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밝게 빛나는 색깔, 쌉싸름하게 올라오는 쓴맛, 입안을 감싸는 부드러운 단맛과 혹은 혀를 짜르르 울리는 신맛까지. 우리가 맥주에 끌리는 이유는 단지 알코올 때문은 아니다. 맥주는 다양한 맛과 수만 개의 향을 통해 수천 년간 인간에게 사랑받아왔다.

그런데 한번 맥주에서 짠맛이 느껴진다고 상상해보자. 인간이 느끼는 5가지 맛 중, 유일하게 짠맛은 맥주에서 상상하기 힘든 맛이다. 20세기에 발명된 기능성 이온음료들을 제외하면 짠맛은 맥주뿐만 아니라 다른 음료의 역사에서도 찾기 힘들다.

하지만 짠맛은 음식에서는 없어서는 안 될 필수요소이다. 짠맛은 다른 풍미를 배가시켜주는 중요한 요소일 뿐만 아니라 나트륨 그 자체로도 우리의 신진대사에 반드시 필요한 성분이기 때문이다. 우리 인간이 짠맛을 탐닉하도록 되어 있는 것은 생존을 위해 DNA에 남겨진 작은 흔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생존의 문제를 벗어나 놀이와 미식을 즐기는 21세기의 인류, 호모루덴스의 시각으로 맥주를 바라보자. 만약 맥주에서 단맛, 쓴맛, 신맛, 그리고 짠맛이 난다면 우리는 이 황금빛의 아름다운 음료를 즐길 수 있을까?

Goes river 고슬라를 흐르고 있는 고제강
▲ Goes river 고슬라를 흐르고 있는 고제강
ⓒ By Y.Shishid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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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년을 이어온 짠맛 나는 맥주

독일 중북부 니더작센(Lower-Saxony) 주, 하르츠(Harz) 산에서 시작된 작은 물줄기는 작은 도시 고슬라(Goslar)를 굽이친다. 사람들은 이 강을 고제(Gose)라고 불렀다. 고슬라는 은과 아연과 같은 광물 뿐만 아니라 돌소금이라 불리는 암염도 풍부한 지역이다.

하르츠 산에서 내려오는 강물은 고슬라 지역을 흐르며 자연스럽게 짠맛을 띄었다. 고슬라 사람들은 맥주를 만들 때 고제 강물을 이용했고 이 지역의 맥주는 당연히 짠맛을 품을 수밖에 없었다. 다른 지역에서는 찾기 힘든 독특한 이 맥주를 사람들은 '고제'(Gose)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고제 맥주가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신성로마제국 오토 3세(Otto III, 983~1002)가 고제를 좋아했다는 기록으로 보아 적어도 1000년 전부터 만들어진 것으로 예상할 뿐이다. 1332년 3월 27일에 기록된 Ilsenburg 수도원의 한 문서에 고제가 언급된 것을 보면 현재 남아있는 맥주 스타일 중 매우 고전적인 것 중 하나임은 틀림없다.

고제는 단순히 짠맛만을 가지고 있는 맥주는 아니다. 오픈된 환경에서 발효를 하기 때문에 유산균의 일종인 락토바실러스(Lactobacillus)로 인한 신맛을 가지고 있으며 부재료로 고수씨(Coriander seed)가 들어가 날카롭고 쏘는(spicy) 듯한 향을 가지고 있다. 높지 않은 알콜도수에 짠맛과 신맛 그리고 고수씨의 향이 공존하는 맥주, 고제는 독특한 개성과 특성을 가지고 있는 맥주다.

하지만 고제는 독일 전역에서 주목 받는 맥주는 아니었다. 광물산업으로 몰려든 사람들로 북적거렸던 한때를 제외하면 고슬라의 맥주는 그저 일개의 지역 맥주였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 짠맛 나는 독특한 맥주에 열광하는 도시가 있었다. 고슬라로 부터 약 160km 떨어져있던, 문화와 예술, 교통과 산업의 중심지, 라이프치히(Leipzig)였다.

