견이 반영 안 된 거야?"

평소 친하게 지내며 이것저것 도움을 주던 법무팀장이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영문을 알 수 없는 말을 건넸다.

"뭐야? 설마 아무것도 모르고 있는 거야? 아무 언질도 못 받았어? 이런 둔한 사람아. 빨리 사내 문서나 열어봐. 1층에서 기다리고 있을게."

뭔가 사달이 났구나 싶어 불안한 마음에 사내문서를 열었더니 인사발령이 떠 있었다.

'해외영업팀 김XX 팀장 직위해제. 마케팅 지원팀 발령.'

내가 일하던 부서와 A 부서를 통합해 마케팅지원팀이란 부서를 새로 신설하고, 그곳에 내가 팀장이 아닌 팀원으로 합류한다는 내용이었다. 이게 뭔 호랑이 풀 뜯어 먹는 소리래? 백번 양보해서 직위를 해제하고 좌천을 시켜서, 전혀 상관도 없는 부서로 발령을 낸다 하더라도 최소한 언질은 있어야 하지 않나? 내가 비록 이직을 해서 여기서는 5년 차지만 회사라는 큰 테두리 안에서 살아온 시간이 15년인데.

버나드 쇼의 묘비명처럼 내 우물쭈물 하다가 이럴 줄 알았다는 낭패감이 온몸을 휘감았다. 작년 연말 송년회 때 친구 녀석 푸념처럼 떡볶이 체인점이라도 미리 준비를 했어야 하는 건가? 뒤늦은 후회가 밀려왔다.

'아! 그런데, 그럴 돈이 없지.'

나처럼 좌천을 당한 또 한 명의 팀장은 사장 면담을 요구하고 난리 법석인데 난 학습화된 두려움에 길든 것인지 부당한 대우를 받고도 어떤 행동도 취할 수 없었다. 그저 내가 속없어 보이는 부장들처럼 사장한테 아부도 못 하고 그냥 내 일만 하고 살아온 게 멍청한 짓이었구나 하는 뒤늦은 후회를 해 볼 뿐. 괜히 사장 면담을 요청했다 좌천이 아니라 퇴사를 명 받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더 컸다.

지금 와서 생각하면 너무나 어이없고 멍청한 생각이지만, 제도권 교육을 충실히 받고 어른의 의견은 공경하며 조직의 명령에 순응하며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 속에 자라온 나로서는 자신과 주변환경을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회사의 처우에 조금은 화가 났다. 나이 사십이 넘은 한국 사회의 가장에게 최소한의 언질도 없이 서면으로 내려진 통보를 보고 나는 인사팀장에게 다가가 "저... 짐은 내일 옮겨야겠어요..."라고 수줍게(?) 말했다.

하루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갔고, 퇴근 후 아내에게 충격적인 소식을 전했다. 나도 같은 생각이었지만 아내도 불행 중 다행이라는 뉘앙스의 격려를 해주었다.

"자기는 어디서던 잘 적응할 수 있는 사람이잖아. 지금 당장은 뾰족한 수가 없으니 상황을 지켜보자. 만약에라도 자기 잘리면 내가 아르바이트 자리라도 알아볼게."

역시나 아내의 위로는 큰 도움이 되었다. 효과가 10분을 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였지만. 그렇게 불면의 밤은 시작되었다.

마흔세 살에 시작한 커피 타기

해외영업팀에서 나는 팀원 없이 혼자서 일을 하는 팀장이었다. 몇 년 전 뉴스를 보니 퇴사나 이직의 주된 이유 중 하나가 사내 인간관계에서 오는 스트레스라고 하던데. 혼자인 나는 업무적으로 크게 부딪힐 일이 없으니 사실 다른 누구보다 심리적으로는 편안한 직장 생활을 하고 있었다. 언제나 퇴사를 꿈꾸기는 했지만, 현실이라는 벽 앞에서 마음을 다잡고 품속에 사표 대신 로또를 품고 하루하루를 버텼다.

