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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트 코너 ( Lost corner )

망각에 저항하는 법
18.05.26 23:30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얼마 전 가즈오 이시구로의 소설 <나를 보내지 마>를 읽었다. 작가 특유의 간결하고 담백한 문체로 장기 기증을 위해 복제인간으로 태어난 아이들의 성장기를 보여주는 SF적인 상상이 가미된 소설이었다. 소설에서 어린 시절 이후 잃어버린 모든 것들이 모여 있는 곳을 로스트 코너 라고 했다. 원래는 분실물들을 모아 놓은 곳이었지만, 그 곳은 단순한 물리적 공간일 뿐만 아니라 잊어버리거나 잃어버린 기억들의 조각들을 모아 놓은 장소라는 것이다.

광화문을 지날 때 마다 흘깃 바라보던 광장 한 구석에 여전히 노란 리본들이 펄럭이고 있었다. 세월호 유가족들이었다. 펄럭이는 노란 리본들이 마치 소리 없는 함성처럼 말을 계속 붙여 왔지만 그 곳을 지나갈 때마다 별다른 감흥 없이 아직도 저러고 있나 하는 생각을 했었다. 벌써 몇 년 째인지? 하고 생각하다가 나는 그 사고가 언제 일어났었는지 단번에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검색을 하고서야 올해가 4주기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나는 왜 그 사고가 기억나지 않았을까? 어떻게 그렇게 깡그리 잊어버릴 수 있을까, 소설 속 어린 시절 이후 잃어버린 그 무엇처럼, 어디에서 내 기억은 분실된 것일까? 누구의 말처럼 침몰했던 배도 인양되었고 시신도 거의 다 수습되었는데 왜 아직도 노란 리본들을 펄럭이며 천막들이 그 곳에 있는지 의문이 들었었다. 그리고 그걸 보는 나는 왜 불편한지? 수많은 사람들이 구조되지 못한 것이 마치 내게도 책임이 있는 것처럼. 그 날 TV로 사고를 보면서 정말 거짓말같이 배가 짙은 바다 속으로 가라앉는 모습을 보면서 느꼈던 무력감은 한동안 떨칠 수 없었다. 회사도 깊은 바다 속으로 서서히 침몰했다. 가라앉는 회사를 어쩔 수 없이 바라보아야만 했다.
인간은 망각의 동물이며 또 망각은 축복이라고 했던가, 사실 회사를 운영하면서 또 회사를 정리하면서 겪었던 힘들고 어려웠던 기억은 다시 떠올리기 싫었다. 슬프고 아픈 기억은 전염될까봐, 광화문 광장을 지날 때마다 그 곳을 일부러 피했다. 눈을 돌렸다. 노란 리본들을 마주하기가 두려웠다. 타인의 아픔일 뿐이라고, 나완 상관없다고 생각했다.

벌써 4년째라며 그만하면 됐다고, 광화문의 추모공간도 정리하고 세월호 천막들도 철거 후 추모비를 세운다는 소식을 들었다. 추모비만 세우면 우리는 그 사실을 잊을 수 있을까? 그 거짓말 같은 사실을. 하지만 우리가 기억하지 않으면 누가 기억할까? 공간은 사라지고 슬픔은 망각 속에 묻혀버릴 것이다. 기억의 유효기간이 길지 않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너무 많이 경험했다. 그래서 잊어버린 슬픔과 기억을 모아놓은 곳, 로스트 코너가 필요하다. 그곳이 어디든, 광화문이든 우리 가슴속이든. 그래서 쉽게 빠져드는 망각에 끊임없이 저항하며 계속 기억할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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