시티 오브 고제, 라이프치히

성 토마스 성당, 소년 합창단의 천사와 같은 노랫소리가 그곳에서 영원히 잠든 바흐(Bach)의 영혼을 위로하듯 퍼진다. 이 맑은 목소리와 함께 시청을 돌아 작은 골목길로 들어서면 아우흐바허 켈러(Auerbachs Keller)에 도달한다.

이 곳은 희번득 웃음을 짓고 있는 악마, 그리고 그에게 영혼을 판 파우스트의 절규가 가득하다. 바흐와 괴테의 숨결이 살아있는 곳, 그러나 동유럽 사회주의 몰락의 시발점이 된 도시. 이곳은 라이프치히(Leipzig)다.

바흐의 무덤 라이프치히 성토마스 성당에 있는 바흐의 무덤
▲ 바흐의 무덤 라이프치히 성토마스 성당에 있는 바흐의 무덤
ⓒ 윤한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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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규하는 파우스트 아우어바흐 켈러에 있는 파우스트 동상
▲ 절규하는 파우스트 아우어바흐 켈러에 있는 파우스트 동상
ⓒ 윤한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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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제는 고슬라에서 태어났지만 라이프치히에서 사랑받고 성장했다. 라이프치히에서 약 50km 떨어진 안할트(Anhalt) 공국의 후작 레오폴드 1세(Leopold I)는 누구보다 고제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고슬라로부터 맥주를 기다리기 힘들었던 그는 결국 1712년 자신의 영지에서 고제를 양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738년 자신이 만든 고제를 약 50km 떨어진 라이프치히에 판매하기 시작했다. 라이프치히로 건너온 고제는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된다. 심지어 고제만 취급하는 고제바(bar)가 생기고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라이프치히에서 이러한 고제바를 고젠쉔케(Gosenschenke)라고 불렀다.

"물론입니다. 저도 고젠쉔케에 가본 적이 있습니다." - 괴테



고젠쉔케(Gosenschenke) 19세기 라이프치히 고젠쉔케의 모습
▲ 고젠쉔케(Gosenschenke) 19세기 라이프치히 고젠쉔케의 모습
ⓒ https://www.ea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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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주 역사에서 19세기는 '라거 제국'이 시작되는 시점이다. 1842년, 황금빛의 부드럽고 시원한 맥주인 필스너 우르켈(Pilsner Urquell)이 체코의 작은 마을, 필젠(Pilsen)에서 태어난 후, 맥주 세계지도는 라거로 점령되어 갔다. 고제의 고향 고슬라도 이 흐름을 피해가지 못했다. 자연발효로 인해 신맛이 두드러지는 고제는 더 이상 고향에서 만들어지지 않게 된다.

그러나 라이프치히에서 고제는 여전히 사랑받았다. 요한 고틀립 괴테케(Johann Gottlieb Goedecke)는 이런 라이프치히의 고제 사랑을 통해 거대한 성공을 꿈꾼 사람이었다. 1824년 괴테케는 고슬라에서 고제를 양조하던 필립 레데만(Phillpp Ledermann)을 영입하여 될니츠(Döllnitz)에 양조장을 설립한다. 현재 라이프치히 오리지널 고제로 불리는 리터구츠 고제(Ritterguts Gose)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괴테케의 결정은 막대한 성공을 가져다 주었다. 그는 고슬라 전통 레시피로 양조된 고제를 낮은 가격에 판매하지 않았다. 프리미엄 맥주로서 모든 펍에서 흔히 마실 수 있는 맥주와 선을 그었다. 곧 리터구츠 고제는 독점적 지위를 누리며 시장을 점령했다. 80개가 넘는 고젠쉔케에서 한때 백만 병 이상의 리터구츠 고제가 판매되기도 했다.

전 세계가 라거(Lager)로 점령되어 갈 때도, 여전히 라이프치히는 'City of Gose(고제의 도시)'였다.

독일제국의 몰락과 함께한 고제

한방의 총성으로 시작된 전쟁, 20세기 초 전 세계를 뒤흔든 전쟁으로 수많은 맥주양조장이 사라졌다. 1930년까지 유일한 고제 양조장이었던 리터구츠도 전쟁이 휩쓸고 간 화마를 피할 수 없었다. 1945년 독일의 패망과 함께 문을 닫았고 고제라는 맥주도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된다.

