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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현 비조사 앞 도로공사 현장에서 길을 안내해 주고 있는 조총련계 할아버지. 그는 팔순이 되도록 부모님의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있는데, 죽기전에 고향 땅을 밟아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나라현 비조사 앞 도로공사 현장에서 길을 안내해 주고 있는 조총련계 할아버지. 그는 팔순이 되도록 부모님의 고향땅을 밟아보지 못하고 있는데, 죽기전에 고향 땅을 밟아보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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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히라카타 시에 있는 왕인박사묘소를 참배한 후, 오사카로 돌아온 나는 내친김에 아스카촌(明日香村)도 가보고 싶어졌다. 왕인박사가 논어와 천자문을 일본에 전한 이후, 아스카촌은 백제에서 건너간 도래인(渡來人)들이 전수해준 불교와 제도, 문물 등을 수입하여 제반 체제를 혁신하고 아스카문화를 열었던 곳이다.

특히 6세기 말에 한반도에서 불교가 전래 된 후, 8세기 초까지 불교문화를 중심으로 아스카문화를 꽃피운 아스카촌은 일본인들이 정신적인 고향으로 여기고 있는 곳이다.

나라 현 남쪽 다카이치군에 위치한 아스카촌은 오사카에서 약 50km 떨어져 있다. 오사카를 중심으로 하는 나라지방은 백제의 기운이 느껴지는 땅이다. 오사카의 옛 지명은 '나니와쓰(難波津)'로 '험난한 파도를 헤치고 당도한 항구'라는 뜻이다. 한반도에서 건너간 도래인들이 제일 먼저 닿은 항구도 오사카라고 한다.

다른 여행 일정을 포기하고 아스카촌을 답사하기 위해 교통편 등 답사일정을 짜고 있는데, 어제 왕인박사묘를 안내해준 호텔 나니와 박총석 사장이 이번 일정도 손수 운전을 하여 안내를 해주겠다고 나섰다.

고향이 전라남도 나주인 박 사장도 30여 년 전 맨주먹으로 오사카에 도착하여 갖은 역경을 극복하고 자수성가를 한 백제인의 후손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고국에 대한 애국심과 애향심은 남달리 큰 것 같다.

다음 날 아침 나는 박 사장이 운전하는 승용차에 편승하여 나라 현으로 출발했다. 오사카의 복잡한 빌딩숲을 지나 나라 현으로 들어서자 낮은 산과 질펀한 들판이 마치 우리나라 남도의 나주평야를 닮은 듯 은은하게 다가왔다. 4월 초인지라 싱그러운 새싹들이 산야에 초록 옷을 곱게 갈아입히며 곳곳에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길손을 반겨주고 있었다.

'나라(奈良, Nara)'의 지명은 한국어로 '국가'를 의미하는 '나라'라는 단어에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지만 명확한 근거는 없다. 그보다는 일본에서는 나라 지방의 평탄한 지형에서 '나라(奈良)'라는 도시 이름이 유래했다는 설이 더 설득력 있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어쨌든 '나라'라는 지명도 그렇고 풍경도 마치 내 고향 남도의 모습과 닮아있어 어쩐지 포근한 정감이 든다.

나라현 시골풍경. 낮은 산과 질펀한 들판이 전라도 나주평야를 닮아 보인다.
 나라현 시골풍경. 낮은 산과 질펀한 들판이 전라도 나주평야를 닮아 보인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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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스카촌으로 가는 도중에 나라 시에 위치한 도다이지(東大寺)와 호류지(法隆寺)를 답사하고 호류지 근처 식당에서 늦은 점심을 먹은 후 오후 4시경 아스카촌에 도착했다. 이 두 곳에 위치한 사찰도 아스카문화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백제에서 파견된 승려와 전문기술자들의 지도와 협력으로 건립된 것이다.

아스카촌은 5개 공원지구로 나누어져 있어 짧은 시간에 그 넓은 지역을 다 돌아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어차피 내가 가장 관심을 끄는 곳은 일본에서 가장 오래되었다는 아스카데라(飛鳥寺)라는 절이었기 때문에 그곳을 먼저 가기로 했다.

