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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달에 책 사는 데만 쓰는 돈이 적어도 20만~30만 원, 인터넷 서점의 프리미엄 회원이 된 지 오래다. 아이들에게 책 읽기를 가르치는 사람이니 어쩔 수 없다고는 하지만 심한 경우에는 '돈을 벌어서 책을 사는데 다 쓰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책장이 터져 나갈 듯하면 정리해서 지인들에게 선물한다. 책 인심 하나는 끝내주는 사람이 되고 있다.

얼마 전부터는 작은 꿈도 하나 생겼다. 반백년을 살았는데 이 나이에 새로운 꿈이 생기다니 이루지 못할 꿈일지도 모르겠지만 꿈꾸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꿈 꿀 수 있다면 아직 젊다는데 젊은 이 나이에 생긴 내 꿈은 '1인 출판사'를 해보는 것이다. 출판계가 어렵다고 하지만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있고, 내가 좋아하는 책을 만들어 누군가에게 보여줄 수 있다면 힘들어도 행복한 시간들이 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 아직은 용기를 내진 못하고 있지만...

내게 1인 출판사의 꿈을 갖게 한 그림책공작소 민찬기 대표

 <그림책공작소>의 그림책들.
 <그림책공작소>의 그림책들.
ⓒ 그림책공작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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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이런 꿈을 갖게 해 준 사람이 있다. 그는 그림책을 사랑하는 사람이고, 그림책을 만드는 1인 출판사를 하고 있다. 종횡무진 그의 행보를 보면 작은 체구에서 어떻게 그런 에너지가 뿜어져 나오는지 놀라울 정도다. 그는 장인들이 한 땀 한 땀 정성들여 명품을 만들 듯이 그림책을 만든다.

한 권의 그림책이 탄생할 때마다 해산의 고통과 같은 시간을 겪는다. 제목, 글자의 위치와 모양, 색채, 판형 등 무엇 하나 소홀히 하는 것 없이 꼼꼼히 점검한다. 그리고 태어남의 의미를 가득 부어 그림책에 생일을 선사한다.

막무가내 독재자에게 대항하는 민중의 승리를 보여주는 그림책<아무도 지나가지 마!>는 '선거일'에 맞춰 출간했다. 색칠 공부의 즐거움을 주는 그림책<알록달록 색칠 괴물>의 발행일은 '크리스마스'였다. 아이들에게 선물 같은 책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었다고 한다.

가족에 대한 그림책<바비아나>의 발행일은 '세계 가정의 날'인 5월 15이었다. 시간에 대한 그림책 <시간이 흐르면>을 낸 날짜는 '모래시계' 모양인 8월 8일이었다. 이렇게 민찬기 대표는 한 권 한 권에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그림책들을 발행했다. 

'그림책공작소'의 그림책과 민찬기 대표님을 만난 것은 행운이었다. 그림책으로 세대를 아우르는 이야기를 나누고 다니는 나에게 좋은 그림책을 고민하지 않고 사 볼 수 있다는 것은 멋진 일이기 때문이다. 그림책에 대한 그의 선택은 항상 옳았다. 그에게 좋은 그림책을 보고 만드는 눈이 있는 것은 아마도 그림책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한 번만 그와 이야기해보면 단번에 그의 지고지순한 그림책 사랑을 느낄 수 있다.

특히 기억에 남는 일이 있다. 지난해 여름은 유난히도 비가 많이 왔다. 한 번 비가 내리기 시작하면 국지성 호우라 한꺼번에 쏟아지는 비의 양도 어마어마했다. 비가 억수같이 내리는 날 오후, 꼼짝 하지 않고 집에서 부침개나 해먹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무심히 SNS 소식들을 보던 중, 나는 깜짝 놀랐다.

 폭우를 맞으며 찍은 사진. 그림책에 대한 그의 열정에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폭우를 맞으며 찍은 사진. 그림책에 대한 그의 열정에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 민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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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찬기 대표'가 쏟아지는 비를 쫄딱 맞으며 큰 길 가운데 서 있는 사진을 올린 것이다. 비가 내리자 그는 그림책<비에도 지지 않고>를 번쩍 떠올렸고, 그 그림책을 홍보하기 위해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달려 나가 사진을 찍었다고 한다. 그의 열정에 탄성을 지르지 않을 수 없었다.

단순히 그림책을 많이 팔아 돈을 많이 벌기 위한 홍보 아이디어라고 보기에는 그의 열정이 너무 대단했다. 사랑에 빠지면 부끄러움이 없어지고 사랑하는 사람을 자꾸자꾸 자랑하고 싶어진다. 세상이 온통 분홍빛이 되어 행복한 미소도 절로 나온다. 비를 맞고 그림책을 들고 선 그의 미소가 그런 미소였다.

그런데 얼마 전 '비보'를 들었다. 그림책공작소 민찬기 대표가 크게 교통사고를 당해 병원에 누워있다는 것이다. 다행히 8일 만에 의식이 돌아왔고, 어깨뼈, 목뼈 등의 골절로 전치 16주의 중상을 입고 꼼짝도 못하고 누워있는 상태가 되었다고 한다. 지난해 겨울 둘째가 태어났다는 소식을 들은 게 얼마전인데... 둘째 출산의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그 힘으로 더욱 더 씩씩하게 1인 출판사의 길을 걷고 있던 터라 사고 소식이 더욱 안타까웠다.

