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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혼자. 여행]은 혼자 여행하는 여성뿐 아니라 모든 여성의 여행법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담고자 합니다. 모든 여성이 당당하고 안전하게 여행을 지속할 수 있는 세상을 꿈꿉니다.-기자 말

나홀로 여행의 시대가 왔다

혼행의 시대라고 한다. '나홀로 여행'의 시대. 2018년 여행 트렌드가 '혼자 하는 여행'이라는 기사를 읽는 순간, 오랫동안 혼자 여행해온 사람으로서 감개가 무량했다. 이제 신행(신혼여행)도 아니고 무려 혼행(혼자여행)이 중요하게 취급받는 세상이 온 것이다.

생각해보면 정말 혼행의 시대다. 자서도복할 수 있는 시대. 혼자 있다는 것이 무슨 결격사유라도 되는 양 '불쌍하다', '처량하다'는 식으로 쳐다보는 시절은 지났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술을 먹는 것은 이제 호들갑 떨 일도 아니고, 복잡한 결혼생활보다 싱글로 살아가는 것을 선택하는 사람들도 늘어나는 추세다.
휴식을 위해, 자아성찰을 위해, 혹은 새로운 도전을 위해 혼자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 혼자서도 행복할 수 있을까? 휴식을 위해, 자아성찰을 위해, 혹은 새로운 도전을 위해 혼자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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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변화는 '혼자가 좋다', '함께가 좋다'는  논란 이전에 삶의 선택지가 점차 다양화되는 과정이기도 하다. 기존의 삶의 기본값이 언제나 '함께' 였다면, 지금은 '함께'가 좋은 사람은 함께, '혼자'가 좋은 사람은 혼자여도 되는 것이다. 이제 그 변화의 물결에 여행까지 포함되었다. 사람들은 이제 혼자 낯선 곳으로 떠나 '보다 적극적으로 혼자되기'를 선택하는 중이다.

오랫동안 혼자 여행을 해온 사람으로서 혼자 하는 여행의 장점을 영업해보자면, 가장 큰 장점은 일정의 유연성이다. 어렵게 낸 여행일정을 오롯하게 자신의 취향에 맞춘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동행이 원한다는 이유로 먹고 싶지 않은 음식을 먹거나, 가고 싶지 않은 장소에 가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그리고 혼자 하는 여행은 내게 익숙한 장소와 사람들을 떠나 자신을 돌아볼 기회가 되기도 한다. 예수는 광야에서 홀로 40일을 지내며 사탄의 시험을 받았고, 싯타르타 역시 홀로 보리수 나무 아래 명상에 들어 부처가 되었다. 이슬람교를 창시한 무함마드 역시 동굴에서 홀로 있으며 대천사 가브리엘을 만났다.

물론 우리가 꼭 예수나 부처, 무함마드가 될 필요는 없지만 이런 선지자들의 사례는 혼자 하는 여행에 대한 하나의 근거를 제시해준다. 가끔 인간은 자신을 둘러싼 집단에서 떨어져 홀로 있는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우리는 가끔 집단에서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 해발 3300m 송쿨호수의 화장실 우리는 가끔 집단에서 떨어져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하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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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사람이 언제 자기 자신을 돌아보겠는가. 하는 일이 잘 안 풀릴 때, 인간관계가 꼬였을 때, 그리고 잉여시간이 많을 때 아닌가. 혼자 여행을 다니면 말 시켜주는 사람이 없어서 잉여시간이 참 많아진다.

뿐만 아니라 여행을 할 때 나는 누군가의 친구나, 직장동료, 아들이나 딸이 아닌 그저 한 사람의 여행자일 뿐이다. 나를 둘러싼 모든 타이틀이 사라지고, 내 이름을 제대로 불러주는 이조차 없다. 때문에 혼자 하는 여행은 온전한 자기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최적의 기회기도 하다.

