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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효리네 민박'. 겨울에도 변함없이 아름다운 제주 그리고 효리 부부의 삶을 보며 '제주앓이'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제주 한달살기, 제주 이주에 대한 관심도 다시 높아지고 있는데요. 제주에 실제로 살았던, 현재도 살고 있는 이들에게 환상 속 제주가 아닌 ‘리얼 제주’ 이야기를 들어 봅니다. [편집자말]
 JTBC <효리네 민박2>
 JTBC <효리네 민박2>
ⓒ JT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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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확히 월요일 오전 9시부터 주말을 기다렸지만, 막상 특별할 것 없는 주말 오후는 무료하기 짝이 없다. 슬렁슬렁 방에서 나와 소파에 앉아 TV를 켠다. 리모컨을 들고 몇 번이고 같은 숫자를 누르고, 오르락내리락 채널을 돌려본다. 우르르 외국인이 나와, 제주의 전통시장을 누빈다.

예능프로그램 <어서와~ 한국은 처음이지?>엔 '제주 편'이 방송되고 있었고 그들은 제주 미식여행 중이라고 했다. "어? 저기 나도 아는 식당인데." 그리고 다른 채널에선 여름에서 겨울로 바뀐 <효리네 민박2>가 재방송을 하고 있었다. "그래, 너로 정했어!"

생각해보면 제주가 이렇게 '핫'했던 적이 있을까 싶다. 올레길이 조성되고 걷기 열풍이 불었던 2007년? 기껏해야 그 정도 떠오른다. 그리고 제주는 다시 제2의 제3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심지어 얼마 전까지만 해도 조용하고 아늑했던 선인장 마을인 '월령리'에선 예능인 강호동 씨가 본인 얼굴만 한 왕 돈가스를 팔기도 했다. 조용하게 해안산책 하기 좋은 곳이었는데, 이제는 그마저도 어렵게 됐다.

수도꼭지를 틀면 수돗물이 나오듯, TV를 틀면 제주가 나온다. 제주는 끊임없이 소비되고 있고 제주의 사계절을 이제는 안방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됐다. 제주가 재고가 부족할 정도로 소비되는 건, 그만큼 찾는 사람들이 많아서겠지.

그도 그럴 것이, 희희낙락 방송을 보다가도 <효리네 민박>에 담긴 제주를 보면 나 역시 말을 잃는다.

'제주가 이렇게 아름다웠나?'

세번의 탈출 시도

 신흥 해안도로에서 본 일몰과 한라산
 신흥 해안도로에서 본 일몰과 한라산
ⓒ 오성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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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도봉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우도봉에서 바라본 성산일출봉
ⓒ 오성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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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악산에서 바라본 산방산 풍경
 송악산에서 바라본 산방산 풍경
ⓒ 오성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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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길리'가 있는 제주의 서쪽, 그리고 내가 사는 에메랄드 빛 바다가 눈부신 동쪽, 한라산을 기준으로 나뉜 북쪽과 하루라도 먼저 꽃이 피는 남쪽 서귀포까지. 어느 방향으로 고개를 돌려도 제주는 감동이다.

여기에 바람이 휘감아 도는 360여개의 크고 작은 오름하며, 생명 숲 곶자왈과 5만년의 시간을 고스란히 간직한 하논 분화구는 제주를 더욱 제주답게, 풍요로운 섬으로 만든다.

TV속 제주를 보고 있으면 제주에서 나고 자란 나도 제주에 살고 싶다. 제주에 살고 있으면서 무슨 소리냐 하겠지만, 집에 있는데도 집에 가고 싶은 심정이랄까.

제주는 '섬'이니까, 나는 '섬사람'인 거고 가끔은 그게 답답해 육지(제주 사람들은 제주 외의 도시를 '육지'라고 부른다. 생각해 보면 내가 딛고 있는 이 땅도 '바다'가 아닌 '육지'인데 말이지)로 탈출하고 싶었다.

말이 좋아 로맨틱 아일랜드지,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어 예부터 제주는 고립의 땅이었고, 유배의 땅이었다. 제주를 그저 환경 좋고 넓은 감옥처럼 느꼈던 어릴 적 나는 조금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야겠단 생각밖에 없었다.

그리고 드디어 첫 번째 탈출을 시도한다. 그것은 대학수학능력시험. 여느 친구들과 마찬가지로 'In 서울'을 꿈꾸며 고3시절을 보냈다. 유일하게 묵인되고 인정되는 첫 탈출의 기회다. 하지만 보기 좋게 낙방했고, 두 번째 기회를 노릴 수밖에 없었다. 두 번째 기회는 대학 졸업과 동시에 찾아온다. 친구들 중 몇이 서울로 취업을 한다.

나는 운이 좋은지 어떤지 제주에서 취업을 하게 됐다. 좋아하는 일이니 더 없이 기뻤지만, '서울 살이'는 또 뒤로 미뤄졌다. 세 번째 기회는 서울 남자를 만나 결혼하는 거? 하지만 이것이야 말로 지금의 나에겐 로또보다 어렵겠다. 이로써, 일생일대 3번의 탈출기회는 모두 물거품이 되었다.

항상 목표는 서울이었고, 서울은 꿈이자 성공이었다. 이제와 생각해 보면 나의 목표는 단순히 '서울'이었고, 서울 그 '다음'은 없었던 것 같다. 서울에 가서 누구와? 뭘? 어떻게? 왜? 패기와 열정엔 박수를 보내지만, 얼마나 어리석고 같잖은 생각이었는지 모른다.

