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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월 12일, 고 박선욱간호사 추모집회 '간호사, 침묵을 깨다.'의 현장사진이다.
 5월 12일, 고 박선욱간호사 추모집회 '간호사, 침묵을 깨다.'의 현장사진이다.
ⓒ 이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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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12일, 비가 참 많이 오던 날. 세계 간호사의 날이었던 그날. 고 박선욱 간호사 추모집회 '간호사, 침묵을 깨다'가 있었다.



선욱 언니는 나보다 먼저 졸업한 우리 학교 선배였다. 그래서 뉴스와 인터넷에서 언니의 이름을 봤을 때 나는 정말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거 같았다. 너무 슬프고 답답했고 언니를 위해서 지금 당장 뭐라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꼬박꼬박 집회에 가기 시작했다.

집회 때마다 참 많이 울었다. 그래서 이번 집회는 비가 와서 어쩌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만 비가 와서 사람들이 별로 안 오면 어떡하나 걱정도 했다. 그런데 정말 많은 사람이 와주었다. 정말 감사하고 든든했다. 이번 집회로 간호사들이 더는 참지 않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새로운 출발점이 아니었을까 싶다.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간호사의 문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 사실 나만 해도 그랬다. 그냥 '태움'이 싫고 괴로웠고 간호사는 늘 바빴다. 나에게 무언가를 요구하는 환자가 버거웠다. 또 '바뀌기는 할까?' 같은 무기력함에 그냥 버티는 것밖에는 어떻게 해야 할지도 몰랐다. 이런 일들이 무엇 때문에 그런지도 모른 채 말이다.

그러나 집회에서 간호사들의 발언을 들으며 우리를 이렇게 만든 건, 우리를 서로 싸우고 힘들게 만드는 것은 병원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 '병원은 간호사를 활활 태워 돌아가는 거대한 공장', '사람을 치료하는 병원이 왜 이렇게 크냐, 병원이 아니라 공장 같다. 환자가 상품처럼 찍혀져 나온다'라는 말이 잊혀지지 않는다.

이렇듯 병원은 돈을 벌기 위해 가장 돈이 많이 드는 인력을 줄인다. 병원은 최소한의 인력으로 돌아가며 그 와중에도 환자는 돈을 벌어다 주는 고객이기 때문에 무조건 친절히 하라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간호사는 자신의 안전과 건강을 위협받고 언어폭력, 성폭력 등 각종 폭력에 노출되기 쉽다. 또한, 바쁘지만 자칫 실수라도 하게 되면 환자 안전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늘 긴장하며 근무해야 한다. 이런 극한 상황에서 다른 동료를 신경 쓰고 도와가면서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새로 들어와서 잘 모르는 신규간호사를 질책하고 자신이 받는 높은 강도의 스트레스를 다른 사람에게 풀고 우리는 이렇게 서로를 탓하며 하루하루 견디고 있었다. 우리가 왜 그래 왔는지도 모른 채 굳어져 버린 이 소모적인 관행을 이제는 돌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우리는 이제 서로 싸워야 할 게 아니라 누가 우리를 이렇게 만들었는지 깨닫고 싸울 상대를 명확히 해야 할 때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내가 입사를 앞둔 예비간호사라고 하면 누군가는 직접 일을 해보지도 않았는데 어떻게 아느냐고 할 수도 있겠다. 그렇지만 간호 학생이든 나처럼 발령을 기다리는 예비간호사든 우리가 앞으로 어떤 일을 겪게 될지 너무나 잘 알고 있고 그것이 두렵다. 내가 무언가 잘못하지는 않을까 하는 불안감, 많은 수의 환자를 잘 돌볼 수 있을지에 대한 부담감, 선배 간호사와 잘 지낼 수 있을까 하는 걱정 등 복잡하고 두려운 마음일 것이다.

신규 간호사 시절을 거치지 않은 간호사는 없다. 환자가 잘못되진 않을까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오늘 하루도 무사하길 바라며 자신의 몸을 혹사하며 활활 타왔던 간호사들. 가장 안전해야 할 병원이 왜 이렇게 위험해졌을까? 우리 간호사들은 진심을 다해 안전한 간호를 하고 싶다.

학교에서 배웠던 것들을 환자를 위해서 직접 하고 싶고 환자의 요구를 기꺼이 들어줄 수 있는 간호를 하고 싶다. 내가 환자를 진심으로 잘 돌볼 수 있는 환경에서 일하고 환자가 좋아져서 퇴원하는 모습을 보고 싶다. 이는 간호사뿐만 아니라 환자, 살면서 한 번쯤은 환자가 될 국민도 원하는 것이지 않을까? 더 이상 간호인력, 태움 문제는 간호사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 모두의 문제인 것이다.

이제 간호사들이 근무환경을 위해, 환자의 안전을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 아직 우리에게 '침묵'이라는 단어가 더 익숙할지도 모르나 이런 상황 속에서도 조금씩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사람들도 많다.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 이 말처럼 침묵을 깨고 나올 때 비로소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간호사든, 간호사가 아니든 우리는 우리의 요구를, 목소리를 높여가야 할 것이다. 죽고 싶지 않다는 우리의 목소리를, 안전해지고 싶다는 우리의 요구를 소리 높여 요구해야 한다. 쉬운 길은 아닐 수도 있겠지만 우리의 목소리로 사람들이 관심을 갖게 되고 집회에서 외치던 목소리가 서로의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태그:#간호사_침묵을_깨다, #태움, #행동하는_간호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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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동하는 간호사회에서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그 외 의료, 간호, 노동문제에 함께 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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