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재일동포 ㄱ씨의 친누나는 재일동포 북송사업으로 북한으로 건너간 귀국자 1세대다. 누나가 2016년 3월에 사망했을 때, ㄱ씨는 누나의 장례식에 가지 못했다. ㄱ씨가 조총련 관련 일을 한다는 이유로, 일본정부가 지정한 인적 왕래 규제대상이었기 때문이다. ㄱ씨는 누나의 묘를 성묘하기 위해 일본정부에 재차 재입국 허가를 신청했다. 그러나 재입국 허가는 나오지 않았다. 재입국 허가란, ㄱ씨가 누나의 묘를 성묘한 뒤 다시 일본으로 입국할 수 있는 허가를 의미한다. 즉 ㄱ씨는 북한으로 갈 수는 있지만 일본 내 거주지로 다시 돌아올 수 없는 처지다. 그는 현재까지 누나의 성묘를 못하고 있다. 

# 일본 각지의 조선학교 학생들은 고등학교 3학년 때 수학여행으로 북한을 방문한다. 학생들이 수학여행을 마치고 일본에 재입국했을 때 공항 세관이 북한에서 구입한 기념품을 몰수하는 사례가 잇달아 발생하고 있다. 몰수된 기념품은 인삼크림 등 몰수할 필요성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 것들이다. 수학여행단 외에도 일반 북한 방문자가 필통, 화장수, 비누 등을 압수당한 사례가 다수 보고되고 있다.

# 재일동포 ㄴ씨는 함남 함흥에 살고 있는 남동생에게 천식에 좋은 의약품을 보내고 싶어한다. 하지만 일제 의약품은 일본정부가 지정한 규제대상에 해당한다. ㄴ씨는 남한 거주 실향민이나 탈북민이 하듯 비공식적 방법으로 중국의 브로커를 통해 동생에게 약과 약간의 엔화를 보냈다. 브로커를 통해서 보내면 송금액의 30%를 수수료로 지불해야 하지만, 동생을 위해선 어쩔 수가 없다.

일본정부가 발동 중인 '독자적인 대북제재' 조치가 북한으로 보내는 물품·송금을 전면적으로 막고 있어 재일교포 사회의 원성을 사고 있다. 위 사례에서 보듯 유엔(UN)의 제재보다 더 범위가 넓고 합리적 목적성을 결여하고 있어 문제시되고 있다.

지난 2006년부터 발동된 일본의 독자적 대북제재에 따라 북-일간에 수출입은 현재 전면적으로 금지돼 있다. 이는 무역업자의 거래뿐 아니라 일반시민 사이의 물자교환도 규제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재일동포들은 북한에 사는 친족에게 생활자금은 물론 생활물자도 보낼 수 없게 됐다.

일본은 지난 2006년 7월부터 독자적인 대북제재를 실시해왔다. 북한의 대포동 미사일 발사 직후로, 유엔의 대북제재보다 3개월 앞서는 것이다. 유엔은 같은해 10월 있었던 북한의 1차 핵실험 직후부터 대북제재를 시행해왔다. 이보다 2년 앞선 2004년 일본은 지불 규제, 자본거래 규제, 수출입 제한을 골자로 외환법을 개정했다. 같은해 '특정 선박 입항 금지법'을 제정해 재일동포의 북한 왕래 수단이었던 '만경봉 92호'의 입항을 금지시켰다.

이전에 일본은 북한을 상대로 여러 차례 독자적 제재를 실시한 바 있으나 모두 1년 정도가 지나면 자진 해제시켰다. 하지만 이번 제재는 시행 이후 10년이 넘도록 지속되면서 해마다 내용을 강화하고 있어, 재일교포 사회의 우려와 불만을 사고 있다. 무엇보다 국제사회가 제제를 가하는 핵심적 이유인 핵·미사일 개발과 전혀 상관없는 일반 친족 송금을 막고 있어 제재의 근거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돼왔다.

재일본조선인인권협회는 지난 1월 의견서를 내고 "이 조치들은 점차 그 대상범위를 확장하고 현재는 일본과 북한 사이의 사람, 물건, 돈의 흐름이 전면적으로 차단되는 지경에 이르렀다"면서 "경제제재는 2006년 10월 이후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에 기초해 유엔에서도 실시되고 있지만 일본의 독자적인 제재 조치는 유엔이 요청하는 제재보다 그 범위, 내용이 훨씬 더 넓다"고 강조했다.

