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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국의 인민들은 의원을 뽑는 동안에만 자유롭고 선거가 끝난 직후에는 다시 노예로 돌아가버린다"

주권은 결코 대표될 수 없다고 믿었던 루소는 18세기 영국 대의제의 허구성을 '노예의 자유'에 빗대어 표현했다. 200년도 넘은 역사속 이야기지만, 루소가 비판한 '노예의 자유'는 여전히 우리를 옥죄고 있는 굴레다. 일시적인 노예 해방령이 아닌, 대표자 위에 군림하는 지도자로서 자리 잡는 것은 여전히 우리에게 과제로 남겨져 있다.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이라는 링컨의 연설은 민주정치의 본질을 가장 잘 나타낸다. 근대국가 성립 이후, 시공간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국민은 대표자를 뽑아 그들에게 권리를 위임했다. '대표'를 통해 시민의 집단적 의사를 투영하고 민주주의의 원칙을 실현하고자 한 간접적 민주주의가 바로 대의민주주의이다. 대의민주주의의 정신 역시 '민주주의 원칙'에 기반한다. 따라서 대표자가 '국민의,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지 못한다면 대의제의 본질 자체는 심각하게 훼손된다.

국민과 대표자 사이에 분리가 불가피하다는 것은 대의제의 가장 큰 맹점이다. 국민은 실질적 주권자인 대표자를 통해 의사를 표출하지만 모든 의사가 반영되는 것은 아니며, 이 과정에서 국민의 주권은 일차적으로 훼손된다. 특히 대표자가 국민과의 약속을 저버리거나 책임 있는 국정운영을 하지 않을 때, 국민이 위임한 권리는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묵살된다. 19대 국회의원들의 공약 이행률이 10% 초반에 그치고 국회를 '신뢰한다'고 답한 비율이 12%에 그친다는 점은 우리 사회가 대의제의 한계를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의제의 문제점이 본질적으로 주권자와 통치자의 분리에서 온다고 할 때, 이를 시정하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은 주권자가 곧 통치자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대의제 자체를 부정하기에는 시공간적 현실적인 문제가 대두되므로, 직접 민주제의 요소를 통해 대의제를 한계를 보완하는 것이 대안이 될 수 있다. 현재 대의제에서 국민이 대표자를 심판할 수 있는 방법은 단속적 성격에 지나지 않는다. 임기가 끝난 후 대표자의 과거를 평가하는 '선거'는 매우 간헐적으로 이루어지며 회고적 성격을 띠는데 그치기 때문이다. 또한 선거의 동기에는 경제적 위기와 같은 시대적인 흐름에 의한 것도 작용한다는 점에서, 선거를 통한 심판은 극히 일부의 경우에만 한정된다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임기가 끝나지 않은 방만한 대표자를 즉시 소환하여 탄핵 시킬 수 있는 권한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은 국민의 주권 회복과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에 기여할 수 있다.

그러나 국민소환은 사후약방문일 뿐이다. 일단 객관적으로 명백한 잘못을 저지른 뒤에 그 공직자를 쫓아내는 것이지, 잘못된 결정을 예방하거나 바로잡을 수 있는 제도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잘못된 결정의 책임은 국민이 져야한다. 이처럼 결정에 대한 책임을 국민이 질 수 밖에 없다면, 최소한 국가의사에 대한 결정 과정에 국민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은 열려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자기결정과 자기책임의 원칙이 작동되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주권자가 스스로 법률 제정을 비롯한 국가의사 결정의 주체로 등장할 수 있도록 하는 국민 발안제는 국민 주권 실현을 더 적극적으로 보장하는 제도라고 할 수 있다.

국민소환제나 국민발안제가 자칫 중우정치적 형태로 악용될 수 있다는 점은 이를 반대하는 이들의 대표적인 주장이다. 하지만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시민 주도 헌법 개정 과정에서, 이는 기우에 불과했음이 입증되었다. 오히려 현실적 난관은 엄청난 비용과 시간이 들지 않는가하는 것이다. 하지만 대의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시스템 때문에 시민들의 요구를 담아내지 못하고 엉뚱한 데 돈을 쏟게 되거나, 잘못된 정책 결정으로 후유증을 남긴 사례들이 많음을 고려하면, 직접 민주주의의 도입을 통한 시민의 참여는 오히려 저비용 고효율의 합리적인 정책일 것이다. '민주주의의 원칙'을 초석으로 삼은 정치만이 진정한 대의제를 이룩할 수 있다.


태그:#국민소환제, #국민발안제, #직접민주주의, #대의민주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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