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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모밀국수가 먹고 싶다가 어느 때는 순대가 먹고 싶다. 초밥이나 초무침 회가 생각날 때도 있다.'

한 달 전 넘어져 좌골수술을 받았던 친구 이야기다. 밥 때마다 '무얼 먹을까?' 고심한단다. 마치 입덧하는 임산부처럼 입에 맞는 음식 찾기가 어렵다. 발달된 의료기술 덕분에 수술 후 보름도 되지 않아 퇴원하고, 그런대로 잘 걷는다. '언제부터 걸을 수 있나'던 큰 걱정은 덜었다. 막상 걱정은 다른데서 생겼다. 식욕, 이른바 밥맛이 달아났다.

누구나 살다보면 밥맛 잃을 때가 있다. 감기, 배탈, 입원 등 몸이 병들었을 때이다. 마음이 병들 때는 몸이 병들 때보다 더 심각할 수 있다. 밥맛보다 먼저 살맛부터 찾아야 한다. 작가 박완서(1931~2011)는 57세 때 몇 주간이나 밥을 먹지 못했다. 먹는 대로 다 토했다. 남편과 외아들을 넉 달 사이에 잇달아 잃는 '참척(慘慽)의 슬픔'을 당한 때문이었다.

수도원에 가서 통곡과 불면의 나날을 지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밥맛이 돌아왔다. 그는 '참척의 일기' <한 말씀만 하소서>에 이렇게 썼다.

"어쩌면 주님이 그때 나에게 밥이 되어 오시었던 게 아닐까....중략...내 귀가 독선과 아집으로 꽉 막혀 못 알아들었을 뿐인 것을, 하도 답답해서 몸소 밥이 되어 찾아오셨던 거야. 우선 먹고 살아라 하는 응답으로,...중략...그날 이후 내 배는 영락없이 끼니때만 되면 고파왔다."


살맛은 밥맛에서 생겨난다

마음이 병들면 살맛을 잃는다. 우리는 며칠이라도 살맛을 잃어 본 적이 있는가? 살맛은 밥맛에서 생겨난다. 하루 세끼 밥 잘 먹고 똥오줌 잘 누는 일상이 얼마나 소중한지 밥맛 잃어본 사람이라야 깨닫는다. 끼니 때 영락없이 배가 고파오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다. 건강한 배를 가졌기 때문이다. 

건강한 배를 가졌으면서도 배를 채우지 못해 배고프던 시절도 있었다. 항상 빈 쌀독 걱정하며 밥벌이에 정신없던 시절이다. 그 땐 밥맛 잃을 틈도 없었다. 지금은 쌀독이 넘쳐나고 밥맛을 잃지 않았는데도 '입맛'을 찾아 헤맨다. 방송마다 '먹방(먹는 방송)','쿡방(요리하는 방송)'프로그램이 넘친다. 유명 맛집 앞에는 문 열기 전부터 수십 미터씩 줄이 선다. 유명 맛집 순례도 인기다.

'Meokbang'이라는 신조어는 새로운 한류로 각광을 받는다. 왜 다들 '먹는 방송'에 열광하는가? '혼밥족(1인 가구) 증가'가 '먹방 열광' 이유란다. 혼자 밥을 먹어야 하는 어떤 사람은 먹방을 틀어놓고 TV와 함께 밥을 먹는다.

어느 블로거는 '홀로 밥 먹어야 하는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라고 풀이한다. 외로움뿐일까. 성욕, 명예욕, 권력욕 등 다른 욕구가 채워지지 않은데 대한 불만해소책이라는 주장도 있다.

"모든 행복의 시작과 뿌리는 식욕의 즐거움이다. 심지어 지혜와 문화까지도 이것으로 귀착된다."

쾌락주의 철학자 에피쿠로스(BC341~BC271)가 한 말이다. 그러나 그는 식도락가가 아니었다. 에피쿠로스는 빵과 물만 마시는 질박한 식사에 만족했다. '무엇을 먹고 있느냐 보다 누구하고 식사를 하고 있는가'를 더욱 중시했다.

2천 년 전이나 지금이나 식욕에 대한 진리는 변함이 없다. 혼밥이든, 먹방이든, 질박한 반찬이든, 기름진 음식이든 끼니 때마다 배고파지는 식욕이 즐거움과 행복의 원천이다. 몇 년 전 강원도 여행 갔을 때 속초에서 이름난 닭 강정, 씨앗 호떡을 먹기 위해 줄을 서 본 적이 있다.

재래시장 안에는 닭 강정, 호떡집이 여러 집 모여 있었지만 줄 서는 곳은 유명 맛집 뿐이었다. 줄지어 서서 기다리며 거기에서 얻은 '입맛'은 배고파지는 식욕에 덧붙인 추억이었다. 지금도 그 추억을 되새기면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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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리 어려운 문제도 글로 쓰면 길이 보인다'는 가치를 후학들에게 열심히 전하고 있습니다. 인재육성아카데미에서 '글쓰기특강'과 맨토링을 하면서 칼럼집 <글이 길인가>를 발간했습니다. 기자생활 30년(광주일보편집국장역임), 광주비엔날레사무총장4년, 광주대학교 겸임교수 16년을 지내고 서당에 다니며 고문진보, 사서삼경을 배우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