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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고만 있어도 예뻐서 어쩔 줄 모르겠는 아이, 그 아이가 세상에 나가서도 사랑받으며 살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느 부모나 마찬가지다. 누구나 축복 속에서 태어나고 사랑받으며 사는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다 알지 못하는 세상은 냉혹했다.

아들이 없던 집에 입양되어 양부모의 손에서 자란 아이는 누나들의 질타를 받으며 한 번도 따뜻한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 성인이 되자, 술을 마시기 시작했고 술로 인해 병이 들었다. 어느새 술이 없으면 살 수 없는 지경에 이른다. 알코올중독자가 된 것이다. 집이 싫어 고향을 등지고 서울로 갔다. 피붙이 하나 없는 서울에 와보니 갈 곳이라고는 노숙인들이 모여 있는 서울역밖에 없었다.

"(입양돼서) 양부모님 사랑을 못 받았어요. 항상 외로웠죠. 사랑받고 싶은 마음이 커서 23살에 한 여성을 만나 한 달 만에 결혼했어요. 살다 보니 서로에 대해서 모르는 것이 많고 신뢰가 쌓이지 않았어요. 첫째 아이가 생기고 둘째가 생겼지만 결국 이혼했어요. 그 이후엔 의지할 곳이 없었어요. 술, 담배만 더 가까이하게 됐지요."

마천동 지원주택에 사는 김봉기씨의 말이다.

가을에서 겨울로 막 넘어가려는 걸 실감케 하듯 12월 초순의 날씨는 추웠다. 지하철에서 내려 입김을 호호 불며 서울의 끄트머리인 마천동에 다다랐다. <비전트레이닝센터>라는 노숙인시설에서 운영하는 남성 알코올중독자를 위한 지원주택이 그곳에 있다.

습관처럼 마시던 술, 끝도 없는 외로움

 비전트레이닝센터에서 운영하는 지원주택 외관.
 비전트레이닝센터에서 운영하는 지원주택 외관.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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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천동의 지원주택은 우리 사회의 많은 서민들이 살고 있는 5층짜리 다세대 건물이다. 이곳은 1가구당 300만 원의 보증금이 있고, 총 19개 호가 있다. 각 가구의 보증금을 합한 5,700만 원은 이랜드복지재단이 지원해주었으며 인건비와 운영비는 서울시가 지원한다. 매월 임대료를 내고 각종 공과금을 책임지며 살고 있는 김봉기씨도 이제 어엿한 입주민이다. 이렇게 살기까지는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다.

충청도 보은이 고향인 김봉기씨는 해군 부사관으로 입대해 직업군인으로 평생을 살려고 했다. 배를 타고 한 달씩 훈련을 나가면 술을 마시는 날이 많았다. 결국 술 때문에 문제가 생겨 퇴역했다. 퇴역 후, 고향인 보은에서 관광호텔의 인솔자로 6년을 일했다. 하지만 술을 끊을 수는 없었다. 술을 끊지 못하자 최악의 상황에 내몰려 결국 노숙생활까지 했다. 설마 했는데 그 생활이 7년이나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제가 (술 마시다가) 장이 파열돼 병원에 입원도 했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먹었어요. 담배나 마찬가지로 습관이 돼가지고. 의지할 데가 없고, 외로우니까요. 서울역에서 노숙할 때 다시서기센터의 사회복지사 분들이 와서 상담을 해주셨어요. 저 혼자면 길게 상담을 해주셨을 텐데, 저랑 비슷한 사람들이 많잖아요. 일일이 다 상대를 못 해줘요. 상담 선생님께 제 사정을 얘기할 때는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있으니까 좋죠. 상담이 끝나고 나면 다시 혼자가 되고, 외롭고, 술 마시고..."

정기적인 수입 없이 술 마시는 일상이 거듭되자 김봉기씨의 알코올중독은 더 심해졌다. 신용불량 상태라 현금 급여로 받는 일용직밖에 할 수 없었고, 그 일은 술을 피할 수 없게 만들었다. 함께 술 먹으며 외로움을 달래는 동료들 역시 서울역에서 노숙하는 사람들뿐이었다.

거리상담을 나오는 노숙인 지원센터에서는 쉼터에 입소할 것을 권했지만 (쉼터에서는 술을 못 마시니까) 술을 끊을 자신이 없었다. 임시 주거 지원을 3개월 받아 고시원에서 지내기도 했다. 하지만 술 때문에 또 쫓겨났다.

