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은행 대출 창구 앞에 섰다. 당장 다음 달이면 만기가 도래하는 전세대출을 연장하기 위함이다. 내가 가진 거라곤 월 백이 안 되는 학원 강사직 소득 증명 서류와 그간 깨끗이 유지해 온 이자 납부 내역이 전부다.

서류를 받아든 행원의 표정이 바뀔 때 마다 공연히 심장이 쿵 하고 떨어진다.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사족을 달고 싶다. 외치고 싶다. 전 원래 탄탄한 직장에 다녔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퇴사한 '자발적 백수'라구요! 라고.

쓸데없는 인정욕구라고 자조할 때 즈음이었다. 행원이 무미건조하게 서류를 몇 장 내밀었다.

"형광펜으로 표시된 부분 사인 하시고 기다리세요. 승인 심사가 좀 걸려서요."

시키는 대로 사인을 했다. 멀찍이 떨어진 소파로 가서 앉았다. 이젠 기다려야 했다. 앉은 자리가 유난히 딱딱하게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나를 키운 건 8할이 대출이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를 키운 건 8할이 대출이기 때문이다
ⓒ pixabay

관련사진보기


몇 년 전, 혹은 십수 년 전에 내 부모도 이 의자에 앉았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나를 키운 건 8할이 대출이기 때문이다. 내 학창시절은 한창 특목고, 조기유학 광풍이 불던 시기였다. 내 부모님은 집안 사정이 어려워도 꿈은 가난할 필요가 없다고 말하곤 했다. 그 '가난하지 않은 꿈'에는 늘 비용이 따라다녔다.

내 어머니는 부정교합 탓에 평생을 마음 놓고 활짝 웃어 보지 못했다고 말하곤 했다. 그는 내게는 그런 콤플렉스를 갖지 않게 해주겠다 했다. 그 약속 또한 비용이 따랐다. 그래서 나의 가난한 부모는 이 의자에 몇 번이고 와 앉았다. 그들의 딸이 해외 어학연수를 받고, 치아 교정을 하고, 사교육을 받고, 사립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서울의 사립 대학에 입학하는 동안, 딸의 나이만큼 유구한 대출의 역사가 쌓였다.

대출은 지렛대 효과의 연장이다. 순수 자기 자본을 투입했을 때보다 타인 자본을 낄 때 더 큰 아웃풋을 창출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내 부모에게 나는 그 기대 아웃풋이었다. 자기 자본이 없던 그들은 매번 온 힘을 쥐어짜 지렛대를 들었다.

지렛대의 반대편에는 철모르는 아이의 꿈이 있었다. 유년시절 충족되지 못했던 부모의 욕구가 있었다. 내 아이는 특별할 것이라는 눈먼 기대가 있었고, 광적으로 과열화된 사교육 바람에의 편승 심리와 내 자식만 뒤처지면 어떡하나 두려워한 젊은 부모의 불안이 있었다.

그 결과 나는 영어를 잘하고 썩 괜찮은 대학을 졸업했으며 가지런한 치아를 드러내고 활짝 웃는 이 땅의 수많은 이십 대 여성 중 한 명이 됐다. 그리고 지금, 청년 실업 인구의 구성원이 되어 취업 준비 기간 거처할 보금자리를 유지하기 위해 이곳에 앉아 있는 것이다.

한참을 생각에 잠겨 있는데 아까의 행원이 내 이름을 불렀다. 종종 걸어 데스크로 갔다. 다행히 대출 연장 승인이 떨어졌다. 후, 간신히 한숨 돌렸다. 감사합니다, 하려고 하는데 문득 무엇이 감사한가 생각했다.

나서는 길에 보니 내가 앉았던 의자에 부부로 보이는 남녀가 앉아 있었다. 딩동, 창구가 비었음을 알리는 알림음과 함께 그들이 창구로 나아갔다. 생각했다. 저들은 누구의 꿈을 들어 올리고자 하는 걸까.

가계 부채가 1400조를 넘겨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오늘 자 신문의 헤드라인이 떠올랐다. 지금 이 순간엔 또 얼마나 많은 꿈들이 대출되고 있는 걸까.


태그:#가계 부채, #대출, #은행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