'아스카데라'는 한국어로는 '비조사(飛鳥寺, 이하 비조사로 표기)'로 표기되는데, '明日'과 '飛鳥'를 일본에서는 같은 발음으로 읽는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飛鳥'는 '새 날아' 즉 '새 나라'라는 뜻으로 나라 이름을 '아스카(飛鳥)'라고 지었다고 한다.

박 사장도 아스카촌이 초행길이어서인지 시골 깊숙이 묻혀 있는 비조사를 찾는데 무척 애를 먹었다. 여러 번의 시행착오 끝에 도착한 곳은 '비조사(飛鳥社)'라는 간판이 붙은 신사였다. 비조사(飛鳥寺)라는 절 이름과 발음이 똑같아 처음에는 이곳을 비조사로 착각하고 입장을 하려고 하는데, 입구에서 간판을 자세히 보니 끝 글자가 '寺'자가 아니고 '社'자였다. '비조사(飛鳥社)'는 사찰이 아닌 신사였던 것.

우리는 여기저기를 두리번거리다가 도로공사현장에서 안전복장을 하고 차량을 통제하고 있는 나이가 지긋한 할아버지에게 다가가 일본어를 잘하는 박 사장이 비조사 위치를 물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 팔순에 가까워 보이는 그 할아버지가 박 사장에게 "한국인이세요?"라고 한국어로 묻질 않은가?

박 사장이 오사카에서 온 한국인이라고 말하자 그 할아버지는 한국말로 비조사로 가는 길을 매우 친절하고 자세히 안내해 주었다. 도대체 저 할아버지에겐 어떤 사연이 있기에 저 나이가 들도록 도로공사 현장에서 일을 하고 있을까? 나는 할아버지의 정체가 몹시 궁금해져서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어르신, 한국말을 참 잘 하시네요?"
"어려서 한국인 학교를 다녔어요."
"죄송한 말씀이지만 할아버지의 원래 고향은 어디신지요?"
"나는 일본에서 태어났지만… 부모님의 고향은 경상남도 창원이지요."
"아, 그렇군요. 그럼 고향에도 가보셨겠네요."
"그게… 아버님 고향을 꼭 가보고 싶은데… 아직까지 가보지 못하고 있어요."
"저런, 아직까지 고향을 가 보시지 못한 무슨 사연이라도 있으신지요?"
"네, 그게…저희 부모님이 조총련 쪽이어서 저도 자연스럽게 조총련에 소속이 되었지요. 그래서 한국 비자를 받기도 어렵고… 차일피일 미루다 보니 아직까지 가보지 못하고 있어요."
"그것 참 안 됐군요. 앞으로 남북관계가 좋아져 비자 받기가 수월해지면 좀 더 쉽게 고향을 갈 수 있겠지요."
"네, 제발 꼭 그렇게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죽기 전에 부모님의 고향땅을 꼭 한 번 밟아보는 것이 저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할아버지는 자신의 이름을 '윤'자 '원'자 '식'자라고 끊어서 또렷이 발음을 하며 부모님의 고향인 창원 땅을 생전에 꼭 한번 가보고 싶다고 다시 한 번 말했다. 간절한 할아버지의 소망을 듣고 있던 아내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싶다고 말하자 그는 기꺼이 응하며 포즈를 취해주었다.

팔순이 되도록 부모님의 고향 땅을 아직까지 밟아보지도 못하고 도로공사 현장에서 안내를 하고 있는 할아버지를  뒤로 하고 비조사로 가는데 어쩐지 코끝이 찡해졌다. 정말 하루 속히 남북관계가 좋아져 저 할아버지의 소원이 이루어 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며 할아버지가 일러 준 길을 따라 비조사로 걸어갔다.

일본 나라현 아스카역사공원 5개지구. 비조사는 아마카시노오카 지구에 위치하고 있다.
 일본 나라현 아스카역사공원 5개지구. 비조사는 아마카시노오카 지구에 위치하고 있다.
ⓒ 국영아스카역사공원 홈페이지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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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아스카문화, #아스카데라, #비조사, #조총련, #나라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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