이렇듯 나홀로 여행은 익숙해지면 쉽게 벗어나기 힘든 매력을 가지고 있다. 여행자는 자신의 정체성을 규정 짓지 않아도 되는 곳에서, 동행자를 배려하지 않고, 혼자 마음껏 산소를 들여 마시며 기뻐할 수 있다.

때문에 많은 여행자들이 처음 혼자 여행을 시작할 때는 '혼자서도 충분히 행복할 수 있다' 정도의 마음가짐으로 시작하지만, 혼자 여행을 하면 할수록 '혼자여서 행복하다'라는 순간이 찾아온다고 고백하기도 한다.

여자가 혼자 여행을 한다고?

<당신에게 실크로드>라는 책을 내고 사람들 앞에서 실크로드에 관한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2시간 동안 2천년의 시공간을 넘어 존재한 실크로드와 그 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했는데 막상 돌아온 질문은 이런 종류였다.

"여자 혼자 어떻게 다녔어요?"
"잠은 어디서 주무셨어요?"
"무섭지 않았어요?"


이렇게 아직도 여자 혼자 여행은 큰 결심이 필요한 일로 여겨진다. 하지만 이미 혼자 여행을 떠나는 남성보다 여성이 더 많은 것이 우리 사회의 흐름이다. 인터파크 투어에 따르면 2016년 전체 여행자의 31.6%가 혼자 여행을 떠났고 그 중 여성이 52.3%, 남성이 47.7%로, 혼자 여행하는 여성 여행자의 비율이 더 높게 나타났다.

개인적인 경험을 돌이켜보더라도 어느 여행지에서나 혼자 여행하는 남성보다 여성을 좀 더 많이 만날 수 있었고, 한국뿐 아니라 전 세계 여성들이 혼자 여행을 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전세계적으로 혼자 여행하는 여성을 많이 만났다.
▲ 타지키스탄에서 만났던 독일 여성여행자 전세계적으로 혼자 여행하는 여성을 많이 만났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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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자 혼자 여행을 온 여성들이 무료 시티 투어에서 만나 함께 세비야를 여행했다.
▲ 스페인 세비야에서 만난 일본과 싱가포르 여성여행자 각자 혼자 여행을 온 여성들이 무료 시티 투어에서 만나 함께 세비야를 여행했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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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여성이 혼자 여행을 하겠노라고 이야기하면 주변은 발칵 뒤집힌다. 대체 여자 혼자 무슨 소돔이나 고모라를 쏘다닌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이탈리아나 네팔에 간다고 한 것뿐인데도 말이다. 왜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일까?

여자 혼자 여행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 중 대부분은 여자 혼자 낯선 곳에서 생길 수 있는 위험을 이야기한다. 불과 최근에만 해도 제주에서 안타까운 사건이 있었다.

지난 2월 11일 제주 게스트하우스 인근에서 20대 여성 관광객이 시신으로 발견되었고, 게스트하우스 관리인이었던 용의자는 14일 오후 천안에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 있었다.

용의자는 지난 7월 준강간 행위를 한 후 재판을 받는 피고인이었으나 그대로 같은 게스트 하우스에서 근무하고 있었다. 만약 그가 게스트하우스에서 일을 할 수 없게 조치되었다면, 아니 그 이전에 게스트하우스 같은 단체 숙박시설은 업주나 직원의 성범죄 전력을 조회한 후 영업허가를 내거나 채용하도록 했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성범죄의 심각성과 예방 시스템의 보완이 이야기되기보다 오히려 '여자 혼자 여행을 가니 당연한 결과'라며 고인을 타박하거나, 심지어 '여자가 이랬을 거다, 저랬을 거다'라며 고인을 비난하는 2차 가해가 무성한 현실이다.

이런 현상은 범죄를 저지른 가해자보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그러니 죽기 싫으면 여자 혼자 여행을 가지 말라'며 여성의 행동을 통제하는 결과로 이어진다.

