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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 공포증' 단어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나는 나보다 나이가 많은 '어른'들을 두려워했다. 사실, 두렵고 무서웠다기 보다는 그들을 피하고 싶었다. 그래서 회사를 들어가기 위한 면접 자리도 두려웠고, 교수님과의 면담도, 이웃 아줌마 아저씨와의 대화도 피했다.

그런데, 얼마 전 내가 이 '어른 공포증'을 아주 자연스럽게 극복해나가고 있다는 걸 깨달은 순간이 있었다. 그리고 인터넷에 검색을 해보니, 이런 감정을 느끼는 것이 나뿐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써보게 되었다.

현재 나는 해외에 거주하고 있다. 그리고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고 있는데, 매일 저녁 해가 지기 전에 강아지와 동네 산책을 한다. 이 곳은 동네마다 하나씩 공원이 있고, 퇴근 시간에 바깥에 나가 보면, 강아지를 산책시키는 사람들을 흔하게 만날 수 있다.

그들은 나처럼 30대 혹은 이하의 젊은 이들도 있지만 40, 50대 분들이 더 많다. 가끔은 70대 할머니,할아버지도 계신다. 우리 강아지는 특유의 사교성으로, 자기 눈 앞에 보이는 사람에게 꼬리를 치면서 달려가 애교를 부린다. 그 사람도 100% 자신을 좋아할 거라고 생각한다(그러나 이 생각은 틀릴 때도 많다).

이런 강아지 성격덕분에 나도 많은 사람들과 서로 인사를 하고 얘기를 주고 받게 된다. 한국에서 산책을 할 때, 누군가와 대화를 나눠본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아마, 그때는 내가 더 어렸고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도 또한 지금보다 적었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여하튼 이곳에서 강아지와 길을 걷다보면 사람들과 얘기를 나누게 된다(강아지와 해변에 놀러갔을 때는, 2시간 반 동안 30명 정도 만났던 것 같다...).

대화의 시작은 이렇다.

"안녕, 너무 사랑스러운 강아지구나."
"얘는 수컷이야. 벌써 7살인데 아직도 아기같아."
"네 강아지도 금방 이렇게 크게 자랄 거야. 여기 근처 사니?"
"퍼피 클래스는 보냈니?"
"여기 근처에 다른 공원도 있어. 가봤어?"

이런 식이다. 그리고 이웃에 거주하시는 분들과의 대화도 예시를 들자면,

"일 가는 거니? 오늘 날씨 너무 춥다. 잘 다녀와."
"맛있는 스시집 추천 좀 해줄래?"
"요즘 어때? 잘 지내지?"

누군가는 별 볼일 없는 대화라고 할수도 있겠지만, 나는 이들과 대화하면서 처음으로 이 '어른들'과 자주 마주치고 싶다, 더 얘기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실제로 자주 마주치고 있다. 그들은 나를 보면, 내 이름을 부르면서 인사하고 나 또한 그들을 보면 미소 짓는다.

그렇다면, 내가 한국에서 피하고 싶었던 '어른'들과의 대화는 어땠는지를 돌이켜봐야 할 것 같다. 기억나는 일화 중 가장 어릴 때는 초등학생이었던 것 같다.

당시, 나는 '우등생'이라 적힌 체육복(진짜 우등생이라서가 아니라, 모든 체육복에 적혀 있었다)을 입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같이 엘리베이터에 탄 이웃 아주머니가 내 체육복에 적힌 '우등생'이라는 글자를 소리내서 읽더니,

"너 진짜 우등생이니? 너 공부 잘해?"
"진짜 우등생이 돼야지. 공부도 1등 하고 그래야 우등생인 거야."

부모님의 친구들을 만났을 때는 이렇다.

"에이고, 많이 컸네. 너 공부는 잘하니?"
"반에서 몇 등이나 해?"

"아저씨 딸은 장학금 받고 공부하는데, 너도 그래야지."
"어른 보면, 인사 똑바로 해야지 고개 90도로 숙이고."

어른이 되어 회사에 다닐 때도 비슷했다.

"무슨 회사 다녀요?"
"직업이 뭐예요?"
"그거 하면 돈 잘 버나?"
"얼마나 벌려나?"

이런 질문들을 주로 들어왔다. 특별하게 나쁜 말을 들었던 기억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저 그들과의 대화는 유쾌하지가 않았다. 불편했다. 아마 그들의 관심사는 '나라는 사람'이 아니라, 나와 관련된 '숫자'들이었기 때문인가 생각해본다.

물론, 이곳 생활을 하면서도 내 직업을 묻는 사람들은 있다. 그러나 그들은 내 수입을 묻는다거나, 몇 살인지, 그 나이에 맞는 안정적인 생활은 무엇이다 이런 얘기는 들어보지 못했다. 아마, 언어가 다르고, 내가 그들과 아주 친밀한 관계가 아니라서 그런 질문을 아직 못 들어본 거라고 하기엔 다르다. 한국에서 만났던 어른들도 친밀한 관계가 아니었다.

우리는 너무 많은 불안감을 안고 살아간다. 나의 미래, 우리 가족의 미래 등등. 그런데 그저 나보다 '나이'가 많은 그들을 통틀어서 무서워하게 되는, 그들을 마주하면 불안한 일종의 '공포증'까지 가지고 살았던 것을 생각하면, 조금 답답하다. 그리고 나도 이제는 누군가에게 '어른'의 나이가 되어버렸다.

나는 대화 나누고 싶은 '언니'로 나이 들고 싶다.



태그:#어른공포증, #불편한 대화 , #극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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