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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문제가 공론화되어 제도나 문화를 바꾸기까지는 수많은 여성들의 '고발'이 있었다. 특히 90년대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은 한국 사회에 '성희롱'이라는 개념을 정착하고, 성희롱 관련 법들을 제정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92년 당시 서울대 신아무개 교수로부터 성희롱 피해를 받아온 조교 A씨는 성희롱에 대한 명백한 거절 의사를 표현했다는 이유로 재임용에서 탈락한다. 그러자 A씨가 대자보를 붙이며 항의했고, 이어 학교와 교수에게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걸어 7년간의 재판 끝에 성희롱 피해를 인정받아 승소했다.

이 사건을 통해 성희롱이 노동자의 노동권과 생존권을 해친다는 인식이 확산됐다. 당시 A씨를 지지하는 서명운동에 참여한 인원만 만 명이 넘었으며, 학생들과 여성계가 힘을 합쳐 성희롱의 실태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관련 기사: "교수의 성희롱, 묻어둘 수 없었다") 현 서울시장인 박원순 변호사를 포함해 여러 인권변호사가 변호인단을 만들어 소송을 승리로 이끌 수 있도록 힘썼다.

배금자 변호사(해인법률사무소)도 그중 한 명이다. 배 변호사는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은 물론 '종군 위안부 문제', '군산 성매매 화재 참사', '김보은 김진관 사건' 등 굵직한 여성 인권 문제 재판을 맡아왔다. 

지난 2004년, '군산 대명동 화재참사' 손해배상 상고심 판결관련 기자회견에서 4년여의 법정 공방을 이끈 배금자 변호사와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이 배금자 변호사.
 지난 2004년, '군산 대명동 화재참사' 손해배상 상고심 판결관련 기자회견에서 4년여의 법정 공방을 이끈 배금자 변호사와 여성단체 관계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오른쪽이 배금자 변호사.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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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 변호사는 <오마이뉴스>와의 통화에서 서지현 검사의 증언을 두고 "용기 있지만, 검찰 조직에서도 피해자를 보호하는 시스템이 여전히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 서글프다"고 말했다. 이어 "직장 내 성폭력 문제는 검찰만의 문제가 아니다, 남성 중심적 회사나 조직의 성매매 문화가 없어지는 게 급선무"라고 지적했다.

그는 룸살롱에서 끌려가 동료 판검사들의 추행을 목격해야 했던 자신의 판사 시절을 소회하며 "성매매가 공공연히 이뤄지는 환경에서는 법조인들의 남성중심적 시각을 가질 수밖에 없고, 이는 성범죄에 관대한 판결을 만들어낸다"고 주장했다.

다음은 배 변호사와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내용.

배 변호사가 경험한 30년 전 사건... "그때 너무 놀라 뛰쳐나왔다"

- 서지현 검사의 고발 인터뷰 어떻게 보셨나?
"용기 있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면서도 서글퍼진다. 흔히 검사는 성별과 무관하게 권력을 행사하고, 차별을 느끼지 못할 것 같다고 여기지 않는가. 그러나 검찰에서도 여성 검사에 대한 성추행이 만연해있고, 가해자를 응징하고 피해자가 보호되는 시스템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검찰이 바뀌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이 일어난 지 26년이 지났다. 왜 이런 일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것일까?
"검찰만의 문제가 아니다. 검찰이나 법원, 대기업이나 로펌 등의 문화는 굉장히 남성중심적이다. 그 원인 중 하나가 성매매와 룸살롱 문화가 만연해있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기업 직원들과 관련된 재판을 맡아보면 정말 이렇게 타락할 수 있나 싶다. 당연히 한국의 남성중심적 조직에서는 여성을 존중해야 하는 인격으로 보지 않는다. 늘 여성을 희롱하고 돈으로 매매하다 보니, 술만 마시면 후배든 동료든 성적 대상으로 여긴다. 룸살롱 문화에 '절어있다 보니' 혼동하게 되는 것이다."

- 성매매 문화가 심각하다고 느낀 적이 언제였나.
"88~89년도에 판사로 일했다. 그때 다른 판사들이 검사랑 밥 먹으러가자고 해서 갔더니, 룸살롱이었다. 거기 가니까 판·검사들이 여자를 옆에 한 명씩 앉혀두고 내 앞에서 차마 보기 힘든 광경을 보여주더라. 그때 너무 놀라서 뛰쳐나왔다. 그 놀란 게 30년째 아직도 내 가슴 속에 남아 있다. 여성을 음식이나 물건처럼 생각하는 법조인들이 많으니, 성범죄에 대해서 관대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번 고발을 보면서도 '하나도 안 변했구나' 싶었다."

- 변호사로 일하시면서 여성으로서 느끼는 어려움도 많으셨겠다.
"서울대 남성이 법조계를 장악했다. 저는 지방대고 여성이고 주류에 속할 수가 없다. 그런데 또 15년 동안 지속된 '흡연 피해자 담배 소송' 같이 튀는, 큰 사건을 맡으니까 아니꼽게 본다. 여자가 '튀거나' '세면' 안 좋아한다. 그게 성차별 아니겠는가."

- 반(反)성폭력 운동의 중요한 기점이 됐던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을 변호했다. 당시에도 7년간 재판이 어렵게 진행된 것으로 알고 있다.
"성희롱을 규율할 수 있는 법률이 따로 없어서 민법 750조 불법행위를 근거로 인격권 침해, 근로권 침해를 이야기했다. 당시 항소심 재판부가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는데, '여성은 희롱 당해도 참아라' 수준의 판결문이었고, 그게 판사들이 여성을 보는 시각인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도 법원이나 검찰에 그런 시각을 가진 사람들이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1995년 7월, 항소심 패소 이후 법원 앞에 모인 피해자의 지원자들.
▲ 서울대 신 교수 성희롱 사건 1995년 7월, 항소심 패소 이후 법원 앞에 모인 피해자의 지원자들.
ⓒ 한국성폭력상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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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런데 당시 가해자였던 신아무개 교수는 정년 퇴임 때까지 버텼다. 가해자는 버티고, 피해자가 오히려 2차, 3차의 피해를 본다.
"기업들이 성희롱 재발 방지 기구를 만들고 교육도 한다. 그런데 형식상 만들어만 놓고 가동을 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 막상 성희롱 사건이 일어나면 은폐하고 무마시킨다. 조직의 고위층 90% 이상이 남성 아닌가. 그런 분위기에서 성추행이 제대로 해결될 리가 없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늘어난 만큼 모든 조직의 임원의 50%를 여성으로 채울 수 있어야 한다."

- 조직 내 성폭력 문화는 근본적으로 어떻게 고칠 수 있을까?
"여성이 당하는 피해를 공론화하고 가해자 실명을 공개하는 등의 운동이 필요하지만, 무엇보다도 남성이 여성을 성매매하는 문화가 근절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 남성들이 여성을 성욕의 대상으로 보고 그런 행동을 할 수밖에 없다. 술 먹고 마사지 받고 성매매하는 그런 광경을 언제까지 봐야 하나."


태그:#미투운동, #METOO, #서울대 신교수 사건, #성희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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