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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은덕, 백종민 작가
 김은덕, 백종민 작가
ⓒ 황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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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김은덕과 남편 백종민은 결혼을 하며 결혼 선언문을 썼다. 결혼 선언문 첫 항목은 '독립된 개체로서 평등하게 살겠다'. 전업 작가인 두 사람은 집안 일도 '평등하게' 배분하려 노력했다. 평등해지는 일이 쉽지만은 않아서 싸우기도 많이 싸웠다. 하지만 싸움을 포기하지 않았다. 부부의 목표는 한 사람의 희생이 전제된 평화로운 결혼 생활이 아닌 두 사람 모두 행복한 결혼생활이었기 때문이다.

부부는 "'사랑'을 포기하는 대신, 싸우더라도 사랑하며 살"기로 한다. 상대방이 화가 났거나 섭섭해하면 상황을 모면하려 하는 대신 상대를 앉혀 놓고 '왜 그러느냐' 묻는다. 부부의 대화는 피상적이지 않다. 상대의 내면으로 파고들어 아내의, 남편의 감정을 다독인다. 아침엔 꼭 15분씩 껴안고 이야기를 나눈다. 이 15분 동안 둘은 "오로지 서로에게만 몰두한다." 

결혼 초엔, 두 사람이 합심해 평등을 향해 달려가면 곧 평등해질 줄 알았다. 하지만 가부장적인 결혼 제도가 두 사람이 이룩하려던 평등을 야금야금 훼손해왔다. 부부는 평등할 수 없어 불행했다. 부부는 말한다. "결혼이라는 제도 안에 갇힌 우리는 자주 불행했다." 결혼한 부부에게 기대되는 행동과 태도를 따르려 하니 화가 나는 일이 많았다. 특히, 강요된 성역할에 은덕이 많이 힘들어했다.

은덕은 요구하기 시작했다. 여성 비하의 의미를 담고 있는 며느리라는 호칭, 도련님이란 호칭을 거부했다. 시부모님께 '상냥한 자식 노릇'하기도, '딸 같은 며느리'되기도 거부했다. 은덕의 요구에 종민도 서서히 변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불행하다면 본인이 변해야겠다고 생각했다.'상냥한 자식 노릇'은 직접 하기로 했다. 아내에게 며느리 역할을 강요하지도 않게 됐다. 남편 백종민은 이제 이렇게 말하는 사람이 됐다.

"당신은 더 많이 요구해도 되는 것이 아니라 더 많이 요구해야 겨우 사랑다운 사랑을 할 수 있다. 행복한 관계는 끊임없는 요구로 얻어지는 것이지 당신의 인생에 주어지는 선물이 아니다." - 백종민, <사랑한다면 왜>


부부는 각자의 집엔 각자가 연락하기로, 명절엔 양쪽 집에 번갈아 가기로, 친인척 모임에서 빠지기로 합의했다. 관습이 부부에게 요구하는 역할에서 벗어나 서로에게 좋은 사람이 되는 데 집중하기로 했다. '그럭저럭 좋아 보이는 결혼 생활'이 아닌 '정말 좋은 결혼 생활'을 위해서라면 언제라도 싸울 준비가 되어 있는 부부. 김은덕, 백종민 부부를 충무로 한 카페에서 만났다.

- <사랑한다면 왜>라는 책 제목은 어떻게 정해진 건가요. 요즘에는 제목이 내용을 다 말해주는 책이 많은데, 이 책은 그렇지 않아요.

종민 > "사랑한다는 이유로 많은 선택을 하잖아요. 남자니까 이런 선택, 여자니까 이런 선택. 그런데 이런 선택들을 할 때 그냥 남들도 그러니까, 다른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또 고정관념에 의해 '쉬운 선택'들을 하게 되는 것 같아요. '쉬운 선택'들이 우리의 행복을 약속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죠. 그래서 '사랑한다면' 선택을 하기 전에, 어떤 행동을 하기 전에, '왜'라고 질문을 던져봐야 하지 않을까 하는 거예요."