계속해서 "일본의 독자적인 제재 조치는 비인간적이며 위법이고 부당하다"고 전제한 뒤 "▲일반 시민에게 미치는 영향을 고려하지 않는 전면적 금수조치, 지불금지 조치라는 점에서 비인도적이며 ▲제재 목적과의 합리적 관련성이 결여된 것이므로 국제법의 일반이론에서 볼 때 정당화되지 않으며 ▲제재발동국에 거주하는 구 식민지 출신의 영주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이례적인 조치로서 불필요하고 부당하며 ▲제재 목적이 달성되지 않은 채 시간적 제한이 없이 계속되고 있어 이상하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유엔 안보리는 북한의 정책 결정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는 자에 한정해 제재 대상을 지정하고 있다. 제제 대상 물자도 대량살상무기 관련물자 및 관련 금융서비스로 한정하고 있다.

2016년 이후 안보리 결의(2321·2371·2375·2397호)를 통해 제재가 대폭 강화됐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전면적 금수조치'는 시행하지 않고 있다. 또 제재 결과로 인해 일반주민의 민생에 피해가 가는 것을 회피하도록 하고 있다. 그에 비하면 일본의 제재는 거의 모든 교류를 막는 '전면적 금수조치'여서 광범위한 피해가 지속되고 있다.

한편, 북한의 재일동포 귀국사업은 1959~1984년까지 실시됐다. 이때 약 9만 3000여 명의 재일동포가 북한으로 건너갔다. 전체 재일동포 6.5명 중 1명꼴인 수치였다. 이들 중 약 97%가 남쪽 출신으로, 북한에서 살아본 경험이 없었고, 북에 친척도 없었다. 북한 당국은 이들이 가져온 사유재산을 예외적으로 인정해줬고, 일본의 친인척에게 송금을 받는 것도 허용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를수록 송금은 줄어들었다. 안드레이 란코프 국민대 교수는 <리얼 노스코리아>(2013)에서 "1990년대에 들어 송금은 바닥을 드러냈다. 예상할 수 있듯 이는 귀국자 2·3세대에 큰 영향을 미쳤다. 주된 원인은 세대교체였다"면서 "귀국자들의 가까운 친척들이 하나둘씩 세상을 떠나기 시작했고, 그 아래 세대는 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친척에게 돈을 보내줄 의사가 없었다"고 밝혔다.

이로 볼 때 실제로 북한으로 송금하는 재일교포가 현재 많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일본정부는 송금을 원천적으로 차단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재일교포는 북한사회에 토대가 약하고 북한에 친척이 없기 때문에 송금이 끊어지면 비참한 생활을 하며 연명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한다.

박종철 경상대 교수는 <귀국자를 통해서 본 북한사회>(2012)에서 "재일조선인 귀국자들은 일본으로부터의 송금에 의존해 사치스런 생활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며 "이들은 중국의 개혁개방 시기 몰락하기 시작해,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사회⋅경제적인 다방면에서 몰락했다. 2000년대 중반 일본의 대북 경제제재로 입지가 더욱 줄어 현재는 비참한 삶을 향유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그럼에도 박종철 교수는 "귀국자들은 정치적으로 차별의 대상이었지만, 북한주민보다 우월한 사회⋅경제적 활동을 했고, 후손들의 영향력도 막강했다"면서 "재중⋅재일조선인 귀국자 및 화교들은 북한에서 소수자(Minority)로서 사회문화의 역동성에 공헌했다"고 평가했다.

현재 일본에 거주하는 재일동포는 대한민국 국적이 약 46만 명, 일본 국적이 36만 명, 조선적이 3만 4000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일본정부는 북한을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 한국 및 일본 국적이 아닌 사람들을 1945년 해방 당시 조선 국적자로 분류해 '조선적'을 부여하고 있다. 이 조선적 보유자들은 스스로를 '재일조선인'이라고 칭하고 있다.

하지만 재일동포들은 특별히 남한과 북한을 구분하지 않고 '하나의' 조국이라는 사고가 강하다. 그런 만큼 북한과 연계를 맺고 있는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계열의 조선학교에도 많은 한국 국적자가 입학해 민족교육을 받고 있다. 조선학교 학생 중 한국 국적자는 약 70%에 육박하고 있다.   

정희선 청암대 재일코리안연구소 소장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일본은 자국민 납치자 송환 문제와 연계시켜서 자국민 보호라는 논리로 대북제재를 하고 있다"며 "북일간에 현재 수교가 안 돼 있기 때문에 나중에 북일수교를 맺을 때 주도권을 잡자는 속내도 숨어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희선 소장은 "북한의 핵개발을 빌미로 해서 일본이 재무장하려는 의도도 있다. 일 정부가 국민을 공포에 몰아넣고 혼란을 시키는 것"이라며 "현재 아베 정권이 납치자 문제에 대해 국민에게 답을 못 내고 있으니까 북핵을 내세워 유엔 공조 명분하에 대북제재를 가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태그:#일본, #대북제재, #유엔안보리, #재일동포, #아베
댓글2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10,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