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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통영지청 검사가 29일 오후 JTBC뉴스룸에 출연해 검찰내 성추행 피해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서지현 통영지청 검사가 29일 오후 JTBC뉴스룸에 출연해 검찰내 성추행 피해 상황을 증언하고 있다.
ⓒ JTBC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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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9일, JTBC 뉴스룸에 한 여성 검사가 출연했다. 그녀의 이야기는 SNS에서 수없이 공유됐다. 다음 날 온라인 뉴스란에도 그녀의 이야기가 가득했다.

인터뷰 기사를 찾아보지 않았다. 그녀가 검찰 내부 통신망에 올렸다는 글도 읽어보지 않았다. 여성단체에서 일하는 필자는 이런 사건을 너무나 일상적으로 마주했다. 상담소에서 만나는 수많은 피해 생존자들, 그리고 그녀들이 당한 고통을 곁에서 지켜본 나에겐 그저 공기처럼 둥둥 떠다니다 어느 순간 그 실체를 드러낸 단 하나의 사건일 뿐이었다.

그런데 온라인 상에서 많은 이들의 분노가 모였다. '어, 이 흐름은 뭐지' 싶던 그 순간, 메시지 알림이 울렸다. 전국 동시다발 긴급 기자회견을 하자는 제안이었다. 

급하게 잡힌 기자회견. 몇 사람이 업무를 나눠 당일에 쓸 플래카드를 맡기고, 각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단체 실무자들에겐 일상적인 업무. 매번 사건이 터질 때마다 반복되 온 너무나 익숙한 일상. 

그다음부터였다. '뭔가 새로운 바람이 불어닥치고 있구나' 확신하게 된 것은.

다른 유관단체에서 먼저 연대발언을 하겠다고 요청해왔다. 매번 연대단체 발언을 부탁할 때마다 일정상 참여하지 못했던 단체의 대표가 이번 기자회견에 참석하겠다고 했다. 여성폭력 이슈라고 하면 으레 여성단체들만이 모이던 것과 달리, 지역 내 진보단체에서도 연대하겠다는 답변이 왔다.

이건 무슨 일일까.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걸까. 도대체 무슨 이야기들이 남겨져 있었기에 지금까지 항상 부차적으로 다루어지거나 여성'만'의 문제로 다루어지던 여성폭력 문제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반응하고 있는 걸까. 그제서야 나는 그녀의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그녀가 남긴 긴 글을 쭈욱 읽기 시작했다. 중간 중간 잠시 멈춰 호흡을 가다듬었고, 다시 글을 읽기를 반복했다.

"딸을 낳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이야... 딸을 낳지 않은 게 얼마나 얼마나 다행이야..."

그녀의 글의 마지막 단락에 쓰인 이 구절에선 숨이 막혀오듯 답답해졌다. 그녀가 82년생 김지영씨를 떠올리며 '<72년생 박지현>을 써야했나' 이야기하는 부분에선 한 가지 기억이 더듬더듬 올라왔다.

2017년 여름, 대안학교 학생들과 함께 간담회를 진행했을 때다. 그날의 주제는 차별 경험 드러내기. 그런데 10대 중 후반의 여·남 청소년들의 반응은 달랐다.

너무나 빠르고 쉽게 자신의 차별 경험을 이야기하는 여성 청소녀(청소년이라는 지칭이 남성을 상정하고 있어 이렇게 표현하고자 함)들과 다르게 남성 청소년들은 오래도록 말할 내용이 떠오르지 않는다며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렇게 서로의 경험을 나누고 마무리하던 중 간담회를 지켜보던 30대 초반의 남성이 이렇게 말했다.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을 읽었어요. 02년 김지영은 적어도 다르지 않을까요?"

'과연 그럴까요? 그녀와 후배들의 삶은 얼마나 달라져 있을까요?' 되묻고 싶었다. 갑자기 울컥한 마음도 들었다. '2000년대 후반에 태어난 저들의 삶이 80년대생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건 어떻게 해야 설명해야 하는 거냐'고, 왠지 그를 향해 항변하고 싶었다. 물론, 좋은 분위기를 깨는 '프로 불편러'가 되기 싫었던 나는 침묵했다.