- '쉬운 선택'이 뭔지 여쭤볼게요. 여자이기 때문에 하는 쉬운 선택들은 뭐가 있고, 남자이기 때문에 하는 쉬운 선택에는 뭐가 있을까요.

은덕 > "책에서 많이 이야기했는데요. 결혼할 때 여자가 남자에게 가장 기본적으로 바라게 되는 게 '수준' 같아요. 저 남자가 '날 어느 정도 살게 해줄까' 같은 거요. 이런 생각이 우리를 '쉬운 선택'으로 이끄는 게 아닐까. 그런데 이런 사람을 원할 게 아니라 내 성장을 강렬하게 바라고, 또 서로 이끌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야 하는 게 아닐까 하고 저는 생각해요."

종민 > "결혼 생활에서 당연하게 받아들여지는 성역할이 있잖아요. 간단하게는, 주방 일은 아내가, 쓰레기 버리는 일은 남편이. 왜 부엌일은 꼭 여자가 해야 하는지, 왜 남편은 하면 안 되는지, 한 번 더 물어보는 거예요. 결혼 생활에서 맞닥뜨리는 조그마한 일들에도 의문을 품어가며 하나하나 어렵게 선택해 가는 거죠."

- 결혼 전에 두 분 다 비혼주의자였어요. 결혼 제도나 결혼 생활에 환상을 품고 있지 않았다는 말로 이해돼요. 그런데 서로를 만나 마음을 바꾸신 거잖아요. 상대에게 어떤 매력이 있었는지? (웃음)

은덕 > "(웃음) 종민 씨가 권위적이지 않아서 좋았어요. 종민 씨의 약자를 대하는 태도, 세계관이 저와 너무 딱딱 잘 맞는 거예요. 어쩌면 이 사람과는 결혼해도 되겠다, 하고 생각했어요."

종민 > "저는 상대방이 결혼에 관해 너무 큰 환상을 품고 있으면 안 될 것 같았어요. 그런데 은덕 씨와 이야기를 하니까 이 사람은 결혼에 환상이 전혀 없는 거예요. 이 사람에게 결혼은 현실이구나, 그러면 이 사람과 이야기를 통해 결혼에 대해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이나 생각들을 잘 풀어갈 수 있겠구나, 하고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바로 알았죠. 내가 결혼을 한다면 이 사람이랑 하겠구나."

"결혼, 우리 둘 이외의 것들 생각하면서 힘들어졌죠"

- 환상 없이 결혼했지만, 결혼 생활에 관해 무지하지도 않았지만, 막상 결혼하고 보니 정말 쉽지 않았던 거잖아요.

종민 > "우리 둘만 생각해야 하는 게 아니라, 집안과 집안의 만남이잖아요, 결혼이라는 게. 우리 둘 이외의 것들을 생각하면서 힘들어진 거죠."

은덕> "결혼 선언문에 '독립된 개체로서 평등하게 살겠다' 하고 쓸 때만 해도, 가부장적인 결혼 제도 때문에 우리의 평등이 깨질 거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어요. 결혼 선언문을 작성할 때 우리는 '우리 둘 사이의 평등'만을 생각했어요."

종민> "제 부모님이 가부장적인 분들이 아니라서 더더군다나 생각하지 않았던 거죠."

은덕>
"그런데 이게 부모님이 좋고, 나쁘고의 문제가 전혀 아니더라고요."

종민> "우선, 부모님이 생각하는 결혼의 모습과 우리가 생각하는 결혼의 모습이 너무 다르다 보니까 설득이 쉽지 않았어요. 먼저 용어 자체가 문제니까요. 며느리나, 시댁 같은. 저희는 부모님의 세계와 우리의 세계가 완전히 다르다는 이해부터 시작했어요. 그리고 부모님에게 우리의 세계를 보여드리는 게 먼저겠다 싶어서 여러 가지를 시도했던 거지요. 그리고 그 시도들이 쉽지 않았던 거고요."

- 호칭을 바꾸는 게 시작이었던 건가요.

