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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저녁 먹으러 오라던데, 갔다 올까?"

주말 느지막한 오후, 모처럼 편안하게 소파에 늘어져 쉬고 있다가 뜬금없이 아내에게 그런 말을 던지는 남편에게 악의는 없다. 집에 가면 엄마가 밥도 해주고 반찬도 챙겨주니 아내에게도 편할 것 같아서 '좋은 의도'로 말하는 경우가 더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듣는 아내의 기분은 그렇지 않다. 집에서 밥을 해먹는 데에는 '노동'이 들어가기 마련이고, 그 노동을 분담해야 하는 것은 대개 아들이 아니라 '며느리'이기 때문이다. 부엌일을 거들지 않고 시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받아먹기만 한다고 한들, 몸이 편하다고 해서 마음까지 편한 것은 아니다. 그나마 식사 후에는 설거지라도 해야 내 몫을 다했다는 느낌을 받기 마련이다.

백년손님이라 여겨지는 사위는 처가에서 식사를 위한 노동에 내가 어떤 역할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갖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친구 집에 놀러가거나 내가 친구를 초대했을 때 함께 요리를 준비하기보다 서로를 손님으로 대접하여, 초대한 사람이 요리를 해주고 손님은 감사히 먹는 것과 마찬가지다.

하지만 많은 경우 며느리들은 시댁의 부엌에서 자신의 역할을 스스로 찾는다. 시댁에 '밥 먹으러 갈 때' 남편과 달리 아내의 마음이 마냥 편할 수 없는 이유일 것이다.

시댁의 부엌에서 불편해지는 이유

 며느리가 시댁에서 요리를 하거나 배우는 상황은 결국 자신이 원해서라기보다는 남편을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
 며느리가 시댁에서 요리를 하거나 배우는 상황은 결국 자신이 원해서라기보다는 남편을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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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요리 자체를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어쨌든 기본적인 요리는 생존을 위해 필요한 기술이기 때문에 어느 정도는 익혀두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요리를 하는 배경이 시댁의 부엌이 되었을 때는 조금 상황이 달라진다.

많은 며느리들이 시댁에 가면 시어머니에게 음식을 배우거나, 음식 하는 것을 거든다. 어른이 일하는 걸 돕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능숙하지 못한 요리 솜씨에 시어머니 눈치가 보이기도 한다. 그러는 동안 남편이 운전하느라 피곤하다고 방에 들어가 누워 버리기라도 하면 더욱 문제다. 가족이라 해도 사실은 대학 동기들보다도 알고 지낸 시간이 짧은 서먹한 어른과 어색한 공간에 있을 때 며느리는 혼자가 된다.

며느리가 시댁에서 요리를 하거나 배우는 상황은 결국 자신이 원해서라기보다는 남편을 위한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남편이 이 상황에서 쏙 빠져버리면 며느리는 '아들에게 밥해 먹이는 사람' 혹은 '시어머니의 요리 솜씨를 물려받아 비슷한 퀄리티의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의 역할을 맡게 된다.

기본적으로 사랑하는 남편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고 싶은 순수한 마음은 가질 수 있지만, 그 방식이 시어머니의 솜씨를 물려받는 것이라면 마음이 좀 불편해진다. 남편에게 시어머니 음식이 맛있는 것처럼 나 역시 우리 엄마의 음식을 좋아한다. 남편이 친정 엄마에게 요리를 배워서 나에게 해주는 건 어려운 일일까? 그냥 우리 블로그나 유튜브를 보면 어때?

나는 시댁에 가서 부엌에 굳이 나서지 않으려고 한다. 버릇없는 행동일 수도 있지만, 시어머니가 일하는 것을 돕고 싶어야 하는 사람은 나보다도 아들인 '남편'일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남편들은 늘 어머니가 해주는 게 익숙하기 때문에 움직여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시어머니가 혼자 일하는 상황에서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은 왜 며느리뿐일까. 결국 며느리가 아들 대신 움직여 그에게 '엄마'의 역할을 이어받아 주어야 하는 걸까? 남편은 늘 대접 받는 사람이고, 며느리는 대접하는 사람이 되는 게 당연한 걸까.

편하게 있지 못하는 내가 문제일까?

