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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일상 속에서 비교와 선택의 상황을 마주할 때 효율성 기준을 자주 사용한다. 몇 가지 선택지 중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고, 시간과 예산을 절약할 수 있는 대안을 찾을 때 유용하다.

"버스보다 지하철을 타는 게 효율적이야."
"따로 가는 것보다 같이 하는 게 효율적이지."

시간과 돈, 물리적 에너지 등 어떠한 행동을 했을 때 투입되는 자원을 절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효율적인 방식은 자연스럽게 최적의 대안으로 선택된다. 바쁜 일상을 살아가면서 복잡한 대안 선택의 기준을 통해 비교·분석하기 어려우니 효율성 개념이 훌륭한 선택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민간 영역의 사적 관계에서 다른 선택 기준을 제치고, 효율성 가치가 광범위하게 사용되고 있는 현실은 문제될 게 없다.

그러나 공공부문에서 행정·정책 현상에 내재한 다양한 이해관계를 다룰 때는 상황이 달라진다. 사적 영역이나 경영의 가치가 지배하는 기업과 달리 공공부문에서는 '공공'이기 때문에 고려해야 할 가치와 이념이 존재한다.

행정이념이라고 할 수 있는 공공부문의 가치들은 효율성을 포함하여 공공성, 민주성, 형평성 등이 있다. 바로 이러한 가치는 정부가 일할 때 마땅히 추구해야 할 이념이며, 민간 영역의 다양한 활동과 구별되는 지점을 만든다. 이러한 가치들이 균형을 이룰 때 공공부문의 행정 활동이 공익에 부합한 결과를 만들 수 있다.

언론이나 시민단체에서 '공공부문의 조직·예산이나 제도가 비효율적으로 운영되고 있다'고 비판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이중 많은 부분은 행정이 추구해야 할 가치가 서로 모순되고, 상충될 여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깊이 생각하지 않아도, 공공성, 민주성, 형평성은 가치 실현을 위해 시간도 오래 걸릴 것 같고, 얽힌 이해관계자도 많아서 효율성 가치와는 자주 부딪히는 상황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그리고 효율성은 '투입 대비 산출'이라는 방식(효율성은 이와 함께 효과성이 동시에 고려되는 개념이다)으로 측정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다른 가치들은 구체적인 행정·정책 활동에 포함되고, 실현되는지 확인하기도 어려울 것 같다. 이렇다 보니, 실제 정부가 진행하는 많은 사업과 정책 현장에서도 효율성 가치가 앞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행정이념으로서 효율성이 우리나라에서 지금처럼 강조된 건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결정적으로 1997년 외환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IMF(국제통화기금) 체제의 요구를 수용하면서, 당시 선진국 정부개혁의 화두였던 신자유주의의 줄기인 '신공공관리론(NPM)'을 공공부문에 적용하는 과정에서 효율성은 마치 우리가 추구할 '단 하나의 가치'로 귀한 대접을 받게 되었다. 정부의 역할을 축소하는 '작은 정부'부터 민영화, 성과주의 등 민간의 경영기법을 공공부문에 도입하는 시도가 가속화되면서 효율성은 우리의 정부 조직과 제도의 모세혈관을 타고 깊숙이 스며들게 되었다.

문제는 다양한 행정이념 중 효율성이 독자적으로 인기몰이를 하면서 다른 가치들의 빛이 바래고, 뒷전으로 밀려나는 현실에 있다. 효율성과 함께 공공성, 민주성, 형평성이 균형을 이루지 못하고, 효율성만 달성되면 모든 것이 용서되는 상황이 자주 나타난다.

효율성이 우대받는 건 인지의 편의성과 더불어, 국민의 세금으로 마련된 한정된 예산의 사용에서 비롯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효율성이 강조되다 보니 시간이 더 걸리고, 비효율적으로 비치는 행정 활동이 소홀해지면서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 가장 우려되는 분야가 보건·의료·안전·교육·복지 등 공공성, 형평성이 강조되어야 할 영역이다. 예를 들어, 보건·의료·안전 분야는 만일의 상황을 대비하여 평소에는 가동하지 않아 불필요해 보이는 장치와 수단을 마련해야 위험 요소를 줄일 수 있다. 효율성 잣대만 들이대서는 자칫 사고로 이어질 확률이 높아진다. 

이러한 효율성이 우선시되는 현상은 가히 '평가 공화국'이라고 할 수 있는 현재 우리나라에서 더욱 빛을 발하고 있다. 공공부문의 업무 평가, 성과 평가 등 각종 평가가 이뤄지는 상황에서 수치로 명료하게 보여줄 수 있는 지표를 구성할 때 경제성을 포함한 효율성 가치는 독보적 지위를 차지한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공공성, 민주성, 형평성과 같은 행정이념은 측정이 어렵고, 지표 구성에 논란이 많기 때문이다.

현재 문재인 정부는 다양한 영역에서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지난 정부에서 쌓아놓은 '과제'가 많아 눈에 띄고, 국민에게 직접 영향을 미치는 사안에 집중하는 모양새다. 단일 정책과 제도를 개별적으로 개선하고, 폐기하는 방식이 성과를 보여주기 쉽지만, 정부가 '공공'으로서 추구해야 할 이념과 가치를 근본적으로 점검하고, 실제 행정 현장에서 구현하는 것도 중요하다. 공익을 추구하는 정부라면 다양한 행정이념의 균형을 생각하면서 정책의 비전과 목표를 만들고, 이를 위한 구체적인 실행 계획과 평가 체계가 선순환을 이뤄야 한다. 이를 위해 지금까지 과도한 조명을 받아온 효율성 가치를 조금 아껴둘 때이다. 


태그:#행정이념, #효율성, #국가공무원노동조합, #공공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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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공무원노동조합 정책연구소장으로 일했습니다. 정부와 사회 이슈, 사람의 먹고 사는 문제에 관심 많은 시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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