팀원 없이 혼자서 일을 하게 된 이유가 있다. 우리 회사의 업무 특성상 외국과 거래하는 비중이 크지 않았다. 하지만 내 업무능력은 대외홍보용으로 썩 훌륭한 수단이 되었고, 실적 면에서도 내 연봉을 뽑고도(?) 남았다. 하지만 새로운 경영진은 해외영업팀의 효용성이 높지 않다고 판단해 나 혼자 일하던 해외영엄팀을 새로운 부서로 통폐합시켰나 보다.

사정은 이해하지만 그래도 아쉬운 점이 없는 건 아니다. 새로운 부서에서 온갖 잡스러운 일을 떠맡고도 원래의 업무는 그대로 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익숙하지 않은 문서 작업들이었다. 버벅거리면서 어린 후배들에게 부탁을 하면 상대방은 그런 생각을 하지 않는 것 같았지만 혼자 자격지심이 느껴졌다.

 MBC <무한도전> 화면 갈무리
 MBC <무한도전> 화면 갈무리
ⓒ MBC

관련사진보기


정말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걸까. 비록 혼자 일할지라도 해외영업팀장일 때는 '저 선배는 영어를 저리 잘하니 마흔도 안 돼 팀장 소리를 듣네'라는 시선을 받곤 했다. 하지만 팀원으로 좌천되고 나니 사람들이 나를 '저 나이 먹도록 엑셀도 제대로 못 하네. 난 저렇게 되지 말아야지' 하는 시선으로 보는 것 같았다.

사실 적지 않은 인원수의 이 회사에서 영어를 가장 잘하는 나로서는 굳이 내가 하지 않아도 되는 서툰 일을 왜 해야 하는지 납득이 가지를 않았다. 영어를 잘하는 사람이 넘쳐 나는 상황도 아니고, 엑셀을 나보다 더 잘하는 후배들이 훨씬 많았다. 회사 차원에서도 효율성이 떨어지는 일이 아닌가?

난 유일한 장점인 영어를 활용하는 대신 엑셀에 능숙해져야 했다. 금연은 6개월 만에 중단했다. 대신 하루 1갑의 담배를 피우며 하늘을 바라보는 시간이 늘어났다. 그마저도 새로운 팀장이 찾는 전화에 마음 편히 머물지 못하고 자리로 돌아가야 했지만.

팩스 보내기와 복사하기, 커피 타기는 마흔세 살이란 나이에 결코 적응하기 쉽지 않은 일이었다. 힘겹게 새로운 업무에 적응해나갈 때쯤, 드디어 일이 터지고 말았다.

'화상회의 연결' 때문에 취소한 괌 여행

좌천이 되기 5개월 전, 친하게 지내던 후배 녀석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형 우리 부부동반 괌 여행 갑시다. 와이프가 지금 저가항공 홈페이지 접속 중인데 특가 떴어요."
"오케이. 접수. 1분 내로 부인님께 물어보고 바로 답 주마. 여행 싫어할 리가 없지."

그렇게 후배 부부와의 괌 여행 준비를 시작했다. 5개월이 넘게 남았지만 주말이면 함께 만나 싸고 저렴한 숙소와 맛집을 검색하며 들뜬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괌 여행을 2주 앞두고 새로운 부서의 팀장에게 연차 휴가를 신청했는데,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어라? 여름 휴가를 당겨서 쓰는 건 좋은데, 휴가 일정 중에 월요일이 끼어 있네? 이건 안 되겠다. 알다시피 월요일은 지방 지사들과 화상 회의가 있는 날이잖아. 너 없으면 내가 화상회의를 진행하기도 애매하고, 그리고 나도 새 팀 맡고 5개월 동안 휴가 한 번도 안 갔다. 넌 그동안 꼬박꼬박 쉬었으니 회의 날짜 피해서 쉬도록 해."

화상회의 진행이란 게 아침 8시 30분에 상무 방에 와서 회의자료를 세팅하고 사람 수에 맞게 의자를 옆 사무실에서 가져오는 것이다. 그리고 노트북과 컴퓨터를 연결한 후 화상회의 프로그램을 클릭해서 아이디와 비밀번호를 입력하고 연결하면 지방의 지사장들이 알아서 들어온다. 이 얼마나 복잡하고(?) 어려운, 중차대한 일인가!