노숙인 지원센터에서는 마지막 기회라고 말하며 지원주택 입주를 제안했다. 비록 알코올홀릭이지만 일용직 일을 하면서 탈노숙을 원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 여기 와서 한 달 정도는 매일 서울역으로 나갔다가 밤에 들어왔어요. 거리생활을 7년씩이나 했는데 하루아침에 온전한 생활을 하려니 금방 적응이 안 됐죠. 서울역에 왔다 갔다 하는 동안에도 이곳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많이 신경 써주고 도와주셨어요. 지금은 일주일에 한 번씩 병원에서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어요. 입주하고 3개월 정도는 사고도 많이 쳤죠. 제가 여기서 요주의 인물이었어요. 그때마다 선생님들이 포기하지 않고 기다려주었어요. 2017년 4월에 여기 들어왔으니까 이제 8개월이 좀 넘었네요.

고시원은 술 먹고 소란 피우면 바로 나가야 하지만, 여기는 선생님들이 계속 관심을 가지고 살펴주세요. 밥을 안 먹으면 밥도 해주시고, 아프면 죽도 끓여주시고, 옷 없다고 하면 옷도 사주시고. (냉장고를 열어 보이며) 여기 보세요. 냉장고에 먹을 것 많지요? 냉장고가 비워진 적이 없어요. 후원받은 물품도 있지만 선생님들이 개인 사비로 사다 놓은 거예요. 술이랑 담배 빼고 다 지원해준다고 봐야죠. 정말 고마운 분들이에요. 여기 아니면 제가 어디 가서 사람대접받으며 살겠어요? 저도 여기 와서 사람대접받고 살듯이 지원주택이 더 많이 만들어져서 주거가 불안정한 분들이 이 혜택을 골고루 받았으면 좋겠어요."

 음식으로 차 있는 커뮤니티 공간의 냉장고. 입주민을 위한 배려다.
 음식으로 차 있는 커뮤니티 공간의 냉장고. 입주민을 위한 배려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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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을 받고 있다는 생각이 들자 김봉기씨는 술을 줄이려고 애썼다. 결정적으로 술을 줄인 이유는 자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원주택에 들어오기 두어 달 전, 지인이 마음잡고 살라며 한 여성을 소개해주었다. 비슷한 처지를 경험해 본 사람이어서인지 마음이 잘 맞았다. 지원주택에 입주 후, 혼인신고를 했다. 거리에 있거나 고시원에서 살았다면 꿈도 못 꿀 일이다. 반려자를 만난 덕분인지 오랜 노숙생활로 악화되었던 몸과 마음이 빠른 속도로 회복되고 있다.

'인간은 밥만 먹고 살지 못한다'는 명제를 확인한 시간이었다. 사람은 어떤 환경에 처하든 사람대접을 받으며 살아야 하지만 그렇지 못할 경우, 심한 외로움과 소외감을 느낀다. 지독한 고독을 견디기 위해 술을 마신다. 진작에 김봉기씨 옆에 술 대신 밝고 따뜻한 양초 같은 사람이 있었다면 지긋지긋한 술과 작별할 수 있지 않았을까.

치열하고 악랄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기란 지은 죄도 없는데 벌을 받는 것처럼 힘들다. 하지만 나보다 어려운 이웃에게 눈길을 돌리지 않을 수 없다. 그 일은 쉽지 않다. 쉽지 않은 그 길을 걷고 있는 비전트레이닝센터 지원주택 담당자 박성희 선생님을 김봉기씨를 인터뷰한 그곳에서 만났다.

"2017년 1월에 입주가 시작되었어요. 거리노숙하시는 분들께도 알렸죠. 하지만 들어오려고 하지 않았어요. 누구나 정든 곳에서 살다가 다른 곳으로 이사 가면 낯설고 힘들잖아요. 이분들은 그게 더 심하셨어요. 그동안 관계 맺은 사람들이 다 서울역에 있는 거잖아요. 거리에 오래 계셨기 때문에 아무리 좋은 집을 줘도 체감이 안 됐던 것 같아요. 대부분은 쉼터에서 오셨고 김봉기님을 포함해 다섯 분은 거리노숙을 하다가 오셨어요.

여긴 시설이 아닌 '집'이고 사생활이 보장되는 공간이지만, 알코올 의존증인 분들이 계시기 때문에 신경 쓸 일이 많아요. 방 안에서 혼자 술을 드실 수 있으니 언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죠. 감당하기 힘들 거라고 생각했어요. 공동체 규칙을 만들려고 했지만 처음엔 다 거부하셨어요. '여긴 시설이 아니니 간섭하지 말아라. 너희들 없어도 우리는 잘 살 수 있어'라면서 반발하셨죠.

초기에는 매일같이 술 마시는 일이 일상이었어요. 지원주택의 의미를 잊을 만큼 아수라장이 되기도 했죠. 그런데 입주 후 3개월이 지나면서부터 서서히 변하기 시작했어요. 지원주택 내부에서는 여럿이 모여 술을 마시지 말자고 말해주었고, 그걸 지킬 수 있는 방법을 저희와 얘기하기 시작했어요.