"이 집에서 '며느리'로 불린다면 한 개인으로서 존중받기를 원했던 나의 바람은 물거품처럼 사라질 것 같았다." - 김은덕, <사랑한다면 왜>


은덕> "결혼하고 나서 시부모님께 며느리란 호칭을 안 써주셨으면 좋겠다고 말씀드렸어요. 시부모님도 '그게 그런 뜻이었어?'하고 놀라시면서 찾아보시더라고요. 찾아보니 꼭 나쁜 뜻만 있는 건 아니라고 말씀하시긴 했어요. 그래도 제가 며느리란 호칭을 들으면 마음이 불편하다고 했더니 알았다고 해주셨어요."

종민> "사실 지금도 난감해하세요. 며느리란 단어가 평생 살면서 입에 붙은 거잖아요. 그런데 마땅히 쓸만한 대체 단어를 알려주지는 않고 싫다고 하니까요. 지금은 은덕이에게 은덕이라고 부르는 데 친척들하고 있을 때는 이름 부르는 게 안 되는 거예요. '은덕이가' 하고 말하면 친척 어른들이 '은덕이가 누구야'하는 식이죠. 누구네 첫째 며느리, 누구네 조카며느리, 이런 식으로 말해야 누군지 아니까요. 저희 부모님만 설득해선 되는 문제가 아니었던 거예요. 친척들이 다 관련 있는 거죠."

- 다행히 시부모님은 은덕님의 의견을 긍정적으로 받아 주셨는데요. 아직 이 사회는 '며느리'가 무언가를 요구하는 순간 분위기가 살벌해지는 경우도 많잖아요. 갈등이 폭발하기도 하고요. 갈등이 생길까 봐 두려움은 없으셨나요?

은덕 > "1년 정도는 저도 '며느라기' 시절을 겪은 것 같아요. 시부모님에게 예쁨 받고 싶었고, 나 때문에 웃으셨으면 좋겠고, 좋은 사람이 들어왔다고 생각하셨으면 좋겠다. 그런데 시가에서 좋은 게 좋은 거다 하며 웃다가 집에 오면 내가 왜 그래야 하지, 하고 생각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때 집에 와서 종민 씨를 많이 괴롭혔어요."

종민 > "그럼 저는 그걸 왜 나한테 말하냐, 부모님에게 직접 말하면 되지 않느냐, 했던 거죠. 나중에야 은덕이가 말하기 어려운 입장이라는 걸 이해했어요. 결혼 제도에서는 나와 은덕이의 위치가 다르구나. 지금 이 상황에서 나서야 하는 건 은덕이가 아니라 나구나."

 책 <사랑한다면 왜>
 책 <사랑한다면 왜>
ⓒ 김은덕백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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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모와 아내 사이에 의견 충돌이 생기면 보통 남편들은 적극적으로 그 충돌 속으로 들어가는 게 아니라 마치 제 3자인마냥 훈수를 두거나, 아니면 아예 뒤로 숨어버리잖아요. 그런데 종민 님은 안 그러셨어요. 어떤 생각을 하신 건가요?

"결국 문제의 핵심은 나에게 있었다. 은덕의 세계와 엄마의 세계를 이어 붙인 장본인은 그 누구도 아닌 나였음에도 연결만 시켜 놓고 매개자의 책임은 지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두 사람이 현명하게 잘 해결해 주기만을 바라고 뒤로 숨은 내가 문제였다. 그동안 내가 원한 건 연극 한 토막에 불과했다. 부모님과 함께하는 하루 이틀만 연기하듯 넘기면 모두가 행복감을 느낄 것이라는 착각이었다." - 백종민, <사랑한다면 왜>


종민 > "부모님 댁에 다녀오면 행복하지가 않잖아요. 나한테 다 소중한 사람들인데. 어쨌든 내가 이 두 세계를 이어 붙인 장본인이니까 내가 책임을 져야 하겠다고 생각하게 된 거죠. 그래서 은덕이에게 행동을 강요하지 않고, 제가 행동했어요. 내 부모님에게 잘 해야 하는 건 은덕이 아니라 저라고 생각을 바꿨어요. "

-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아내는 지치지 않고 요구하고, 남편은 그 요구에 대해 짜증내고 심통 부리다가 결국 '아내의 요구가 정당하다'하고 판단되면 요구를 받아들이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어요. 결혼 생활에서 요구하고, 요구받고, 갈등하고, 싸우는 게 '사랑다운 사랑을 위해' 필요하다고 보신 거죠?