"이런 초등학생도 할 수 있는 일 때문에 5개월 전에 예약해서 환불도 안 되는 특가 비행기 표를 날려야 하는 건가요? 거기다 이미 숙소까지 다 예약을 마쳤음은 물론이요. 같이 가기로 한 후배 부부와의 약속까지? 이 일이 그렇게까지 중요한 일인가요?"

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팀장에게 먹힐 것 같지 않아 울분을 삼키며 괌 여행을 취소하고 말았다.

기업은 '복제인간'을 원한다

 매일 서울과 경기도를 오가는 사람은 113만 명. 나도 그 중 하나다.
 회사는 더 이상 정년을 보장하지 않는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말은 허울 좋은 광고 카피일뿐 회사는 오직 기업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 unsplash

관련사진보기


2016년에 사망한 세계적인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2008년 내한 강연에서 한 말이다.

"한국 사람들 도저히 이해가 안 됩니다. 한국의 학생들은 가까운 미래에 없어질 직업을 위해서, 전혀 필요하지 않은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하루에 15시간 이상 공부를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학생들의 잘못이 아닙니다. 한 치 앞도 못 보는 부모들을 포함한 어른들의 잘못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무의식적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회사에 취직하는 것이 최선의 길이라고 강요하고 있다. 그 아이가 정말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하긴 부모가 되어도 내가 뭐가 되고 싶은지 모르니까. 세상은 우리가 예측할 수 없을 정도로 빨리 변하고 있지만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100년 전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회사는 더 이상 정년을 보장하지 않는다. 사람이 우선이라는 말은 허울 좋은 광고 카피일뿐 회사는 오직 기업의 이익만을 추구하며 개인의 희생을 강요하고 있다. 그런데도 아직도 우리 사회는 회사나 공무원이라는 조직의 안정된 틀 안에서 각 개인이 보호받을 수 있다는 환상을 심어주고 있다. 청춘들이 창업을 하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뛰어들려고 하면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다.

하지만 세상의 벽이 그렇게 높지 않다는 것을 내 남은 이야기를 들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이 세상에서 가장 힘든 직업은 회사원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신해철 형님의 노래 가사처럼 도시인(직장인)들은 우유 한 잔으로 아침을 때우고 매일 같이 정해진 시간에 출근을 하고 상사와 후배 직원들의 눈치까지 보면서 휴가조차도 마음 편히 쓰지 못하고 있다. 신경성 변비, 두통, 설사를 겪는 사람이 일상다반사다.

그런데 왜 우리 사회나 기업은 조직을 벗어나면 큰일이 날 것 같은 공포심을 만들어 냈을까? 지금의 청춘들은 단군 이래 최고의 스펙이라고 말한다. 학점 관리는 기본 중의 기본. 2가지의 외국어에 봉사활동에... 캠퍼스의 낭만이 시궁창에 내동댕이쳐진 지 오래다.

기업은 복제인간을 원한다. 자신의 생각과 개성을 죽이고 모든 사람이 회사 입사를 위한 스펙만 관리하게 되면, A라는 사람을 해고하기가 너무 쉽다. B도, C도, D도, 나도, 당신도 자기만의 장점을 살린 대신 회사가 원하는 학점과 외국어에만 목을 매달았으니까.

미래를 그린 영화에서 모두 똑같은 옷을 입고 비슷한 음식을 먹는 사람들을 보면 기괴하게 느껴지지 않나? 언제든지 버려질 수 있는 로봇이 되기 위해 살아야 할까? 약간의 용기와 세상을 보는 제대로 된 가치관을 가지게 된다면 로봇이 아닌 진짜 인간으로 살아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걸 누가 모르냐고? 그렇다. 알면서도 어쩔 수 없이 가족을 위해서 회사에 다녀야 하는 게 문제이긴 하다. 나도 그렇게 지옥 같은 회사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고, 5개월이 지난 어느 날 충격적인 보너스를 받게 된다.


댓글4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진실과 정의를 추구하는 오마이뉴스를 후원해주세요!

후원문의 : 010-3270-3828 / 02-733-5505 (내선 0)

오마이뉴스 취재후원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