2017년 5월이었어요. 입주민 한 분이 저희가 없는 휴일에 술을 과하게 드시다가 쇼크로 돌아가셨어요. 그 일이 있고 나서 더 많이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우리를 좀 도와주세요, 우리가 무얼 하면 될까요?'라고 물어보셨어요. 스스로 약속을 만들고, 서로 어울리면서 조금씩 공동체의 모습을 보이게 됐죠. 여전히 술을 드시는 분들이 있지만, 저희의 의견을 따르려고 애쓰는 게 보였어요. 김봉기씨는 여기 와서 가장 많이 달라진 분 중 한 분이지요."

"반발도 있었지만... 지금은 미소를 보이시죠"

 공동체를 꾸려가기 위한 각종 약속과 자치회의 결과를 붙여놓은 게시판.
 공동체를 꾸려가기 위한 각종 약속과 자치회의 결과를 붙여놓은 게시판.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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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가까이 살던 이웃이 죽자, 그 일을 계기로 술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고 앞날을 걱정하게 되었다. 거리나 쪽방, 고시원에 혼자 있을 때는 어려움이 닥쳐도 헤쳐나갈 동기가 생기지 않았다.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살았다. 공동체가 생기고 내 문제를 함께 고민하고 의논할 사람이 있으니 마음이 놓였다. 이만큼 오기까지에는 낮이나 밤이나 긴장을 풀지 않고 애쓴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지원주택을 안정시켜야 되니까 스트레스를 받아도 풀만 한 여지가 없어요. 아직은 시범사업이기 때문에 인건비도 한 사람만 지원을 해줘요. 사업비도 그리 많지는 않고요. 입주민을 위한 커뮤니티 공간의 월세, 전기료, 수도세까지 다 내고 나면 남는 게 없어요. 그러니 항상 돈이 모자라죠. 단주를 목적으로 하지 않는 지원주택 특성상,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혼자서 모든 걸 감당하기는 힘들어요. 5월에 한 분이 돌아가신 후부터는 일주일 내내 한 명이라도 꼭 여기 있으려고 해요.

'거리에서 술 먹던 사람들을 안전한 곳에 모아놓고 술 먹게 하는 거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어요. 하지만 누구나 주거권을 보장받으며 살아야 할 권리가 있음에도 그렇지 못한 분들이 오신 거잖아요. 여기 오고부터는 월세 안 밀리려고 노력하시죠. 술을 먹긴 해도 인간답게 살아보려고 애쓰시는 거잖아요.

지금은 처음에 볼 수 없었던 미소들이 보이고 행복해해요. 어떤 때는 너무 즐거워하시죠. 이 상태를 유지하기 위해 일도 하고, 자기 삶의 주체가 되고 있어요. 그런 모습을 볼 때 보람을 느껴요. 지원주택이 더 많아져야 한다는 생각도 들고요."

 비전트레이닝센터 지원주택 담당자 박성희 사회복지사님.
 비전트레이닝센터 지원주택 담당자 박성희 사회복지사님.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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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주택의 사회복지사 선생님들은 전문적인 상담을 통해 음주했을 때의 장단점을 스스로 깨달을 수 있도록 유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졌다. 술이 없으면 하루도 살 수 없었던 분들이 스스로 음주량을 조절하며 일을 하기 시작한 것이다. 박성희 선생님은 정말 신기하고 놀라운 일이라며 활짝 웃었다.

"2018년 말에 시범사업이 끝납니다. 지금까지 저희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관계'예요. 처음엔 공동체에 관심이 없던 입주민들이 이제는 자치회의(반상회) 때도 가급적 참석하시고, 어떤 일을 제안했을 때 무작정 반대를 하는 분들은 없어요. 장취자(오래 술 먹는 사람)를 설득할 때도 그렇고, 병원으로 모셔갈 때도 관계로 설득하려 했기 때문에 결국은 통한 거라고 봐요.

시범사업이 잘 끝나서 냉정하게 평가받았으면 좋겠어요. 평가결과를 겸허하게 수용해서 개선해야 할 부분은 개선하고, 저희가 제안한 부분이 수용되면 더 좋고요. 지원주택이 주거취약계층을 위한 정책으로 자리 잡는 법률까지 만들어지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은 없겠죠."

 커뮤니티 공간의 세탁기와 싱크대. 입주민을 위해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갖추어 놓었다.
 커뮤니티 공간의 세탁기와 싱크대. 입주민을 위해 공용으로 사용할 수 있게 갖추어 놓었다.
ⓒ 문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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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하는 내내 커뮤니티 공간에 있는 세탁기(원룸이기 때문에 각 방에 세탁기가 없는 곳이 있다)로 빨래를 하는 입주민이 들락거렸다. 다른 때 같으면 인터뷰에 방해가 될까봐 신경을 썼을 텐데 그날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오히려 주거와 복지가 혁명적으로 결합한 역사적인 현장의 증인(?)이 되었다며 혼자 좋아했다. 터져나오는 환호성을 참지 못해 지원주택을 나오면서 미친 듯이 큰 소리로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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