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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만든 '누리과정 해설서'.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만든 '누리과정 해설서'.
ⓒ 윤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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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행 3~5세 유치원과 어린이집 교육과정인 누리과정은 유아발달단계상 '한글 철자 교육도 금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에서 '유치원 등의 영어교육 금지 반대'를 주장하는 상황에서 확인된 내용이다.

이전 정부 누리과정도 "한글 낱말쓰기 등 글자수업 하지 말라"

11일, 교육부와 보건복지부가 2013년에 만든 '3-5세 연령별 누리과정 해설서'를 살펴봤더니 모국어교육도 "글자 모양을 따라 쓰는 등의 글자수업을 금지"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현재도 적용되고 있는 이 해설서는 "글자를 배우기 위해 글자 모양을 따라 쓰기, 자모음을 외우고 반복하게 쓰기 등의 글자수업은 하지 말아야 한다"면서 "낱말 쓰기 등을 강요한다면 유아는 이후에 어떤 글도 스스로 쓰려고 하지 않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정부의 방침은 이전 정부부터 수십 년째 지속되어온 것이다.

하지만 일부 유치원과 어린이집 등에서 한글 철자를 가르치는 경우도 있어왔다. 이것은 현행 유아교육과정인 누리과정을 어긴 행동이었던 셈이다.

이에 대해 교육부 관계자들은 "모국어에 대한 철자교육도 금지해온 것이 오랫동안 지속된 역대 정부의 교육적 판단"이라면서 "모국어도 그러는 상황에서 영어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은 맞지 않다"고 밝혔다.

유아의 발달 단계상 '모국어 철자교육은 초등학교 1학년에 하고, 영어교육은 초3부터 하는 게 적절하다'는 것이 교육 전문가와 교육당국의 오랜 기간 검증된 판단이었다.

이에 따라 2015 초등교육과정은 지난해부터 초등학교 1학년의 '한글 습득교육' 시간을 기존 27시간에서 68시간으로 큰 폭 늘렸다. '유치원과 가정에서 한글 조기 교육을 하지 않았다'는 전제로 학생들을 가르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유아발달단계 등을 연구해온 노현경 서울신창초 병설유치원 교사(전교조 참교육연구소 유아분과)는 "영유아에게 한글교육을 구조적으로 하는 것은 인지적인 영역을 건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아이들한테는 커다란 스트레스"라면서 "누리과정에서 유아의 특성 때문에 한글도 구조적 교육을 금지하는 마당에 외국어 교육인 영어 교육을 금지하겠다는 교육부의 방침은 교육적으로 당연한 것"이라고 말했다.

국책연구기관인 육아정책연구소의 2015년 연구, '연령집단에 따른 외국어 습득능력' 결과를 보면 말하기 영역은 만 5세 유아보다 초3 아동과 대학생에게 더 큰 효과가 나타났고, 읽기 영역은 대학생의 수업효과가 가장 컸다. 결국 취학 전 유아에게 외국어 학습은 큰 효과가 없다고 볼 수도 있다.

현행 초등학교 교육 과정은 학생의 발달단계상 영어교육의 경우 초 1, 2에도 금지하고, 초3부터 하도록 하고 있다. 2014년 국회를 통과한 선행학습금지특별법에 따라 올해 3월부터는 초 1, 2학년 대상 방과후학교 영어교육도 금지된다. 법에서 정한 올해 2월 28일까지의 적용 유예시점이 끝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교육부는 지난 12월 27일, '유아교육 혁신방안'을 발표하면서 "한글, 영어교육 등 초등학교 1~2학년 교육과정에도 포함되지 않은 교과목과 유아 발달단계에 부적합한 내용은 누리과정에서 제외할 것"이라면서 "혁신유치원 등에서는 무분별한 영어, 한글 등 특성화 프로그램 위주의 방과후과정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그러자 일부 언론들이 반기를 들었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이 유아 영어교육을 하지 않으면 값비싼 유아학원으로 학부모들이 몰리는 '풍선효과'와 영어 양극화가 나타나게 된다"는 것이다.

하지만 2013년부터 시행된 누리과정에도 영어교육 내용은 들어가 있지 않다. 정규 교육 과정반에서는 영어교육을 할 수 없는 것이다. 이에 따라 영어교육은 유치원 방과후 과정반에서 특성화 프로그램으로 제한해 실시되어 왔다. 교육부가 자체 조사한 결과를 보면 영어교육을 하는 유치원은 공립 32.3%, 사립 61.6%였다.

지난 10일 33개 교육시민단체들이 '조기 영어학원의 영어 선행교육 규제'를 요구하고 있다.
 지난 10일 33개 교육시민단체들이 '조기 영어학원의 영어 선행교육 규제'를 요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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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걱정없는세상, 한국여성단체연합, 흥사단,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등 33개 단체는 지난 10일 오전 정부서울청사 앞 기자회견에서 "영어교육의 학원 풍선효과를 막기 위해서는 유아학원의 영어 선행 프로그램 규제도 동시에 진행되는 것이 마땅하다"고 주장했다.

"영어 논란은 꼬리가 몸통 흔들기"...교육감협도 '유아 영어학원 규제 방안' 논의

이 회견장에서 박근병 서울교사노조 위원장은 "이미 2014년부터 시행된 선행학습금지법에 따라 유치원과 어린이집에서 영어교육을 금지하는 것은 당연한 조치"라면서 "법이 미비하면 개정해야 하는 것이지, 사교육 풍선효과 때문에 영어교육을 유치원 등에서 해야 한다는 것은 '꼬리가 몸통을 흔드는 주장'"이라고 말했다.

전국시도교육감협의회도 11일 오후 세종시에서 총회를 열고 '유치원, 어린이집은 물론 유아학원의 영어교육 규제' 안건에 대해 심의할 예정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기구는 심의 결과를 바탕으로 해당 내용을 교육부에 건의할 방침이다.

교육부는 이달 안에 유치원, 어린이집의 '영어교육 금지' 방침 적용시점을 발표할 예정이다.


태그:#유치원 영어교육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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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에서 교육기사를 쓰고 있습니다. '살아움직이며실천하는진짜기자'가 꿈입니다. 제보는 bulgom@gmail.com

오마이뉴스 사회부에서 팩트체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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