은덕 > "제 주위에도 안 싸우는 부부들이 많아요. 그런 분들을 보면 우리가 임계점이 낮은 사람인가, 우리가 너무 예민한가, 싶을 때도 있어요. 한 편으론, 그분들은 정말 괜찮은가, 정말 행복한가, 싶을 때도 있고요. 저희의 싸움은 끝까지 파고드는 거예요. 뭐가 그렇게 서운한지, 억울한지. 사실 싸우다 보면 참 피곤하거든요. 그래서 피하고 싶어요. 사실 제 성격은 원래 싸움이 벌어질 것 같으면 피하는 쪽이었어요. 싸우는 걸 힘들어했거든요. 그런데 종민 씨는 저를 딱 앉혀놓고 이야기를 해보자 하는 성격인 거예요. 저를 끌고 가요 끝까지. 어디에서 화가 났는지. 그런데 제 이야기를 들으면 이번엔 종민 씨가 화가 나요. 그런데 이렇게 싸우고 대화하고 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갈등이 풀어져 있더라고요."

- 책에 싸우는 이야기가 많이 나오니까 독자분들은 두 분이 싸우는 걸 원래 좋아하는 줄 알 것 같아요. 그런데 원래는 안 그런 거네요.

은덕> "네, 저는 싸울 기미가 보이기만 하면 도망가는 사람이었어요. 그런데 종민 씨가 잠도 못 자게 하면서 싸우자고 하는 거예요. 정말 힘들었어요. 그런데 종민 씨, 왜 그러는 거야?"

종민> "은덕씨가 어떤 마음인 줄 알지 못하면 나중에 또 문제가 발생할 거 아니에요. 지금 풀지 않으면 문제는 반복돼서 나올 거고, 그때는 지쳐서 얘기조차 나누지 않게 될 테고요. 사랑하고 있을 때, 힘이 있을 때, 이 문제를 끄집어내서 서로 고치는 게 맞다고 생각하는 거죠."

- 맞는 말 같은데요? (웃음)

은덕 > (웃음) "그렇네요."

- 싸우다 보면 더 관계가 악화될까 봐 싸움을 피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싸움에도 기술이 있을까요?

종민 > "저희는 싸울 때 그 날을 안 넘겨요. 4시간 안에는 해결을 봐요. 4시간을 넘어가 봐야 똑같은 감정싸움이 반복될 뿐이고 해결하지 못해요."

은덕 > "또 하나 약속한 게 있는데요. 화가 난다고 절대 부모님 집으로 도망가지 않는 거예요."

-4시간 땡 하면 화가 절로 풀리는 건 아니잖아요.

종민> "아, 그 4시간 동안 대화하는 거예요. 밀도 있게."

- 니체가 '결혼은 긴 대화다. 결혼하기 전에 이 여자(남자)와 늙어서도 여전히 대화를 나눌 수 있을지를 물어라'하고 말했거든요. 두 분은 대화만큼은 자신 있을 것 같아요. 

은덕 > "결혼 생활에서 대화는 매우 중요해요. 대화에 알맹이가 있느냐 없느냐, 유머가 있느냐 없느냐도 대단히 중요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 대화가 재미있어야 해요. 저는 종민 씨랑 이야기하는 게 가장 재미있어요."

종민 > "저도 그런데요. 제일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게, 서로 책을 같이 읽거든요. 같이 책을 읽으면서 서로 어떤 생각을 했는지 주고받잖아요. 어쩔 수 없이 책을 읽으면 사람이 성장하기 마련인데, 둘 다 같이 성장하다 보니까, 이야기가 계속 재미있는 거예요."

