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영화 "버닝" 우리는 얼마나 자유로운가?(3)

투명한 비닐하우스에 갇힌 자유가 버려진 땅
18.05.22 23:14l

검토 완료

이 글은 생나무글(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
영화 버닝은 원작단편 소설 "헛간을 태우고"를 영화하면서 그 내용을 대사와 함께 최대한 인용해 왔다.무라카미 하루키는 대학시절 학생운동을 격렬하게 한 전공투 출신 작가다. 

일본어 원제는 "納屋を焼く" "나야오 야쿠 " 원작 단편에서 이창동 감독은 원작제목 헛간을 한국에서는 비닐하우스를 태우는 것으로 교체를 하면서 비닐하우스의 투명함 속에 버려진 텅빈 공허함을 이야기하고 제목이 주는 의미에 상당한 고민을 한 듯한 말을 제작보고회에서 했다. 그 의미의 해석은 다양한 관객에게 맡긴다고 하면서.

제목의 '버닝'은 윌리엄 포크너의 소설 제목에서 따오기도 했다고 한다. "Barn burning' 남자 주인공의 이름 또한 벤이다.

벤은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아이러니 하게도 종수에 의해 마지막에 불 태워지는 燔(번)제물이 된다.
燔(번)제물은 하늘에 정기적으로 제사를 지내는 고대의 제사 형태에 제물로 올려지는 고기를 뜻한다.성경에서는 카인과 아벨의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이 일어나는 계기가 되는 매개체이기도 하다.

종수는 글을 쓰려고 준비하는 작가 준비생이다. 그의 아버지는 자존심이쎈 시골 농사꾼으로서 북한의 확성기 소리를 평생 들으면서 살아온 고지식 하고 고집이 쎈, 파주의 시골 농군이다. 분노조절장애로 마을에서도 그렇게 친절하고 상냥한 이웃이 못되었지만 종수가 쓴 탄원서에 마을 사람은 싸인을 해준다. 그러나 결국 실형을 받고 종수는 키우던 암소를 시장에 판다.

벤은 평생동안 한번도 울어 본적이 없는, 질투심도 한번 느껴본 적이 없는 그러나 차가울 것 같은 그런 그 이지만 매너와 재력은 우리 주변에서 보기 어려운 특별한 청년이다.

그는 정기적으로 날짜를 정해두고 비닐하우스를 태운다.그 비닐하우스가 문학적 메타포인지 아니면 실제 비닐 하우스인지에 대하여 이창동 감독은 관객에게 상상력을 맡긴다고 했다.

벤은 지나칠 정도로 주변을 깔끔하게 정리하는 보기드문 청년이다.
그의 가족은 용산참사 그림이 걸려있는 전시관 옆 고급 식당에서 여유롭게 음식을 즐긴다.
벤은 버려진 낡은 비닐하우스를 태우면서 베이스를 느낀다고 한다.
그리고 요리를 좋아한다. 인간들이 정성을 들여 요리를 하고 그 정성을 먹어 버리는 신이 느낄것 같은 기분을 느끼기 위해 요리를 하고 그래서 요리를 좋아한다고 한다.

해미는 카드빚에 시달리면서도 아프리카 여행을 위해 돈을 모은다.아프리카에서 그레이트헝거와 리틀헝거를 만나고 싶어 한다. 그러나 아프리카에서 돌아오며 벤을 만나고 벤과 함게 돌아온다.

버려진 비닐하우스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어쩌면 이시대 버려진 청춘들의 희망을 의미하는 것은 아닐까 투명한 비닐하우스의 땅에 갇힌 젊은 청춘들의 자유.

투명한 하우스를 바라보는 종수와 버려진 하우스를 태우는 벤,
그레이트헝거가 되고 싶어하는 가족들에게 버려진 해미. 세 주인공 모두 어쩌면 그레이트 헝거가 되고싶어 다른 형태로 살아가는 이땅의 리틀 헝거인지도 모른다.

배는 욕망을 나타내지만 배는 만족을 안다. 적어도 소화가 다 될때 까지는 그 짧은 시간동안은 그레이트헝거가 되기위해 인간은 독서도 하며 문화적인 삶에 인생의 의미를 부여한다.

배가 고프면 음식을 먹고, 배가 차면 정신적인 욕망을 찾아가는 그레이트헝거 그러나 그레이트헝거가 되기에는 비닐하우스에 갖힌 그들의 꿈은 공허하다. 해미가 맡기고 간 고양이에게 밥을 주고 해미의 침대에서 해미와의 첫 관계를 떠올리며 자위를 하고 몰려오는 공허함. 어쩌면 우리 인간의 꿈은 그렇게 공허한지도 모른다.

헛간을 태우고 제물을 태우고 하늘에 기도하며 신에게 감사하지만 인간들의 살인은 계속된다.
땅을 소유한 인간들에게 결코 평화로운 자유는 쉬운 일이 아니다.
완전히 자유로운 그레이트 헝거가 되기 위해서는 투명한 비닐하우스에 갇힌 부자유한 인간의 땅을 해방시켜야 한다는 메세지로 나는 영화 버닝을 읽었다..

원작을 읽었을때 허무하고 짧았던 단편, 그런 무라카미의 소설을 이토록 많은 의미를 던져내는 이창동 감독의 힘은 전혀 다른 색깔의 창조물이다.



  • 이 기사는 생나무글입니다
  • 생나무글이란 시민기자가 송고한 글 중에서 정식기사로 채택되지 않은 글입니다.
  • 생나무글에 대한 모든 책임은 글쓴이에게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