여성이 혼자 여행 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댓글이 많다.
▲ 제주도 게스트하우스 살인사건 기사에 달린 댓글들 여성이 혼자 여행 하는 것이 잘못이라는 댓글이 많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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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혼자 여행, 과연 위험하기만 한 것일까?

그렇다면 과연 여자 혼자 여행은 위험하기만 한 것일까? 물론 '여자 혼자 떠나도 100% 안전하다'고 말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런 말은 할 수 없다. 하지만 마찬가지로 '여자 혼자 여행은 무조건 위험하니 가지 말라'고 말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사실 안전에 대해 이야기해보자면, 여성여행자만 위험한 것도 아니다. 이불 밖이 위험한 건 당연하지 않는가. 앎의 세계에서 벗어나 모르는 세계로 가면 위험한 상황에 직면할 가능성이 높아지는 것이 당연하다.

여자든 남자든 자신의 익숙한 터전에서 벗어나 낯선 곳으로 간 순간, 우리는 어린아이나 마찬가지가 된다. 때문에 여성여행자든 남성여행자든 여행지에서 생길 수 있는 각종 문제 상황을 미리 숙지하고 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

물론 여성여행자에게는 남성여행자보다 성폭력을 포함한 각종 위험에 노출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추후 연재에서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인도, 이란, 이집트 등 여성 혼자 여행하기에 난이도가 높은 지역들은 각별히 주의해야한다.(이제는 이 나라들에 한국도 포함해야하나 싶어 착잡하다.) 때문에 이런 여행지를 가고자 하는 여행자는 미리 경험담을 수집해 본인이 감당할 수 있는 위험인지 한번 가늠해본 후 여행지를 선택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면 여자 혼자 여행을 부추긴다며 비난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대한민국 여성은 여행 뿐 아니라 일상에서도 다양한 위험에 직면한다. 번화가 한복판에서 살해당하기도 하고, 공공장소에서 몰카의 대상이 되기도 하고, 사회생활을 하면서 끊임없는 성폭력에 시달린다. 매년 평균 7,355건의 데이트 폭력이 발생하고, 여성은 3일에 한 명 꼴로 데이트 폭력으로 인해 살해당한다.

이렇게 여성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나라에서 어떻게 3일에 한 명꼴로 데이트폭력으로 사망하는 여성이 나오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 혼자 여행을 하는 여성의 안전이 그렇게 염려되는가? 이렇게 여성의 목숨을 소중히 여기는 나라에서 어떻게 3일에 한 명꼴로 데이트폭력으로 사망하는 여성이 나오는지 정말 모를 일이다.
ⓒ 정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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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여성이 혼자 여행을 가서 문제 상황에 놓일 가능성보다 직장에서 성추행에 시달릴 가능성이, 데이트폭력으로 죽을 가능성이 더 높은 것이 대한민국 여성의 삶이다. 하지만 이렇게 세상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여성들이 일상을 포기하고 방안에만 있어야 하겠는가. 지금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일상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각종 위험 상황을 숙지하고 그 대처방법을 익히는 것이지, 모든 일상생활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두려움 때문에 여성이 세상 밖에 나서는 것을 포기할 수 없다. 언제까지 남성여행자들이 세상을 탐험하며 삶의 지평을 넓힐 때, 여성여행자들은 위험하다는 이유로 그 기회를 잃어야하는가? 언제까지 '아직은 여자가 혼자 여행할 만한 세상이 아니다'라는 이야기를 들어야하는가? 바꾸어 물어보면, 대체 언제 여자 혼자 여행할 만한 세상이 된단 말인가? 이번 생애에 가능은 한 일인가? 

분명한 것은 여자 혼자 떠나는 여행이 100% 안전하진 않지만, 100% 위험하기만 한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혼자 길을 떠나 마주하는 세상은 놀라움의 연속이다. 그 놀라움 속에는 새로운 문화와 풍경뿐 아니라, 안타깝게도 새로운 변태나 새로운 위험도 포함되어 있다. 그 가능성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새로운 변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새로운 은인을 만날 수도 있다. 우리는 길을 떠나 위험한 상황을 마주칠 수도 있지만 다양한 호의와 도움을 받게 되기도 한다. 여성이기 때문에 불리한 상황도 있지만, 여성이기 때문에 유리한 상황도 발생한다.

