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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내 괴롭힘을 정신적인 재해로 보고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직장 내 괴롭힘을 정신적인 재해로 보고 산업재해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 energepic.com from Pexe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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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서운 일터로 돌아가고 싶지 않다. ○○○ 부부장님. 병X 만들기. 배제, 배제, 결국엔 가맹점으로. 이렇게 만든 건 ○○○, □□□, △△△. 직장 내 왕따 주도. 도저히 넘을 수 없는 벽."

직장 내 괴롭힘으로 지난달 8일 목숨을 끊은 양아무개(42)씨가 남긴 유서 내용이다. <오마이뉴스>와 만난 양씨의 남편 장아무개(44)씨는 아내가 회사에서 조직적인 왕따를 당한 뒤 이런 선택을 하게 됐다고 주장했다.

지난 2000년 신한카드(당시 LG카드)에 정규직으로 입사한 아내 양씨가 2014년까지만 해도 본사 개인신용관리팀에서 일할 만큼 능력을 인정받았다고 장씨는 증언했다. 이어 장씨의 말이다.

"아내가 좋은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 들어간 건 아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떤 라인을 타고 승진한 게 아니라, 오로지 능력으로만 올라간 거죠. 당시만 해도 굉장히 좋아했습니다. 유학파, 서울대 출신 직원들 사이에서도 꿀릴 게 없다면서요. 회사가 능력을 인정해주는 것 같다며 애사심도 높았습니다. S 지점에 가게 되면서 모든 게 꼬였습니다."

육아휴직 후 지점으로 복직..."다른 사람 고과 높이려고 최하위 평점"

직장 내 괴롭힘이 시작된 것은 양씨가 5개월 가량 육아휴직을 쓴 뒤 2014년 9월 복직하면서부터였다는 것이 장씨의 설명이다. 복직 후 양씨는 S 지점으로 발령 받았다. 그가 맡은 업무는 차량할부대출과 관련한 것이었는데, 무리한 대출을 요구하는 고객들을 상대하는 것에 대해 어려움을 호소했었다고 장씨는 증언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곳 지점장이 석연치 않게 두 번이나 최하위의 평점을 주면서 양씨의 자존감이 무너지기 시작했다는 것이 장씨의 설명이다. 그는 "A 지점장이 아내에게 연속으로 나쁜 평점(C)을 줬는데, 아내는 항상 지점장이 다른 사람들의 고과를 높이려고 자신에게 낮은 평점을 주고 있다고 했다"고 말했다.

지속적으로 스트레스를 호소하던 양씨가 병원을 찾은 것도 이때쯤이었다. 장씨가 제공한 의료기록에는 아래와 같은 내용이 적혀있다.

'직장에서 생긴 문제로 어제부터 분노가 생겨서 폭발할 지경이다. 가슴통증도 느껴진다.', '자신감이 좀 없다. 가정생활도 파괴됐다.', '회사를 쉬고 싶다. 무기력하고, 난 회사에서 쓸모 없는 존재.', '근무처 달라진 이후 계속 처지비관이 되고 죽고 싶은 생각이 든다.'

직원들 꺼리는 발급센터로 이동..."인수인계 명목 5개월 동안 사원 밑에서 일해"

약 2년 동안 이런 환경에서 근무를 하던 양씨는 작년 1월 S지점에서 발급센터로 근무처를 옮겼다. 장씨는 "아내는 발급센터가 대부분의 직원들이 꺼리는 곳이었고, 평가기준이 (카드) 발급건수이기 때문에 본인의 노력 그대로 인정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양씨의 어려움은 계속됐다. 장씨는 "대리급 직원이었던 아내는 인수인계라는 명목으로 사원급 직원 밑에서 5개월 간 지시를 받았다"며 "이후 이 직원이 다른 곳으로 이동하자 팀장으로 승진하게 됐다"고 했다.

팀장으로 승진한 직후 발급센터의 B부부장으로부터 양씨가 지시 받은 업무는 파견사 직원들을 해고하는 것이었다고 장씨는 설명했다. 그는 "아내는 이에 대해 부당함을 얘기했지만 결국 몇몇 직원을 해고하게 됐고, 해고된 직원들로부터 위협적인 문자를 받기도 했다"고 말했다. 이어 장씨의 말이다.

