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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13 지방선거에 출마한 각 시도 교육감 후보들은 무상 급식에 대한 선거 공약을 발표해 유권자들의 관심을 끌고 있다. 2020년부터 단계적으로 시행되는 고등학교 무상교육 보장 항목에서 무상 급식이 빠져서 더욱 그럴 것이다. 모든 학교가 무상 급식을 한다면 좋겠지만, 아직 미래의 일이라면, 우선 급식비 사용 내역에 사회적 관심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콧수염이 숭숭한 아이는 경기도 관내의 농어촌 Y고등학교에 다닌다. 가끔씩 눈살을 찌푸리면서 불량소년처럼 이렇게 말했다. "쓰레기야, 쓰레기!" 입맛에 맞지 않는 학교 급식을 두고 표현한 아이의 과장된 수식어려니 짐작해보지만, 고등학교부터 급식비를 부담하는 학부모의 입장에선 듣기 불편한 말이었다. 무상급식을 실시했던 중학교까지만 해도 아이는 곧잘 맛있는 급식 얘기를 하곤 했었다. 왜 우리 아이가 먹는 급식은 무상 급식보다도 못한지 궁금했다. 학교 영양사 선생님과 경기도교육청에 문의해 알아낸 Y고등학교의 속사정은 이랬다. 

현재 Y고등학교의 중식 급식비는 4300원이다. 식품비 2500원(58%), 인건비1370원(32%), 운영비 430원(10%) 이다. 주목해야 할 점은 60%도 채 안 되는 식품비의 낮은 비율이다. 이건 먹을 만한 식단을 갖추기 어려울 정도의 수준이다. 70%의 식품비라야 학생들 입에 맞는 4식 반찬의 메뉴가 제공될 수 있다. 영양사 선생님은 3식 반찬이라도 2500원으로 역부족이라고 했다. 최소한 2700원의 식품비가 필요했다.

낮은 식품비에 비해 눈에 띄는 점은 높은 인건비다. Y고등학교는 다른 학교보다 높은 인건비를 부담하고 있다. 장기근속 조리실무사들이 다른 학교보다 많아서다. 근속 연수가 길어질수록 조리실무사의 임금과 퇴직금은 높아진다. 조리실무사의 기본급, 4대 보험, 위험수당, 연차수당, 퇴직금은 학교 급식비에서 지급된다.

조리실무사의 처우개선비 등 나머지 급여 부분은 경기도교육청에서 부담한다. 각 학교마다 1명씩 배속되는 영양사와 조리사의 급여 역시 경기도교육청에서 책임진다. 조리실무사는 실질 급식 인원수에 따라 각 학교마다 그 수가 다른데, 올 해부터 조리실무사 1명의 급여도 경기도교육청에서 지원한다.

더구나 55세 이상의 조리실무사는 다른 학교로의 전보 발령이 불가능하다. 60세 정년퇴직까지 한 학교에서 근무한다. 한편 학교 급식비 중 지나친 인건비의 부담을 막기 위해 조리실무사는 5년 단위로 근무지를 전환해야 하지만, 권고사항일 뿐 의무 조항은 아니다. (조리사의 근무조건도 조리실무사와 같다) 이는 경기도교육청과 교육공무직 노조가 그동안 논의해 온 협약들이다.

Y고등학교에는 6명의 조리실무사 중 55세 이상의 조리실무사가 근무자의 반을 차지하고 있다. 52세의 조리실무사도 2명 근무하고 있다. 근무지 전환이 실로 어려운 이유는 적지 않은 나이뿐만이 아닐 것이다. 이 지역의 불편한 대중교통도 Y고등학교의 특수한 상황을 만드는데 큰 기여를 했을 것이다. 또한 학교 규모가 작은 농어촌 학교의 급식 인원수도 급식 인건비를 효율적으로 부담하지 못하는 큰 원인일 테다.  

타 학교보다 높은 인건비 지출은 저녁 급식에도 영향을 끼쳤다. 기숙사까지 운영하는 Y고등학교는 매년 학기 초마다 기숙사 학생들에게만 저녁 급식을 제공한다. 그 이유는 저녁 급식의 높은 가격 때문이다. 기숙사 학생의 학부모들은 어쩔 수 없이 부담할 수밖에 없지만, 일반 학생들의 학부모들에게까진 무리수라는 학교 측의 판단에서였다.

지난 3월 Y고등학교의 석식비는 6650원이다. 이 정도라면 괜찮은 메뉴들이 즐비한 식단을 상상할지도 모르지만, 현실은 기대와는 다르다. 석식 급식비 사용 내역은 식품비 2300원, 인건비 3300원, 운영비 1050원이다. 식품비의 비율이 인건비보다 훨씬 낮다. 저녁 급식에는 일일 8시간 근로 이외의 초과수당이 붙어 평균 1.5배의 인건비가 더 소요된다. 점심 급식보다 신청하는 학생수가 적다는 점도 저녁 급식비의 단가를 높이는데 한 몫을 한다.

Y고등학교는 학교 급식비만으로는 석식 운영이 어려워 지방자치단체의 기숙사 학교 예산 지원을 기다려야 했다. 4월 초 학교로부터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5월 8일부터 4800원으로 저녁 급식이 재개된다는 가정통신문을 받았다. 지원금을 받아 인건비가 0원이라서 3000원의 식품비가 책정됐다. 그 뿐만이 아니다. 학교 예산의 일부를 점심 급식비에 투입해 식품비를 2650원으로 상향 조정시켰다. 학교 예산의 일부를 급식비에 지원하는 건 학교 측의 결정에 따라 가능하다.

