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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 4학년 때의 어느 날, 무료하게 집에 있는데 전화벨이 울렸다. 대수롭지 않게 받은 전화의 수화기 너머로 들리는 이 두 마디에 나는 얼어붙고 말았다.

"Hello, this is John speaking. May I speak to Robin?"

우리 집에 로빈이란 사람은 없는데(용케 알아듣긴 했다) 뭐라고 대답해야 하는지 난감했다. 결국, 나는 그 전화를 끊고 말았다. 하지만 다시 걸려오는 전화에 나는 머리를 쥐어짜며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

"He is not here."

비장하게 대답한 내가 대견하기까지 했는데 존은 포기를 모르는 남자였다. 로빈의 행방을 물은 것이다. 나는 다시 전화를 끊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You have the wrong number'라고 답해야 한다고 깨달은 건 한참 후의 일이다. 이 전화 때문이었을까. 영어는, 특히 회화는 나에게 트라우마로 남았다.

최근 나와 같은 영어 포기자를 위한 책이 나왔다. <영포자가 꿈꾸는 영어 원서 쉽게 읽기>가 바로 그것이다. 무엇보다 이 책에 끌렸던 이유는 저자가 유학파도 아니고 영어를 전공한 사람도 아니라는 점이다.

게다가 이런 부류의 책은 '이런 것도 못 해'라며 잘난 체하거나, 무조건 따라 하면 누구나 영어를 잘할 수 있다고 강조하기 마련인데, <영포자가 꿈꾸는 영어 원서 쉽게 읽기>는 그런 점이 없어서 더욱더 마음에 들었다.

 <영포자가 꿈꾸는 영어 원서 쉽게 읽기> 표지
 <영포자가 꿈꾸는 영어 원서 쉽게 읽기> 표지
ⓒ 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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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왜 많고 많은 영어 학습 방법 중에 '영어 원서 읽기'일까. 저자 부경진은 'input'을 강조한다. 학교를 졸업하고 영어와 담쌓고 사는 성인에게 매일 학원에 다니거나 유학을 가기란 불가능하다.

또한, 영어는 꾸준히 공부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원서를 읽어 input을 늘리라는 게다. 너무 뻔한 이야기 아니냐고? 6년간 원서 읽기를 블로그에 남겨온 기록을 보면 저자의 내공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따라하기 부담스럽지도 않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처음 원서 읽기에 도전하는 경우, 오디오북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 발음과 끊어 읽는 지점을 생생하게 들을 수 있으므로 큰 도움이 된다. 스포일러에 짜증 나지만 않는다면 영화도 훌륭한 부교재가 된다. 캐스팅, 대화체, 말투, 구어적인 표현을 느낄 수 있으므로. 본격적으로 원서 읽기에 돌입하면 셰익스피어 작품집 같은 고전보다는 통속 소설을 먼저 읽으라는 주문도 잊지 않는다.

단어와 문법은 어떻게 해야 할까? 저자는 100% 이해 못 해도 되니 사전은 필요 없다는 속설은 믿지 말라고 강조한다. 그 속설은 읽다 보면 모르는 단어는 유추해서 해석할 수 있고 사전을 찾는 시간에 빨리 읽어 70%만이라도 이해하라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저자는 30%의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면 그 책은 잘못 읽은 것이라며, 사전을 옆에 끼고 원서를 읽으란다. 원서를 읽으면서 막혔던 부분이 사전을 찾아 단어를 이해하면서 짜릿함을 느끼는 건 덤이다.

이제 실전이다. 원서 읽기도 영어 공부이기에 준비물이 필요하다. 저자가 준비한 물건은 포스트잇, 메모지, 삼색 볼펜, A6 단어카드이다. 포스트잇은 대제목, 중제목, 소제목으로 나눠 읽는 목표를 정하는 용도와 책갈피로 쓴다.

메모지는 등장인물을 메모하거나, 책에 대한 감상을 적을 때 쓴다. 삼색 볼펜은 바르게 읽고(검은색), 깊게 흡수하고(파란색), 내 생각을 출력(빨간색)하기 위해 사용한다. A6 단어카드는 모르는 단어와 뜻을 적기 위한 용도다.

솔직히 말해 <영포자가 꿈꾸는 영어 원서 쉽게 읽기>는 영어학습서가 아니다. 책의 구성을 보면 단계별로 저자의 노하우를 담아낸 자기계발서의 전형을 따라간다. 평소 자기계발서에 알레르기가 있는 나로서는 오히려 이런 책은 대환영이다. 아주 적은 노력만 기울이면 나도 'You have the wrong number'를 외칠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에 말이다.

"영어 원서를 읽는다는 것은 다른 나라 사람의 생각과 인물을 읽는 것이다. 그러니 등장인물 혹은 저자의 생각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과정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력이 높아진다. 또한 자연스럽게 그런 노력은 수렴하여 우리나라 내가 사는 현실로 들어오게 되는데 같은 공간에서도 세대와 연령을 넘나들며 이해하려는 마음을 갖게 되기도 한다." - 부경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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