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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부 수준의 대학교 문화인류학 강의 첫 시간에 들어가면 '문화'의 정의를 배운다. 그곳에서는 보통 문화의 정의를 두 가지로 가르치곤 한다.

좁은 의미 : 고상하고 세련된 것. 발전된 상태.
넓은 의미 : 한 사회나 집단에서 나타나는 의식주, 사고방식 등 인간의 모든 생활양식.


이를테면 '문화인', '문화생활'이라는 단어는 좁은 의미로 쓰인 것인데, 우아하거나 고상한 취미 혹은 그것을 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반면에 '한국문화'는 어떤 발전된 상태를 얘기하는 것이 아닌, 한국사회 전반에서 나타나는 생활양식을 말한다.

'강간문화'라는 말이 있다. 많은 이들이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도대체 어떻게 강간이 문화가 될 수 있느냐'며 불편해한다. '한국사람들이 툭하면 강간을 자행한다는 뜻이냐'라고 반문한다. 과연 강간문화란 무엇이고 그것은 실재하는가?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관계는 폭력이다.
 상대방의 의사를 존중하지 않는 관계는 폭력이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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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간문화'는 성폭력에 대한 사회적 태도

강간문화 (Rape culture)는 사회학적 개념 중 하나다. 학술적으로는 다음과 같은 의미를 가진다.

"젠더와 섹슈얼리티에 대해 갖는 사회적 태도 때문에 강간이 만연하고 정상화되는 환경을 설명하기 위한 사회학적 개념"

한국사회는 특히 여성에 대한 차별이 만연해 있다. 단순히 여성 대상의 성범죄 비율이 높은 것 뿐만 아니라, 여성을 바라보는 방식 역시 왜곡되어 있다. 특히 성폭력 피해를 받은 여성에 대한 태도가 그렇다. 이번 검찰 내 성폭력 이후로 촉발된 '미투 운동'을 예로 생각해보자. 상당히 많은 이들이 서지현 검사의 폭로 뒤에 '8년동안 신고를 하지 않았다니 그게 말이 되냐', '인사에 불만이 있어서 폭로한 것 아니냐'라는 말을 하곤 했다.

성폭력 피해자는 많은 경우 이런 말들 때문에 침묵 '당한다'. 피해자를 탓하거나 가해자를 두둔하는 말은 곧잘 2차적인 피해를 낳곤 하기 때문이다. 다시 '강간 문화'의 개념으로 돌아가면, 이런 '피해자 탓하기', '피해사실을 사소한 것으로 치부하기'는 여성차별이 심한 사회일수록 '문화'의 형태로 존재하기 마련이다. '너도 즐긴 것 아니냐'라는 폭력적인 말 역시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다. 강간 문화는 이런 환경에서 나타나는 광범위한 태도다.

 미투의 물결 앞에 우리는 강간문화 종식을 위해 싸워야 한다.
 미투의 물결 앞에 우리는 강간문화 종식을 위해 싸워야 한다.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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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을 경험해 본 여성들이 밤거리를 두려워한다거나, 자취방을 두리번거리는 낯선 이에 대한 공포를 토로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때 이들의 합리적인 공포를 '피해의식'이라고 비하하는 것 역시 강간문화의 한 부분이다. 강남역 살인사건 때 '여자라서 당했다'는 구호에 대해 일부 남성들이 '남자도 범죄에 노출될 수 있다', '칼로 찌르면 남자도 죽는다'라고 불평한 것을 생각해보라.

당연히 남성도 범죄의 타겟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여성이 피해에 대한 공포를 인정하는 것이 그런 사실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실제로 '강력범죄 비율'을 운운하며 남성 피해자들의 비율이 높음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많지만, 성범죄에 대해서는 여성 피해자들이 많은 것이 현실이다.

자, 이제 다시 돌이켜 생각해보자. 한국사회는 이렇듯 성폭력에 대해 상당히 무감각하고, 때로는 가혹하기도 하다. 이것을 '문화'라고 부르는 것이 정말로 부당한 일인가? '강간문화'란 당신이 시도 때도 없이 강간할 기회를 노린다는 뜻이 당연히 아니다. 당신도 모르는 사이에 성폭력 피해자들에 대한 2차 가해에 동참했을지도 모를 일이고, 피해여성들의 경험을 폄하했을 수도 있다.

사실 그런 의미에서 '문화'라는 표현이 정말 잘 들어맞는 게, 문화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행동양식에 무의식적으로 광범위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나 역시 과거에 성폭력에 대한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문화가 되어버린 개인들의 행동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는다. '미투'의 파도가 한국사회를 조금씩 바꿔놓는 지금, 그 변화에 동참하고 나 자신을 바꿔나가기 위해서는 이런 '강간문화'를 비판하고 고쳐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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