장바구니에 다시 책을 담습니다, 쾌유를 기원하며

 1월 25일. 2018년 그림책공작소 첫 책을 소개한다는 공지 이후로 페이스북 페이지 소식이 끊겼다.
 1월 25일. 2018년 그림책공작소 첫 책을 소개한다는 공지 이후로 페이스북 페이지 소식이 끊겼다.
ⓒ 민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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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출판사는 대표가 출판의 모든 것을 혼자 감당해야 한다. 출간하고자 하는 책의 저자 섭외에서부터 인쇄, 출간, 출고, 마케팅에 이르기까지 무엇 하나 도와주는 이 없이 감당해야하기에 밤을 새워 일하는 경우도 다반사가 된다. 혼자 모든 일을 묵묵히 해내다가 이렇게 자리에 눕게 되니 지금 '그림책공작소'는 개점휴업 상태이다.

가족들의 걱정도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그림책 공작소'는 현재 가족 중에 한 분이 서점 출고만 겨우겨우 하는 중이라고 한다. 사실 '그림책공작소'는 도매상을 통한 거래도 하지 않고 있기에 유통도 쉽지 않은 상태다.

작은 출판사를 하는 지인들과 거래하는 동네 서점의 지인들, KBBY 국제아동청소년도서협의회가 십시일반 '그림책공작소' 돕기에 나서고 있다. 책을 주문하고 거래를 하던 통장으로 작은 정성과 격려의 말을 보내자고 한다. 한 달에 한 권씩 '그림책공작소' 책 사기, 도서관 서가에 '빠진 그림책공작소 책' 사 넣기 등도 제안을 하고 있다.

우리 집 책장에는 '그림책공작소'에서 출간된 모든 그림책이 꽂혀 있다. 좋은 그림책들이기도 하거니와 열정적으로 책을 내는 민찬기 대표와 1인 출판사를 응원하는 마음으로 한 권, 두 권 모았기 때문이다. 20권 남짓한 책들을 볼 때마다 금고에 돈을 채워 넣은 듯 뿌듯해지곤 한다. 그런데 어제는 인터넷 서점에서 그림책공작소 책을 3권 더 장바구니에 넣었다. 앞으로 대표님이 예전보다 더 활짝 웃는 모습으로 업무에 복귀하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앞으로 그림책공작소의 새 책이 나올 때까지 한 권 한 권 더 사들일 작정이다. 그림책공작소의 책이 모두 있지만 이렇게 또 사들이는 이유는 1인 출판사 '그림책공작소'가 부디 살아남길 바라기 때문이다. '민찬기' 대표님이 얼른 일어나시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참에 고군분투하는 멋진 1인 출판사들 모두의 선전도 기원해본다.

<비에도 지지 않고>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애니메이션 '은하철도 999'의 원작 <은하철도의 밤>을 쓴 미야자와 겐지의 시다. 민찬기 대표에게 이 시는 아주 특별한 시라고 한다. 블로그에 실린 민찬기 대표의 '편집일기'의 일부를 다시 옮겨놓고 읽으며 그가 이 '비에도 지지 않기'를 기도해본다.

"하루는 갑자기 큰비가 쏟아졌다. 강의실보다 가까운 도서관으로 뛰었지만 난 이미 쫄딱 젖어 있었다. 기왕에 도서관에 온 거 기특하게 책을 볼 생각에 서가로 가던 중, 누운 책 한 권이 보였다. 표지는 갈색 배경에 중절모를 쓴 남자가 있는데 제목은 일본어("미야자와 겐지 걸작선" 쯤이었으리라)였다. 보니 일본 문학(원서․총서) 서가였고, 다시 파라라락 넘기는데 반가운 활자가 보였다. 누군가 한글로 쓴 첫줄이 바로 "비에도 지지 않고"였다. <아는 것으로부터의 자유>를 처음 본 날처럼 한참을 서서 읽었다.

나는 그렇게 비를 피하려고 갔던 도서관에서, '비에도 지지 않고'를 처음 만났다. 이후 군대에서, 아파서 한참 동안 입원해 있을 때, 화가 날 때, 사는 게 지칠 때, 그리고 아버지를 보내드릴 때도… 늘 이 시가 떠올랐다. 언젠가 똑같은 표지의 한글판이 보여 샀는데 이 시는 없었다. 여기까지만 해도 기막힌 '내 인생의 시'라 하겠건만, 그림책이 좋아 당치 않게 출판사를 차리고 이 그림책을 다시 만났다. 야마무라 코지의 그림이 더해져 또 다른 파장의 울림이 왔다. 볼 때마다 다르고 그림 하나하나가 감동을 더해, 나는 '유아그림책', '마케팅접점' 같은 말들은 잊었다. 20년 동안 내가 받은 위로와 용기를, 지쳐 있거나 지칠지 모를 모든 분과 그저 나누고 싶었다."(그림책 공작소 블로그 https://blog.naver.com/challymin)

지금도 그가 '비에도 지지 않고'를 떠올리며 위로와 용기를 갖고 있을 거라 믿는다. 부디 민찬기 대표가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눈에도 여름 더위에도 지지 않는 튼튼한 몸으로' 다시 일어서시길 기도한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로 사고 소식을 듣고 민찬기 대표에게 연락을 취하실 분 많을 줄로 알아요. 그런데 그림책공작소 이웃 출판사 대표님 말에 따르면, 민찬기 대표님이 직접 소식을 전할 때까지는 '쾌유를 온맘으로 기원하고, 소장님에게 전화, 카톡, 페메를 하지 않으며, 병문안도 삼가한다'고 당부하셨어요. 부디 꼭 그러시길 바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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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좋아서 하는 편집. 출판 담당 기자로 '다다와 함께 읽은 그림책'을 연재하며 <하루 11분 그림책, 짬짬이 육아>를 펴냈습니다. ohmybook2016@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