그러니 여자가 혼자 여행을 한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패닉에 빠질 필요는 없다. 우리가 일상을 사는 것과 여행은 사실 큰 차이가 없다. 여행은 지금의 나를 떠나 길 위에 새로운 인생을 짓는 행위다. 삶에서 느끼는 모든 희노애락이 길 위에선 훨씬 진하게 농축되어 있다. 그리고 우리의 삶이 늘 안전하진 않듯이 여행도 마찬가지다. 거듭 말하지만 여행에 대한 막연한 환상에서 벗어나 여행에서 발생되는 다양한 문제들을 마주하고 대처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인생이 실전이듯 여행도 실전이기 때문이다.

 안전한 곳은 어쩌면 감옥이 될 수도 있다.
▲ 세상이 위험하다는 이유로 평생 갇혀 지낼 수는 없다 안전한 곳은 어쩌면 감옥이 될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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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오마이뉴스 지면을 빌어 [여자. 혼자. 여행]이라는 제목으로 여성여행자들의 여행법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크게 여성에게 혼자 여행이 필요한 이유, 여자 혼자 여행하는 실질적 기술, 여행 후유증 관리, 그리고 무엇보다 많은 여성들이 걱정하는 안전에 대한 내용 등을 다룰 예정이다. 혼자 여행하는 여성 뿐 아니라 모든 여성 여행자들이 참고할 수 있는 내용을 담고자 한다.

물론 이 기사가 여성 여행자의 모든 정답을 제시할 수는 없다. 단지 앞서 한 헛발질을 공개하며, 뒷사람은 덜 헤매길 바랄뿐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들이 마중물이 되어 앞으로 여성 여행자들이 서로의 롤모델이 되어주며 안전하고 당당하게 여행을 이어나갔으면 좋겠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이야기가 있다. 어떤 경우에도 선택과 책임은 여성여행자의 몫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여자 혼자 여행을 가거나 가지 않거나, 혹은 어떤 형태의 여행을 하던간에 이 모든 선택은 '성인 여성의 결정'이다. 다시 말해, 지금 이 순간 댓글란에 걱정을 빙자한 훈계성 댓글, 심지어는 욕설을 포함한 악성 댓글을 쓸 준비를 하고 있는 사람들이 관여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제 여성의 여행을 막는 것보다, 여자 혼자서도 안전하게 여행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 할 때다. 그리고 지금 여성여행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여성을 묶어두기 위한 모든 위협을 걸러들을 수 있는 귀와 굳은 심지일 것이다.

각자의 인생에는 각자의 도전이 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인생에는 홀로 떠나야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는 떠나는 것이다. 두려움보다 절박함을 지니고.

여성이든 남성이든 혼자든 여럿이든, 인생에는 떠나야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는 떠나는 것이다. 두려움보다 절박함을 지니고.
▲ 각자의 인생에는 각자의 도전이 있다. 여성이든 남성이든 혼자든 여럿이든, 인생에는 떠나야하는 순간이 있다. 그럴 때는 떠나는 것이다. 두려움보다 절박함을 지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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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인생은 실전, 여행도 실전.
여행에 대한 막연한 환상보다 안전하고 당당한 여성의 여행법에 대해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다음 연재는 '나홀로 여행의 장.단점'에 대해 여성여행자의 입장에서 비교분석해보겠습니다.



태그:#나홀로 여행, #혼행, #여자 혼자 여행, #여성 여행자 , #여행자 안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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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 여행작가. 저서 <당신에게 실크로드>, <남자찾아 산티아고>, 사진집 <다큐멘터리 新 실크로드 Ⅰ,Ⅱ> "달라도 괜찮아요. 서로의 마음만 이해할 수 있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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