1949년, 전쟁의 포화가 아직 남아있던 라이프치히. 수첩에 쓰인 고제 레시피를 가슴에 품고 한 남자가 작은 창고에서 맥주를 만들고 있었다. 전쟁 전 리터구츠의 직원이었던 프레드릭 부즐러(Friedrich Wurzler)는 고제 부활의 꿈을 꾸며 프레드릭 부즐러(Friedrich Wurzler) 브루어리를 설립한다.

하지만 고제는 더 이상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하는 맥주였다. 겨우 18개의 펍에서 판매될 뿐이었다. 양아들인 귀도 프니스터(Guido Pfnister)에 의해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지만 결국 1966년 그의 갑작스런 심장마비와 함께 사라지고 만다. 1966년 3월 31일, 호텔 프로리히(Hotel Frohlich)에서 서빙되었다는 기록이 리터구츠 고제의 마지막 기록이었다.

동유럽 공산주의의 기운이 옅어지던 1985년. 동독 출신의 교수인 로타 고드한(Lothar Goldhahn)은 라이프치히에서 2차 대전 당시 폭격을 받고 폐허가 된 고젠쉔케를 발견한다. 그 고젠쉔케의 이름은 '오네 베덴켄'(Ohne Bedenken), 즉 '주저하지 않고'였다.

고젠쉔케의 발견과 함께 고제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된 후, 그는 고제를 다시 부활시키기로 결심한다. '주저하지 않고' 그는 곧 고제 만들기를 시작한다.

하지만 이미 사라진 지 30년이 지난 맥주를 되살리는 일은 쉽지 않았다. 과거 고제의 맛을 기억하고 있는 라이프치히 사람들을 인터뷰를 했고 양조방법에 관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에게 행운이 찾아오게 된다. 마지막 고제 브루어리였던 부즐러(Wurzler)에서 근무했던 사람을 만나게 되고, 손으로 쓰여진 고제 레시피의 일부를 얻게 된 것이다. 고제 부활에 대한 '의심'은 이제 '의심할 바 없는' 확신으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Ohne Bedenken Gosenschenke 1985년 고제는 이곳에서 다시 부활했다
▲ Ohne Bedenken Gosenschenke 1985년 고제는 이곳에서 다시 부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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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전히 많은 난관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독일은 이미 필스(pils)의 황태자, '라데베르거'(Radeberger)와 같은 라거가 평정하고 있었던 터라 유산균을 이용한 자연발효 양조시설을 찾기 힘들었다.

다행히 자연발효 밀맥주인 베를리너 바이세(Berliner Weisse)를 생산하던 동베를린의 슐테이스 베를리너 바이세 양조장(Schultheiss Berliner-Weisse Brauerei)의 도움으로 테스트 배치를 만들게 된다. 그리고 결국 수차례의 실험을 통해 이전 고제 경험자들에게 '진짜 고제'로 인정을 받게 된다.

1986년, 사라진 지 만 30년이 지난 후, '주저하지 않고' 움직인 고드한에 의해 라이프치히에 다시 고제가 부활했다.

20세기의 고제, 전통과 다양성의 사이에서

고제가 다시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냈지만 30년 동안 사라졌던 맥주였던 만큼 사람들이 이해하기 쉬운 맥주는 아니었다. 더구나 통일 후의 독일사람들, 특히 라이프치히 사람들은 고제를 즐길 만큼의 여유가 없었다. 하지만 이렇게 어렵게 명맥을 이어오던 고제는 20세기 말 운명적으로 새로운 행운을 맞이하게 된다. 그것도 두배로.

1999년 독일 철도청은 라이프치히의 오래된 역사인 바이어리셔 반호프(Bayerischer bahnhof)를 레스토랑으로 탈바꿈 시킬 계획을 한다. 라이프치히 문화와 맥주를 담고 있는 가스트하우스(gasthaus)로의 변화에 안드레아스 슈나이더(Andreas Schneider)라는 브루어리가 참여하게 된다.