 시어머니가 혼자 일하는 상황에서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은 왜 며느리뿐일까. 결국 며느리가 아들 대신 움직여 그에게 '엄마'의 역할을 이어받아 주어야 하는 걸까?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중 한 장면.
 시어머니가 혼자 일하는 상황에서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은 왜 며느리뿐일까. 결국 며느리가 아들 대신 움직여 그에게 '엄마'의 역할을 이어받아 주어야 하는 걸까?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중 한 장면.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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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프로그램 <이상한 나라의 며느리> 파일럿 편에서는, 시댁을 방문하기 전 옷차림을 신경 쓰는 새내기 며느리에게 남편이 별 걱정을 다한다는 듯이 친절하게 대꾸하는 장면이 나온 적이 있다.

"그냥 편하게 가." 

어쩜 사람들 생각은 다 비슷비슷한지, 나도 결혼 초반에 시댁에 가는 것을 어색해하니 남편이 기가 막히게 똑같은 대사를 한 적이 있었다.

"그냥 편하게 다녀오면 되지. 엄마는 그런 거 신경 안 써."

며느리가 시댁을 어렵게 생각하는 것은 개개인의 성격과 가정 환경에 따른 결과가 아니다. 시어머니가 특별히 엄한 분이라서, 며느리가 특별히 걱정이 많거나 예민한 성격이라서 그런 것이 아니다. 며느리와 시댁의 관계에는 사회적인 배경이 결코 떨어뜨려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단단하게 깔려 있다.

사회초년생이라 직장 내 상하관계가 어렵게 느껴진다고 친구에게 하소연했다고 상상해 보자. 그 친구는 직장 생활을 해본 적이 없고, 물려받은 돈으로 평생 먹고 살 걱정이 없는 부잣집 출신이다. 그가 "회사라고 어려울 게 뭐 있어. 그냥 재밌게 논다고 생각하면서 일하면 되지"라고 조언한들 과연 공감이 갈까?

"왜 불편하게 생각해? 네가 예민한 거야."

그 말은 무책임하다. '내가 사는 세상은 편하고 아무렇지도 않은데 네가 사는 세상은 불편해? 그건 네 세상이니까 알아서 잘 빠져 나와 봐. 나는 굳이 알고 싶지 않아.' 그런 말처럼 들린다.

'편하게 있어'라는 말은 물론 남편 입장에서의 배려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아내가 불편한 이유를 남편이 같이 들여다 봐 주었으면 좋겠다. 사위가 처가에 가는 것과 며느리가 시댁에 가는 것이 왜 다를까. 그건 아내의 잘못도, 시어머니의 잘못도 아니다.

그러나 남편과 아내, 각자가 살고 있는 세상이 다른 것만은 분명하다. 그걸 바로잡기 위해서는 며느리 혼자서 벗어나려고 고군분투하게 내버려두지 말고, 배우자 역시 조금이라도 공감하려 노력하고 함께 고민해 주었으면 좋겠다.

남편에게 편한 공간이라고 해서 아내에게도 편하리라는 법은 없다. 자신이 느끼는 상황과 아내가 느끼는 상황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적어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 남편은 '가족이니까 괜찮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로 내 마음이 편해야 비로소 가족이 될 수 있다.

혼자서만 노력하고 긴장하는 상황이 지속되면 가족이 되는 일은 점점 멀어질 수밖에 없다. 적어도 아내가 시댁에 있는 동안에는 남편이 곁에서 적극적인 태도를 취하며 아내가 속해 있는 세계를 함께 느끼고 움직여 주었으면 좋겠다.

고부관계는 결코 남편이 빠진 독립적인 관계일 수 없다. "여자들끼리 해결해"라며 슬그머니 귀찮은 일을 피하려 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내가 움직이면 엄마가 싫어해', '본가 왔으니까 대접받는 모습을 보여줘야지'라는 생각은 결국 '며느리'를 '대접하는 사람'으로 만드는 시스템의 근거가 된다.

며느리라는 이유로 가족이 되기 위해 홀로 애쓰는 것이 당연한 일은 아니다. 그 사실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서로를 가장 깊게 이해하고 싶은 배우자라면 더더욱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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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출판 담당 기자로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ohmybook201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