내가 만난 '서지현들'

검찰 내 성추행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에게 한 누리꾼이 보낸 꽃바구니가 1월 31일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현관 안내탁자에 놓여 있다.
 검찰 내 성추행을 폭로한 서지현 검사에게 한 누리꾼이 보낸 꽃바구니가 1월 31일 창원지방검찰청 통영지청 현관 안내탁자에 놓여 있다.
ⓒ 경남도민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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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지현 검사가 남긴 글, 아마도 많은 여성들이 고개를 연신 끄덕거리며 보았을 게다. 물론 여성들이 쏟아내는 고백을 귀기울여 듣지 않고, 눈여겨 보지 않은 그 누군가에겐 충격일 수도 있겠다. "아직도 이런 일이, 저렇게 '똑똑하고 야무진' 검사에게도 일어나다니" 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그 글 속에서 그녀가 놓여있던 상황 하나하나는 내가 만났던 수많은 피해자들이 나에게 울며 하던 이야기들과 똑 닮아 있었다. '내가 그때 그 자리에 갔을까' '왜 그때 문제제기 하지 못했을까'라고 이야기하며 자신을 원망하던 그녀의 모습은 내가 만났던 그녀들, 바로 그녀들이었다.

"왜 어제랑 같은 옷이야? 뭐 남자친구랑 뜨거운 밤이라도 보냈어?"
"어, 오늘 좀 예민하네. 뭐 '그 날'이야?"


이런 말을 아침 인사처럼 건네 들었던 그녀들.

"요즘 인사 시즌인데 나 곧 인사과로 갈 거야. 자기소개서 들고 와봐. 내가 봐줄게."

정규직이 되는 게 꿈이었던, 계약직 직원이던 그녀를 따로 불러 추행한 그와 수없이 존재하는 '그들'.

하지만 성희롱, 성추행이 벌어지고 있는 바로 그 현장에서 피해 당사자가 나이도 많고, 직급도 높은(성폭력은 결국 힘의 차이, 권력의 차이에서 발행한다) 가해자를 향해 문제제기를 하는 건 한국 사회처럼 집단과 위계를 중시하는 곳에서 쉽지 않다. 이건 때론 생존의 문제가 되기 때문이다.

"선생님, 왜 그 자리에서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이야기하지 못했을까요?"

그녀들은 부당하게 자신을 대한 이들에게 향해야 할 화살의 방향을 자신들에게 돌려놓은 채 내내 괴로워했다.

특히, 직장 내 성희롱·성폭력 사건에 있어서 그녀들을 더 힘들게 만드는 건 그 현장을 목격했거나 혹은 함께 생활해왔던 이들의 반응이었다.

피해 생존자들이 하루에도 수십 번 '이 문제를 제기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놓고 고민한다. 용기를 내 문제를 제기한 그 순간부터 피해 생존자들은 '말'할 공간을 잃었고, 가해자들은 '말'할 공간을 적극적으로 넓혀갔다.

"뭘 이런 사소한 일 가지고 저렇게 유난스럽게 굴어?"
"그때 그럼 거부를 했어야지. 다른 목적이 있는 거 아니야?"
"둘이 사귀어 놓고 이제 와서 저러는 거 아니야?"

함께 밥을 먹고 차를 마시며 일상을 나누었던, 그래서 '동료'라고 생각했던 이들이 가볍게 던지는 말들은 그녀들의 입을 다물게 했다. 그녀들은 그들로부터 고립되어 갔다.

"선생님, 저는 적어도 그 사람들이 나를 응원하진 않더라도 비난할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어요. 그런데 그들의 눈빛이 싸늘하게 식어가는 걸 보면서 저는 더 이상 버텨낼 자신이 없더라고요."

그녀들이 말했다. 

서지현 검사의 경우, 용기 있는 고백 이후 많은 이들이 그녀를 응원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검찰 내에서는 그녀의 성품과 업무 능력에 대한 소문이 떠돌고 있다고 한다. 너무나도 전형적인 2차 가해다.

서지현 검사의 고백 이후 한국 사회에서도 '내가 그녀다'라며 #미투(MeToo) 운동이 이어지고 있다. 그녀들이 당했던 피해 경험이 다시 봇물 터지듯 터져 나오고 있다.

위계적인 조직 문화, 남성들이 대다수 요직을 차지하고 있는 검찰에서 이런 문제가 지금까지 드러나지 않았던 것 자체가 오히려 이상한 일 아닐까. 어쩌면 우리가 먼저 그곳에 머무는 여성들에게 "당신, 지금 괜찮은가요?"라고 물어볼 수는 없었을까.