이 브루어리는 고드한(Goldhahn)의 고제를 OEM 생산해주던 곳으로 대표인 토마스 슈나이더(Thomas Schneider)는 이 짠맛나는 맥주의 문화적 가능성을 꿰뚫어보고 있었다. 그는 이 오래된 역사를 라이프치히 전통 고제 양조장과 레스토랑으로 리모델링하며 대표적인 라이프치히 문화공간으로 변화시켰다.

'Leipziger Gose'(라이프치히의 고제)는 바이어리셔 반호프 고제(Bayerischer bahnhof gose)의 브랜드로 현재 라이프치히 고제를 상징하고 있다. 'Leipziger Gose'는 짠맛 뉘앙스가 은은하며 신맛이 강하지 않고 향긋한 고수씨 향과 오렌지 껍질의 시트러스함이 부담없는 고제다. 낮은 알콜도수로 인해 마치 소풍갈 때 마시는 음료수와 같은 깔끔함이 매력이다.

라이프치히의 Bayerischer Bahnhof Gose 1999년 바이어리셔 역은 Leipziger Gose를 만드는 브루펍으로 리뉴얼하게 된다
▲ 라이프치히의 Bayerischer Bahnhof Gose 1999년 바이어리셔 역은 Leipziger Gose를 만드는 브루펍으로 리뉴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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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eipziger Gose 1999년부터 시작된 라이프치거 고제
▲ Leipziger Gose 1999년부터 시작된 라이프치거 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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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어리셔 역(Bayerischer bahnhof)을 고제 브로이하우스로 바꾸는 원대한 계획이 진행되던 세기말, 한 창고에서 누군가 오리지널 고제의 재현을 위해 초조하게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있었다.

틸로 야니헨(Tilo Jänichen)이라는 한 청년은 라이프치히 여행 중 우연히 고젠쉔케에서 마신 고제에 매료되었다. 아마추어 홈브루어였던 틸로는 이후 고제에 관한 고대문헌들을 탐구했고 마침내 자신의 창고에서 고제를 성공하게 된다. 그는 곧 라이프치히 오리지널 고제인 리터구츠(Ritterguts)의 후손인 아돌프 괴데케(Adolf Goedecke)를 찾아가 리터구츠 고제의 부활을 제안했다.

1999년 마침내 리터구츠 고제(Ritterguts Gose)가 공식적으로 재탄생되었다. 야니헨은 이 고제를 오리지널 리터구츠 고제(Original Ritterguts Gose)라고 명명한다. 1824년 라이프치히에서 최초로 만들어졌던 고제가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이다.

리터구츠 고제는 자연발효에서 오는 신맛 풍미가 뭉근하며 짠맛도 도드라진다. 또한 유산균 발효 특유의 쿰쿰함과 고수씨의 향긋함의 조화가 독특한 고제이다. 김치와 된장과 같은 발효식품을 즐겨하는 한국사람들에게 친숙한 향과 맛을 가지고 있어 한식과도 잘 어울리는 고제라고 할 수 있다.

리터구츠 고제 오픈양조 리터구츠 고제가 오픈 양조를 하고 있는 모습. 자연에 있는 효모와 유산균으로 발효되어 신맛이 나게된다.
▲ 리터구츠 고제 오픈양조 리터구츠 고제가 오픈 양조를 하고 있는 모습. 자연에 있는 효모와 유산균으로 발효되어 신맛이 나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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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iginal Ritterguts Gose 최초의 라이프치히 오리지널 고제
▲ Original Ritterguts Gose 최초의 라이프치히 오리지널 고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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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두 종류의 고제는 21세기 들어 라이프치히 전통 고제를 대표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고제라는 맥주는 교과서 한 귀퉁이에 머물러 있는 구식맥주에 불과했다. 아이러니하게 라이프치히 고제에 생명력을 불어넣은 것은 대서양 넘어 미국에서 시작된 크래프트 맥주 혁명이었다.


