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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옥의 섬으로 불리는 '하시마' 탄광에서 강제노동을 해야 했던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 최장섭(88)씨. (사진은 지난 2015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사진)
 지옥의 섬으로 불리는 '하시마' 탄광에서 강제노동을 해야 했던 일제 강점기 강제징용 노동자 최장섭(88)씨. (사진은 지난 2015년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 사진)
ⓒ 오마이뉴스 장재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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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군함도'의 실제 주인공이며, 일본에 의해 강제로 끌려가 노역에 시달렸던 강제징용 피해자들의 삶을 증언을 통해 세상에 알렸던 최장섭 할아버지가 별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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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92세가 된 고 최장섭씨는 여러 지병과 최근 당한 부상이 겹치면서 22일 오전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졌다.

고인은 전북 익산시 낭산면 출신으로 1943년 2월 열여섯의 나이로 일본에 의해 강제징용을 당했다. 그가 끌려간 곳은 일본 나가사키 앞바다 하시마. 해군 전함을 닮았다 하여 '군함도'라 이름 붙여진 곳이었다.

그곳에서 고인은 미쓰비시 석탄 광업주식회사의 탄광에 배치됐다. 하시마 탄광은 해저 400~900m를 내려가는 곳에 있었고, 3km 가량 떨어져 있는 다카시마(섬)와 해저로 갱도가 이어져 있었다.

함께 끌려온 조선인, 중국인, 미군포로 등과 함께 석탄을 캐는 작업을 해야 했고, '지옥'이라 불릴 정도의 극심한 노동에 시달려야 했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그들에게 준 먹을 것이라고는 하루 한 번 깻묵과 된장국뿐이었다. 이로 인해 대부분의 노동자들은 영양실조에 시달렸다. 말 그대로 '죽는 게 사는 것보다 나은 삶'이었다.

일부 동료들은 뗏목을 만들어 탈출을 시도하다가 잡혀 와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매질을 당하기도 했다. 그렇게 2년 6개월 동안 지옥 같은 생활을 하다 일본의 패망으로 돈 한 푼 받지 못한 채 고향에 돌아 왔다.

이후 지독한 가난에 시달리면서 삶을 이어 온 그는 2010년 일본이 군함도를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하려는 시도를 듣고 세상 밖으로 나와 목소리를 높였다.

'일제강점기 강제동원 피해자 증언 듣기 모임'을 통해 전국을 돌며 증언을 했지만, 주목하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언론과 증언대회 등을 통해 '군함도'와 '강제징용노동자'에 대해 알려왔다.

지병에 시달리면서도 자신을 불러주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달려가 일본의 만행을 알렸고, 최근에는 류승완 감독에게 영화 <군함도>의 배경이 되는 증언을 해 주기도 했다.

고인의 빈소는 대전 중구 문화동에 위치한 충남대학교 병원 장례식장 VIP실에 마련됐다.


태그:#최장섭, #군함도, #하시마, #강제징용노동자,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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