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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참사 4주기가 지났다. 하지만 304명의 희생자를 비롯해 수많은 이들의 삶이 세월호가 침몰한 그날에 멈춰 서 있다. 세월호 유가족, 생존자 가족, 민간잠수사에 이어 당시 단원고 교사의 숨죽인 이야기를 마지막으로 전한다. '세월호피해지원법' 개정안(일명 '김관홍법')은 지난 4월 임시국회가 파행하면서 여전히 멈춰있다. 이 글은 김덕영 선생님이 2017년 피해자 증언 대회에서 발언한 내용을 편집·수정한 것. [편집자말]
응급진료소 차려진 진도체육관 전남 진도 인근 해역에서 여객선 세월호가 침몰한 16일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 차려진 응급환자 진료소에서 구조자들이 옷과 음식을 배급 받고 안정을 취하고 있다.
▲ 응급진료소 차려진 진도체육관 세월호가 침몰한 지난 2014년 4월 16일 전남 진도 실내체육관에 차려진 응급환자 진료소의 모습.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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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저는 세월호참사 당시 단원고 특수학급 교사였던 김덕영입니다. 특수학급 아이들은 비행기로 제주도에 가기로 되어 있어서, 4월 16일 아침 저는 아이들과 함께 공항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연락을 받고 다시 학교로 돌아갔을 때 학교는 흡사 전쟁터와 같았습니다. 기자나 외부 사람들이 학교에 가득하고, 선생님들은 정신없이 뛰어다녔습니다.

사고대책반이 설치된 곳조차 모르던 종합상황실

뉴스에서는 정보가 쏟아지고 있었지만 학교에는 어떠한 정보도 들어오고 있지 않았습니다. 교육부, 정부, 여기저기서 수학여행 자료를 요청하는 전화만 왔습니다. 지금 세월호가 어떤 상황인지 정확한 정보를 알려주는 곳은 없었습니다.

진도의 상황을 알아야 하는데 어느 누구도 알 수 없었습니다. 학교에서 버스를 대절해서 진도로 출발했습니다. 5시간 거리였기 때문에 진도교육청 등 진도에 있는 정부기관에 도움을 구했습니다. 진도체육관에 가서 상황을 알려주길 요청했습니다. 하지만 도움을 받을 수 없었습니다. 결국 저희의 요청으로 가장 먼저 진도체육관에 갔던 정부기관은 진도우체국이었습니다. 진도우체국 직원에게 학생들 명단을 주고 상황을 알려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사고대책반이 어디에 설치돼 있는지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정부의 재난안전 종합상황실에 전화를 해도 모른다고 했습니다. 결국 다산콜센터에 전화해서 물어보았고, 10여 분이 지나서 목포해경상황실이라고 알게 되었습니다. 그제야 목포상황실에 요청해서 정보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진도 세월호 참사 8일째인 23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의 2학년 교실에 희생자들의 위로와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비는 메모들이 붙어 있다.
 지난 2014년 4월 23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고등학교의 2학년 교실에 희생자들의 위로와 실종자들의 무사귀환을 비는 메모들이 붙어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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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온 제자들

교사들은 사고 당시 진도 팽목항과 병원 등지에서 파견되어 학생들이 수습될 때마다 신원확인을 했습니다. 담임이 아닌 교사들은 학생들의 얼굴을 모두 알 리가 없는데도 해경에서 시신 확인을 요구했습니다. 교생 실습을 나온 학생들도 시신 확인에 투입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학생 신원 확인에 어떤 교사가 몇 명이나 참여했는지 조사하는 공문이 내려오기도 했습니다.

시신 확인에 참여한 일부 교사들이 밀폐된 공간이나 혼자 있는 방, 컴컴한 계단 등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등 극도의 심적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어디 가서 드러내놓고 힘들다고 말하지도 못했습니다. 저희도 제자를 잃은 피해자였지만 죄인이기 때문에,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입장이기 때문에 묵묵히 현장을 지키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온 아이들의 얼굴을 볼 때 하염없이 눈물만 흘렸습니다.

제자들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해야 했던 교사들은 얼마 되지 않아 학교 정상화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정규 수업에 투입되었습니다. 수업이 없을 때는 학생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무수한 장례식장에 다녔습니다. 교사들은 죄인인가요, 피해자인가요? 동료와 제자들을 지켜주지 못했다는 죄책감과 큰 상실감에 괴로웠습니다. 그런데 정부와 교육청은 저희 교사들을 앞에 내세워 대응하게 했습니다.

 김덕영 당시 단원고 교사가 2017년 11월 10일 국회에서 개최된 세월호참사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김덕영 당시 단원고 교사가 2017년 11월 10일 국회에서 개최된 세월호참사 피해자 증언대회에서 증언하고 있다.
ⓒ 4.16연대 피해자지원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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흩어진 피해자들... 교사들은 혼자 아픔을 삭여야 했다

당시 단원고 교직원에게는 최대 2년의 특별 휴직이 주어졌습니다. 하지만 심리적 치유는 각자 개인의 몫이었습니다. 스스로 병원을 알아보고 찾아가서 각자 개별적으로 치유를 받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특별휴직을 하면 이후 단원고로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조건이 있었습니다. 단원고로 돌아오고 싶어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제대로 된 피해 지원을 받지 못한 채 같은 아픔을 가진 사람들이 흩어지고, 서로 등 돌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외국에서는 이런 참사가 나면 피해자들의 모임을 만들어주고 치유할 수 있게 한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단원고에는 참사 당시에 있었던 교사가 10% 정도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학교 안에서 세월호의 기억을 빨리 지우기 위해서 그 당시의 교사들까지 밖으로 보낸 것은 아닐까요.

저희들은 아직도 죄책감에 괴롭습니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는 것도 유가족들에게 또다시 아픔을 줄 것 같아 많이 망설였습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 피해자들이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지도 못하게 된 것에 대해서 말하고 싶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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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① 오지원(前세월호특조위 피해지원점검과장) 세월호에서 제천까지...'사람'이 없는 국가재난매뉴얼]
☞ [② 장동원(세월호 생존학생 아버지) 세월호 참사, 숨죽인 생존자의 아픔]
☞ [➂ 장훈(세월호 유가족) 세월호참사 유가족, "우리가 아픈 이유는..."]
☞ [➃ 김수영(세월호 민간잠수사 법률대리인) 마침내 개정된 세월호 피해지원법, 그러나 남겨진 과제]
☞ [⑤ 황병주(세월호 민간잠수사) 세월호 민간잠수사의 질문 "우리의 고통은 무엇 때문인가요?"]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세월호참사 당시 단원고 특수학급 교사였던 김덕영 선생님의 글입니다. '세월호 피해지원법'에 의하면 단원고 교사는 세월호참사의 피해자가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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