"아내가 언젠가부터 점심을 먹지 않고 일을 했는데, 왕따를 당해 같이 먹을 사람이 없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따돌림이 B부부장의 주도로 이뤄지고 있다고 아내는 생각했습니다."

희망퇴직 생각했지만 전세대출 생각에 취소, 3개월 뒤 생 마감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한 양씨는 올해 1월 희망퇴직을 신청했지만, 아버지의 건강악화로 병원비 등 걱정에 이를 취소했다. 이후 양씨는 낮은 고과인 C평점을 받았고, 3번 연속 C평점을 받자 크게 힘들어했다는 것이 장씨의 증언이다. 희망퇴직을 번복한지 3개월 뒤인 지난달 초 양씨가 생을 마감하게 됐다는 것이다.

장씨는 아내의 장례식장에서 만난 신한카드 직원들의 태도에 대해서도 털어놨다. 그는 "S지점의 지점장이었던 사람에게 '다른 사람들을 승진시키려고 아내와 그들의 고과를 바꾼 것이냐' 물었더니 아무 말이 없었다"고 했다. 이어 장씨는 "팀장이라는 사람은 아내가 희망퇴직을 번복할 때 본인이 힘을 실어줬다며 떳떳하게 얘기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진상조사를 요청했지만 회사가 이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았다고 장씨는 설명했다. 그의 말이다.

"아내가 받은 고과기록이 전산에 남아 있기 때문에 이를 달라고 했더니 회사에선 인사팀에 확인해보고 의문점이 있으면 감사팀과 알아보겠다고도 했습니다. 그러더니 나중엔 불가능하다고 하더군요. 의지가 없는 거죠. 회사 쪽에선 사망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직장 내 괴롭힘 조사한다던 회사, 희망하는 사람 20명 면담 후 "문제없다"

더불어 장씨는 회사가 양씨와 근무했던 직원들에 대한 조사를 진행했지만 이는 형식적인 것에 불과했다고 설명했다. 장씨는 "회사가 처음에는 직원 160명 모두에 대해 면담조사를 하겠다고 했지만 결국 희망하는 사람 20명만 조사한 뒤 '문제없다'고 통보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면담 내용이나 사내 메신저 내용 등을 공개해달라고 했지만 거부당했다"고 했다.

이에 대해 신한카드 관계자는 "비공식적으로 양씨가 가해자로 지목했던 A지점장, B부부장 등에 대해 조사를 진행했다"고 해명했다. 이어 그는 "A지점장의 경우 양씨에게만 C평점을 준 것이 아니라 다른 직원들에게도 그런 평가를 내렸다"며 "양씨의 실적이 좋은데도 낮은 고과를 준 것은 아니라고 판단했다"고 부연했다.

또 이 관계자는 "유족이 요구하는 것은 이들에 대한 처벌인데, 인사팀 쪽의 종합적인 판단은 해당 직원들을 징계할 수 없다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류하경 변호사는 "요즘에는 정신적인 재해도 산업재해로 보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자살 전 상태가 어땠는지, 회사 업무로 스트레스를 받은 것이 맞는지 어느 정도 입증이 된다면 산업재해로 인정된다"고 그는 덧붙였다. 피해 직원의 일기장이나, 주변 사람들의 증언, 유서 등에 업무 스트레스와 관련한 내용이 있다면 산재로 볼 수 있다는 것이 류 변호사의 설명이다.

직장으로 인한 스트레스, 혼자 고민하지 마세요

장시간노동, 과로, 일터괴롭힘 등으로 인해 신체적/정신적 고통을 받아 도움이 필요하신 분은 과로사예방센터(02-490-2352), 직장갑질119(카카오톡 오픈채팅에서 '직장갑질119' 검색, 페이스북 @gabjil119, gabjil119@gmail.com), 무료노동신고센터(010-9814-8672)로 언제든 연락 주세요.

자살에 관한 충동, 지인이 자살에 관한 암시를 한다면 24시간 운영되는 상담전화를 통해 도움을 요청하고, 받으실 수 있습니다.

- 자살예방 핫라인 1577-0199
- 희망의 전화 129
- 생명의 전화 1588-9191



태그:#신한카드, #직장내왕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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