혁신의 출발은 오리지널리티

2000년대 말 미국을 대표하는 맥주인 버드와이저, 밀러, 쿠어스에 반기를 드는 움직임이 나타났다. 획일적이고 개성없는 맥주문화에 대응해 다양하고 실험적인 맥주들이 작은 양조장에서 만들어졌다.

크래프트 맥주라고 명명된 이 맥주들은 곧 산업과 문화를 강타했고 맥주 불모지였던 미국을 맥주 신대륙으로 바꿔놓았다. 십수 년간 개성있는 크래프트 맥주들이 양조되었지만 결국 근본은 맥주 구대륙에 있었다. 항상 새로운 스타일의 맥주를 탐닉하는 미국 크래프트 양조사들에게 고제는 진흙 속의 진주같은 존재였다. 짠맛, 신맛 그리고 고수 씨앗 풍미를 기본으로 다양한 변주들이 미국 크래프트 브루어리에서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이러한 고제의 변주들은 오히려 오리지널리티, 그 원형에 영향을 끼쳤다. 인공진주보다 자연산 진주의 아름다움에 매료되듯이 오리지널이 주는 매력에 빠지게 된 것이다. 이는 미국에만 국한되지 않았다. 미국 크래프트 맥주들에 의해 새롭게 눈을 뜬 라이프치히 양조사들 또한 고제가 가지고 있는 매력과 가능성을 재평가하게 된 것이다.

현재 라이프치히는 기존 라이프치히 고제를 대표하는 두 브랜드를 비롯하여 새로운 브랜드의 고제들이 태어나고 있다. 외면받던 오리지널리티의 매력을 복제품들이 깨닫게 해준 것이다.

한때 전쟁의 포화에 묻혀있던 오네 베덴켄 고젠쉔케('Ohne Bedenken' Gosenschenke)에는 이제 라이프치거 고제(Leipziger Gose), 오리지날 리터구츠 고제(Original Ritterguts Gose) 뿐만 아니라 자체 브랜드 고제인 오네 베덴켄 고제(Ohne Bedenken Gose)가 판매되고 있다. 고제의 부활을 이끌었던 고드한(Goldhahn)의 꿈이  21세기에 이르러 마침내 이루어진 것이다.

Ohne Bedenken Gose Ohne Bedenken은 고제 전문펍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들만의 고제를 생산 판매하고 있다.
▲ Ohne Bedenken Gose Ohne Bedenken은 고제 전문펍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자신들만의 고제를 생산 판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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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제를 병에 담다 미발효된 리터구츠 고제를 베럴로 가져와 다시 병에 옮겨담고 있다.
▲ 고제를 병에 담다 미발효된 리터구츠 고제를 베럴로 가져와 다시 병에 옮겨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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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초와 같은 생명력을 품은 맥주

짠맛은 맥주에서 기피되는 맛이다. 그러나 고제는 짠맛으로 인해 멸종의 고비에서 살아남았다. 작은 지역 맥주에서 넥스트 트렌드를 이끌어 갈 맥주 스타일로 주목받기까지 걸린 시간은 자그만치 천년이다.

그 오랜 시간동안 생존했지만 지금의 고제가 천년 전의 고제는 아닐 것이다. 맥주는 살아 움직이는 대중의 음료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변하지 않는 본질은 고제를 변화수용 폭이 넓은 맥주 스타일로 만들어 주었다. 본질을 간직한 전통은 고루한 것이 아닌 시대와 세대를 초월하여 변화발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고제를 통해 알 수 있다.

천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고제를 고루하게 바라보지 말자. 맥주는 플라톤 시대의 '존재론적'(Being)인 음료가 아니다. 지속적으로 변화하고 발전해 나가는 르네상스의 '존재론적'(Becoming)인 음료이다. 신에서 독립되어 주체적 존재가 된 지금의 인간처럼.

덧붙이는 글 | (사)한국맥주문화협회장으로 '맥주는 문화'라는 명제를 실천하기 위해 맥주에 대한 기고 및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이 글은 브런치에 중복개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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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한국맥주문화협회장으로 '맥주는 문화'라는 명제를 실천하기 위해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beergle@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