그 연대가, 한 사람만을 향하지 않기를

경남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여성단체들은 2월 1일 오전 창원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용기 낸 서지현 검사를 지지하며 성역 업슨 수사를 촉구한다"고 했다.
 경남여성단체연합을 비롯한 여성단체들은 2월 1일 오전 창원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검찰 내 성폭력 사건, 용기 낸 서지현 검사를 지지하며 성역 업슨 수사를 촉구한다"고 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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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1일, 오전 11시 검찰청 앞 검찰 내 성폭력 규탄 기자회견에는 필자가 활동한 이래 가장 많은 이들이 참여했다. 그리고 눈에 띄게 많은 남성들이 기자회견을 함께 했다. 

기자회견 현장 주변에서 언론사 기자들에게 기자회견문을 나눠주고, 실무를 보며 기자회견을 지켜보는 위치에 서 있던 나의 마음은 무척이나 복잡해졌다.

3일에 한 번 여성들이 데이트폭력으로 죽어가고 있다. 아내 폭력, 여성혐오 범죄로 세상을 떠나는 이들도 많다. 이 죽음의 고리를 끊는 데 함께 하자고 호소했을 때 그들은 과연 어디에 있었을까.

2009년 3월, 우리 곁을 떠난 고 장자연. 그녀의 이름도 내내 떠올랐다. 20대 여성 연예인 지망생이 남기고 간 편지 속 이야기들은 잔인했고 끔찍했다. 그런데 그때와 지금, 우리의 분노와 움직임이 다르게 느껴지는 건 왜일까.

작년 강남역 여성혐오 살해 사건 1주기 기자회견. 다음 날 진행되는 5.18 행사를 준비하던, 다른 기자회견에서 얼굴을 마주하고 반갑게 인사를 나눴던 그들은 우리를 스쳐 지나갔다. 왜 우리의 옆에 함께 서지 않았을까.

물론 지난 2016년 강남역 여성살인 사건 이후 여성들이 말할 공간을 얻었고, 서로 연대했다. 그 결과로 소라넷 폐지와 낙태죄 폐지 20만 명 서명 등의 유의미한 성과를 얻어냈다. 이 또한 지금 서지현 검사를 향한 지지와 연대의 현상을 설명하는 키워드라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그 이전에 나왔던 수많은 증언 피해 생존자들, #OO_내_성폭력 운동을 잊고 있는 것 같아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서지현 검사를 향한 많은 이들의 지지와 연대는 너무나 반갑고 기쁜 일이다. 하지만, 이 지지와 연대가 단 한 사람만을 향하진 않길 바란다. 우리 스스로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주변을 돌아볼 수 있길 바란다. 내가 발 딛고 일하는 그 자리에서 성찰할 수 있길 바란다.

분명, '나 또한 이러한 고통을 당하고 있어요'라고 이야기하고 싶지만 비정규직, 계약직 노동자로 살아가며 말할 공간, 말할 힘조차 없는 '그녀들'이 있을 것이다(물론 지금 이 글을 쓰는 필자 또한 여성단체 활동가이기 때문에 원고를 의뢰받고, 의견을 밝힐 수 있는 공간을 쉽게 얻었다. 내 위치에 부여된 힘이 있음을 고백한다).

강 건너에 붙은 불을 '어떡해' 하며 발을 동동 굴리고, '우리가 화재 대비를 못했다, 안전 대책이 부족했다'는 식의 분석을 쏟아내는 건 어찌 보면 쉬운 일이다. 하지만 바로 내 앞에서 불이 났을 때, 도망가지 않고 동료를 덮치는 불을 마주하고, 함께 그 불을 끄는 건 어려운 일이다. 

방관자에서 목격자로, 목격자에서 변화를 만들어가는 당사자로 우리는 이제 피하지 않고 질문해야 한다. 주변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제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이들에게 '예민하다'고 손가락질하지 않았는지, '좋은 분위기 깬다'며 비난하지 않았는지, 그 '좋은 분위기'는 대체 누굴 위한 것이며, 누구를 소외시키고 있는지, 어쩌면 우리 모두 공범은 아니었는지 물어야 한다. 이게 '시작'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쓴 김미리내씨는 광주여성민우회 활동가입니다.



태그:#직장내성희롱 , ##ME_T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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