 부부는 일년에 두세달 함께 여행을 하고 예스 24에 여행기를 연재한다. 이 사진은 스페인 빌바오에게 찍었다.
 부부는 일년에 두세달 함께 여행을 하고 예스 24에 여행기를 연재한다. 이 사진은 스페인 빌바오에게 찍었다.
ⓒ 김은덕백종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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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에 집안일에 관한 이야기가 많아요. 집안일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종민 > "저희는 각자가 좋아하는 일을 해요. 일의 양이 많더라도 좋아하는 일을 하면 덜 힘들잖아요. 은덕 씨는 주방에 들어가는 걸 매우 싫어해요, 그래서 제가 하고요."

은덕 > "저는 주방에서 하는 일이 정말 재미가 없어요. 대신, 쓸고 닦고 쓰레기 배출하는 게 훨씬 나아요." 

- 저는 이 책이 '남편 성찰기'로 읽히기도 해요. 가부장적인 결혼 제도에서 두 사람이 평등한 관계를 유지하려면 변해야 하는 사람은 남편이고, 변하려면 고민하고 갈등하고 성찰해야 하잖아요. 그리고 종민 님이 바로 이 성찰을 하고 있더라고요. 성찰 끝에 이렇게 말하죠. 

"은덕의 요구를 줄기차게 받으며 깨달은 바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상대방의 요구가 조금 지나치다 싶을 때에야 비로소 내가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다는 점이다. 은덕의 요구가 계속되지 않았다면 나는 결코 변하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한 가지는, 은덕과 내가 둘 다 만족스럽게 살아가려면 한평생 사회적 기득권자로 살아온 내가 훨씬 더 많이 변화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백종민, <사랑한다면 왜>


- 여전히 성찰 중이시고 변화 중이시죠?

종민> "그럼요, 끝이 없죠. 저 역시 가부장적인 문화가 제 안의 어디까지 영향을 미친 줄을 몰라요. 그래서 계속 긴장하고, 양팔 저울이 한쪽으로 기울지 않도록 노력하며 살고 있어요. 기본적인 자세는, 아 내가 지금까지 실수하고 있었구나, 내가 몰랐었구나 인정하는 거, 이게 시작인 것 같아요.

지금 많은 남자들은 이 상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들 나름의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는 요즘 왜 이렇게 여자들이 목소리를 높이는지 이해할 수 없을 거예요. 이 생각의 틀을 깨기가 참 힘들 거라고 생각해요. 남자들이 왜 남자들이 변해야 한다고 하는 목소리에 알레르기를 일으키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어요. 돌파구를 주지 않고, 퇴로를 주지 않고, 몰기만 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너네가 나빴어, 얼른 변해,라고만 이야기하니까 반발심만 생기고요. 변화의 가능성을 함께 이야기하는 게 먼저여야 하지 않을까 싶어요. 제 짧은 견해입니다.(웃음)"

- 결혼 7년 차시죠. 이제 충분히 평등해졌다고 생각하시나요?

종민 >
"평등이라는 게, 저 멀리 보이는 언덕만 넘어가면 고지를 탈환하듯 얻어지는 건 줄 알았어요. 하지만 해보니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예요. 그런데 이걸 어떻게 감당해야 하냐면 어차피 밑이 빠져 있잖아요. 그러니까 계속 물을 불 수밖에 없는데 두 사람이 합심해서 힘을 기르면 빠지는 속도보다 더 빨리 붓게 되는 거죠."

- 사실 가부장 문화가 없더라도, 삼십 년 이상 다른 생활 방식을 누려왔던 두 사람이 같이 살려면 부딪힐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잖아요. 수도 없이 부딪힌 끝에 '상대의 방식 인정하기', '상대가 이해할 때까지 기다리기'를 실천하고 있다고 말씀하셨어요.

은덕 > "종민 씨는 제가 부엌에 들어갈 때까지 3년을 기다렸어요."

종민 > "강요하지 않고 내가 하다 보면, 그리고 그게 좋은 거라면 은덕 씨도 따라오겠죠. 안 좋은 거면 당연히 안 따라오는 거고요. 우리가 기계가 아니잖아요. 효율성만 생각해선 살 수가 없어요. 효율성만 생각하면 상대가 이쪽으로 얼른 안 오면 화를 내게 되거든요. 그때 화를 내지 않고 상대를 기다리는 거예요."