알아갈수록 Y고등학교의 급식 문제는 심각했다. 앞으로 지속적으로 55세 이상의 조리실무사가 근무자의 반 이상을 차지할 확률이 높다. 다른 지원금을 받지 않는다면, 오랫동안 급식의 질이 지금보다 나아질 전망은 불투명하다. 지나친 인건비 부담 때문에 식품비의 비율이 줄어드는 고질적인 병폐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급식종사자들의 노동환경이 개선되는 걸 반대하진 않는다. 열악한 근무 환경에서 질 좋은 급식이 나오기를 기대할 수는 없다.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행복해야 맛있는 음식이 나오는 법이다. 교육공무직 노조가 생기기 전까진 최저 임금도 받지 못하는 조건에서 근무해왔다는 것도 사실이다. 질 좋은 급식을 위해서는 안정적인 식품비와 인건비의 보장이 필수 요건임을 모르지 않는다.

하지만 학생들의 식품비가 보장되지 않는데, 인건비 지출만이 늘어나는 상황은 학부모로써 이해하기 어렵다. 더구나 학부모들이 내는 급식비만으로는 그 해결점이 찾아지지 않아서다. <대한급식신문>에 따르면 최저임금의 인상과 물가 상승률로 올 한 해 급식 단가는 최소 21% 가량 인상됐지만, 실제 급식 단가 인상률은 그러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지난 2월 학교운영위원회는 급식비 인상률에 관한 회의를 열었다. 급식비를 부담하는 학부모의 다양한 계층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게 학교 측의 입장이다. 식품비가 부족하다는 문제점은 알고 있지만, 그 정도 선에서 급식비를 책정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급식비 지원을 받지 못하는 어려운 가정환경의 학생들도 많아서 학교 측은 별도의 예산을 편성해 매년 급식비의 누적 손실액을 차감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경기도교육청은 '학교급식 지원단가 성질별 분리 방안 연구용역 중간보고회'를 열었다. 안정적인 식품비 보장을 위해 인건비와 운영비를 분리 지원해야 한다는 연구결과를 확인했다. 경기도교육청의 한 관계자는 인건비 부담으로 인한 폐해를 잘 안다면서 올 해 조리실무사 1명의 급여를 지원한 것 역시 이런 문제점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했다. 무상급식도 경기도와 각 지방자치단체의 재정 협력 없이는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인건비를 경기도 교육청이 전적으로 책임지기는 아직 어렵다고 했다.

교육공무직 노조는 일반적인 노사관계의 원칙에 따라 조리실무사의 급여를 경기도 교육청에서 책임지라고 주장하고 있다. 영양사와 조리사, 조리실무사의 고용은 현재 경기도교육청에서 관할하고 있다. 조리실무사의 고용은 경기도교육청이 주관하고 있는데, 조리실무사 급여를 학교 급식비에서 충당하는 것은 잘못된 정책이다. 학교 급식비는 수익자 부담의 원칙대로 식품비로만 쓰여야 한다. 조리실무사들도 자신들의 월급이 학생들의 식품비를 축내는 것 같아 자괴감에 빠질 때가 있다고 한다.

식욕은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욕구 중 하나이다. 1943년 미국의 심리학자 에이브러햄 매슬로(Abraham Maslow)는 인간의 욕구를 다섯 단계로 분류했다. 피라미드 모양의 구조로 아래에서부터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애정과 공감의 욕구, 존중의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가 있다. 만약  1단계인 생리적 욕구가 충족되지 않는다면, 상위 단계로 나아가기가 어렵고, 최상위 단계인 자아실현의 욕구에는 접근하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학교에 다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목표는 자아실현일 것이다. 그런 학교에서 학생들은 입맛에도 맞지 않는 음식을 먹으며 공부를 한다. 진정 학교가 인간의 욕구 중 가장 높은 단계를 차지하는 자아실현의 욕구를 발현하는 곳임을 자각한다면, 학교 급식에 대한 계획을 가볍게 여길 수 있는가. 생리적인 욕구와 안전의 욕구가 고려되지 않는 학교에서 자아실현의 욕구가 만발하기를 바랄 수 있는가.

맛있는 학교 급식은 훌륭한 교육 프로그램 못지않게 학생들에게 큰 영향력을 미친다. 공부 잘 하는 아이나 못 하는 아이 모두 학교에서 평등하게 누리는 즐거운 기억. 친구랑 싸우거나 선생님께 꾸중을 들었을 때, 맛있는 밥 한 끼로 나쁜 기억이 사라질 수도 있는 위로의 시간. 일정한 비용으로 최대의 만족을 경험하는 보편적인 교육 복지. 바로 학교 급식이다. 그래서 학교에서 제공하는 급식은 단순히 배고픔을 채우는 물리적인 절차만이 아니라 기억의 순환 작용을 가능하게 하는 정서적인 시간이기도 하다.

Y고등학교의 급식 문제는 제도적인 모순이 극대화 돼 나타나는 구조적인 문제다. 열악한 급식 환경에 처해있는 건 비단 Y고등학교만은 아닐 것이다. 쓰레기라는 이미지를 학생들에게 심어주는 학교 급식은 사라져야 한다. 학교에서 먹는 급식이 긍정적인 밥이 되기를 바란다. 현실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배우는 곳이 학교여서는 안 된다. 사회의 제도적인 울타리 안에서 따뜻한 보살핌을 받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건 어른들의 당연한 책무이다.

불합리한 급식 제도로 말미암아 가장 피해를 입는 대상은 제도로부터 보호받아야 할 학생들이다. 수익자 부담의 원칙대로 아이들에게 그 혜택이 그대로 전가되도록, 운영비와 인건비 때문에 급식비 본연의 취지가 무색해지지 않도록, 현실적인 제도 개선안을 마련하기를 바란다. 고등학교 무상 급식이 실현될 때까지 무작정 참고 기다릴 수만은 없다.


태그:#급식비, #식품비, #경기도 교육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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