'힐링의 섬' 제주

지금은 제주가 그냥 좋다. 사람 사는 게 다 비슷하다고 서울이든 제주든 치열하긴 마찬가지고 팍팍하긴 매한가지다. 가끔 여행을 가거나 일이 있어 제주를 떠났다 돌아오면 여기만 한 곳이 없구나, 여기가 내 집이구나, 싶은 마음이 든다.

지하철을 기다리고 막히는 도로에서 '왜 내 차선만 꿈적도 하지 않는 거지?' 길에다 시간을 쏟아 버리는 것 같은 기분이 들다, 차를 타고 10분만 나가면 바다를 볼 수 있다는 게 참 고맙다. 빌딩 사이 비좁게 보이는 하늘이 아니라 탁 트인 하늘을 볼 수 있고, 사계절 내내 마음껏 꽃을 즐길 수 있는 제주가  좋다.

 가시리 녹산로. 유채와 벚꽃의 어울림
 가시리 녹산로. 유채와 벚꽃의 어울림
ⓒ 오성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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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별오름 억새
 새별오름 억새
ⓒ 오성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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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제주에 살면 바람의 방향이 어떻게 바뀌는지, 계절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디쯤에서 끝나는지 알게 된다. 유채와 벚꽃 사이에서 봄을 맞이하고, 소담스럽게 핀 수국에서 여름을 보내고, 가을 은빛 억새와 겨울 붉은 동백을 헤집고 다니면 말 그대로 저절로 '힐링'이 된다. 제주는 내게 더 이상 탈출을 꿈꾸는 섬이 아닌, 오롯이 충만함을 가져다주는 힐링의 섬이다.

제주에 사는 나도 <효리네 민박>을 보며 감탄하고 힐링하고 넋이 나가는데, 육지에 사는 사람들(우리는 '육지것'이라 부르기도 한다)은 오죽할까. 이상향 같은 꿈의 섬으로 보이기도 하겠지?

제주로 이주하는 사람들이 늘고, 귀농귀촌으로 인생설계를 다시 하는 사람들이 제주를 찾는 것도 이런 이유로 시작되지 않았을까. '제주 한 달 살기'가 열풍인 이유도 크게 다르진 않겠지.

새 출발이 됐건, 삶에 회의를 느껴 떠밀려오듯 제주를 찾았든 그들은 이곳에서 자신들이 쫓던 파랑새를 찾았을까? 어떤 이는 잘 정착해 살고 있다 하고, 또 어떤 이는 적응을 못 해 떠나기도 한다는데... 떠나는 사람들은 뒤늦게 알아챘겠지.

'여긴 내가 찾던 파랑새는 없구나.'

<효리네> 단골 카페,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가는 걸로

제주는 매력적인 곳이긴 하지만, 여행으로 오는 것과 살러 오는 것은 다르다. <효리네 민박>에서 그리는 것처럼 아름답고 평온하기만 한 곳은 아니다. 사람 사는 곳이니, 피터지게 싸울 일도 있고 꿈꾸던 경제활동을 할 수 없다면 좌절을 맛보게 되기도 한다.

제주가 핫해지면서 해안도로는 카페 거리가 됐고, 우후죽순 높은 건물이 들어서고 있다. 내가 제일 마음 아픈 구석이다.

얼마 전, 친구가 그랬다.

"그 바다 앞에 건물 짓는 거 있지? 거기 스타벅스랑 올리브영 들어온대."

그렇구나, 이 작은 마을에도 들어오는 구나. 사실 카페랄 것도 없고, 작은 화장품 가게랄 것도 없던 마을에 몇 년 전부터 대형 카페가 생겨났다. 우리 마을에 2년 전에야 파리바게트가 들어왔다 말하면 얘기가 쉬워질까? 파리바게트가 생긴 게, 마을 이슈가 됐다. 서울에선 흔하게 보이던 그 파리바게트가.

"바다 앞에 그런 걸 짓는 게 말이 돼?"하고 욕하면서도 속없이 또 잘도 이용하겠지만, 없었으면 안 갔을 거다. <효리네 민박>에 나온 내 단골 카페는 '안' 가는 게 아니라 '못' 가는 거고. 커피 한 잔 마시자고, 그 긴 기다림을 버틸 수 없기에.

예쁜 곳이 소개되니 제주가 이렇게 예쁘고 좋아요, 하고 자랑하는 것 같아 좋으면서도 도민으로서는 불편함이 늘었다. 이건 누구의 탓도 아니고 그저 '효리언니 효과'인 걸로.

어디서든 일어나는 일은 여기 제주에서도 일어난다. 누군가는 오랜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을 테고, 또 누군가는 매번 감탄하던 바다가 더 이상 별다른 감흥이 아닐 수 있다는 얘기다. 내가 뭐라고 이런 조언을 하나 싶지만, 제주를 사랑하기에 한마디 보태고 싶을 뿐이다. 그들에게도 제주가 좋은 기억이 되었으면 싶은 마음에서.

<효리네 민박>속 제주를 보면서 그리고 지금 내가 서 있는 이 자리, 이곳에서 둘러본 풍광을 보면서 문득 '좋다'하고 옅은 감탄사를 내뱉는 나를 보면서 나는 아무래도 '육지것'은 못되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조금이라도 느린 삶을 쫒는다면 아직 제주는 괜찮다. 그 '괜찮음'이 오래도록 계속됐으면 하고 바란다. 변하지 않는 거, 자연에 가까운 거, 그게 제주다운 거니까.

봄이 오면 제주는 또 예쁘겠지? 흰 옷에서 노란 옷으로 갈아입은 제주는 더 포근할 테니까. 그리고 사람들도 더 많이 오.겠.지?


하루 끝, 마음에 평온이 깃들길 바랍니다.더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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