은덕 >
"강요만 하지 않으면 참 좋을 것 같아요. 간단한 예로, 전기밥솥 내솥을 닦는 방법이 있잖아요. 그걸 수세미로 박박 닦으면 안에 흠집이 생겨요. 제가 수세미로 닦았거든요. 종민 씨는 제 방법을 인정해서 아무 말 안 한 거예요. 그런데 제가 보니까 물을 넣어 놨다가 살살 닦는 종민 씨 방법이 더 좋은 거예요. 그래서 제가 제 방법을 바꿨죠."   

- 책을 3,4년 차 부부가 읽으면 좋겠다고 하셨어요. 왜죠?

종민 > "저희 경험 때문에요. 3,4년 차 정도 되면 신혼이 끝나고 현실을 보게 될 텐데, 그러면 아마 많이 싸우게 될 거예요. 싸우다 보면 내가 왜 싸우지 싶을 테고요. 그때 싸움에 이런 방법도 있다, 하며 저희 책을 읽었으면 좋겠어요."

은덕 > "자기가 왜 화가 나고 불편한지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이 있어요. 그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 책을 만나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그리고 아내, 남편이 함께 읽었으면 좋겠고요. 남편들은 보통 본인이 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가 괜찮은 사람일 순 있지만, 결혼 생활에선 그게 다가 아니거든요. 외부의 평판이 결혼 생활을 행복하게 해주진 않아요. 또, 여자분들 가운데는 내 남편이 나를 참 사랑하고 시부모님도 내가 사랑하는 남편을 낳아주신 좋은 분들인데 내가 이런 마음을 가지면 안 돼 하며 자책하는 분들이 있거든요. 그분들에게 알려주고 싶은 거예요.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는 것과 아내가 결혼 제도 안에서 불행한 건 별개의 문제라고요. 제도가 불합리해서, 문화가 여자에게 특정 역할을 강요해서, 힘이 드는 거라고요."

- 이 책을 쓰기 전과 후, 두 분의 결혼 생활은 뭐가 달라졌나요?

은덕 > "덜 싸워요. 화가 나는 지점이 글로 드러나 있으니까 이젠 이 상황에서 종민 씨가 화가 날까, 안 날까 생각할 필요가 없어졌어요. 화가 나는구나 하고 확실히 알았으니까 그런 상황을 덜 만드는 거죠."

종민 > "감정적으로 쓴 글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하나하나 생각하면서 쓴 글이라서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됐어요."

은덕 > "예전보다 종민 씨를 더 사랑하게 됐고요."

종민 > "엇, 내가 먼저 말했어야 하는데."

은덕> "예전에는 내 이상향과 맞고, 세상을 대하는 태도가 맞아서 결혼을 했다, 정도였거든요. 그런데 요즘은 점점 더 사랑의 깊이가 깊어진다고 느껴져요. 확신이라는 건 안 좋은 건데, 저는 종민 씨가 정말로 이 불확실한 세상에 저의 유일한 확실한 존재가 된 것 같아요."

- 마지막으로 결혼을 결정한 분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을까요?

은덕 > "제 생각은 싸우고 갈등하고 해결해나갈 의지가 강렬하지 않다면, 관계에 온 마음을 다해 집중하지 못할 것 같다면, 혼자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해요. 정말 정말 힘들어요, 서로 다른 존재가 함께 사는 일은."

종민 > "결혼하려고 마음을 먹었다면 상대방이 나의 자아를, 나의 성장을 이끌어줄 수 있는지도 생각해 봤으면 좋겠어요. 결혼할 때 상대방의 연봉, 직업, 부모님의 경제적 능력 등을 많이 보잖아요. 그러면 그저 본인의 가치를 화폐와 맞바꾸는 것뿐인 거죠. 서로 의지할 수 있나, 함께 성장할 수 있나, 이걸 보셨으면 좋겠어요."

덧붙이는 글 | <사랑한다면 왜>(김은덕 백종민/어떤책/ 2018년 01월 30일/ 1만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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